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56화 (854/1,009)

***

로마니아 인들은 움츠러들어 있었다.

〈씨발. 황제는 아직도 안 잡힌 거야?〉

〈야, 폐하를 그렇게 경망되게…… 하아, 됐다. 니미 좆 같은 황족들.〉

〈아니, 뭐라도 해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전하들도 계시는데 그런 말은 좀……〉

〈우리가 그 노력을 알아줘서 뭣하는데? 나랏님들이 우리 신경을 쓰기는 해?〉

〈동분서주는 지랄. 그 잘난 황녀님이 열심히 한 덕분에 신들께서 침묵하신대?〉

나날이 계속되는 충격적인 소식은 그들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외국인들의 비아냥이나 경멸은 예사에 국내외의 외교와 상행에도 적잖은 타격을 남겼다.

하물며 나라의 근간을 주도하던 신들의 가호도 그들을 떠났다.

〈참회하라! 신들께서 우리를 내치셨다! 우리는 목숨으로 참회하여야 한다!〉

〈신들의 가호 없이 밭을 일굴 것인가?! 신들의 가호 없이 가축을 기를 것인가?!〉

〈참회엔 제물이 필요하다! 로마니아의 멸망을 피하려면──〉

〈뭐하냐! 단속해! 유언비어를 퍼트리잖아!〉

〈이, 이거 놔!! 망할 이교도들── 끄엑!!〉

거리에서는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더 끔찍한 것은 그들이 시민들의 눈에도 낯 익은 사제며 수녀들이곤 했다는 사실이다.

〈경비대!! 우리는 저런 놈들 잡으라고 밥 먹고 월봉 타 가잖나!! 왜 꼼지락댔지!!〉

〈대장님. 저희가 하는 일이 맞긴 합니까?〉

〈……나한테 묻지 마라, 개자식들아.〉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까마득한 세월을 유지되어 온 로마니아였기에, 멸망에 익숙한 국민은 아무도 없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나라가 망하고 다시 세워지는 경우는 서방 대륙에 근 수백 년 가까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영지에 묶은 귀족들이 현금이 넘쳐나서 외국에 망명가는 평민 부호들을 부러워하고, 그런 부호들 역시 외국에서 받는 냉정한 취급에 이를 갈아야만 했다.

황제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가 숨겼다는 로마니아의 진실은 또 어찌 됐고?

신들께선 왜 침묵하시지? 정말 우릴 버려셨나?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

속죄를 한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용서받을 방법은 없는가? 우리 로마니아 사람들은 이렇게 사람에게도 신에게도 버려져야만 하는가?

〈씨이발! 누가 대답 좀 해 봐라! 귀족 나리든 사제님들이든 있잖아!〉

의문이 꼬리를 물어도 답이 내려오는 일은 일체 없었다.

〈씹새……. 차라리 몬스터 군대가 쳐들어오면 맞서 싸우기라도 하지.〉

〈흐흐. 그 몬스터도 사실 인간이었다는 얘기는 들었냐? 트롤이 인간이었다매?〉

〈자꾸 좆 같은 소리 할래? 난 안 믿어, 색갸.〉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은 착각이 아니다. 뻥 뚫린 하늘이 무색하게 나라는 고립되었고, 도망치거나 할 방법도 없이 그새 올라간 물가에 한숨 지으며 입에 빵을 욱여넣기도 버겁다.

거리는 침체되었다.

마치 땅과 하늘에 흐르던 가호가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게 우중충했다.

〈……아빠. 우리 벌 받는 거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나쁜 짓을 해서?〉

〈로잔나. 들어가 있으렴. 내일은 집에 가자.〉

술을 팔러 수도에 온 아버지를 따라온 로잔나는 울상을 지었지만, 그녀에게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 나라에 사는 누구에게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셀레나. 정녕 이 나라에 빛은 없느냐?〉

〈아버님?〉

〈죄인답게 빛을 쬐고 불타더라도, 시민들에겐 빛이 필요하단다.〉

어느 길드 상회에서 헤르마이온 길드의 주인은 딸을 불러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지금처럼 국가가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딸이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님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셨군요!! 아─ 핫핫핫!!〉

길드장실에 불려온 셀레나는 호쾌하게 웃었다.

죽상을 한 직원들이 봤으면 길드장네 아가씨가 드디어 미치셨구나 했을 웃음이었고, 실제로 자기 딸의 광소를 들은 길드장은 비서를 호출하는 벨을 울렸다.

