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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07화 (805/1,009)

타격이 명치를 두드리자 라한은 숨을 토해냈다.

“큽…!!”

피 비린 맛이 입을 감돌았다. 가슴에 울려퍼진 아픔에 라한은 이를 악물었다.

“무모함 뿐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더 이상 잔재주라며 깔보지 않으마!!”

고함을 친 라한은 맹공을 퍼부었다.

촤자자자자작─!! 방어를 거의 포기한 노르드의 몸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늘어났다. 그중 몇 개는 힘줄을 베는 데 이르고, 격통을 유발했을 것이다.

동작에 장애가 생기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뼈 뿐인 스켈레톤이어도 움직이는 게 언데드다. 손목 힘줄을 베도 공격이 약해질 리는 없겠지만, 하다 못해 조금이라도 공세가 약해지면──

“응~ 좆도 안 아파~.”

“……칫!”

유유자적한 말뽄새가 거짓말처럼 사납게 덮치는 창술.

─퍼억!!

낭창낭창하게 휜 창날은 라한의 팔에 유효타를 남겼다. 피가 치솟았다.

가장 큰 빈틈은 공격을 가하는 순간이며, 라한의 방어력은 유물 갑옷을 포함해도 노르드보다 낮다. 맞으면 다치고, 부상이 심해지면 죽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지키고자 했다간 노르드의 오러와 야수회귀를 온전히 뚫을 수 없었다. 거의 언데드와 싸우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생각보다 불리하다. 라한은 눈을 부라렸다.

수비를 경시하고 공격해 오는 적? 그런 건 라한에게는 가장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는 상대였다. 그의 권능은 방어가 허술하고, 목이 훤히 드러난 적에게 가장 효과적이니까.

【황금의 황혼】은 라한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반드시 필중시킨다.

아무리 터프한 언데드라도 그가 전력을 다해서 검을 내려치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노르드도 목이 달아나면 죽을 터.

‘급소 이외의 방어를 포기했다면, 권능으로……’

……아니, 그건 악수(惡手)다. 라한은 한 순간의 유혹을 떨쳤다.

권능에 의한 참수를 시도했다가 공격이 막히면? 라한의 체력만 낭비된다.

미래를 읽는 적에게 권능은 역효과다.

─채앵!!

팔다리를 절단하려고 휘두른 검이 막혔다. 만약 좀 더 과감하게 부위 손실을 노렸다면 팔을 주고 라한의 목을 취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피아의 권능이 맞겨룸수를 이루는 상황.

“권능을 봉쇄당한 육박전이라. 오랜만이군.”

라한은 전투의 흥분이나 고양감 없이, 묵묵하게 고된 작업을 처리하는 것처럼 무기를 붙잡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봐라, 틀딱 연쇄살인마 새꺄!”

“피가 끓는가 보구나. 솜씨를 관망하겠다!!”

쿠과가가가각─!!!!

살기등등한 전사들은 배경의 지형지물을 터트려가며 거칠게 부딪혔다.

***

“……지지 마라, 꼬마야.”

동문에서 날뛰는 맹수들을 보며 크라운 크라운은 중얼거렸다.

그녀는 노르드의 무모한 싸움법에 따로 불만을 갖고 있진 않았다.

“목숨을 건 혈투. 전사라면 모름지기 그래야지.”

신대에 그녀와 그녀의 언니를 놀라게 했던 전사들은 부상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용기는 사후의 영광이 있어서였기는 했지만.

“하지만 1번의 패배는 승리의 밑거름이라 쳐도, 2연패는 부끄럽잖니? 또 널 권능으로 구해냈다간 네게 들려줄 수 있는 얘기도 줄어들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어연 수천 년이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몸도 한계가 머지 않았다. 권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죽어가는 꼴이 될 거란 예상은 아무리 그녀라도 하지 못했으니까.

중얼거리던 그녀는 노르드가 한 말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할머니의 지혜 주머니라니. 내용물은 변변찮을 텐데──”

그렇게 자조적으로 말했을 때였다.

