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33화 (831/1,009)

제 3황비. 아멜리아 일론소 로마니아.

로마니아의 황실은 남성 황족의 부인을 2종류로 나눴다. 공식적인 황비와 황제의 대를 잇기 위한 첩이다. 이중에 황비는 미색보다 가문과 정치적인 연결을 더 중시하며 뽑는 입지였다.

그렇지만 첩의 경우는 달랐다.

천통절이나 대를 이을 자손들을 늘리기 위해서, 그리고 권력자의 욕망을 합리화할 수단으로 첩을 고르는 기준에는 큰 제한이 없었다.

단순히 시녀나 그만 못한 여인에게 손을 댔다가 아이를 낳으면 첩이 되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가 첩으로 삼기도 전에 사생아─주로 아들─만을 낳고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제 3황비의 경우는 그 양쪽 모두에 속했다.

황비들이 혼인하게 된 배경 상, 그리고 황제의 성격 나름이지만 외모나 성격 차이 등으로 황제의 사랑을 받기 힘들다는 걸 감안하면 특이한 케이스였다.

아멜리아는 고명한 가문의 여식이면서 어릴 적부터 재색을 겸비하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도 전부터 황제의 총애를 샀던 이유였다.

단지 사교계에는 퍼다한 소문이지만, 그건 아멜리아로선 원치 않았던 구애였다.

억지로 갈라진 약혼자가 자살한지 나흘째 되는 날, 아멜리아는 황비가 되었다.

이 후도 어지간한 애첩보다도 황제를 사로잡고 있으면서, 아멜리아는 그 입지를 악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가의 귀족들이 황제를 구슬려보라는 듯 재촉할 때마다 고통받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를 보면서, 그때 이미 성인이었던 클리안은 생각했다.

〈옥좌를 가져와 주셨나요? 고마워요, 클리안.〉

제 3황비는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던 편이 더 행복하게 살았으리라고.

그녀의 처량한 미소가 아내를 닮았다고 말이다.

〈……아버지를 도우려 오셨소?〉

마른 침을 삼킨 클리안이 묻자 아멜리아는 슬픈 눈을 했다. 얼핏 보였던 요사스러운 기척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아요. 당신이 여기 오도록 열심히 구슬렸는데 조금은 놀라주셔야죠. 저에겐 지루한 궁중생활의 얼마 없는 낙이라구요?〉

〈나는…… 나는 누구에게도 유도 따위 당하지 않았소. 반역도, 저기 기어다니는 황제의 몰골도, 전부 다 내가 생각하고 결정해서 내린 결론이오.〉

〈그래야 했죠. 그게 아니면 들켰을 테니.〉

황비의 대답에서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은 탓일까. 클리안은 초조하게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옥좌의 통제권은 그의 손에 제대로 남아있었다.

‘……들켜? 누구에게?’

죽이건 살리건 쫓아내면 그만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불가사의한 아멜리아다. 공격을 감항하자니 클리안의 신중함이 망설임을 낳았다. 그의 장점이었던 신중함이 발목을 잡았다.

〈자, 가까이로 오세요.〉

아멜리아가 그런 망설임마저 예상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로.

클리안은 손바닥에 불꽃을 피웠다.

〈됐소. 대답하지 않을 거라면 내가 묻지.〉

〈부인에 대해서인가요? 이 날을 위해서 폐하께 처형 명령을 내리도록 했어요.〉

〈……뭐라고?〉

〈제 정체를 눈치채려는 기미도 있었고, 그녀가 숙청당함으로써 클리안의 심리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둘 수도 있었죠. 일거양득이었어요.〉

친어머니였던 제 1황비는 의부증과 아멜리아의 존재로 거의 금치산자 상태다.

사랑하던 아내는 숙청으로 죽었다.

황제가 되서 나라를 바꾸겠다며 몰두한 평생의 노력은 황태자 직위를 못 받음으로써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하기까지 했다.

이만큼 몰아넣었을 때 클리안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아멜리아는 그 모든 걸 예상하고 유도할 자신이 있었다.

〈생물의 행동은 예측을 불허해요. 하지만 인간 개개인이 가진 정신적 지주나 성격을 알면 가닥이 잡히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가요.〉

직접 표면에 나설 것도 없다. 인간관계는 유기적인 것이니.

당구처럼 1~2명만 뒤에서 능숙하게 만져주면, 그들은 자기 나름의 생각으로 움직이며 행동한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원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의식을 잃은 황제를 밟고 있는 클리안에게 아멜리아는 천천히 다가섰다.

