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862화 (860/1,009)

***

내가 밀린 업무를 보는 동안 교황들의 싱글벙글 임사체험도 끝을 맞이했다.

〈끄으으……〉

〈윽, 으으……〉

〈어떠셨습니까?〉

차원벽으로 기어올라오는 그들.

어떤 내용을 어디까지 말해줄지는 사전에 로키랑 상담했는데, 그녀의 효과적인 연출이 가미됐는지 파리해진 교황들은 힘겹게 대답했다.

〈……7대신 이외의 신들께서 남아계실 줄이야. 정말 추호도 생각 못했습니다.〉

〈하하하.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들의 소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요.〉

〈예에. 허나 고대 쯤부터 많은 신들께서 기도, 천벌 등을 행하지 않고 계십니다. 7대신들이 가장 널리 신앙받을 수 있던 이유가 그것이고요.〉

교황들의 말도 맞다.

내가 모태무교였기 때문에 거의 생략한 이세계 종교의 TMI를 간략하게 설명하자.

옛날 신대에는 에퀴녹스 애비 때의 사티스 여신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처럼 신들이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다. 바꿔치기 당하기 전의 로키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대는 라그나로크로 끝났다.

신들은 신좌나 파라오와 같은 유산을 남겼으나, 그 멸망 자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기록으로 문헌만 좀 전해질 뿐.

그래도 ‘신들은 이미 다 죽은 건 아닌가?’ 라며 의문시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니까 7대신의 내막도 완전한 컬쳐 쇼크는 아닐 거라고 예상한 거고.’

아무튼 간에 나는 따듯한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로키 님의 신분은 믿어주셨으리라고 봅니다. 우선 몸부터 덥히시지요.〉

〈으으, 추워……. 아, 땡큐. 나는 핫초코란 게 맘에 들더라.〉

〈로키 님 몫은 준비 안 했는데요.〉

〈그냥 평소처럼 반말 까지? 없으면 타 와.〉

〈메이드들 시키세요. 발퀴리에들 많음.〉

〈그럴까? 사실 나는 쟤네들을 부려먹어본 적이 없거든!〉

교황들은 어떤 천지창조 퍼포먼스를 보고 왔던 건지, ‘저 미친 새끼는 어떻게 태초의 창세신이랑 저렇게 말을 놓고 떠들지?’ 라는 눈초리였다.

내가 쳐다보자 바로 눈길을 까시는 게 또 유머러스한 포인트 되시겠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인 듯, 포르투나교 교황 아저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무지몽매한 저를 계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프헤딘 백작님의 뜻도 미루어 짐작이 가는 듯도 합니다만, 감히 제가 말씀을 올려도 되겠나이까!〉

〈분위기 잡으실 것 없습니다. 사실 신이라고 해 봤자 권능이랑 마나 총량 등등을 빼 놓으면 그냥 마스터 클래스랑 다를 건 별로 없어요.〉

〈인간보다 약한 신도 있을걸? 오딘 언니나 그 천둥 망치 벌거숭이처럼 마스터 클래스란 애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바싹하게 구워버릴 신도 있고!〉

〈마스터 클래스만 못한 바이콘 신족 특) 지금 당신 밥 만들고 있음.〉

〈그래, 그래. 바이콘들 중에 마스터 클래스가 된 애는 손에 꼽…… 뭐?〉

〈암것도 아님미다. 헛걸 들으신 듯.〉

따듯한 차를 내놓은 난 어깨를 으쓱였고, 우리 눈치를 보던 교황이 마저 말했다.

〈로키 님을 로마니아 국민들의 신앙의 축으로 삼으시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단, 절반 정도만 정답이군요.〉

유희신, 아니 ‘만언신’ 로키=로두르 교의 국교화.

하지만 그건 절반 정도의 정답이다. 나는 차를 들이켰다. ─후루룩. 이번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녹차로 바꿨더니 말도 술술 나왔다.

〈지나친 숭배와 의존은 서로에게 해악이겠죠. 단지, 로키 님의 존재가 신앙이 줄어드는 세대로 이어지는 완충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장래적으론 신 없이 오롯이 존재하는 국가를 바라십니까?〉

신앙 팔이로 장사하는 양반들 눈에는 무척이나 애석한 얘기겠지. 이만큼 줄빠따를 갈겨놨는데도 순간 표정이 바뀔 정도였으니까.

근데 당신들 만한 프로 장사치 쯤 되면 솔직히 예상 못한 범주는 아니잖아?

〈앞서 저는 교황 여러분께서 신도들을 기만해 온 것을 슬퍼하고 계시리라고 말했습니다만. 그건 제 잘못된 착각이었습니까?〉

다 아는 사이에 밑장빼지 마라. 형 빡치니까.

