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아.〉
산양이 다닥다닥 붙은 눈을 깜빡대는 걸 보면서 네페르티티는 팔뚝을 문질렀다.
으레 보일 법한 생물을 악의적으로 뭉쳐놓은 듯 한 괴생물. 흑마법사의 실험체에 익숙한 네페르티티마저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혐오스러울 따름이 아니구나.〉
베로니카는 룬으로 산양의 내실(內實)을 살피고 역겨워했다.
산양의 존재감은 니플헤임의 서리 거인들처럼, 별의 자손들처럼 보는 생물들에게 역겨움 이상의 거부감을 심어주었다.
‘대전쟁 전후의 인류가 저런 괴물을 상대했다면 두족류 생물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타고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터.’
그만큼이나 산양과, 그 산양을 만든 아멜리아의 사고관은 남달랐다.
생김새? 생김새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흉측한 괴물을 만들려 노력한 것이었다면 악취미라며 일소에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악취미와는 관점을 달리하는 차이가 있었다. 인간이라면 광기의 발로(發露)여야 할 저 일그러진 외형을 광인의 소행이라고 여기지 않는 지성이 그러했다.
저들 별의 자손에게 산양과 인간, 또한 그밖의 생물은 명확한 구분의 척도가 없다.
인간세계의 강대국을 지배하던 괴물. 범인들은 지혜에서 범접하기도 힘든 존재가 그런 감수성을 가지고 시대의 행방을 좌우했다는 사실에 베로니카는 오한을 느꼈다.
종래의 상식과 전혀 다른 지성체.
그런 존재가 자신들만의 관점과 시야로 인간을 지배하며 군림한다.
그래서였다. 【중간 가지】 미드가르드는 물론, 세계수의 차원에 태어난 온갖 생명들에게 저들이 존재만으로 공포와 광기의 정수로 느껴지는 것은.
저 괴물이 뿜어내는 사념을 맞닥뜨리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인들 깨달으리라.
그만큼 별의 자손들의 존재는 형언하는 것조차 꺼려질 광증의 세계가 밤하늘 건너편의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확신하게 만든다.
〈당신들의 수준에 딱 맞는 파트너죠. 어울리는 한쌍인걸요?〉
인간의 권능으로 가장 인간의 감수성과는 다른 생물을 만들어낸 아멜리아는 산양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외형을 본뜨기는 했지만 그녀들에게 생김새는 장식에 불과했기에.
〈한쌍? 숫자도 못 세는 걸 보면 골이 비었는가 본데!〉
다나는 가호를 내린 발퀴리에를 열립시켰다.
─척! 가호의 힘으로 마나를 능력 이상으로 충전한 발퀴리에들이 사냥진형을 갖췄다. 우신에게도 통했던 전술이었기에 위압감은 충분했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산양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뇨. 당신들 모두에게, 딱 한쌍 씩이에요.〉
쩌억─!!
산양의 아가미가 벌려지며 심해의 해초더미처럼 빛이라고는 한 점도 통하지 않는 액체를 토해냈다. 그 액체에서 오싹한 기척을 느낀 베로니카는 지체없이 마법을 발동했다.
【ᚺ(Hagalaz). ᛁ(Isaz). ᛃ(Jēra).】
3소절의 짧은 단문.
로키의 가르침을 듣고 룬 문자를 더 심도 깊게 이해한 베로니카였다. 룬의 참된 능력을 끌어내는 긴 주문을 효율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짧은 주문으로 만든 불꽃의 소용돌이가 ‘양수’의 절반을 삼키고 꺼졌다.
─쿠르르르륵!! 하지만 하수도관에 물이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지면에 스며든 양수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낸 것처럼 괴물들을 토해냈다.
【Fhi-!!! Twih'vs Kioah-wu!!!】
─울컥! 양수가 터지며 생명이 태어났다.
해초를 닮은 괴인과 식물처럼 원통형의 생물이 시작이었다. 동방의 지장보살을 닮은 것부터 투명한 바람 덩어리 같은 존재에, 사람보다 작지만 점액에 둥둥 떠다니는 애벌레 같은 것들까지.
듣도 보도 못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혀를 낼름거렸다.
