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791화 (789/1,009)

***

프랑에게 마나를 잔뜩 질싸해준 나는 아침부터 틀딱님들께 불려갔다.

〈이 위치로 틀림없는가?〉

〈예.〉

상원의원 대귀족 콤비에게 다음 유적의 위치를 설명해주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의 존재. 차원의 벽. 그걸 가르는 변경백의 검술과 지도 상의 위치.

그런 내용의 추측을 전해주자, 그들은 탐탁찮은 것처럼 끙끙댔다.

〈하필이면 여긴가.〉

프랑한테 술을 준 걸 살짝 꼽주자 ‘선물 줬으니 쌤쌤’이라며 퉁쳤던 오델리아는 그 뻔뻔함은 어따 팔아먹었는지 세상 골치 아픈 것처럼 말했다.

〈좋지 않네. 여긴 다른 상원의원의 영지야.〉

〈……거 참.〉

머리 아픈 일이긴 하군. 입지적으로 오델리아의 영지이길 바랐는데.

〈어떤 분이시죠?〉

〈다비드 폰 엘크리누스. 원로원의 강경파일세. 맹견이라고 야유받는.〉

그렇게 부연설명이 이어지길 잠시. 나는 그들의 설명을 듣고서 말했다.

〈그러니까 황실과 반목하는 유서 깊은 가문의 가주라는 거군요?〉

〈딱 잘라 말하자면 그렇네만, 왜?〉

〈황제와 황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놈들이 제 눈에 거슬리게 구는 명가를 100년이고 200년이고 살려뒀다? 놀라운 자비심이군요. 적대하는 저희도 목 날아갈 걱정은 덜겠어요.〉

〈……뭐라고? 그건…… 아니, 하지만……〉

내 비아냥에 상원의원 콤비는 눈을 크게 떴다.

어르신은 또 뭘 놀라신대냐. 원로원에 스파이가 있을 거란 얘기는 하지 않았나?

오델리아는 반신반의하며 질문했다.

〈황실의 끄나풀이란 거야? 다비드가?〉

〈넹.〉

그렇게 놀라셔도 저는 공감하기 힘든데요.

가문 이름이야 들어봤는데, 이름을 안다고 아는 거면 나도 연예계 마당발이게?

단지 이 노인네들 반응을 보면 놀랄 만한 일은 맞는 모양.

〈첩자가 높은 위치에 있지 말란 법 있습니까? 놈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세간의 이득이 아니잖습니까. 평상시엔 의심받지 않게 반목하다가──〉

〈……황실에 적대하는 놈들을 한 데 모아두고, 중요할 때는 억제한다?〉

〈넹.〉

가장 무서운 사건사고는 내분과 트롤링이다.

높으신 분들이 스마트폰의 성능에 제한을 걸고 스펙을 반토막낸다던가, 그런 거.

〈맹점이었군. 설마 녀석이……〉

생각이 깊어지는 대귀족님들.

그도 그렇겠지. 저들이 의심도 안 했었다는 건 진짜 수상쩍지 않았다는 거거든.

원균이나 무다구치 렌야를 스파이로 의심할 순 있어도, 이성에 충실하게 활동한 유능한 의원들을 ‘저 새끼 황실이랑 짜고 치는 거 아냐?’라고 경계하겠냐고.

증거도 없이 그걸 믿어? 매끼마다 음모론 하나 뚝딱 해치우는 틀딱이신지?

아니면 내가 귀 얇은 노인들한테 녹즙 파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던가.

이거 지구로 돌아가면 나도 유트브에 병신 TV 국뽕 채널 하나 파야겠는데.

〈제 3자인 제겐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 뿐이라, 너무 신용하시면 당황스러운데요.〉

〈아냐. 의식을 환기시킬 의의는 충분해.〉

〈하긴 좀 쎄하긴 해요. 하필 히타이트 유적이 있는 지역의 영주기도 하고요.〉

일단 책임 문제 상 한 발 뺐다가 바로 다시 집어넣는 나.

아주 보신주의가 몸에 배버렸군. 이게 대학원생 종특 겸 짬바가 아니면 뭐겠냐.

〈그도 상원의원일세. 자네 말이 사실이었을 때 제일 곤란할 상대지. 그리고 내 경험으로 보자면 제발 틀렸으면 하는 의심은 꼭 적중하더군.〉

담배를 끈 어르신이 신음했다. 저렇게 말씀하신 걸 보면 권력자들 관점에서도 내 말을 믿을 만한 이유가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이거 반응이 심각한데?’