〈클리안은 어릴 적부터 신중하고 양심적이었죠. 이 시대의 황제로서는 걸맞지 않았어요. 혼자 고뇌하며 수척해지더라도 ‘저희’의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지는 않았을 거에요.〉

당대 황제처럼 육욕이나 욕망을 부추기는 것도 어렵다.

하물며 이런 부류의 인간은 인격을 바꿀 정도의 충격을 주면 기존의 총기가 소멸한다는 걸 아멜리아는 경험을 통해 잘 알았다.

따라서 클리안은 황제로 세울 가치가 없었다.

혹시 모를 경우, 다시 말해서 ‘이런 때’를 위한 장기말로 보존했을 따름이다.

〈……그만! 궤변은 관두시오! 당신은 내 어릴 적을 모르오!〉

클리안은 생각을 멈추고 마법을 쏘아냈다.

황제의 목을 내걸고 반역을 끝마치기도 바빴다. 헛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다.

클리안은 평생 사용한 마나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마나를 마법에 쏟았다. 불길은 신전을 불태우면서 아멜리아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포스스.

하지만 마법의 불꽃은 나아가다 말고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황제보다 체중이 반도 안 나갈 여인을 불태워야 했을 불꽃이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놀란 나머지 클리안은 혀를 깨물 뻔 했다.

마법이 사라진 것보다, 그 과정이 경악스러웠다.

〈……스승님?〉

〈네, 클리안.〉

클리안의 마법이 저렇게 해체해버릴 수 있는 건, 그의 술식 구성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도했던 클리안의 마법 스승 뿐이었으니까.

그의 유모이기도 했던 그녀는 이미 고인이다.

아멜리아가 태어난지 2~3년 쯤 되었을 무렵에, 마법 사고로 죽었을 터였다.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기분에 클리안은 일부러 입속을 깨물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의 맛이 입 안에서 어른거렸다.

〈여전히 남이 다가오는 게 무서운가요? 예전에 제가 당신의 억지를 따라서 밖에 나갔다가 외인의 칼에 맞았던 게 떠올라서?〉

─찌직! 아멜리아는 목가죽을 뜯어냈다.

그녀는 그대로 피부를 뜯어냈다. 사람의 가죽이 벗겨지며 거뭇하고 번드르르한 피부가 드러나는가 싶더니,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예쁘장한 얼굴을 망치는 긴 흉터. 클리안을 길러준 유모의 얼굴이었다.

그리운 얼굴이 활짝 웃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바라던 그대로 자라주었군요. 자랑스러워요.〉

〈아, 으……〉

클리안은 새하얘져서는 물러났다. 나이를 먹은 얼굴은 어린 아이처럼 일그러졌다.

어릴 적의 기억은 성격을 좌우하기 쉽다. 친한 사람의 안위에 집착하고 그들에게 의존하는 성격을 꾸며놓으면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써먹기 편하다.

수천 년을 하던 일이고, 이번에는 무너트렸다.

〈그러고보면 마침 그때였죠? 청동옥좌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에게 순진하게 금화를 던져주고, 저한테 청동옥좌라는 게 어떠한 유물인지 열심히 물어봤던 것도.〉

〈그만……!! 그만!!〉

클리안은 권능을 펼치고자 했지만 옥좌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다가가던 아멜리아가 무너져가는 클리안의 집중력을 감지하고 간섭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르치고, 바라던대로 클리안은 옥좌의 통제권을 자신에게 몰아넣었다.

황제에게 옥좌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조치여도, 그렇게 생겨난 틈은 파고들 여지가 넘쳤다. 그게 인간을 뛰어넘는 지혜를 지닌 아멜리아라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사념파로 미치게 만들면 더 편했겠지만, 옥좌를 옮겨와 줘야 하는 클리안이 정신을 놓아버렸다간 절차를 진행하기 곤란해진다.

아멜리아는 클리안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냈다.

사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아야 할 유물이 쉽게 벗겨졌다.

〈다시 말하지요. 옥좌를 가져와줘서 고마워요, 클리안.〉

***

〈……죄송해요. 놓쳤어요.〉

우리한테서 도망친 클리안이 황제에게 역돌격을 감행하자, 신전 지하에 남은 건 우리들 뿐이었다. 아마도 다른 황자들은 어디 멀리로 날려보내버린 듯 했다.