목을 핥는 듯한 차가운 기척에 오한이 솟았다. 크라운 크라운은 그 즉시─등을 돌리지도 않고─ 뒤쪽으로 크게 팔을 휘둘렀다.

─쏴아아아악!!!

예리한 마나의 실이 용이 할퀸 것처럼 그녀가 서 있던 후방을 휩쓸었다.

─휘릭!

하지만 그 파괴가 자신에게 미치기 직전, 왕성 내부로 침입한 누군가는 후방으로 도약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피해낸 그가 땅에 착지했다.

구릿빛의 근골 장대한 거한. 다비드였다.

“흐음. 레이디께서 감은 좋으신가 보오.”

“흐아아아악!! 모, 몸이! 다리가──!!”

함께 온 마법사와 기사들만 토막이 나서 나뒹굴었지만, 그는 턱만 쓰다듬었다.

“허나 방문객을 손톱으로 할퀴다니, 숙녀가 할 짓은 아니지 않소?”

“초대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외간남자만큼 소름 돋는 스토커도 없지.”

“그건 내 잘못이 맞군. 노크해도 들릴 것 같지 않길래 그만 의욕이 앞섰소.”

“내 친구가 나가자마자 헐레벌떡 쫓아와 놓고는 입만 살아서 떠들긴.”

등 뒤로 손을 돌렸다. 노르드가 주고 갔던 블랙 박스가 잡혔다.

하지만 열 방법이 없었다. 왕성 내에 있던 해체 마도구는 옛적에 고장났고 지금으로서는 방패로도 쓰기 힘든 애물단지였다.

“독수공방을 차린 레이디께서 남자를 들였기에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을 뿐이오. 오붓하니 시간을 보내는 남녀에게 끼어들어서야 불한당 아니겠소?”

친절하게 웃는 다비드였지만, 크라운 크라운은 질색할 뿐이었다.

“관둬. 니들이 실실 쪼개는 걸 봐 봤자 역겨울 뿐이야.”

“인간 흉내도 가식도 아니외다. 오랜 숙원을 풀 기회인데 진심으로 웃을 만 하잖소? 수만 년 전의 우리 종족에게는 웃는 표정도 없긴 했소만.”

─저벅. 그는 사람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몸짓으로 다가왔다.

“그리운 감상마저 드는군. 수만 년 전의 추억을 공유할 이들도, 이제는 나를 빼면 3명 밖에 남지 않았소. 대부분 레이디의 손에 죽어버렸으니.”

“나 같은 미녀한테 죽었으면 충분히 호상인 줄 알아야지. 문어 대가리 주제에.”

다비드와 같은 종족.

별의 바다 건너에서 건너온 흉성의 아이들(The star-spawn).

그녀가 고대 무렵부터 궁중광대 ‘크라운 크라운’으로서 찾아내서 죽이고, 반생반사의 몸이 된 지금에도 기척을 느낄 때마다 죽여왔던 그녀의 원수다.

남은 건 4마리라. 얼마 전에 해치운 셀루스티아 남작도 포함될까.

크라운 크라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소식을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노르드가 돌아오기 전까지 살아남기는 어려울지도 몰랐으니까.

“그대에게 쫓겨서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기로 한 게 얼마 전인지도 가물가물하군. 설마 전직 신이 광대로 변장해서 우리를 찾아다닐 줄은 몰랐소.”

“새삼스럽게. 나는 원래 오딘 언니의 광대였어.”

“그랬었지. 허면 광대답게 겸허히 처형을 받아들이시오. 내 동료들이 사냥당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길었던 추격전을 끝낼 때가 왔소.”

─서걱.

다비드는 손가락을 둥글게 휘둘렀다. 천장이 뻥 뚫리면서 차원의 문에서 우주가 펼쳐졌다. 저들이 본신의 힘을 그나마 발휘 가능한 공간이었다.

“로키=로두르. 그대의 신좌로써 우리의 시대는 막을 열 것이외다.”

“……종말의 시대를 잘못 말한 거겠지.”