〈그새 절반이나 막았나요? 유희신의 혈족은 늘 저희의 방해를 하는군요.〉
말과 다르게 인자하게 웃은 아멜리아는 산양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수가 모자라다면 더욱 낳도록 종용하면 될 일.
황비의 몸통보다 큰 산양의 뱃살이 흉측하도록 부풀었다. 생물의 출생을 관장하는 권능. 풍요신이라며 추앙받는 과거의 성녀, 포모나의 힘이었다.
생명의 탄생을 모독하는 것만 같은 광경에 역겨움을 느낀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프랑의 팔이 찰나지간 뒤쫓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퍼벅!!
행동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온 프랑의 나이프가 아멜리아의 얼굴에 박혔다.
〈아무래도 놓쳐줄 생각은 없으신가 보네요.〉
나이프가 박히고 관통하기까지 했으나, 그녀는 상처 하나 없었다. 꾸물거리는 턱선을 고치며 아멜리아는 두뇌를 타들어가도록 회전시켰다.
노르드가 이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어떨까.
전혀 좋은 일은 아니다. 몸을 피하지 못한 이상 차라리 예지당하는 편이 더 이롭다.
혹시 노르드가 이 미래를 읽지 못했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에게 이번 사태는 전혀 위기가 아니라는 뜻이 되지 않는가.
과거가 미래를 결정짓는 것처럼, ‘지금의 아멜리아’가 벌이는 일련의 행동이 ‘과거의 노르드’에게 보여지는 예지를 좌우한다.
예지되지 않았다. 즉, 위기가 아니다.
아멜리아는 지금부터 아무리 싸워봤자 노르드의 여자들을 죽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해치기는 커녕, 완패하는 것조차 있을 수 있다.
모순적이지만 저 여자들이 아멜리아에게 덤벼든 이상, 아멜리아가 저들을 죽이고 달아날 가능성은 0%에 수렴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정녕 방도는 없는가?
‘아니.’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날은 아직 중천이지만, 뒤엉키면서 즐기도록 하세요.〉
【Meeee-. Mewwww. Mewwwwww-.】
꿀럭, 꿀럭…!
푸화악─!!
이생물체의 생산공장처럼 양수를 아가리로부터 분출하는 산양.
다나는 생물의 마나라기엔 너무 축축하고 역한 에너지가 모여드는 걸 눈치채고서 눈을 부라렸다. 노르드가 혼돈의 마나라고 부르던 마나였다.
〈막아! 저 키메라, 가만히 냅뒀다간 저 역겨운 것들을 계속 토해내겠다!〉
〈내가 전담하마.〉
베로니카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불꽃이 산양이 토해낸 양수를 증발시켰다.
증발한 양수는 유독성의 가스로 변했지만 그런 수준의 독극물로는 여신이 내려주는 가호를 뚫지 못했다. 다나의 가호는 전사를 지킨다는 점에서는 일절 흠잡을 데가 없는 권능이었다.
〈쯧!〉
공격을 성공시킨 베로니카가 혀를 찼다. 그녀의 불꽃이 닿지 않은 양수에서 껍질을 가르고 태어나듯 기어올라오는 괴물들을 봤기 때문이었다.
【발퀴리에! 절반은 베로니카를 지켜! 나머지는 더러운 것들부터 치우고!】
다나는 영혼으로 연결된 발퀴리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베로니카의 호위를 맡겼다
여신의 병대는 굳이 자세하게 지시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그 뜻을 따랐다. 덕분에 프랑은 곧장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전위는 나한테 맡겨!〉
골렘 코어 나이프가 후광처럼 부유하며 골렘의 양팔을 만들었다.
금속 망치를 뽑은 프랑은 그에 오러를 씌우면서 휘둘렀다.
파츠츠츠츠─ 푸욱!!!
오러에 덮인 망치는 점액이 쿠션이 됐던 것처럼 막혔다. 평범한 점액은 아니었던 듯 하다. 부상을 면한 애벌레가 반격으로 침을 뿜었다.
프랑은 다나의 가호를 믿고 방패를 내걸었다.
치이이이익─!! 금속 방패가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가호로 강인해졌는데도 그 정도였다. 프랑이 가호없이 덤볐다면 죽어나가기에 충분한 적이었다.