이렇게까지 고뇌할 일인가?

내가 눈을 껌뻑거리자 팔짱을 낀 오델리아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우리가 이 위치를 좋지 않다고 말한 건 다른 이유도 있어.〉

〈들려주시겠습니까?〉

〈내 절기를 보여줬을 때 말했지? 국경에 어느 대마법사가 있다고.〉

〈넹?〉

그런 말을 했던가? 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울프헤딘 백작?〉

〈앗, 넵. 농담입니다. 물론 기억 나고 말고요.〉

나는 의문스러워 했다가 ‘얘 좀 봐라?’하며 눈초리를 치켜뜨는 오델리아를 보고 바로 천 번 만 번 맞는 말씀이라는 양 받아쳤다.

그리고 화제도 바꿀 겸 표정을 다잡았다.

〈……그런데, 대마법사라뇨?〉

의문으로 생각한 적은 있다.

국경에서 차원절단 기술인 ‘절계’를 날려댔다는 오델리아.

기술의 범위가 넓은 것도 있겠지만 지도를 검게 색칠할 수준이었다. 사용한 횟수도 한손으로는 못 셀 만큼 많지 않겠는가.

수준이 낮은 상대라면 오버킬 확정인 필살기를 그만큼 펼쳐댔다.

마스터 클래스인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해야만 했던 강적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마법사 길드의 시조. 남존(南尊)의 대마법사, 에른스트 에이트리센.〉

어르신은 역사서를 읊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룬 문자를 조합해서 현대 마법체계의 기틀을 세웠다는 인물일세.〉

어르신 曰, 니다벨리르에서 흘러들어와서 후일 마법사 길드가 되는 단체의 초석을 세우는 데 이바지했다는 거물 중의 거물이라는 모양이다.

나는 역사의 타임라인을 떠올리고 피식거렸다.

〈최소 400년 전 쯤의 인물이군요. 언데드라도 된답니까?〉

〈죽지 않고 어디 탑에 은둔해 있다는 이야기가 낭설처럼 전해지던 인물일세. 대마법사의 이름을 빌린 타인이라는 추측도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놈이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하지 않는 한 모를 일이고.〉

오델리아는 그 진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 검을 정면에서 막고 살아남을 정도는 돼. 대마법사를 자칭할 자격은 되지?〉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에이트리센이라……〉

익숙한 성씨에 눈을 찌푸리는 나. 어르신은 왜 그러냐는 듯 묻다가 눈치채셨다.

〈그러고 보면 자네 첫째 부인도 분명 에이트리넨이라는 성씨였지?〉

〈첫째 부인? 게르마니아권 이름인데…… 혹시 그 하프 드워프 애 말이니?〉

〈예. 하지만 뭐, 계보라도 같은 모양이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잠깐 게르마니아와 니다벨리르 사람들의 작명법을 설명하자.

‘에이트리넨’은 ‘에이트리의 딸’이란 뜻이다.

마찬가지로 ‘에이트리센’은 ‘에이트리의 아들’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진짜 친아버지의 이름은 아니고, 선조 이름을 성씨로 붙이는 거다. 결국 프랑이랑 연이 있어봤자 같은 파주 김씨네~ 하는 정도의 이야깃거리일 뿐이겠지.

〈본론으로 돌아가죠. 이제 어쩌시렵니까?〉

〈……생각 좀 하게 해 줘.〉

머리를 소파 목받이 뒤로 젖히는 오델리아.

〈기탄없이 말해서 다음 탐사 땐 아예 내가 네 일행에 낄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여간 어려운 게 아니네. 귀찮게 협상 자리부터 만들어야 하나.〉

〈타협안을 만든다고 다가 아닐세. 정말 녀석이 황실의 어둠에 복종하는 첩자라면 설득할 방법이 있겠나? 후환을 감당하고 먼저 나서야 할 때야.〉

〈……물귀신 놈. 아주 황실이랑 제대로 붙자고 칼을 들이밀면서 협박을 해라.〉

〈허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째려보는 오델리아. 가볍게 흘려넘기는 어르신. 하여튼 간도 크셔.

시간은 금이다. 그들은 1시간 정도 알차게 서로 날 선 대화를 나누면서 결론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 결론이 어떻게 형태를 갖춰갈 무렵이었다.

〈변경백. 급보입니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 오델리아의 가신이었다.