“인간에게 있어서 종말일 뿐이오. 아니, 새로운 시작일 수도.”

그는 흐물거리며 웃었다.

인간을 위장할 때의 만든 매력적인 웃음은 온데 간데 없고, 인간 가죽을 뒤집어 쓴 괴물이 형태를 무너트리는 듯한 혐오스러운 웃음이었다.

“초대 원로와 아르마 알스가 만들었던 〈강림〉 마법은 이미 우리 수중에 있소. 유희신의 신좌엔 죽음을 면한 옛 지배자 중 한 분께서 앉으시겠지.”

“……………….”

“동정하겠소, 레이디. 처음으로 마음을 허락했던 의붓 오라비에, 믿었던 동료, 나와 내 동료들까지. 레이디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대의 몸과 혼만을 탐하는 자들만 남았구려.”

“닥쳐.”

크라운 크라운은 손에 피가 나도록 쥐었다. 그녀로부터 넘실대는 살기는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다비드만을 죽일 듯이 살벌했다.

“하하하하! 레이디야말로 참으로 종말을 부르는 악귀요!”

하지만 다비드는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본 듯이 손뼉을 치며 폭소했다.

“신들의 시대도! 인간들의 시대도! 그대의 잘못으로 끝났으니 말이야!”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이미르의 구더기 따위가!!”

팔을 위로 뻗으며 마법을 펼쳤다. 궁전의 홀이 10배 넘게 부풀었고, 느닷없이 나타난 수백 미터 길이의 뱀이 그 아가리를 벌리며 덤벼들었다.

“진정해라! 환상이다! 속으면…… 끄악!!”

지시하던 이족 마법사가 한입에 삼켜졌다. 검을 뽑은 기사들은 촉수 팔을 길게 늘리며 뱀을 무시하고서 크라운 크라운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달려도 달려도 거리가 줄지 않았다.

10배로 넓어진 공간을 1미터도 달릴 수 없었다. 이성이 없어진 기사들은 그래도 덤벼들었으나, 곧 뱀의 몸체에 깔려서 짓이겨진 것처럼 박살났다.

뱀은 녹으며 파랗게 타오르더니 불길로 왕성을 뒤덮었다.

호르르르르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물방울의 막을 터트린 것일까. 천장에 펼쳐진 우주가 왕성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환상의 불꽃이 꺼지고 맹렬한 바람이 불었다.

─파팟.

크라운 크라운은 스스로도 창세의 권능의 하위 호환 격인 마법으로 그 공간에 막을 씌웠다. 신좌의 권능이 아닌 마법이라면 못 쓸 건 없었다.

“하아, 하…… 쿨럭.”

그렇지만 부담은 부담이었다. 윗옷을 움켜쥐고 휘청거리는 가운데 불길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왕성의 공기가 우주공간의 냉기를 직접 전파받고 차갑게 내려앉았다.

서리와 이슬방울이 맺히는 와중, 갈색의 방패가 불길이 있던 곳에 우뚝 섰다.

“……망할 자식. 잘도 내 앞에서 그 방패를 꺼내들었겠다.”

“화낼 것 없잖소? 친한 신도 아니었을 텐데.”

붕─. 떠오른 방패는 줄어들며 다비드를 지켰다.

방패를 치운 그는 검지손가락의 반지를 만지며 기품 넘치게 인사했다.

“활과 방패의 신 우르(Ullr)의 신좌요. 이거 참, 워낙 무능하고 기록도 없어서 무슨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아내기 힘들었소.”

“무능?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그녀는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우르는…… 그 녀석은 아스가르드의 대의식의 총괄자였어. 우리의 권능을 모으고 제사를 벌여서 새로운 세계를, 인류가 살 수 있는 푸른 별을 만들어낸 대단한 녀석이었다고.”

“하지만 이미 죽었지. 지금은 내가 이름을 빌려쓰고 있는 배역에 지나지 않소. 생전의 권능 따위 나한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고.”