그래도 우리 후배님이 귀가 빨개지도록 권능을 발동했는데도 눈을 훤히 뜨고 놓쳐버리다니? 라리루라가 분한지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됐어. 지금 도망친 것도 권능이겠지. 네 잘못이 아냐.〉

나는 손을 저으며 옥좌가 있던 곳을 살폈다.

오딘의 눈으로 보건데 ᚱ(Raidō)의 룬의 상위호환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황자들은 클리안이 떠나기 전에 어디론가 날려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재신 리베르타스의 권능일 거에요. 자유를 관장한다는 신이요.〉

티르시는 아르마 슈나스의 권능을 끌어올리면서 말했다.

구속이나 제약에서 벗어나는 권능일까? 권능이 뭐 7개나 되고 자빠졌냐, 시발.

“……그치만 마스터 클래스 7명분의 힘이라니, 너무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라리루라가 중얼거렸다. 나랑 마음이 맞는군.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신좌를, 다시 인간이 만든 옥좌에 몰아넣는다. 그렇게 해서 어지간한 신들도 무색해질 만한 강함을 성사시킨다.

인류의 기술력의 총 집결이라곤 하나 놀랄만치 강력한 유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픽 웃었다.

“그 정도는 아냐. 뒤지게 쎄진 건 맞지만 까짓 거 제압하긴 어렵지 않겠더라.”

봉쇄된 공간을 살피던 티르시가 놀라며 물었다.

“제압한다니요? 어떻게요?”

“개인이 강해진 게 아니라 옥좌라는 매개체를 쓴 거니까요.”

저런 강대한 권능과 마나를 사람의 몸으로 받아들인다? 개소리 그 자체였다. 마나 중독을 넘어서 육체가 뻥 터지고 말 것이었다.

‘7~8개나 흡수했다는 건 진짜 신좌처럼 적성을 따지는 것도 아니겠고.’

위 사실과 더불어서 우선 전제로 깔고 가야 할 팩트가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은 예지에서도 못 본 광경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건 우리 가족의 위기가 아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순 있지만, 위험한 상황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오딘의 눈은 위험한 미래는 놓치지 않으니까.

‘아내들이 다치고 나만 멀쩡한 상황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러니까 〈청동옥좌〉는 내가 해치우기 간단한 상대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답이 나오지.’

예지를 너무 믿는 것도 곤란하지만 내 권능인데 불신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저 옥좌는 〈강림〉 마법이랑 신좌라는 구조를 융합한 기술입니다. 제가 티르시를 막을 때 썼던 술식을 조금 손보면 해제가 가능해요.”

“……아! 티르시 언니가 납치당했을 때도 썼던 그거 말이죠!”

권능의 실로 공간을 더듬던 라리루라가 손뼉을 쳤다.

바로 맞췄다. 티르시의 〈강림〉을 해제하고서 영혼과 자아를 유지시킨 마법. 그것을 조금만 손 봐서 갈기면 클리안이 장악한 고대의 인공신좌도 흩어진다.

‘나는 옥좌의 정지 스위치를 가진 셈이지.’

티르시나 〈강림〉 마법과 얽히지 않았다면 그 술식을 즉석으로 만들긴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때 쓴 건 겉에 드러난 조종권을 박살내는 정도였고.

하지만 거짓말처럼 우연이 쌓인 덕에, 나한테는 황자들의 반역을 좌우할 키 카드를 일거에 부수고 정지시킬 수단이 갖춰져 있었다.

당초의 생각대로 황자들의 반역은 방치하는 게 더 이득이었던 셈이다.

‘옥좌 쪽은 그다지 걱정할 수준이 못 돼.’

분석하는 데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우리가 못 잡을 적은 아니었다.

나는 라리루라의 어깨를 위로하듯이 두들겨줬다.

“어떤 기술도 약점과 상성은 있어. 내가 너한테 잡혔다간 빠져나가기 힘들고, 제 1황자가 구속을 해제하는 권능을 빠져나간 것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청동옥좌〉의 약점을 찌르면 된다.

‘상대는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 황자다.’

권능을 잘 다루지도 못하니 접근해서 주먹으로 명치나 턱주가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면 억 소리를 내며 권능을 토해낼 것이었다.

황제가 뒤졌다간 해명이 귀찮아지겠지만, 그걸 위한 셀루스티아 남작 아닌가.

