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20화 (818/1,009)

로마니아.

그 신성제국의 수도와의 교류를 생업으로 삼는 어느 유서 깊은 도시에서 한 사람의 남자가 오늘 갓 나온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일대 센세이션이군.〉

그는 신문의 내용에 혀를 내둘렀다.

검은 피부의 남자였지만 교역량이 많은 이 도시에서는 드물지도 않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품을 팔러 나온 일용직의 노동자로 볼 것이다. 아니, 뛰어난 전사여도 그가 앉아있는 모습에서 날렵하고 예리한 기운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 오프툼은 세상의 강자들을 강함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앞에서 세는 게 더 빠른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였다.

물론 저세상에까지 갔다 왔던 그가 보기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고, 또 그 자신은 본인을 성직자나 전사라기보단 사냥꾼으로 여겼다.

사티스 교단의 사냥개.

다름 아닌 그 사티스 님께서 직접 강림히시어 ‘과업을 이뤘다고 벌써 만족하지 말라’고 질타받은 뒤, 그는 어느 친우의 부탁대로 잠입 조사를 맡고 있었다.

오프툼은 신문을 넘겼다.

─경악! 괴물이 된 기사단!

─수수께끼의 국가, 아틀란티스! 물고기 인간이 되어 멸망하다!

─아틀란티스가 멸망시킨 국가? 야만족 얼스터! 강대국에서 짐승의 소굴로!

─베일에 싸인 전설, 히타이트!! 초고대도시 카네쉬의 존재가 드러나다!!

이 나라의 모든 신문사가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니면 가라앉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프툼은 뛰어난 청각으로 1층이나 옆방에서 구역질을 하거나 음모론을 퍼트리는 시민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날조에 거짓말이야! 적국에서 퍼트린 사기극 따위에 속고 앉았냐, 병신아!〉

〈……사기극 같은 소리 하네. 증거가 있다잖아, 증거가.〉

〈누굴 속이겠다고 고대국가 도시를 만들어내?〉

〈제길, 누가 알기 쉽게 정리 좀 해 줘! 그래서 누가 개새끼인데!! 욕이라도 시원하게 좀 하자!!〉

교묘한 손길에 나라의 분위기가 좌지우지당하고 있다.

이를 통제해야 할 황실은 직접적인 힐문을 염려하는 것인지 침묵 중. 이때다 하고 황제의 권력을 깎아내리고 황권의 정당성을 폄하하려는 무리도 한 사발.

‘이건 아르마알스의 가주, 아니. 노르드가 벌인 일이겠군.’

아직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곧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프툼은 조사를 멈추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런 시국에 수상하게 굴며 눈에 띄는 건 우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그의 고향 나르메르-나일의 문명화된 도시에서 사냥꾼이라는 말에 어떤 인상을 떠올릴지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오프툼이 생각하는 사냥꾼이란 사냥감을 잡는 자가 아니다.

사냥꾼은 쫓고, 기다리며, 그것을 즐기는 자다.

그렇기에 노르드의 부탁으로 몇 달 이상 잠입조사를 거듭한 뒤로 그다지 얻은 것이 없어도, 그런 날도 있으리라고 여유를 잃지 않았다.

─끼익.

고된 노동이 끝나고 늘어진 근로자 같았던 그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기척을 느끼고 신문을 앞에 내려놓았다. 허술해 보여도 그는 그만한 달인이며 이 도시는 그에겐 적지였다.

사냥감의 세력권에서 긴장을 놓는 건 아마추어 사냥꾼도 안 할 실수니까.

〈사냥꾼, 형씨. 오늘 반주, 하시겠수?〉

저렴한 여관에 들어온 건 오프툼과 함께 잠입을 맡고 있는 드워프 혼혈이었다.

어수룩한 로마니아 어 발음에 그는 활짝 웃으며 팔을 벌렸다.

〈오, 0.25 드워프 친구! 당연히 그래야지!〉

〈니미 쓰벌. 우리끼리만 있는 곳에, 그 개소리. 부르기 있소?〉

〈음? 아, 그 별명으로 부르기 있냐고? 자네도 아직 이 나라 말이 부족하군.〉

그들의 잠입 신분은 ‘로마니아의 수도에는 차마 집을 못 구한 상인 드워프’와 ‘그에게 집세를 내고 함께 묵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좆 같은 로마니아. 좆 같은 외국어.〉

〈발음도 이상하면서 욕 하나는 청산유수네.〉

혼혈 드워프 제이드는 궁시렁댔지만, 그런 그의 등을 어린 소녀가 때렸다.

요 며칠 사이에 그들과 합류한 티베리우스 남매, 그 여동생이었다.

〈악! 왜 때리오!〉

〈‘왜 때리시오’야. 그리고 욕 쓰지 말라니까.〉

〈씁, 록시. 또 또 손부터 나가지.〉

함께 따라온 그녀의 오빠는 바로 동생의 귓볼을 잡아당기며─니르바나에게 배운 것이다─ 말했다. 동생은 찔끔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제이드는 입을 벌리며 웃었다.

〈나 부탁했소다. 내가 말 또 틀리면 알려달라. 혼내지 마쇼.〉

〈……그러시다면야.〉

오빠 록스는 동생 록시를 놔 주고 오프툼 앞에 앉았다.