〈사제, 사제를 부르게! 딸이 부담을 못 견디고 마음에 병을 앓고 말았어!!〉

〈아─ 하하하하하하하핫!!!!!! 아버님! 다행히도 저는 아─ 주 멀쩡하답니다!!!!!!〉

길드가 떠내려가라 웃은 셀레나는 부채를 펴며 외쳤다.

〈온갖 우량한 길드와 상회, 공방이 무너져가는 지금이야말로 저점 매수, 투자 합병의 찬스!!!!!! 제 사업 파트너와 저를 믿고 따라오시길!!!!!!〉

〈어? 어? 그, 그러냐? 괜찮은 거야?〉

〈네!!!!! 울프헤딘 백작님께서 일컫길, 지금은 ‘존버’의 때인 겁니다!!!!!!〉

그리고, 셀레나와 일부 인사들만이 알던 ‘때’가 무르익었다.

〈황제가 잡혔다──!!!!!!!〉

〈원로원 상원의원 아르마알스 님이 도주 중인 황제를 생포했다아아아악──!!!!!!〉

〈뭐?! 아르마알스가 뉘겨?!〉

〈이 씨팔 촌놈아!!!!! 지금 고게 중요혀?!!!!!〉

하룻밤만에 나라 전체를 강타한 소식에 시민들은 앞다퉈 몰려들었다.

〈대자보? 그게 뭔데?〉

〈원로원과 황실의 입장 표명이 준내 큰 종이에 적혀서 걸려 있댄다.〉

〈보기 쉽고 좋네. 왜 진작 이런 걸 안 했대?〉

〈몰라. 이건 그 천검제후님의 발안이라는데?〉

〈즈에엔장!! 역시 천검제후님!! 믿고 있었다고!!!〉

〈아 쓰벌, 모험가 새끼들 존나 땀내 나.〉

〈뭐 이 새끼야?! 전사라면 다들 땀내 좀 나고 그러는 거야!〉

〈모르긴 몰라도 천검제후님도 땀내날 걸?!〉

귀족들에게는 소식이 돌았고, 국민들 앞에 놓인 대자보도 내용은 간단했다.

〈사흘 뒤 아침, 모든 질문에 답하겠다?〉

〈수도의 시민들은 그날은 일을 멈추고 베스타 교단으로 모이길 바란다……?〉

〈아니 씹,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일을 하지 말라면 난 어쩌라고?〉

〈오면 밥도 준다잖아. 싫으면 가지 말든가.〉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사흘을 더 기다리라니?

미쳐버릴 것만 같다는 게 누구나 동의하는 생각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잘나신 귀족님들이 모이는 데 사흘은 너무 짧기까지 하다는데.

〈기다려줄 만 하지. 아르마알스 님이라도 안 계셨어 봐. 우린 듣지도 못했어.〉

〈국민들에게 직접 모든 사실을 밝히자는 안은 제 3황녀님께서 강경하게 몰아붙이셨대. 그걸 원로원의 의원 나리들이 지지했고.〉

소식은 해일처럼 전국을 휩쓸었다.

그리고 밀물이 지나가면 썰물도 몰아치는 법. 원로원의 발표를 듣고자 잠시 영지로 돌아갔거나 수도에 쭉 머물렀던 귀족들도 수도로 몰려들었다.

〈이봐! 이런 중요한 날에 왜 길이 막히느냐!〉

〈자, 자작님! 그, 길이 마차로 막혀서……!!〉

〈내가 쟈코 자작이라는 걸 알고도 안 비킨다는 말이냐! 당장 꺼지라 그래!〉

〈그 뭐시냐, 브리타니아의 왕자님이랑 게르마니아 외무대신님이신댑쇼……〉

〈……졔송합니다! 졔송합니다! 졔송합니다! 야! 그걸 미리 말해야지, 씹놈아!〉

모여든 인파는 수도의 숙박업을 마비시키고 말 정도였고, 원로원의 통제 하에 되도록 신분이나 그밖의 이유로 소란이 일어나지 않게 관리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날이 찾아온 아침.

수도의 콜로세움은 가히 수천 명의 인파로 복작대고 있었다.

귀족들과 별개로 격리된 교단 밖으로도 시민들 수천 명이 모여 있었으며, 몰려든 귀족만 세 자리 수를 가뿐하게 채웠다.

그들을 통제할 병사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도시 하나의 인구 수였다.

성명을 발표할 귀족들이 일개 시민들에게 내려봐지고 만다는 문제는 있었지만, 인원을 수용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황제가 친히 내려와 연설하기도 하는 투기장의 특이성도 있으니 넘어갈 만 했다.

