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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27화 (825/1,009)

힘을 준 손아귀에서 용력이 꿈틀댔다.

‘공무집행방해는 오랜만이네.’

일행은 포위망을 구축하기 전에 빠져나가겠지만 전서구를 잡으려면 스스로 그물에 뛰어들어야 할 때였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알아서 옷을 바꿨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티르시는 마법이 있으며, 라리루라는 창세의 권능이 있다.

색다른 삼인조가 된 우리는 울창한 숲지대까지 달려갔다.

삐이이익─!!

입에 손가락을 물고 피리를 불었다. 날 알아본 전서구는 몸을 틀며 내려왔다.

─오고 있어요.

실을 감고 거미인간처럼, 아니면 곡예처럼 높은 나무에 올라탄 라리루라가 말했다. 손가락에서는 진짜 실이 흘러나왔다. 창세의 권능이다.

창세의 권능이 전투용이 아니란 건 어디까지나 비용 대비 성능을 논할 때의 얘기.

통달하면 산을 뽑아내고 섬을 만드는 것도 가능한 힘이다. 마법이나 같은 권능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면 저 권능이야말로 천지를 창조하는 신의 힘이었다.

“꾸룩? (누구?)”

편지를 가져온 매는 나를 못 알아봤지만, 말을 몇 마디 하자 얌전해졌다.

“꾸룩 꾸. (나무 위에서 기다려.)”

“꾸 꾹. (기다려? 알았어).”

편지를 챙기고 매를 대기시켰다.

두두두두두…!!

말굽이 흙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숲이 울창한만큼 말에서 내려와야 했다. 저들이 혀를 차는 게 들렸지만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에 녹아든 것처럼 기척을 죽였다.

〈산개하지 마라. 척후를 빼고 뭉쳐다녀.〉

그들은 이세계에선 가성비 좋은 갑옷인 몬스터 가죽을 걸치고 능숙하게 탐색했다. 흩어져서 찾다 전멸하지 않게 뭉쳐 다니며 탐색인원을 분류했다.

각 팀의 척후를 뽑아서 촉각처럼 사방에 배치한 진형이었다.

뭉쳐있다고 일망타진하기에는 매직 아이템이나 주문 준비 상태의 마법사가 거슬렸다. 너무 강한 마법을 날렸다간 송장 치우겠네.

‘별 수 없지.’

나는 척후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덮쳐들었다.

수풀과 나무에 가려진 순간적인 사각. 후방인원들이 척후와 그를 덮치는 나를 못 보는 찰나였다. 날 발견한 그가 눈을 부릅떴다.

꽈악…!

그가 고함치기 전에 뒤로 돌며 클로로포름 납치범처럼 수면 가스를 풀로 투입.

수면 가스는 술식 조합과 룬, 마나량 덕에 거의 혈관에 투여한 수면제처럼 즉효성을 발휘했다. 축 쳐지는 척후를 그대로 두고 쏜살같이 비켰다.

잠들어서 쓰러지려던 척후가 우뚝 멈췄다.

〈3번. 무슨 일 있나?〉

─절레절레. 척후는 고개를 젓고 뒤로 손바닥을 흔들었다.

상관을 향해서 보일 반응은 아니겠지만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상황의 특수성이 그 묵언의 제스쳐를 용납시켰다. 나는 나무를 올라탔다.

‘라리루라가 잡았군.’

【보편의 편자】로 차원을 뛰어넘은 실이 그의 몸에 감겨 있다.

척후는 기절한 채로 걷고 있는 것이었다. 실을 통해서 〈꼭두극〉 계열의 마법을 살짝만 걸어도 기절한 사람을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텔레파시로 사인을 보냈다.

─홱!! 라리루라가 조종하는 척후가 손을 들다가 얻어맞고 쓰러졌다.

〈적습!!〉

후방에서 외치자마자 나는 나무에서 튀어나왔다.

하나는 나였고 나머지는 창세의 권능으로 만든 꼭두각시였는데, 생김새는 우리가 변장한 모습과 똑같았다. 나는 브류나크를 메이스로 바꿨다.

〈경고한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당연히 듣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수다. 우리도 댁들도 운이 나빴네.

〈저들이 저항한다! 대응을 허가하겠다!〉

내 진짜 힘이나 속도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다가온 전사의 검을 흘렸다. 쳐내듯 검면을 막고 가슴에 주먹을 꽂으며 그를 뒤로 엎어쳤다.

─쩌정!

사람 체중처럼 무거운 고드름이 날아들었다. 끝 부분은 뭉툭했지만 맞으면 한 끗발 하는 전사들도 골절로는 안 끝날 것이었다.

