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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40화 (838/1,009)

***

옥좌의 빈 터에 불기둥이 내려꽂혔다.

화르르르르륵─!!

이상한 시체 더미를 주괴마냥 한 데 융합시키며 치솟는 불길! 황자가 자기 멘트를 치자마자 불이 치솟았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마법의 술식을 보면 베로니카였고, 안에 갇혀서 활활 불타고 있는 시체들은 본 적도 없는 괴물들이었다. 씨발, 깜짝 놀랐네.

─파츳!

아무튼 그렇게 시선이 팔린 사이에 황자가 몸을 날렸다.

덤벼든 게 아니었다. 그가 가진 청동색 체스 말 같은 것에서 권능을 짜내면서 튀려고 한 것이다. 황자가 사라지는 모습이 예지에 비췄다.

‘그냥은 안 놓치지.’

브류나크에 닥치는대로 오러를 응축시켰다.

“금강창파──!!”

휘두른 가속도를 살려서 오러를 샷건처럼 세게 터트렸다. 사방으로 퍼지는 오러의 칼날은 피하는 걸 용서하지 않았고, 황자에게 적중했다.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만은 않습니다.”

튀려던 걸 멈추고 방어하는 황자. 오러 칼날은 공간의 웜홀 같은 것에 빨려들어갔다가 나한테로 돌아왔다. ─쩍! 티르시가 마나를 얼려서 흡수했다.

‘역시나 저 체스 짝퉁 게임의 말이 권능의 저장매체인가.’

지금의 황자는 말하자면 인신 비슷한 것이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마나를 오딘의 눈으로 분석한 결과, 〈청동 옥좌〉의 단말 말고도 어느 정도의 권능이 몸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눈을 부라렸다.

‘헤니르가 강림한다면 몸은 어쩔 생각이지?’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의문으로 느꼈던 부분이다.

모가지를 끼울 몸이 있었다? 그럼 라한이 몸통 찾아 삼만리를 하러 다니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 예비 몸통은 썩 쓸모가 없거나 부작용이 클 듯이 보였다.

‘쓸모없는 병신 몸뚱이를 끼고 오면 괜찮다.’

하지만 헤니르 본인도 부담되서 쓰기 힘들었을 몸통이라면?

위험하냐고? 아니다.

이건 오히려 절호의 찬스였다.

“노르드, 먼저 가세요.”

쿠드드드드득─!!!

겨울이 찾아오는 과정을 수천 배속으로 빠르게 튼 것처럼 얼음이 천지를 침범했다.

티르시가 쏜 마법이 공간을 뒤쫓으며 쏟아졌지만 한 발 늦었다. 자재신 리베르타스의 권능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황자는 공간을 분간지었다.

냉기는 봄과 가을의 경계선처럼 그 이상 침범해나가지 못했다.

나도 예지를 발동시키지 않았으면 좀 전의 오러 샷건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을 거다.

“이 사람은 제가 막고 있을게요.”

완드를 든 티르시가 속삭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실력을 믿었다.

“예. 물론 그대로 족쳐도 상관없습니다.”

웃음기를 섞어 대답하고 브류나크를 치켜들었다.

천리안으로 보이는 지상에서 아내님들이 헤니르에게 총 공격을 퍼부었다. 미래예지로 그녀들의 공격이 실패하는 걸 본 나는 팔에 힘을 줬다.

99대대의 집행관들한테서 뺏은 〈공간 도약〉 유물은 간섭당하기도 쉽다.

미래예지도 동의했다. 황자가 거들먹대며 내가 유물을 발동하는 걸 저지하는 미래가 보였다. 더 깔끔한 수단도 있겠지만 급한 만큼 지금은 이러는 편이 낫다.

하지만 지상까지의 암반은 상당히 두껍다.

‘꿰뚫을 수 있을까?’

마스터 클래스가 되고 나서 내 근력이 어디까지 물리적인 파괴를 일으킬 수 있나 시험해 본 적은 없었다. 신체능력에 치중한 우신들의 파괴력만큼 힘을 발휘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어떨까.

그래도 확신은 있었다.

아직 브류나크에게 자아도 이름도 없었던 시절, 예르나를 때려잡았을 때. 처음으로 【해신】이 내 몸을 통해서 마나를 흘려넣었던 그날.

그때와 비교해도 하등 밀리지 않으리란 자신이 말이다.

이두박근이 융기했다. 심장이 피를 펌핑질했다. 사지근맥의 혈액이 일주천하면서 폐부에서 뜨거운 숨결이 새어나왔다. 마법사의 지식은 잠시 잊었다.

여기까지 1초.

심기일전한 육체에는 스스로의 마나와 꼴마초-사이어인의 근력만이 있을 뿐.

나는 창을 내던졌다.

─푸슉.

창은 암반에 틀어박혔다. 압축된 힘에 두부에다 이쑤시개를 꽂아넣은 것만 같았는데, 그런 맥없는 장면은 딱 그때까지였다.

