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34화 (832/1,009)

***

〈화재를 진압하라!!〉

코르넬리우스 폰 아르마알스는 늙어서 뻣뻣해진 목청으로 힘껏 일갈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귀족들은 나를 따르라!! 제 1황자 전하의 반역이다!!〉

〈로물루스 신전의 불을 꺼!! 로마니아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불타도록 두지 마라!!〉

재상과 오델리아도 그를 따라서 외쳤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귀족들을 인솔하면서 눈을 마주쳤다. 정계의 케케묵은 노괴들이다. 의사소통은 그걸로 충분했다.

‘노르드가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코르넬리우스는 불타오르는 신전을 흘겼다.

전황은 아직 읽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되든 브리타니아 귀족인 노르드가 나설 무대를 만들어 둘 이유는 있었다. 생각하는 그에게 귀족들이 반론했다.

〈아르마알스 의원!! 화재 진압보다는 폐하의 안전이 우선이오!!〉

〈모자란 놈!! 친위대는 장식이더냐!! 달려들고 싶거든 통로 상의 불부터 꺼!!〉

〈아, 알겠소!〉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는 이리로! 군사 경험자나 장군 출신은 도열하라!〉

재상이 무력하거나 의지박약한 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유도했다.

〈근위대!! 무기는 어디냐!!〉

〈여, 여기 있습니다!!〉

통제를 맡은 근위대가 황제 앞이기에 치워뒀던 무기를 가져왔다. 오델리아는 적당히 잡히는 검을 하나 뽑아서 불길의 한켠을 일소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들은 나를 따르라!!〉

혈기가 많거나, 황제가 해명하기 전에 죽었다간 곤란해질 귀족들이 눈으로 그녀를 뒤쫓았다. 노골적으로 눈을 마주친 그들도 땅을 박찼다.

그들은 반역이 벌어지는 천통절의 마지막 의식 장소로 돌진했다.

그곳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 채로.

***

클리안이 만든 불 속에서 아멜리아는 혼자만의 대관식을 가졌다. 황비와는 다른 얼굴이 된 그녀의 머리에 커다란 왕관이 씌워졌다.

〈수고하셨어요. 이만 푹 쉬세요.〉

황비로 살아왔던 이족의 눈동자에서 우주가 휘몰아쳤다.

아멜리아는 황자의 얼굴을 붙잡고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별의 자손의 사념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클리안의 정신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그녀는 지금과 같은 과정 이후, 힘을 나눠주는 것으로 상대를 충직한 수족으로 삼곤 했다. 단지 지혜도 신중함도 그녀만 못한 황자는 이용가치가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엇】과 뒹굴며, 누구에게 나라와 세계를 팔아넘기고 있었는지 이해한 끝에 클리안은 괴성을 지르며 미쳐 날뛰었다.

광증은 육체의 통증마저도 잊게 했다. 손톱으로 눈알을 파내면 아멜리아가 보여준 것을 뇌리에서 긁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클리안은 미친 듯 자해행위를 반복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배 다른 자식을 아멜리아는 사뿐하게 지나쳤다.

─딱!

허리가 부러진 황제를 주우며 손가락을 튕겼다. 불길이 신전을 통째로 휩쓸면서 미친 듯 나뒹구는 클리안과, 아멜리아가 벗어던진 가죽을 불태웠다.

반역을 꾸민 황자가 잿더미가 되는 모습을 일별하며 아멜리아는 어깨의 재를 털었다.

─우르르르!!

그때였다. 거슬리는 기척이 신전으로 접근했다.

화재를 진압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기척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의식 때문에 황자와 황제 뿐이었던 신전에 사람들이 꼬이기 시작한 듯 했다.

모습을 바꾼 아멜리아는 눈을 찌푸렸다.

〈친위대장.〉

〈예.〉

그녀의 부름에 여인 1명이 불꽃 커텐을 가르고 나타났다.

그녀에게 황제를 던져준 아멜리아는 불쾌하게도 그녀보다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몇 개 느끼고 친위대장에게 손짓했다.

〈폐하를 데리고 물러나세요. 잡것들이 폐하와 당신을 쫓도록.〉

〈……‘이것’의 생사를 귀하의 몸보다 중시해야 합니까?〉

〈저는 싸울 생각도 없는걸요. 자, 어서.〉

그녀들의 짧은 대화는 황제의 실제 입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당대의 로마니아 황제는 아멜리아의 진짜 정체마저 몰랐다. 조종하기 위한 대상으로서는 그러는 편이 장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종하기 쉬운 인물을 황제로 앉혔으니 수하로 삼을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을 볼 시간이었다.