‘어차피 야수회귀를 안 써도 우신 가죽 갑옷을 뚫을 것 같지는 않지만.’

할 줄 아는 게 많으며 공격력이 높은 마법사를 상대로 힘을 아끼는 건 하책이다.

날 상대로 그러다가 방심해서 뒤진 달인들이 몇 명이던가.

하지만 나는 굳이 방심하는 쪽을 골랐다.

정확하게는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티르시의 권능이 발사한 마법을 멈추고 거꾸로 되돌려줬다. 〈강림〉을 사용하지 않아도 아르마 슈나스의 힘을 빌려오는 건 가능했다.

‘애초에 히타이트 왕성의 차원벽을 찢었을 때의 티르시는 노멀 모드였으니까.’

다비드랑 부딪히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강림〉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차원의 벽을 찢었다. 권능의 힘을 평상시에도 불러왔었다는 뜻이다.

의식을 거치지 않아도 권능이든 마나든 일부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강림〉 과정 없이도 그 힘을 완전히 체득하겠지. 원래부터가 저 마법은 인공신 신좌의 오리지널이다. 지금처럼 해제되는 게 비정상적이다.

신좌처럼 한 번 얻으면 영구 유지가 가능한 게 〈강림〉 마법의 기초 설계였으니.

〈마, 마법이 돌아온다! 첼시! 뭘 하는 거야!〉

〈제,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얼음이 부숴지며 우박처럼 동료들을 휩쓸자 여자 마법사는 주문을 바꿨다.

〈저들 외에도 후방에 마법사가 있습니다!〉

〈요격해!〉

대답 대신 돌이 뭉치면서 총알처럼 날아갔다.

나랑 인간형 꼭두각시를 피하면서 티르시가 숨어있는 쪽으로 말이다.

〈화살〉 계열 마법일까. 탄이 작아서 시인하기 어렵고 피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것도 별 소용없는 짓이었다. 탄환은 시야 바깥까지 날아갔다.

─퉁!

그리고 그대로 되돌아왔다.

‘어림도 없지.’

마스터 클래스의 권능이 상대다. 공무원 친구들에게는 과분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모든 마나를 얼려버리고 다루는 힘은 사실상 마법사들의 하드 카운터 아닌가!

방패로 아군 마법사의 오사를 막은 중대장 격의 인물이 고함쳤다.

〈제길! 무슨 마법이냐! 척후! 분석해!〉

〈저들로부터 마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분석 기준치에 미치지 못합니다!〉

대장의 눈에 당혹이 서렸다가 금방 사라졌다.

티르시의 우려는 맞았다. 역시 아는 게 힘이긴 해.

〈파훼법을 생각하고 왔나. 성배를 탈취하도록 두지는 않겠다.〉

투지를 불태우며 그는 검을 뽑아서 힘껏 거칠게 휘둘렀다. 기본이 박혀 있는 검술이었지만 나는 그 용맹한 분투보다 그의 노호성에 집중했다.

‘우리를 탈취범으로 보고 있나?’

─채챙! 메이스로 검을 튕겼다.

‘소속은 어디지? 지금 옮겨지는 게 가짜고 진짜 성배는 도난당했다는 걸 아나?’

저 혼잣말도 다 위장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나.

‘영혼을 심문할 수 없으니까 피곤하네.’

─홱홱!

대장격의 인물을 피하면서 몇 명을 더 제압하자 그가 분노하는 게 느껴졌다.

티르시랑 라리루라로 변한 꼭두각시들은 학처럼 도약하며 몇 명을 걷어차고 있다. 공격을 당하건 말건 그냥 몸으로 맞고 버티는 중이다. 터프하군.

적들에게 어느 정도 피해가 누적되자 나는 몸을 당겼다.

‘보고서는 회수했어. 저들도 이쯤 다쳤으면 추격해오긴 힘들겠지.’

포위망에서 일부 차출해와도 거기에 잡힐 우리 가족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텅!!

나는 메이스로 검을 쳐내고서 주먹을 휘둘렀다. 방패에 막혔지만 그게 내 의도였다. 나는 주먹을 되돌리며 빠르게 뒤돌려차기를 날렸다.

방패를 차는 게 아니라, 밀어내는 것처럼 힘을 줬다.

〈억!〉

그는 느슨한 새총에 당겼다가 쏜 돌처럼 멀리로 나가떨어졌다. 손바닥 씨름의 밀치기를 공룡 같은 힘으로 벌였으니 사람의 몸무게로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내님들! 튑시다!

─네에~♡

라리루라는 손에 쥔 연막탄을 터트렸다. 당연히 창세의 권능으로 만든 것이었다. 서커스 공연에서 자주 쓰는 물건이니만큼 연상하기 쉬웠겠지.