〈역시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
소모한 방패를 즉시 복구한 프랑이 재차 망치를 치켜들었다.
【Kioah-wu!!!】
측면이 훤히 드러난 프랑에게 지장보살 동상이 장타를 날렸다. 방패를 돌리자니 애벌레의 타액도 적지 않게 위협적이었다. 프랑은 순간 망설였다.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해.〉
보이지 않는 괴물을 후려친 네페르티티가 프랑을 원호하고자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발차기가 지장보살의 팔을 쳐내려고 했을 때였다.
─끼익!!
그녀의 발등이 닿기도 전에 지장보살이 돌처럼 굳었다.
핑크빛의 실이 살아있는 것처럼 공간을 누볐다.
“……〈백토인형〉·【검(Mækir)】!!”
검으로 바뀐 프랑의 망치가 애벌레를 베고, 네페트티티의 발차기가 살덩어리 동상을 부쉈다. 채찍으로 연속공격을 가하던 네페르티티가 끄덕거렸다.
〈나이스 타이밍. 칭찬해.〉
〈죄송해요! 주역답게 조금 늦었답니다! 그치만 이제 슬슬 좀 봐줄 만한 생김새의 적이랑 싸우고 싶단 생각도 드는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지장보살을 멈춘 것은 차원을 도약해서 나타난 라리루라였다. 그녀는 역겨운 생김새의 괴물에게 질색팔색을 하며 외쳤다.
【Meh'om?】
머리가 터져나간 지장보살이 살점의 단면을 보이면서 삐그덕거렸다.
〈꺄아아아아악!! 징그러!! 움직이지 좀 말아요, 제발!!〉
라리루라는 그들을 권능의 실로 칭칭 포박했다. 끼기기긱…!! 놀라운 생명력과 많은 권능들로 지켜지는 괴물들조차 꼼짝없이 멈출 만한 위력이었다.
멈추지 않은 건 산양 키메라 뿐이었다.
【Meeeeeee-?】
산양 키메라가 양수의 생명력을 공격용으로 바꾸어서 뿜어냈다. 라리루라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차원을 조작했다.
촤아악─! 벽처럼 앞세운 공간의 단절로 양수를 가뿐하게 막아냈다.
〈튄 양수는 몸에 묻히지 마. 피부에서 괴물의 새끼를 낳는 배양기관이 자라날걸.〉
〈왜 쟤들은 그런 소름 돋는 능력만 있어요?!〉
낙법을 취하는 로키의 조언에 울상을 짓는 라리루라. 잠깐이나마 코미컬한 모습에 웃음을 지었던 다나는 발퀴리에들에게 투창을 지시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라리루라! 다른 둘은 어쩌고 너희만 왔어?!〉
〈설명하자면 길어지는데요! 저 아직은 권능을 쓰면서 멀티태스킹은 힘들어요!〉
〈그럼 됐어! 그 지능낭비 듀오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헛생각을 하고 있을 틈은 없을 뿐더러, 혼자도 아니고 티르시가 같이 있다면 잘 처신할 것이었다.
─다나!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해치우고 나서 도우러 갈 생각을 하거라!
─나도 알아! 너보단 노르 놈 뒤수습도, 짬맞는 것도 익숙하니까!
베로니카가 심념으로 경각심을 되새겼다. 눈을 찌푸린 다나는 빛의 검을 만들어서 발사했다. 팔 힘을 실어서 던지는 과정은 생략했다.
치유마법의 광채가 아닌, 오러를 웃도는 순수한 파괴의 빛!
권능을 빛의 마나로. 검이 소나기처럼 몰아쳤다.
아멜리아가 손을 흔들었다. 번영신 포르투나의 권능이 소나기 같은 창들에 발동했다.
슈슈슛─!!
빛의 검은 환상으로 변한 것처럼 산양을 해치지 못하고 통과했다.
다나는 눈을 반개했다.
‘프랑의 나이프를 피했던 권능?’
적의 공격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권능일까. 아멜리아는 한심한 듯 말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권능은 수준이 낮다고.〉
〈학자의 천성이지. 제대로 정립시키기 전에는 이름을 붙이기도 꺼려지더라고.〉
남에게도 걸 수 있는 거였다니, 귀찮은 권능도 다 있었다. 신전을 초토화시킨 것에 고고학자로서 조금 죄책감을 느끼면서 다나는 수긍했다.
