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의 대륙이 바뀌고 세계가 달라져도 인간이란 생물의 감성은 비슷하다.
그래서 절을 하는 문화가 없는 곳에서도 머리를 조아리는 건 겸손의 뜻이었다. 머리를 내린 정도에 따라서 그 의미는 복종에서 존경까지 바뀌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조상의 산소에 절하는 것과 장례식에서 모자를 벗고 묵념하며 머리를 낮추는 게 뭐가 다르겠나. 나아가서는 오체투지나 신상 등에 무릎을 꿇으며 기도하는 것도 존중의 뜻이다.
─쪽.
그렇지만 발에 키스하는 게 존중의 뜻은 아닐 것 같은데.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간 베로니카는 내 발에 키스하고 머리를 들었다.
아무리 프랑에게 실전 압축 가학 강의를 들었던 나라도 이 정도로 복종하는 자세여선 꼴리기보단 거북함이 앞섰다. 하물며 베로니카는 사랑하는 아내 아닌가.
아내를 억지로 조아리게 만들고서 좋아하는 건 악취미다.
이쯤 되면 마초이즘의 다크사이드조차 아니다. 그냥 아내 학대범이지.
【……거룩하신 당신에게 제 몸과 마음을 바치나이다. 무녀 베로니카는 남은 평생 당신을 존엄한 하늘로서 섬기매, 당신의 가엾은 종을 어여삐 여기시옵고 또 보살피시옵소서.】
기도문을 외우며 베로니카는 다시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쪼옥….
곱게 접어놓은 가운 옆에서 알몸으로 엎드리며 반대편 발에도 키스를 하고, 쭉 엎드려 있다가도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 께름칙한 시간을 꽤 힘겹게 견뎌야만 했다.
‘……가만히 있으랬으니까.’
그냥 밤일의 일환이었다면 그만하자고 말했을 것 같다. 엎드린 베로니카는 분명 매혹적이었지만 그 꼴리는 뒷태는 후배위 중에도 실컷 즐길 수 있는 프리뷰 아닌가.
그럴 수밖에. 자고로 삼궤구고두례는 오랑캐의 예법일진대!
하지만 베로니카도 다 알고 선택한 길이다.
그녀가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고민 끝에 스스로 제안하고, 승낙받은 일이었다.
몇 분 정도라면 참고 나서 다시는 하지 말자고 말하는 게 나을 것이었다.
…파르르.
베로니카 역시 굴욕을 참고 있는 걸까. 엎드린 그녀는 내 발에 3번째 키스를 할 때 잘게 떨었다. 나는 미안함과 거북함에 눈을 감고 말았다.
상황과 별개로 발기한 자지가 원망스럽다.
인체구조에 따르면 수컷의 성기는 뇌와 별개로 작동한다지만, 상황이 상황이잖은가.
“후우, 후……”
숨을 헐떡인 베로니카는 다시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계속 숙이느라 위로 말려올라간 머리카락이 가려졌던 등과 날개뼈를 보였다.
무릎에 조아린 옆가슴이 삐져나오며 눈길을 뗄 수 없는 치태를 만들었다. 자지에 다시 피가 몰려가며 배덕감에 어깨에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미천한 종이 불경을 범하겠사옵니다.”
허락을 구하듯 바닥에 이마를 비빈 베로니카가 내 고환에도 키스했다.
“거룩하신 분께 헌신하는 영광을 윤허해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쪽.
손을 모아 기도하며 밑에서부터 입술을 바치는 자세.
연인에게 하는 키스보다는 절대복종의 증명처럼 보이는 제례(祭禮)였다.
고환에 키스한 그녀는 눈을 감고서 뻣뻣하게 선 자지를 조신하게 쥐었다.
성유물을 받쳐드는 무녀처럼 황공한 듯 남자의 육봉을 쥐고 그 자지에도 키스했다. 펠라와 무척 거리가 멀지만 이것도 복종의 자세였다.
발과 고환과 귀두에 키스한 베로니카는 도저히 내 눈을 못 마주치겠는지 또 머리를 조아리고서는 한참 있다가 쭈뼛대며 머리를 들었다.
그녀는 신족의 자긍심인 뿔을 내게 내밀었다.
“……당신의 시종의 뿔을 받아주시옵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이 본디 당신의 것이오니,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드리고자 하나이다.”
무슨 뜻인지 잠시 헷갈렸던 나는 그녀의 양뿔을 잡았다.
휴르르르르….
마나의 기맥이 느껴졌다. 달인 중의 달인이 된 내 감각으로 그걸 헤어라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뿔을 바치는 게 의식의 일환인 모양이었다.
끈이 묶인 뿔을 만지며 오딘의 눈을 발동했다. 이해가 더 빨라졌다.
이 뿔은 예전부터 내 것이었다.
언제였던가. 뿔을 좀 만져주니까 베로니카가 확 바보처럼 변해버려서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내게 몸을 허락한 날에 멋대로 바쳐버렸다고 했었다.
뿔을 바치고, 거기에 남의 마나를 허락하는 것.
‘그게 바이콘 신족 간에 맺는 부부의 맹세랬지.’
신을 섬기는 무녀라고 하면 보통 순결하고, 또 남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 인상 아닌가. 무녀의 맹세도 부부 간의 맹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신에게 뿔을 바친다는 건 평생 신만을 섬긴다는 맹세이다.
베로니카는 옛적에 그 맹세를 실천해버렸으니까 따로 설명하지 않았던 걸까.
색다른 형태의 순결 서약이군. 하지만 그 신이 예나 지금이나 무녀 베로니카를 실컷 손 대고 있으므로 거의 계약의 명의만 이전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전과는 확신한 차이가 있었다.