퍼퍼펑─!!

연막에 숨어들면서 숨을 삼키고서 성대를 조금 만졌다. 뱀으로도 변신하는 나다. 일부분만 동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보다 더 강력해진 룬 마법으로 성대가 곰처럼 두꺼워졌다.

“크허허헝──!!!!!!”

〈끄악!!〉

연막을 뚫고 귀를 기울이려던 척후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무턱대고 청각을 강화하니까 그렇지.’

성대를 되돌린 나는 뒤로 후퇴했다.

동물들이 오감의 과잉정보를 분간하며 기절하지 않는 건 육체 본연의 기능이다. 매미는 자기 울음소리보다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면 귀를 닫는다잖나.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청각 후각을 마나로 너무 강화했다간 저들처럼 역공에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강함에 따른 자연스러운 성장보다 오감을 높였으니 당연히 단점도 생기지.’

미스릴 클래스가 되기 전에는 프랑도 겪어봤던 문제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일부러 전서구를 챙긴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멀리까지 도망쳐서 천리안을 켰다. 전열을 가다듬는 그들이 보였다.

〈빌어먹을…… 추격할 수 있겠나?〉

〈어렵습니다. 척후병들의 타격이 큽니다.〉

〈사상자는?〉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척후병들도 포션을 좀 마시고 치료하면 되죠.〉

보고를 받은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우리를 봐줘 가며 싸웠다?〉

〈송구스럽지만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대장은 고민하다가 참모로 보이는 이를 불렀다.

〈어떻게 생각하나? 누구의 사주일까?〉

〈성배를 빼앗으려고 했다는데, 그 잔당이겠죠.〉

〈잔당? 저만한 놈들이 잔당이라고? 자네 제정신인가?〉

참모는 입을 꾹 닫았다. 대장 격의 인물이 칼을 칼집에 찼다.

〈폐하께 보고하겠다. 천통절의 진행이 막혀선 안 돼.〉

지휘로 돌아가려는 그를 참모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영주의 병사는 아니지만 황제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도 아닌 듯 한데.’

보아하니 저 사람들은 로마니아 국군인 모양.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군바리 공무원이었냐.’

저들도 황제의 해명을 바라는 처지다. 아무래도 그냥 방치하면 그만일 듯 싶었지만, 나는 참모가 마지막에 지은 표정이 신경 쓰였다.

매를 쓰다듬으며 보고 있자 그는 남몰래 나무에 글을 새겼다.

예리한 칼이었는지 종이에 쓰는 것처럼 휘갈길 뿐인데 금방 무언가가 적혔다. 그들이 물러나려는 방향을 확인하고 천리안의 시점을 당겼다.

문자조차 아닌 암호다.

─현장에 습격자 발생. 집행관일 가능성 높음.

그러나 만언신의 권능은 언어로부터 뜻 자체를 읽어내는 힘. 해석 쯤은 씹가능이지.

퍼펙트 파파고 로키좌에게 감사 또 감사다.

‘우리를 집행관이라고 본 건가?’

암호를 해석해낸 나는 팔짱을 꼈다.

‘집행관은 황제의 직속 따까리라고 봐도 무방한 놈들인데……’

그걸 콕 찝어서 경계한다?

‘처음부터 집행관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고려한 모양이군.’

참모는 황제와 반목하는 인물이며, 동료들에게 전언을 남긴 것이었다.

‘헛다리이긴 했지만.’

아무튼 저 참모는 국군의 말단에 꽂아둔 첩자일 게 확실하다.

그리고 국군은 사실상 황제의 병사다.

첩자를 심은 놈은 황제와 적대하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의 스파이라기엔 너무 말단이지. 아마 황자 쪽의 부하인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브류나크가 질투하는 걸 느끼면서 매를 쓰다듬었다.

‘이 새끼한테 부탁하면 추적 쯤이야 개꿀이지.’

프랑이 아무리 뛰어난 도적이어도 개도 아닌데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쫓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이 매라면 가능했다.

‘매의 후각은 의외로 개보다 뛰어나기도 하니까.’

수 km 하늘에서 지상을 걷는 사냥감의 냄새를 찾는 후각!

게다가 이 녀석은 이세계 판타지의 생물이다.

전서구처럼 정해진 코스를 왔다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역마도 아니면서 사람을 알아보고 전령으로 일할 만큼 지능을 갖춘 새 말이다.

당연히 지능과 후각이 뛰어나니 추격용으로는 딱 좋았다.

‘사냥매인가. 몽골 사람이 된 기분이군.’

나는 픽 웃고 라리루라와 티르시에게 말했다.

“애들이랑 합류하자. 조금만 기다리면 황자들을 찾아낼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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