〈일주일 만이군요. 최근 어떠십니까?〉

〈나쁠 거야 없지. 덕분에 일도 안 나가고.〉

‘동생 록시에게 휘말려서 다쳤기에 자주 만나러 온다’는 핑계로 접선한 그들은 픽 웃고, 다시 진지하게 작은 종이를 펼쳤다.

〈물류 정세의 이상함은 느끼고 계십니까?〉

〈정확하게까지는 잘.〉

〈용병단을 이끌어봐서 아는 겁니다만, 무기는 어쨌든 갑옷의 운용량이 이상합니다. 장식으로서 팔리곤 있지만 수도로 빨려갈 뿐, 나오는 게 거의 없어요.〉

〈무기를 모으고 있다? 병사를 무장시키려고?〉

〈그럴지도 모릅니다. 강철의 물자량도 바뀐 걸 보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수도에서 무장을 시도하는 반란 세력이라도 나온 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황궁 내에서 저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황제가 자기 영역에서 무기가 모이는 걸 놓쳤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고 말이다.

‘……황가에 드리운 수상한 그림자랬던가.’

노르드한테서 그에게만 보내진 극비 암호를 떠올리며 오프툼은 경계심을 올렸다.

〈알겠네. 보고할 때 감안하지.〉

흑마법사 사냥을 위해서 잠입은 익숙해도 이런 분석은 서투른 오프툼이다.

그에 반해서 그 음흉하기가 그지없는 젊고 늙은 괴물들─노르드와 코르넬리우스─에게 오프툼과 제이드를 도우라고 파견된 인물 아닌가.

아직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믿기는 어렵지 않다.

빠르게 본론만 주고받은 그들은 남들이 수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을 정도의 시간 안에 대화를 끝마쳤다. 일어서려는 록스에게 오프툼이 말했다.

〈기분 나쁘게 여기지 말고 듣게. 의욕적이어서 고마워. 용병단체의 수장에서 원로의 피지원자가 됐으니 마음이 상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었네.〉

〈뭘요. 헛소문과 악명에 고생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잘 하면 명예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동생 록시도 의욕적으로 발언했다. 특유의 미모, 그리고 기품으로 귀족은 못 되지만 그럭저럭 돈이 있는 중산층의 사교계에서 대활약 중인 보고다.

이렇게 네 사람이 모은 정보는 노르드에게 로마니아의 동향을 읽는 단서가 돼 주고 있었다. 오프툼이 고개를 끄덕이자 록스는 모자를 벗으며 인사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 이건 병문안 과일입니다.〉

〈잘 먹겠네. 상큼한 게 그립던 참이야. 일용직 노동자가 건강을 생각해서 과일을 사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겠나.〉

〈연기가 철저하시군요. 본받아야겠습니다.〉

오프툼이 과일 바구니 밑에 깔린 활동자금을 챙기자 티베리우스 자매는 여관을 나섰다. 그들을 배웅한 사과를 천 하나를 잡고 닦고 있자 제이드가 눈에 띄었다.

그는 가져온 아래층에서 가져온 술잔을 입에도 대지 않고 고민 중이었다.

피는 1/4밖에 흐르지 않아도, 명색이 드워프의 혼혈인 그가 말이다.

〈……자네 왜 그러고 있나? 과일도 술 안주로 나쁘지 않아. 맥주랑은 안 맞겠지만.〉

〈아니, 별거하지 말자.〉

〈……별 거 아니란 소리지? 그치?〉

오프툼이 약간 소름 돋는 헛소리에 얼굴을 경련시켰지만, 그와 록스의 대화를 단편적으로 이해한 제이드는 입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무기와 갑옷을 모으는 황제.

‘방랑하던 시절에 비슷한 얘길 들어본 듯한……’

정말로 황제는 병사를 무장시키고 있는 걸까?

의문은 솟았지만 그걸 제대로 전할 방법도 없고, 어떤 위화감인지 제이드 본인조차도 알기 어렵다. 이상하다고 말할래도 뭐가 이상한지 알아야 말을 하던가 말던가 할 것 아닌가.

〈……끙. 나 좀 나갔다 오겠소.〉

그는 결국 맥주를 한 번에 들이키고 일어났다.

〈뭐? 혼자서?〉

〈잠깐만이오. 도서관 다녀오겠소.〉

어설프게 말한 제이드는 문고리를 잡았다. 그의 직감이 호소하고 있었다.

이것은 놓쳐설 안 된 위화감이라고.

***

“노르드. 우리는 이제부터 황제를 칠 걸세.”

아르마알스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서 나는 그런 소리를 들었다.

황당무계한 반역 모의에 브류나크가 내 딸이란 소리를 들은 것처럼 내 입에서 홍차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압박하겠다는 거군요?”

“맞아.”

이번 카네쉬의 일전(一戰)에서 촉수 기사단을 본 오델리아도 이 판에 꼈다.

“진실은 명백하고, 우리의 무기가 돼 줄 거야.”

촤륵─. 그녀는 카네쉬의 기록물에서 얻은 여러 증거물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황실은 괴물을 감추고 있어.”

이제부터 별의 자손들의 둥지를 부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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