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54화 (852/1,009)

***

─벌컥! 다나가 머물던 여관의 방문이 열렸다.

“다나! 친위대장이 황제의 곁을 비웠어요!”

“……지금 없어졌다고? 아틀란티스로 간 거야?!”

다나는 쉬던 차에 들려온 소식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노르드가 아틀란티스로 떠나기 전에 그녀들은 미래예지의 내용을 들었다.

후방인 아틀란티스를 노릴 것으로 예상되므로 그 방비를 굳히러 가겠다고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티르시는 길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야생 새를 내밀었다.

“노르드가 배치한 새들이 돌아왔어요!”

저택에서 친위대장이 모습을 비웠다는 뜻이다. 다나는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장했다. 당장에라도 전투에 나갈 기세였다.

“차라리 잘 됐어. 바로 아틀란티스로 가자. 바로 애들을 불러서 〈공간 이동〉을──”

“아뇨, 안 돼요!”

“뭐?”

다나는 하던 걸 멈추고 멈칫하고 말았지만 어째서냐며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녀 못지 않게 노르드에게 못 죽고 사는 티르시 아닌가.

한가족이라는 신뢰의 울타리가 있었고, 애초에 말을 꺼낸 티르시부터가 표정이 굳은 채였다. 황당한 기분을 가라앉힌 다나가 침착하게 물었다.

“왜 그러는데?”

“저도 알아요, 다나. 황제는 나약한 소인배지만 별의 자손의 축복을 받은 친위대장은 강적이겠죠. 하지만 그렇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황제에게 가야 하는 거에요.”

모순적인 발언이었다. 다나는 권능으로 창조한 투구를 쓰며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가면서 설명해 줘. 애들도 설득해야 할 테니까.”

“……아, 네! 이미 불러뒀어요!”

이유를 듣지 않고도 믿는다는 대답이었다. 티르시는 얼른 뒤쫓았다.

“티르시 언니! 저희 다 모였어요!”

“노르드, 공격 받았어?”

“시간 없으니까 설명은 3분 안에 끝낼게요.”

눈 깜짝할 사이에 모인 가족들을 모아두고 티르시는 서론없이 설명했다.

“다들 들어보세요. 황제는 강함도 지혜도 카리스마도 부족한 인간이에요. 위협의 순위를 따지자면 저희들의 적 중에서도 상당히 낮죠.”

─탁! 티르시의 손가락이 지도를 찍었다.

“그러니까 황제를 놓치면 안 되는 거에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상대는 노르드의 예지에 나오지 않죠. 지금 놓치면 쉽게 잡을 수 없게 되요.”

그녀들이 있는 도시는 영주없이 황실의 통치로 굴러가던 수도 근처의 황실령.

수도에 공무나 사업을 나가는 하류층 귀족들은 많이들 이곳에 집을 구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곳이 황제가 숨어있다는 곳이기도 했다.

“……황제, 신분마저 잃으면 한심한 필부(匹夫). 꼭 찾아낼 필요, 있어?”

“있어요, 네페르티티. 그 신분이 문제라서요.”

“……그렇군. 제길, 인간 사회에선 충분히 가치 있는 혈통이니까.”

초조함에 판단이 무뎌졌던 다나도 슬슬 주제를 따라잡았다.

“약해빠지고, 우리한텐 위협이 안 되는 적이야. 따라서 황자들 때처럼 노르의 권능을 빠져나가게 돼. 하지만 세계에 혼란을 일으키기엔 충분하지.”

세계 유수의 강대국 로마니아가 휘청이는 지금, 그 지배자였던 남자의 행방은 써먹기 나름으로는 심각하고 장기적인 혼란을 부를지도 몰랐다.

“썩어도 황제야. 따르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 뿐더러, ‘상식 밖의 사정’을 모르는 귀족들은 콩고물을 노리고 그를 옹호할 수도 있지.”

그녀들이 아는 진실을 99%의 귀족들은 모른다.