“야누스 신의 권능은 문을 열고 닫는 거였지? 이 공간의 봉쇄를 빠져나가려면 라리루라, 네 권능이 필요해. 부탁 좀 할게.”

“……네!”

기운을 되찾은 라리루라에게 웃어준 나는 바로 지하로 뛰어내렸다.

“울프헤딘! 어디 가!”

발바닥에서 마나와 증기를 뿜어내며 비행하자, 그런 나를 로키가 쫓아왔다. 나는 빛을 만들어서 어둠을 밝히며 대답했다.

“옥좌 밑으로 간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

〈강림〉 마법의 발동조건은 2개 있다.

초대 원로원의 혈통. 다시 말해서 적성.

명계와 연결된 구멍. 다시 말해서 통로.

‘적성 문제는 〈청동옥좌〉의 기능으로 해결했으니까 논외로 치자.’

하지만 명계와 연결된 통로는?

‘공간을 연결하는 기척은 없었어. 오딘의 눈으로 봐도 술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밑에서 인공신좌들이 7개 씩이나 튀어나왔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나는 라리루라가 문을 여는 사이에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둘 생각이었다.

─쿵.

바닥에 내려오자 정답은 멀거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보고 납득하기보다는 더 큰 의문을 얻어야 했다.

따라 내려온 로키가 눈을 크게 떴다.

“……이런 곳에 세계수의 뿌리가 다 있어?”

그녀는 거의 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세계수의 뿌리를 쓰다듬었다.

“이 뿌리를 명계에 연결했네. 마법이 아니니까 우리가 눈치 못 챌 만도 해.”

이유를 알아차렸다는 듯 말하는 그녀. 그렇지만 나는 그런 로키를 한심하게 봐줄 여유가 없었다. 입을 가리고서 뇌가 타도록 생각하던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거 끽 하면 일이 꼬이겠는데.”

“뭐?”

“적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 예지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 뭐겠냐.”

내가 적의 입장이라면 미래를 읽는 나를 어떻게 상대할까?

로키는 뜬금없는 소리에 멍해져 있다가 얼굴이 확 굳었다.

“……예언자를 위험하게 만들지 않는 것.”

“맞아. 그게 최선이지.”

미래예지를 피하는 방법은 1개 뿐이다.

말로는 쉽고 실천은 어려운 방법이지만, 가능은 하다.

‘내가 미래를 읽지 못하게 만드는 거지.’

물론 그건 그런 데 특화한 권능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런 머저리 같은 권능이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봐서, 시도 자체는 가능하다.

‘우리를 절대로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범주에서 자기 목적만을 달성한다면.’

그러면 나는 그 미래를 미리 보지 못한다.

나랑 우리 가족은 위험을 겪지 않으니까. 자기 능력보다 먼 미래를 보려면 오딘마저 신대의 예전 선지자들에게 지혜를 빌려야 했댔고.

‘다시는 안 통할, 딱 1번 뿐인 개수작이지만.’

그렇기에 제일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생각이겠지.

나보다 더 먼 미래를 보는 데 뛰어났던 오딘도 읽지 못했던 미래는 있었잖은가.

‘적’은 미래를 예지(豫知)하는 내 권능을 자신의 예지(叡智)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말장난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표현이지만 적절한 사실이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린 게 아니라, 잘 풀리도록 세팅해 둔 거였나.”

황제와 황자, 그들의 과거사가 엮인 반란극.

인간들의 치열한 싸움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종한 건 누구일까.

“이 반란이 별의 자손이 꾸민 일이란 말이야?”

“그래.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문제될 건 없어.”

황비나 친위대장이 벌인 짓이라면 결론은 같다.

어차피 별의 자손이 수작을 벌일 건 예상한 상태였다. 옥좌의 인공신좌를 직접 흡수해도 그걸 다시 토해내도록 시키면 그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와 별의 자손의 싸움을 지켜보던 제 3자가 존재했다면?

혀를 찬 나는 브류나크를 힘껏 내려쳤다.

─터엉!!

룬 마법이 세계수의 뿌리를 갈랐다. 하얀 고무 같은 질감은 나무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렇다고 내 공격에 파괴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꽈르르릉─!! 틈새로 번개까지 불어넣어 굵직한 뿌리를 불살랐다.

하지만 조금 늦었던 듯 싶었다.

“애미.”

뿌리가 잠긴 바닥을 갈아엎던 나는 인상을 썼다.

세계수의 뿌리는 깊은 늪에 잠겨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