다비드에겐 이 활과 방패, 그리고 신좌라는 ‘격(格)’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배역’은 중요하다. 이 위그드라실에서 태어나지 않은 별의 자손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옛 지배자들은 적절한 ‘배역’── ‘명분’이 없으면 자신의 힘을 쓸 수 없다.

연극에서 ‘나무’나 ‘마부’가 갑자기 주인공들을 해치워버리고 주연이 될 수는 없는 이유와 같다. 능력과는 별개로 존재방식의 문제였다.

“그래도 명색이 신은 신이구려. 나의 말라붙은 영혼이 기뻐하는 게 느껴지시오?”

다비드의 가죽이 찢어지면서 그 안에서 거뭇한 마나와 촉수가 삐져나왔다.

노르드가 여기 있었다면 에일리언에게 기생당한 우주인 같다고 말했으리라. 크라운 크라운은 이를 갈면서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별의 자손은 신의 혈통을 받는 이들이다.

이 세계의 존재로 비유하면 바이콘처럼 창조된 신족에 가까웠다.

다비드는 십중팔구 좀 더 피가 짙은 직계후손. 크라운 크라운── 로키로 비유하면 ‘진짜 로키’의 자식인 슬레이프니르 정도의 입지겠지.

인간의 역사에 전해지는 로키의 다른 자식들은 대부분 가짜의 자식이니까.

그녀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가 옛 지배자들을 이 땅에 불러오기 위해 만든 ‘배역’이다.

신좌를 얻은 다비드는 창세의 권능을 못 다룰 뿐, 적어도 이 세계에서만큼은 그들에게 필적하는 존재겠지만 말이다.

다비드는 찢어진 눈가에서 솟은 촉수를 휘었다. 마치 웃는 것 같았다.

“원망하려거든 울프헤딘을 원망하시오.”

“내가 왜? 걔가 남아 있었으면 나타지도 않았을 거면서.”

“거듭 말하지만 혹여라도 오해는 마시오. 그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니. 내 실수로 귀인의 육체에 흠집을 냈다간 그 무슨 불경이겠소?”

“……아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상황도 잊고 킥킥댔다.

다비드는 그 웃음이 불쾌한 것처럼 멈칫했다.

“……실성이라도 하셨소?”

“미안하네. 광대답지 못하게 웃음을 못 참았어. 하지만 묻지도 않은 말에 제 발 저린 꼴이라니. 너 생각보다 유머 센스가 있구나.”

“뭐라?”

“노르드가 부러운가 보구나. 어리석은 아이야.”

─콰앙!!!

반사적으로 쏜 듯한 화살이 그녀가 있던 장소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다비드는 자신의 옆에 부유하는 활을 이상한 듯 보았다. 마치 왜 자신이 활을 발사했나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문득 물었다.

“……말해보시오. 내가 어쨌다고?”

“질투가 나더냐? 원망이 샘솟더냐? 너희는 눈길 한 번 못 받아서 안달난 년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노르드가 부러워서 눈이 뒤집힐 것 같더냐?”

몸을 던졌던 크라운 크라운은 돌가루를 뱉었다.

“추레한 우주 문어놈. 너도 네놈의 거시기 달린 암캐 주인놈이랑 똑같구나.”

“……………….”

“남의 언니의 후계자한테 눈독을 들이는 갈보년에, 그 갈보가 발정나서 쫓아다니는 남자를 질투하는 피조물이라. 피는 못 속이는 법이군.”

【……──■■■■■■!!!!!】

쿠웨에엑─!!!!

다비드의 입이 찢어지면서 촉수 다발이 기괴한 포효를 내질렀다.

인간의 감정이나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 언뜻 모욕에 대한 분노로 보이지만, 만언신의 권능으로도 해석할 수가 없는 이족의 언어였다.

【Kageo!! U'stze ghink!! Dv'iowe Rtycthulhu H-kqru'vzxu ■■■!! Ai! Aiiweroi! Woj■■■ oiqr- Iwnvo!! Fhtagn Paf■■■■!!!】

본체의 모습을 드러내는 다비드로부터 사념파가 터져나왔다.