‘이만 몸을 피할 때군요.’

아멜리아는 노르드의 예지를 피해내고자 수단을 강구했다.

가장 원하는 건 신좌다.

신좌만 손에 넣으면 아멜리아의 힘─별의 자손으로서의 능력─과, 그 신좌의 권능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다수의 신적 존재가 즐비한 노르드를 이기려면 반드시 신좌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하게 획득 가능한 신좌를 손에 넣고자 했다.

그녀가 지배하던 로마니아에서 우연처럼 피어난 인공신들의 힘을 말이다.

‘허나 내가 직접 〈청동옥좌〉를 얻으려고 했다가는 반드시 예지당할 터.’

예언자가 상대하기 힘든 이유는 미래를 읽히기 때문이다.

별의 자손인 아멜리아가 신좌를 7개나 손에 넣는다는 사태는 노르드에게 확실한 위기다. 예지당할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았다.

아마 단편적인 예언의 이미지겠지만, 아멜리아로서는 정체만 들켜도 치명적이다. 결단코 겉으로 나서서 활동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노르드나 그의 주변인을 피해, 황자들의 심리를 조종했다.

의무, 탐욕, 복수. 각자 반란을 꾸릴만한 이유를 가진 황자들이라면 황제의 비호를 뚫고자 〈청동옥좌〉를 사용하러 오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신분을 빼면 한낱 범인에 불과한 인간들.

그들의 반역은 노르드에게 전혀 위협이 될 가능성이 없다. 그는 예지하지 못한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잠적해야겠지만요.’

아멜리아는 다음 싸움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본체의 힘을 끌어낼 방법을 얻었다고 노르드를 죽이러 간다? 그랬다면 그녀의 습격이라는 위기를 노르드가 앞서 예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은가.

그가 미래를 읽지 못했다는 건 아멜리아가 그를 공격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

그러니까 노르드가 이 결말을 읽지 못하도록 긴 시간 뒤에까지 그의 ‘위기’를 미뤄야 했다.

〈……역시 예언자를 상대하는 건 귀찮군요.〉

아멜리아는 왕관을 쓰며 차원문을 열고자 했다.

10년 후의 미래가 어느 쪽의 승리로 고정될지는 모를 일.

하지만 아멜리아는 앞으로 황제와 기둥을 잃은 로마니아의 혼란을 이용해서 세상 곳곳에 전란을 퍼트릴 생각이었다.

로마니아는 이제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제국을 지탱하던 신좌는 이제 전부 아멜리아의 손에 떨어졌으니까.

억지로 추켜세워 만든 신마저 잃은 신성제국의 말로는 뻔한 귀결이다.

거기에 더불어, 저들 인류는 혼돈의 총아.

그들이 주도한 전쟁이라면 미래를 보는 능력은 쓸모가 없어진다. 인간의 강렬한 심념은 운명조차 비틀고, 전란은 인간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데 가장 적합했으니까.

지난 대전쟁과 바이콘 신족의 마지막 선지자가 증명한 결론이었다.

─또각, 또각.

신전의 뒤로 빠져나가며 아멜리아가 로마니아를 차원이동을 시전하려 했을 때였다.

끼기긱…!!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리던 차원의 틈새가 닫혔다.

둘 밖에 남지 않았던 동족들의 죽음을 눈치챘을 때만큼의 놀라움이 아멜리아를 덮쳤다. 옥좌에서 끌어올린 권능이 멈춰버렸던 것이다.

‘……옥좌에 간섭했어? 누가?’

그녀는 효율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신전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황제는 친위대장이 데려갔으며, 반역을 꾸민 황자는 자신의 불꽃에 타 죽었다.

‘잠깐만.’

아멜리아는 고개를 급하게 움직였다.

아무도 없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집중력을 노르드가 그 끄나풀들의 기습에만 기울였기에, 또 보잘 것 없는 상대였기에 한순간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위협적이지 않았기에 뇌리에서 빠져나갔던 것이다.

이 신전에 있어야 할 인간이 1명 모자랐다.

〈레벨리오의 대역은 어디로──〉

어느샌가 사라진 대역의 그림자를 찾아서 눈을 돌렸을 때였다. 아멜리아는 정수리 바로 위쪽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걸 감지했다.