결국 창세의 권능으로 마나와 기타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간단한 활용이다.
수준 높은 사용법이 아니라는 비난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권능을 전투적으로 활용 가능한 사람은 프레이야의 신좌와 적성이 맞지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제반사항과 개인적인 짜증 때문에, 다나는 도리어 기쁘게 웃었다.
전황이 불리할 때는 적의 냉정을 흔들면 된다.
다나는 강적의 평정을 흔들어서 고지를 점하고 이겨온 남자를 몇 년이나 봐 왔다.
〈그럼 어디 맞춰볼까? 네가 대단하다고, 제일 두렵다고 생각하는 권능이 뭔지.〉
지금까지 얻은 단서와 직관에 근거한 도발. 그렇지만 아멜리아는 도발의 단초(端初)를 듣고도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게 표정을 관리한 결과였다는 사실은 한 마디 말로 증명되었다.
〈너, 미래를 보는 권능이 제일 무섭지?〉
다나의 통렬한 지적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별의 자손의 속마음을 꿰뚫어본 것처럼 날개를 펼친 그녀가 말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네가 빠는 문어의 권능이랑 비슷할 뿐더러, 이런 번거로운 수단을 취해야 할 만큼 상대하기도 껄끄러우니까.〉
〈……………….〉
〈우쭐대는 거야 좋다고 치겠는데, 입장도 잊고 뻗대는 건 봐주기 좀 역한데.〉
다나는 웃었다. 아멜리아는 결코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다.
한순간만 노르드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럴 수 있다면 지금까지 둥지로 삼았던 제국까지 버리고자 마음 먹은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다나는 확신했다.
아멜리아는 〈청동옥좌〉만 챙겨서 도망치려는 패배자에 불과하다고. 싸우기도 전에 꼬리를 빼고 도망치려고 잔머리를 쓴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떤 핑계를 대건, 아멜리아가 도망치려 했을 이유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너, 우리 서방님이 무서워서 헐레벌떡 튀려는 거잖아?〉
그게 이유였다.
세계수에 살아남은 마지막 별의 자손인 그녀가 책략에 책략을 거듭했음에도, 로마니아 황실이란 둥지까지 포기하고 몸을 피하고 있는 이유.
아멜리아는 노르드의 권능을 두려워 한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 미래예지를 쫓아서 당도할 그의 존재 자체를 말이다.
…파르르.
범상한 인간들을 장난감처럼 조종해 오던 별의 자손은 남몰래 손을 떨었다.
왜 무섭지 않겠는가. 왜 두렵지 않겠는가.
신의 축복을 거부하고 그녀와 동포들에게 창을 내미는 남자.
증오스러울 만큼 거만한 인간이다. 아멜리아는 그를 이미 죽어 나자빠진 외눈의 신이 지푸라기를 잡는 기분으로 길러낸 비루한 짐승이라며 조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두려웠다.
창을 든 야수가 한사코 그녀를 사냥하러 온다.
그게 사냥개라면 구슬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달랐다. 늑대는 원하는 상대를 따를 지언정 먹이 따위로 길러지지 않는다.
오딘이 키워낸 늑대는 타협도 유혹도, 하물며는 기만조차 통하지 않는 맹수였다.
오딘의 망령은 신조차 물어뜯을 늑대의 새끼를 목줄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서 키워냈다. 핏덩이나 다름없던 나약한 짐승은 그렇게 괴물이 되었다.
아멜리아가 태어난 별을 삼켜버릴 울프헤딘이.
〈이것도 저것도 버리고 튀는 데만 열을 올리는 주제에 폼 잡는 꼴이 우습다, 이거야. 무서워하는 상대한테서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지?〉
다나는 누군가로부터 보고 배운 도발을 뱉으며 빛의 검을 내밀었다.
〈네 초라한 ‘야반도주 계획’, 아직까진 쥐뿔도 성공 못 했잖아?〉
아멜리아가 살아서 도망칠 수 있으리라곤, 결코 확답할 수 없었으니까.
…까드득!!!
아멜리아는 이빨을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