정치적 명분부터 시작해서 위증 등을 시키거나 하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인간들이 일으킨 혼란은 예지를 망쳐.”

인간에게 있어서 미래는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드의 미래예지는 예지를 바꾸는 걸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우신 토벌전 때부터 계속 권능으로 본 미래를 바꿔왔던 게 증거였다.

함께 있던 로키는 입가를 문질렀다.

“신의 예지는 라그나로크처럼 자기실현적이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지. 반면 인간의 미래는 강렬한 의지로 얼마든지 바뀌는 것……”

“인간 세상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선배의 권능도 약해진다는 거에요?”

“적어도 미래는 읽는 의미는 퇴색되겠죠.”

앞날은 예지하는 노르드의 권능은 강대하다.

그래도 그건 ‘미래’라는 그림의 완성을 남들보다 먼저 보고, 고칠 수 있기 때문!

권능으로 운명을 보고 인간의 힘으로 그 미래를 비튼다. 그림에 시의적절하게 붓질을 가함으로써 입맛대로 그림의 형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단, 미래를 비틀 수 있는 건 다른 인간들에게도 가능한 일.

노르드가 고치려던 그림에 다른 사람이 몰려와 붓질을 해댔다가는 그림의 방향성이 통제 불능에 빠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건 자명지사 아닌가.

“노르드라면 그렇게 돼도 자기 머리만 갖고 헤쳐나가고도 남아요. 하지만.”

“하지만 그래선 권능은 있으나 마나가 돼 버려. 게다가 머릴 쓴다는 건 다른 데 생각을 할애하지 못하게 된다는 소리랑 똑같지.”

자동으로 처리하던 작업을 수작업으로 전환하면 그만큼 짐이 커질 것이었다.

일에 치이다 보면 시간과 체력의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되는 법 아닌가. 벅찬 업무량을 소화하려다 보면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황제의 생존은 노르드에게 장차 큰 부담이 될 것이었다.

다나는 그녀들이 황제를 포획해야 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요약했다.

“전세계의 안정이 곧 미래의 안정이고, 노르랑 우리 가족의 승산인 거야.”

“응. 설명은 지금 걸루 충분해. 벌써 3분은 다 지났구, 이러는 편이 더 노르가 편하게 도와주는 방법이라면 따를게.”

프랑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무기를 들었다.

그녀에겐 어려울 것 없는 얘기였다.

“그야,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내조인걸.”

다른 이들은 어쨌든, 프랑의 역할은 그것이었다.

노르드의 권능이며 대처능력을 깎아먹는 수작은 조기에 방지하는 게 제일이었다.

라리루라는 파티의 안색을 살피고 바로 권능을 발동했다.

“통로는 제가 열게요. 바로 저택 내에 급습하면 되죠?”

“그렇지. 노르가 신경 쓰인다면 황제부터 얼른 쥐어박고 도우러 가자.”

새가 친위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돌아왔다는 건 이미 노르드가 습격을 가한지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 지금 아틀란티스로 향해도 뒤늦을 수 있다.

하물며 친위대장이 물리적으로 도주해서 황제를 데리고 또 도망치면?

‘완전 대참사지.’

다나는 작게 혀를 찼다.

이번 예지도 친위대장이 후방 급습을 꾸몄기에 발동하고, 황제의 위치를 알아냈던 것이다. 한 번 호되게 당하고 아멜리아의 사망을 확신하게 되면 친위대는 더욱 신중해질 것이다.

‘오늘 같은 호기는 또 오지 않아.’

어차피 적은 친위대가 전부. 둘로 나뉘어졌다면 저택은 경비가 가벼워졌을 터. 전력을 둘로 나눌 바엔 뭉텅이로 가서 확실하고 빠르게 해치우는 게 옳았다.

프랑은 오감을 일깨우며 말했다.

“가자. 황제를 제압하러.”

***

“마당이 엉망이 됐구나. 프랑이 슬퍼하겠어.”

내가 늘어난 마나통을 돌이켜보고 있자, 바닥의 흙을 만지던 베로니카가 말했다.