쪼르르르….
베로니카의 뿔로부터 느껴지는 마나가 예전과는 다르다.
마나라는 건 신체기관이 아니지만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에너지 아닌가.
그렇기에 알 수가 있다. 부부의 맹세를 받았던 때보다 진보해서, 그녀의 뿔이 신 노르드와 무녀 베로니카를 연결하는 통로가 된 감촉이었다.
알몸으로 뿔을 잡힌 채 기도하는 베로니카.
장엄한 신전의 색조에 맞춰서 성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내게 무릎 꿇고 있다는 사실보다, 양손에 잡히는 마나의 실감이 훨씬 더 소름 돋는 전능감을 주었다.
무녀는 신의 시종이라더니, 진짜 말 그대로였다.
베로니카의 마나가 내 뜻대로 꿈틀댔다. 타인의 마나를 지배한다는 건 숭고한 신뢰이면서, 한편으로는 비열한 쾌감을 주는 지배감을 선사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내게 바쳐졌다.
신과 무녀. 네 발로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는 절대적 상하관계.
그래서였을까. 나는 수컷의 본능과 생물로서의 우월감을 간지럽히는 감촉을 거절했다. 신이 자기 신도의 생명과 존엄을 빼앗지 않는 것처럼.
화악─!
뿔로부터 나의 일부가 그녀에게 스며들었다.
베푼다는 건 의외로 바쳐지는 것만큼 흡족스런 감각이었다. 품 안의 아이를 쓰다듬고 사랑해주는 것처럼 헌신하는 시종을 보는 것과는 또 색달랐다.
─훅!
베로니카의 뿔이 달아올랐다. 색깔이 뿌리부터 변하며 내 일부를 받아들였다.
살며시 뜬 눈동자와 양뿔이 심록처럼 아름다운 형광색으로 반짝였다.
안구의 홍채는 여전히 신비하고 깊은 지성으로 빛났지만, 그것도 형광색에 가까운 초록색이었다. 머리카락의 끄트머리도 희미한 형광빛을 뿜었다.
무채색이었던 뿔이 빛나고, 눈동자와 머리카락 끄트머리의 색이 바뀐 정도인가.
그것만으로도 무척 인상이 바뀌었다. 내가 아는 베로니카가 이지적인 느낌이었다면, 그 생김새에 신비한 마나의 빛이 추가되자 마치 평원이나 숲에 머무는 식목의 여신 같았다.
“……나의 신이시여. 거룩하신 당신의 권능을 제 안에 느끼나이다.”
은총을 받은 베로니카는 황공한 것처럼 다시금 손을 모아서 절을 바쳤다.
베로니카가 어떤 효과를 본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걸로 신과 무녀의 관계는 맺힌 듯 했다. 나는 진땀을 빼는 느낌으로 숨을 돌렸다.
내 권능의 일단을 그녀에게 하사하는 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다 끝난 거지?”
단지 이 가슴 졸이는 귀의 과정이 다 끝났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안심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멈칫.
힘을 내려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더없이 기쁜 듯 보였던 베로니카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마치 무언가 마음에 턱 걸린 것처럼 굳었다.
“무슨 일 있어? 문제라도 생겼어?”
내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인 베로니카는 줄곧 말이 없었다. 고민하는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
그녀는 유무를 묻지 못하게 만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모르니, 처음부터 다시 해 보마.”
그러고서는 뭐라고 할 틈도 없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는 베로니카.
쪽…♡
무릎 꿇은 다리가 저리지도 않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그녀는 발에 입술을 바쳤다. 탄력 있고 따듯한 무언가가 발등을 핥았다. 베로니카의 혀였다.
“후읍…… 흐읏♡”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달콤한 숨을 내쉬던 그녀는 혀를 내밀며 내 발가락을 탐닉했다. 잠시 당혹했던 나는 금방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권능이 깃든 눈을 켜고 가만히 내려보고 있자, 위압적인 시선을 느낀 듯 베로니카는 몸을 더 더 수그렸다. 발을 핥는 그녀의 가슴이 바닥에 뭉개지면서 이리저리 꿈틀댔다.
시골에 있는 내 친가에선 개를 키웠다. 복날을 위해서 길러지는 녀석이 아니고, 소일거리로 풀어놓고 기르는 잡종 믹스견이었다.
그놈은 어릴 적부터 사람을 좋아해서 마당에서 앉아 있으면 달려와선 발등이며 발목을 낼름대곤 했는데, 나는 그 따듯한 느낌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욱, 후으, 으……”
츄릅, 쯉…♡
전라의 남자에게 조아리며 발을 핥는 베로니카.
발 페티시는 나름 많은 성적 취향이랬던가. 단, 이 순간 베로니카가 내 발을 핥는 이유가 남편의 발을 보면 흥분해서 그런 건 아닐 것이었다.
“……앗, 읏?!”
나는 발을 빼냈다. 베로니카는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선 엎드린 채로 움츠러들었다.
“꼼짝할 생각 마.”
베로니카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균열을 지켜보던 나는 명령했다.
“엉덩이 들어. 높이.”
“……주, 주인님. 이건, 그러니까…”
“화나거나 환멸한 거 아니니까, 들라고.”
아내들한테는 잘 쓰지 않는 명령형 말투였는데, 널 경멸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 게 먹혔던 것인지 베로니카는 순순히 따랐다.
바짝 굳어서는 다리를 떨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하체만 쳐들었다는 말이었다.
─쪼륵♡
흠뻑 흐른 꿀물이 허벅지에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