소리조차 느려지며 체감시간이 1초를 몇 분으로 늘린 듯한 찰나.

지하를 무너트리지 않을 정도로 강건하게 쌓인 암반이 종잇조각처럼 구겨졌다. 지상까지 까마득한 거리. 굴착기로도 며칠을 파야 하는 지면은 운석 충돌 장면을 감속한 것처럼 뭉개졌다.

그리고 다시금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때.

─콰아아아아앙!!!!!!

천장은 뻥 뚫리면서 지진과 같은 대진동을 발생시켰다. 지상부터 지하까지를 댓번에 흔드는 압도적인 진동에 황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 이런 무식한…?!”

“그게 또 노르드의 매력이죠.”

방해하려던 황자는 접근하지 못했다. 얼음을 한 차례 싸움터에 펼쳐둔 티르시에게서 초당 10번을 넘는 마법의 연타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일별한 나는 뭉게뭉게-근두운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룬 마법의 버프를 더해서 날아오르면서, 지반을 뚫어버린 브류나크를 회수했다. 날아가던 창대를 콱 붙잡고, 지반을 뚫고 날아오르며 다시 투창의 자세.

─콰아아아앙!!!!

돌 파편과 빗물이 수류탄이 터진 진지처럼 날며 내 빨라진 체감시간 속에서 무중력 공간처럼 부유했다. 천리안과 육안의 시야가 일치하는 찰나와도 같은 순간, 나는 헤니르와 눈이 맞았다.

“씁, 물 타입 엘프한테는 좋은 기억이 없는데.”

거듭해서, 투척.

【게르튀르 푸타르크(Geirtýr ᚠᚢᚦᚨᚱᚴ)】·ᚱ(Raidō)

룬 마법의 진수가 브류나크를 감싸안았다.

차원을 빠져나가며 방해되는 것들을 피한 브류나크가 헤니르의 소용돌이를 관통했다. 항마력 효과 덕분인지 물의 마나는 폭발했다.

【게르튀르. 그리운 기술이군……!!】

놀랍게도 헤니르는 내 투창을 정면에서 잡았다.

하지만 여력을 한순간에 줄이지는 못했다. 예지 능력의 여부가 명암을 갈랐다.

카르르르르드드드드드드득──!!!

저 혼자서도 룬 마법을 터트리는 브류나크를 두 손으로 붙잡은 헤니르는 신전 바닥에 二자를 새기면서 뒤로 밀려나갔다.

미래가 보인다는 건 싸우는 상대의 의도가 훤히 보이는 걸 의미했다.

공격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소한 부분에서도 미래예지는 절대적인 우위성을 주었고, 그 때문에 헤니르는 알면서도 내 공격을 피하진 못했다.

─치이이이이익!!!

가속한 금속의 공기저항이 지면을 달구며 그를 밀쳐냈다. 그때 헤니르의 팔뚝이 치솟으면서 창을 쳐냈다. 추진력을 상실한 브류나크가 날아오르며 천장에 꽂혔다.

내 무기가 그림이 그려진 천장을 뻥 뚫어버리며 기물손괴죄를 저지른 찰나, 나는 창을 쳐내면서 텅 빈 헤니르의 안면에 라이트 훅을 꽂았다.

─쾅!!!!!

헤니르의 턱이 돌아갔다. 타격이 터져나오면서 충격파가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차량의 타이어가 드리프트하며 미끄러진 것처럼 방사형으로 비산시켰다.

─뒤룩.

들숨에 빨려들어오는 공기가 속속들이 느껴지는 체감속도의 한중간! 왼쪽으로 돌아갔던 헤니르의 얼굴에서 눈동자만이 움직였다.

【꽤 맵군.】

공기를 터트린 주먹이 짓쳐들었다. 가드한 팔에 찌릿한 통증이 터졌다.

아무 기예도 없는 순수한 주먹질! 그러나 거기 담긴 힘은 우신 가죽을 뚫고 뼈를 울렸다. 가죽제 갑옷이 비교적 타격에 취약하다지만 심상찮은 힘이었다.

─펑!! 물보라가 스파클링하게 터져나왔다.

내 얼굴에서도 사나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존나 싱그럽고 지랄이네.”

바람처럼 진각을 밟았다. 헤니르와 나는 근접거리에서 동시에 땅을 두드렸다.

─퉁. 지면에서 북 두드리는 파열음이 난 순간, 우리의 양팔 양손이 희끄무레해졌다.

주먹이 맞부딪히자 소리가 사라졌다.

태풍의 눈은 오히려 고요하다던가. 쉼없이 손과 발을 부딪히자 타격의 여파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바람을 문전박대하며 간촐한 진공을 만들어냈다.

─쏴솨솨솨솨솨솨!!!!

바람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울렸다.

싸움터에서 쫓겨난 공기의 불만이다. 관중석의 야유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이 타격의 열기와 혼재되어서는 상승기류를 만들고 빗물을 증발시켰다.