달빛이 강해서일까. 처참한 크레이터가 많이도 보였다.

“분명 거의 폭격 맞은 수준이기는 하네.”

마당을 가꾸는 건 프랑의 소일거리 중 하나였다. 내게서 요정왕의 완드도 종종 빌려가서 넘쳐나는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근데 아마 괜찮을걸?”

나는 정원사들의 손이 거쳐간 마당을 가리키며 픽 웃었다.

“이쪽 마당은 프랑이 가꾸는 곳이 아냐. 저택과 가까운 쪽만 정원처럼 꾸며보겠다고 손보고 있지, 별관 쪽 길을 집사장 웨스턴 씨가 부른 정원사들 솜씨거든.”

정원을 가꾸는 건 귀족의 품위와 대외적인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지만,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집 안에 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별 수 없었다.

“프랑이 가꾼 게 아니라고? 그럴 리가.”

그러자 베로니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광색 눈동자가 그대답지 않게 무슨 소리냐는 듯 깜빡거리다가 곱게 찌푸려졌다.

“벌써 잊은 것이냐? 프랑이 별관의 정원을 우리 일족의 정원섬에서 가져온 묘목으로 가꿔보겠다며 그리 열심이었는데.”

“뭐? 아니, 언제?”

나는 진심으로 놀라서 물었다.

내가 요즘 들어 정신없이 바쁘곤 했던 건 맞다. 그러다 보니 아내님들이 뭘 하는지 신경을 못 쓸 때는 정말로 아예 뭘 하고 지냈는지 모른다지만, 대체 어느 새에?

물론 우리 가족에 〈공간 이동〉이 가능한 사람만 몇 명이던가.

게르마니아 해역에 있는 정원섬이라도 후딱 다녀오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만…….

“후우. 언제기는?”

베로니카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요정왕국에 갔다 왔을 적에 말이 나왔잖느냐. 시룡황에게 들렀다가 요정왕을 다시 알현했을 때, 그 계절이 뒤섞인 숲을 보고 프랑이…… 감명…… 을……?”

…깜빡. 깜빡.

베로니카의 눈과 뿔이 동시에 깜빡댔다. 그녀의 뿔이 점멸했다.

“베로니카?”

“……윽?!”

안색을 살피다가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섰다.

─갸우뚱. 눈을 붙잡은 베로니카가 일어나려다 균형을 잃었다. 빠르게 받쳐안았지만 베로니카는 내게 안겨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베로니카! 야! 베로니카! 너 왜 그래?!”

“이 무슨……? 무어냐, 이 광경(Vision)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헐떡이는 그녀. 붙잡은 팔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윽……!! 흐큭?!”

작게 비명을 지른 그녀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 팔을 붙잡았다. 나까지 초조해져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라도 침착함을 되새겼다.

“아파? 심호흡 할 수 있겠어? 기다려 봐. 아마 권능 때문일 거야.”

프랑이 아직 가꾸지도 않은 정원에 대해 얘기를 꺼낸다든지, 브류나크를 각성시켜준 요정왕을 또 만났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했던 참 아닌가.

‘먼 미래를 엿본 건가? 내가 못 보는 평화로운 미래를?’

그렇지만, 어떻게?

베로니카의 권능은 그녀의 신인 나의 권능에서 비롯된 예지력!

선지자(Vǫlva) 마기도라의 후손이자 그 대리인 예지자(Seeress)의 역할을 받은 베로니카다. 적성부터 신분까지 그녀와는 상성이 좋은 권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런 먼 미래를 보는 건 그녀의 권능과 조금 맥락이 다르지 않나?

‘……잠깐. 상성이 좋다고?’

혹시? 나는 오딘의 눈으로 베로니카를 살폈다. 인간의 몸 상태를 살필 능력은 없지만 마나의 흐름이며 권능 분석은 내 권능의 주특기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인지 알았어. 처음 써 본 권능이 너랑 너무 잘 맞아서 잠시 폭주한 거야.”