〈풍요신 맙소사…… 저기 특등석에 외국 왕족 나리들 아녀?〉

〈외국에 국토 째로 뜯어 먹히지만 말았으면.〉

〈자치권을 뺏기면 세금이 2배로 뛴다더라.〉

〈정숙!!!! 전원 정숙하시길 바라오!!!!〉

〈……쉿! 시작한다.〉

그렇게 소란이 가라앉을 무렵, 노인 몇 사람과 젊은이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아는 사람들은 그게 유명 후작들과 교황들이란 사실을 눈치챘다.

〈아, 아. 잘들 들리나 모르겠소. 마법사 길드의 협조로 만든 성량 증폭기가 효과가 있길 바라며, 또 오늘 우리의 말투에 격식이 좀 부족할 터이나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하오.〉

시답잖은 이야기로 운을 뗀 노인이 우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코르넬리우스 폰 아르마알스. 원로원의 한 사람인 이 나라의 후작이오.〉

〈그리고 저는 오델리아 폰 아우렐리우스에요. 신분은 옆의 그와 비슷하고.〉

〈긴 이야기가 될 터이니, 우선은 모든 참석자 분들께서 궁금해 하실 부분부터 설명하겠소. 우리 로마니아가 정녕 대전쟁의 주범이고, 황제는 이를 은폐했는가에 대한 대답이오.〉

후작 급 인사가 2명이나 대표로 나섰다는 것에 시민들은 침을 삼키고, 귀족들은 손을 꽉 쥐었다. 이 나라만이 아니라 그들의 미래가 달린 해명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코르넬리우스는 어마어마한 주목도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오. 아틀란티스에서 벌인 침략과 전쟁행각은 고대 로마니아까지 이르렀으며, 당시의 황제는 그들에게 굴종하며 동맹까지 맺었소.〉

〈진실만을 입에 담자면 거의 복속이었으며, 그 죄악을 숨기고자 대전쟁의 주역들은 각국의 유적, 유산을 파괴하며 불리한 역사를 지웠습니다.〉

탄식과 비명, 고함이 쏟아졌지만 소란에 콜로세움이 떠나가는 일은 없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미리 설명받은대로 관객석에는 마법이 걸려 있었고, 그 소리는 밖으로 흘러가지 않는 구조였다. 진행에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의문도,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오. 나 역시 그 점은 숙지하고 있소.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를 기해서 모든 진실을 전할 것이오.〉

코르넬리우스는 역시 다른 사람을 시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손짓했다.

드르르르륵…….

투기장의 무대로 올라오는 두꺼운 미스릴 철창.

〈어?〉

〈어? 어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품위를 따지는 귀족이며, 이 자리가 끝난 후에 어디부터 로마니아를 뜯어먹을지 고민하던 외국의 왕족들.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온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아비규환을 일으키는 중에, 오델리아는 혼자 생각했다.

‘하여간, 사람 휘두르는 데는 도가 튼 꼬마야.’

평범한 인간은 보기만 해도 무한한 공포를 일으키며 떨게 만드는 존재.

이 세상의 인류의 본능에까지 각인된 혐오감과 공포의 상징.

【■■■ ■■ ■■■■ ■──!!!】

별의 자손의 축복을 받은 친위대원이 그 철창에 갇혀 있었다.

─황제를 붙잡긴 했는데, 이젠 어떡하냐고요?

선동과 날조의 달인, 야매 드루이드는 말했다.

─잘 아시는 분들이 왜 걱정부터 앞서신답니까? 여론을 규합하려면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게 제일로 간편하고 확실하잖아요? 마침 좋은 견본도 있는데.

─견본이라니?

군대의 정훈교육과 같다. 일단 삐딱선이 기본인 상대에게 뭔가 말하려고 해 봤자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설득, 궤변, 유혹, 타협, 선동.

그런 회화술의 기본이 되는 요령은 상대가 자기 말을 홀린 듯 듣게 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 군대, 대학원을 걸치며 언어의 마술에 실컷 당해본 노르드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았다. 또한 매우 잘 아는 만큼, 써먹을 줄도 알았고.

─독이 바짝 오른 사람들을 경청시켜야 할 때는 말이죠. 쇼크 용법이 최곱니다.

코르넬리우스는 사람들의 비명을 십분 이해하는 마음으로 선포했다.

〈이게 우리 인류의 그림자에 숨어 살던 이들의 정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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