팔꿈치 찍기를 막고 가드를 쳐냈다. 하이킥으로 갈비뼈를 노리자 몸을 뒤틀며 공방일체의 태클이 날아왔다. 치켜들었던 주먹을 내려치며 막아냈다.

다리 후리기를 시도하자 로우킥이 날아들었다. 곧바로 하단 차기로 타격을 맞교환하고 찌릿해진 다리로 중단 상단 돌려차기 앞차기를 펼쳐냈다.

─터터텅!!

야매 태권도의 킥에 얻어맞은 헤니르가 뒷발을 물렸다.

나는 몸을 뒤틀며 진공을 파고드는 바람을 발에 담았다. 석사탈주의 보법이 진일보한 무예와 자연지물의 바람을 실고 발끝을 화살처럼 바꿨다.

헤니르의 양손이 갈고리처럼 웅크렸다. 내 킥을 잡고 발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그래서 나는 발차기의 방향을 전환했다.

─촤학!!!

공중에 발판을 만들고 킥의 위력을 그대로 진각으로 삼았다.

─휘리릭!!

─투콰아아앙!!!!

압축한 수증기가 공기포처럼 카운터를 궁리하던 헤니르의 얼굴에 명중하고, 나는 발에 봉을 걸고 도약하는 무술가의 퍼포먼스처럼 공중에서 덤블링 3연발을 갈기며 물러났다.

대가리에 덤블링 돌려차기를 맞은 헤니르는 저 멀리까지 튕겨져 날아갔다.

츠츠츠촤아악─!

소나기로 축축한 바닥을 밟고 히어로 랜딩.

나는 아내들의 안부도 묻지 않고서 달려나갔다. 그녀들이 다치지 않은 건 천리안으로 봐서 안다. 그러니까 지금 이때 헤니르를 때려잡아야 했다.

‘이 미래는 예지로도 읽히지 않았어.’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죽음은 관측되지 않았다.

고로 헤니르는 날 죽일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저놈을 쳐죽여도 미래예지의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일방적인 우위야말로 미래예지의 진가였다.

이토록 미래를 관측한다는 건 미래를 좌우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언자의 본질은 미래를 보는 자가 아니라, 본 미래를 확정하는 자인 것이다.

물론 미래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싸움에 100% 따윈 없는 법!

“슈뢰딩거 씨!!! 보른 씨!!! 내게 힘을 빌려줘!!!”

그렇게 내가 브류나크를 불러내면서 돌진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듯 싶군, 울프헤딘.】

어느덧 일어난 헤니르가 눈을 반개했다. 그놈이 말하는 동시에 헤니르의 등 뒤에 공간 왜곡이…… 저저 씨팔럼!! 포탈 열고 지랄이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오늘은 날이 아니야.】

【몇 대 맞았다고 바로 추한 변명 나오죠!!】

오늘 니 제삿날 맞음. 나는 평소처럼 도발하는 시간도 아까워진 나머지 브류나크를 불러들이는 한편 마법을 쏟아냈다. 포탈을 연 헤니르는 마법을 맨손으로 튕겨냈다.

【자기 뜻대로 미래를 확정시킬 정도의 예언자. 미래를 보는 권능을 상대로 아무 준비도 없이 싸울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오늘은 이쯤에서 무승부로 끝내지.】

─휘익! 포탈 옆에 헤니르가 끌어올린 듯 황자 새끼도 나타났다.

내가 더욱 접근하려던 순간, 헤니르가 물의 소용돌이를 몇 개나 만들어서 후방에 던졌다. 신좌가 봉인당한 아내들이 막아내기 힘든 위력이었다.

“애미 씹새야!!”

【또 만나자. 네 눈이 알려줄 그날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뛰자, 헤니르는 황자를 데리고서 포털에 몸을 던졌다. 늪에 잠겨드는 것처럼 사라지면서 회오리를 던진 씹새끼가 사라지려던 그 순간이었다.

─퍼억!!!!

자기 의지로 날아온 브류나크가 헤니르를 뚫고 빠져나왔다.

대놓고 관통을 당했지만 그 새끼의 몸엔 상처가 없었다. 헤니르가 의도해서 피해낸 게 아니었다. 저 새끼는 내가 마법을 쏘아내는 걸 막는 데 의식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처가 없는 건 브류나크가 노린 것이 헤니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세상에!! 존나 잘 했어!!”

─반짝.

인공신의 신좌 하나가 브류나크에 꿰여선 빛을 뿜었다.

【……후. 좋은 무기를 뒀군.】

아니꼬운 쓴웃음을 남긴 헤니르는 뺏긴 신좌를 회수하겠답시고 포탈을 취소하진 않았다. 늪지를 방불케 하는 포탈이 사라지고 신전이 조용해졌다.

─휘리릭! 착!

신좌를 꿴 채로 날아온 브류나크가 내 손에 착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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