보통 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죽고도 남을 모독스러운 기운이었으나, 크라운 크라운은 견뎌냈다. 정신력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격의 차이로 견뎠다.

하지만 취약해진 육체는 고통을 호소했다.

뺨으로부터 상처가 터지고, 어둠의 손길이 틈을 벌리면서 기어나왔다.

“미안하다, 크라운. 1번만 더…… 신세를 지자.”

그녀는 남에게 빌린 몸을 다독였다.

어차피 오래 살기는 그른 몸이다. 육체도 혼도 한참 전에 한계였다.

지금은 의지만으로 삶을 붙들고 있을 뿐.

‘육신을 포기하고 권능을 쓴다.’

1~2번이 한계겠지만, 다비르를 죽이고 영혼의 소멸만이라도 면하는 수밖에.

노르드라면 여기 돌아와서 룬 마법의 반혼술로 그녀의 혼백을 불러내 주리라고 믿자. 전해줘야 할 과거의 진상 등은 그렇게라도 전해주도록 하자.

‘살아있는 몸으로 대화하지 못한 게 아쉽네.’

그녀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가 뜨고, 자신의 권능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휘이이웅──.

찬바람이 그녀의 앞머리를 흔들 때까지는.

“……바람?”

【Kerrc……?】

그녀와 다비드는 동시에 눈을 돌렸다.

바람은 불 수 없다. 왕성은 사실 상의 밀실이다.

공간의 미로와 연결된 지하가 있긴 하지만, 그 지하통로에도 공간의 왜곡은 존재한다. 애초에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열려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바람이 불어온 곳은 서쪽이었다.

‘……서쪽?’

─부릅! 눈을 크게 뜬 크라운 크라운은 서쪽을 향해서 몸을 던졌다. 화살이 날아왔지만 환각으로 방향을 착각시키고 공간 계열 유물을 기동했다.

【■■■■■!!!!】

마법의 간섭이 유물을 멈췄다. 혀를 찬 그녀는 계단 아래로 다짜고짜 몸을 던졌다. 다비드가 그 화살에 새롭게 활을 매기도록 시켰다.

공중에 몸을 던진 크라운 크라운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

일촉즉발의 찰나. 그 순간 몹시도 커다란 손이 그녀를 감싸안았다.

“아윽?!”

─퍽!

감싸안기는 했으나, 안락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안아든 사람은 마치 강철로 된 것처럼 딱딱했고, 받아들자마자 뒤로 던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던져진 직후, 이번에는 놀라우리만치 부드러운 가슴에 안긴 크라운 크라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의 수백 년 만에 느껴보는 따듯함이었다.

‘……아, 과연.’

그녀는 안긴 채 고개를 들고는, 상대를 알아본 후에야 혼자서 납득했다.

‘젊은 애라 그런가. 탄력이 다르긴 다르네.’

그야 노르드가 바로 가짜인 걸 눈치챌 만 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자 그녀를 안아든 소녀는 야단법석을 피우며 펄쩍 뛰었다.

“뭔가요, 무슨 일인가요?! 성에 들어오자마자 투신자살 희망자가 날아왔는데요?! 이 사람을 받은 게 제가 아니라 선배였으면 반해서 큥큥할 타이밍이에요! 눈 훤히 뜨고 로테이션 경쟁대상이 늘어나는 대참사였어요!”

“라리루라, 조심하세요!! 앞에 화살!!”

“넷?”

“브레스- 피해요-.”

─화아아아아앗!!!

옆으로 뛴 키아라가 대각선으로 커다랗게 빛의 브레스를 뿜었다. 순식간에 날아온 화살은 섬광을 뚫으면서 크게 감속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꺄아아아앗!! 죄송해요!! 그치만성문을딴사람은제가아니에요!!”

그녀, 라리루라는 크게 허둥지둥거리면서도 일단 크라운 크라운을 안아들고 외쳤다.

“〈복사 방출(Emission of Radiation)〉!!”

투콰아아아앙─!!!!

오러를 응축한 광선이 우르의 화살을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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