마법이나 기술 면에서 미래의 지식을 가져오는 권능이 폭주해서, 미래의 베로니카의 기억 자체를 로딩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서 그녀의 뿔이 손을 가져갔다.

‘나한테 내려받은 권능을 통제 못하고 있다면.’

내가 잠시 회수해서 맡아두면 됐다.

보통 성직자들처럼 노력해서 쌓은 힘이 아니라, 내가 직접 내린 축복 계열의 능력이니까 회수하긴 쉬웠다. 나눠준 월급을 압류하는 모양새긴 하지만 권능이 소멸하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맡겨. 금방 고쳐줄게.”

그녀를 안심시키면서 뿔을 조심스럽게 잡으려고 했을 때였다.

꽈아악…!!

앓는 걸 멈춘 베로니카가 갑자기 내게 안겼다. 그 바람에 나는 그녀의 뿔을 잡지 못했는데, 다시 붙잡아서 권능을 억제하지는 못했다.

등을 끌어안은 베로니카의 손이 떨려서였다. 난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침착해. 기억에 혼선이 생겼을 뿐이야. 첫 사용부터 살짝 무리를 해서-”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포갰다. 내게 키스한 베로니카가 살며시 떨어졌다.

“……그대는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우리 생각 뿐이로구나.”

나와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는, 베로니카였지만 베로니카가 아니었다. 빛나는 눈동자에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베로니카, 너 혹시.”

“나의 그대여, 이 무렵의 나에게 전해야만 하는 말이 있느니라.”

그녀는 슬픈 것처럼 내 뺨을, 그리고 내 목줄을 만졌다.

“그 미련한 계집에게 전해다오.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선 아니 되느니라고……”

“아니, 갑자기 그게 뭔…… 야!!”

추욱…. 생뚱맞은 소리를 한 베로니카는 그대로 힘을 다 쓴 것처럼 기절했다.

“베로니카!! 야?! 베로니카!!”

가슴이 덜컹해서 가슴에 귀를 갖다댔다. 다행히 심박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하얘진 머리로 다른 걸 제쳐두고 다급히 몸 상태부터 검진했지만 부진은 없었다.

단순한 기절이다. 체력을 소진해서 잠든 것 뿐이었다.

“……시발,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찌푸렸다.

방금 전에 보고 들은 걸 떠올리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베로니카…… 였던 거지?’

뿔과 눈의 광채가 꺼진 베로니카한테는 권능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베로니카의 권능은 미래의 지식을 받고 그대로 습득하는 것이 아닌 듯 했다. 발동 중에만 효과를 보는, 한순간의 꿈결 같은 백일몽이겠지.

다시 일어났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이 펼친 마법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권능을 쓰면 지식이야 다시 떠오르겠지만, 지금 한 말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할 거고.

‘……권능으로 전해지는 지식을 통해서, 과거의 자신에게 기억을 전했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의구심을 품자마자 대답을 내렸다.

‘가능하고도 남아.’

그만한 기적을 여러 번 벌이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처음 각성한 예지력이 통제를 벗어나서 폭주 상태에 있던, 오직 이날 이때의 한순간 뿐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있다.

‘시간여행도 아니고, 기억만 보내는 거니까.’

미래의 기억과 풍경이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의 나에게 도달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래예지랑 똑같다. 못 할 게 없다는 얘기지.

사람의 자아는 경험, 다시 말하자면 ‘기억’에서 형성나는 것 아닌가.

잠깐이라도 미래의 기억을 전부 받아들였다면, 그건 미래의 베로니카가 과거로 회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기분이 싱숭생숭해진 나는 잠든 베로니카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썼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시발,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래?

쌔액, 쌔액….

내가 탄식해봐도 우리 여신님께선 세상 물정도 모르고 행복한 듯 꿈나라를 여행 중이셨다. 나는 골치가 아파 오는 걸 느끼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젠장. 하여튼, 이러니까 예언자라는 것들은.”

조금 알기 쉽게 전해주면 오죽 좋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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