─찌르르!!! 좌시하기 힘든 위협에 그녀의 가죽 아래에서 촉수들이 삐쭉 섰다.

〈……거슬리게!〉

아름다운 얼굴을 찡그린 아멜리아는 그 위치에 사념파를 뿜어냈다.

그녀는 자신의 예측이 일그러지는 사태를 가장 혐오했다. 그렇기에 사념파에 폭발한 발퀴리에를 보자마자 적지 않은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발퀴리에. 오딘이 만든 프레이야의 시종.

사라진 레벨리오의 대역─혹은 대역으로 위장한 본인─을 찾던 아멜리아는 생각을 바꿨다. 옥좌에 간섭해서 봉인당한 건 자재신 리베리타스의 권능 뿐이었다.

차원과 관련된 권능을 막혀서 아멜리아 본인의 능력으로도 도주를 꾀할 수 없다.

그녀는 혀를 차고 싶은 마음을 느끼고, 그 기분 때문에 더 불쾌해졌다.

인간들과 너무 오랫 동안 어울렸던 탓일까. 인간다운 행동거지가 정신이며 몸에 배어버린 듯 했다. 아멜리아는 그 역겨운 기분을 털어냈다.

〈위대한 분을 배신한 창부의 메이드라. 그따위 권능으로 뭘 하고 싶으신가요?〉

〈뭐긴, 혁명이지. 길로틴이라고 알아?〉

갑옷을 입은 다나는 날개를 펄럭이며 착지했다. 베로니카의 〈공간이동〉으로 프랑과 네페르티티 역시 그녀와 동시에 신전의 후문에 착지했다.

〈네 머리의 청동 왕관이 옥좌인가 본데, 서로 시간 끌 것 없겠지?〉

샤라라락….

다나는 치밀하게 집중력을 짜올리며 권능을 전개했다. 일행의 몸에 우신과 맞서싸웠을 때에 지지 않을 축복과 가호가 내렸다.

구신의 신좌가 가진 창세의 권능을 능력강화에 전부 몰아넣는 가호.

간단명료하면서, 그렇기에 발퀴리에를 시작으로 집단전이 간단한 프레이야의 권능에 딱 맞물리는 강력한 권능이었다.

〈……후우, 하나하나 조잡한 기술 투성이네요.〉

하지만 아멜리아가 보기엔 하찮을 따름이었다.

〈신좌의 권능을 고작 능력의 강화에만 쓰다니. 야만족의 피는 별 수 없나요?〉

불로 얼음을 태우고, 차원을 주무르며, 대륙까지 만들어내는 권능으로 한다는 게 고작 축복이라. 그 효용성은 뛰어나지만 수준 낮은 활용법인 건 분명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면 싸울 수밖에.

걱정되는 점은 있었다. 저 여자들의 죽음이 노르드가 예지하는 ‘위기’의 범위에 들어갈까,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지 범위에 들어간다면 싸우려 드는 것부터가 이미 패착이겠죠.’

노르드가 일부나마 미래를 예지했다?

그랬다면 아멜리아가 이렇게 계획을 성공시키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노르드는 그만큼이나 끔찍하고, 또한 위협적인 상대였다.

‘다비드를 이겨냈다면 마스터 클래스가 됐겠죠. 신의 가호도 떨쳐냈겠고요.’

아멜리아는 노르드라는 강적을 얕보지 않았다. 그가 미래를 봤다면 아멜리아는 지금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도망치기라도 하면 승리일 정도의 함정 말이다.

아멜리아는 신좌의 권능을 발동했다.

〈남편 분께 버려진 게 외로우시다면, 기꺼이 하룻밤의 상대를 준비해 드리겠어요.〉

꾸그그그극…!

생구신(生口神) 팔레스의 권능으로 생명을 빚고, 육신을 배양하여 사악한 마나를 짜넣었다. 정의신 테미스의 권능을 빚어넣고 지평신 퀴리누스의 권능으로 고정했다.

【MeeoooOOooOoooo?】

그렇게 끔찍한 키메라가 탄생했다. 생물의 여러 기관을 뒤섞어놓은 듯 새까만 생물이었다. 날개가 모여서 키메라의 팔이 되고, 머리가 자라며 다리로 변했다.

산양처럼 생긴 얼굴이 갈기를 대신한 문어발을 펄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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