〈들어와. 무슨 일인데?〉

그들 만한 귀족들이 대화하는 자리에 노크하며 참견할 정도다. 교육을 못 받은 집사도 아닐 테니 절대 보통 사건은 아닐 것이었다.

오델리아는 그래서 바로 질문했고, 가신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창백하게 답했다.

〈여기, 본가에서 보낸 그림입니다.〉

전서구가 가져온 것일까? 가신이 보여준 그림에 나는 눈길을 돌렸다.

〈국경지대의 초원이 소멸했다고 합니다.〉

이해하기도 힘들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고지대에서 내려보며 그린 듯한 초원의 그림은 마치 운석 충돌지 같았다.

소멸이라는 말대로, 풀 한 포기 없이 황무지의 크레이터가 생긴 것이다.

〈……하. 사람이 없는 틈에 잘도 남의 땅에서 설쳐줬는걸.〉

오델리아는 삽시간에 표정이 차가워긴 했는데, 보고의 신빙성을 의심하진 않았다.

〈피해 범위는? 누구랑 누가 붙었지?〉

〈소멸한 범위는 남작령 1개 정도이며, 어떠한 이들의 사주인지는…… 예?〉

말하다 말고 웅얼대는 가신.

변경의 후작이어도 원로의 심복인데 좀 어설픈 대답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질문이었다.

원인이 뭔지 물어본 것도 아니고, 누구랑 누가 붙었냐니, 그게 웬 말인가?

〈내 통치 이후로는 몬스터나 도적떼, 소수부족 말곤 나올 것도 없는 영지야. 이런 헛짓거리를 할 이유도, 그럴 능력이 있는 놈도 없어. 에른스트를 빼면.〉

당연한 얘기 아니냐는 듯 설명하는 오델리아.

그래서였을까. 나는 무심코 나쁘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대마법사 에른스트의 인물상을 선인보다는 악인 쪽으로 수정했다.

〈하…… 내가 놈의 마법을 막겠다고 절계까지 써대면서 피해를 최소화했는데, 며칠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 꼴이네. 절대 우연은 아니겠지.〉

탄식하는 오델리아. 가신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 본가의 가신들에게 추가 조사를 재촉하겠습니다. 기사들을 대동해서──〉

〈관둬. 가솔들만 죽어나갈 거야.〉

일언지하로 부정한 오델리아는 이마를 두들기다 중얼거렸다.

〈변경의 수호는 내 일이지. 국경 인근에서 내 권한을 밀어붙이면……〉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울프헤딘 백작. 제안이 있는데 들어보겠어?〉

〈네. 말씀하십셔.〉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이런 대사건이야. 마땅한 인과관계가 있겠지. 안 그래?〉

〈흠. 당연한 소리군.〉

〈예.〉

어르신은 긍정하는 느낌. 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에른스트와 싸울 수 있는 놈이 국경에 나타난 거야. 하지만 내가 변경백으로서 권한을 주장하면 네가 찾는 유적으로 데려가줄 수도 있어.〉

〈남의 영지라도요?〉

〈강압적인 방식이 되겠지만. 그런데 정말로 그 깃털이 보내주는 곳이 히타이트의 유적이고, 다비드가 진짜 황실의 개나 그에 준하는 괴물이라면.〉

〈뒷일을 걱정할 건 없겠군요. 저희를 막으려고 들 테니 해치우면 그만이겠습니다.〉

〈이해력이 좋은 점, 아주 마음에 들어.〉

오델리아는 픽 웃고서 말했다.

〈괜찮겠니? 상당한 격전이 될 텐데.〉

그럴 수밖에. 존나 에이션트한 대마법사에, 그런 놈이랑 맞짱이 가능한 누군가. 게다가 다비드라는 수상쩍은 놈까지. 만만한 싸움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란 게 제가 피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더라고요.〉

〈삶의 진리지. 겪어보기 전까진 깨닫기 힘든.〉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런 고민은 거듭 반복했다. 답은 정해져 있다.

내가 99대대를 쓸어버리고 히타이트의 존재가 공공연해진 것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면, 저들에겐 그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그 동기의 정체가 뭐건 다른 새끼들이 설치도록 둘 순 없지.

씹새들의 똥꼬에 불이 붙었다면, 그 불이 몸에 옮겨붙도록 해 주는 게 매너다.

〈가십시다. 변경백이 계시니 든든하겠네요.〉

결국 브리타니아엔 들릴 틈도 없었군.

괜히 헛걸음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