정치적 수식언을 빼고 말하자면, 이런 뜻이다.

‘면피는 시켜줬잖아? 일부러 한 게 아니란 걸로 쳐서 살려준다는데 뭘 더 바라?’

그냥 느그들이 종교 갖고 장사하자 먹고 살자~ 했었다는 걸로 끝낼까?

물론 너희들 목이 썰려서 교회 정문에 매달려도 내 책임은 아님.

〈아, 아닙니다! 백작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내가 말없이 빠다를 들자 교황들은 눈을 깔았다.

하여튼, 꼭 매를 들어야만 말을 듣는 새끼들이 있어요. 내가 비폭력주의자라서 사랑의 매로 끝내주는 걸 감사하게 여기진 못할 망정. 쯔쯔쯔.

〈설명은 끝입니다. 신좌를 되찾으면 그때부터 다시 7대신 신앙이 재개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계산적인 심보로 신을 믿으려는 이들이 쇄도할지도 모릅니다?〉

〈……예.〉

〈개종의 주축은 ‘7대신은 거짓이지만, 진정한 신들께서는 우리를 굽어보신다!’입니다. 설득력을 가미해줄 연출은 로키 님의 전공분야시니 최대한 협력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

대답하면서 울상이 되는 교황들.

그럴 수밖에. 그런 신성력 자판기 시대가 오면 교황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황제가 아니라 자판기 관리인 A에 불과해질 것 아닌가.

‘그러니 이때 쯤 적절한 당근이 필요한 것이지.’

나는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그런데 그러려면 우선 권력이 있어야겠죠?〉

교황들의 고개가 바로 벌떡 세워졌다. 하여간에 이게 무슨 교황이냐? 그냥 장사치 정치인들이지. 다루기 쉽고 양심도 안 아파서 좋긴 하지만.

〈추락한 위신을 되살리려면 축복이나 가호 등, 신성력의 주축이 될 기점이 필요할 겁니다. 단지 인공신좌를 내드리긴 힘듭니다. 이유는 아시죠?〉

〈물론입니다!〉

〈신좌를 훔쳐간 천인공노할 악신이 저희들에게 찾아올 터이니 말입니다!〉

좋아, 좋아. 이렇게 알아들으니 얼마나 좋냐.

‘갑질의 미학은 시의적절한 당근과 채찍이랬지.’

나는 평생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만화나 드라마에선 그렇다더라.

가스라이…… 으흠. 설득과 회유의 기본이기도 하고.

〈신성력을 얻을 방법을 몇 개 알려드리죠. 단, 이전까지와는 조금 다릅니다.〉

〈어떤 점이 말씀이십니까?〉

〈인공신좌들의 축복을 받아올 때는 일방적으로 수혜를 입기만 했겠죠? 하지만 앞으로는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셔야 합니다.〉

어허, 표정 썩지들 말고.

기브 앤 테이크랑 가격 계산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존나 종교 수저를 물고 살던 분들이라 그런지 손해 하나를 못 마땅해 하시네.

〈신성력을 얻는데 대가가 필요하다면 저희들이 스스로 신성마법을 쓰고, 축복을 내려도 다를 게 없을 듯 합니다만……〉

〈왜 여러분이 냅니까? 신도 분들이 내야죠.〉

〈……넵?〉

아이고, 이 화상들 같으니.

나는 넌덜머리를 내면서 조곤조곤 설명했다.

〈인공신좌는 신도들 수만 명에게 조금씩 힘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은 각 교단의 신도들의 성장을 촉진하죠.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전세계의 성직자 비율을 늘리고 신자를 확보하게 된 비결이죠.〉

신이 없어지거나 해도 그 신의 마나는 얻을 수 있다.

‘무신론자인 나도 구신의 마나를 쌓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뭐.’

그렇지만 신적인 존재가 뒷배를 봐 주는지 아닌지는 차이가 크다.

7대신 교단은 명계의 인공신좌가 이끌어주니까 성장속도와 잠재력이 다를 수밖에.

사실 좆도 근본이 없는 7대신들이 가장 융성한 종교가 될 수 있던 비밀이 이거다.

〈그러니까, 반대로 신도들에게서 세금을 걷듯 마나를 받아오면 됩니다.〉

내가 진짜 보다보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왜 이 세상의 신들은 이렇게 흑우 그 자체야? 미국 만화 히어로라도 되는 것?’

신도들은 신에게 도움을 받는데, 정작 그 신은 얻는 게 없는 구조다.

희생정신도 이쯤 되면 호구가 맞다. 국가의 시스템으로서는 적절하지만, 인공신들 외에도 로키나 오딘 같은 진짜 신들도 저러니까 갑갑할 따름이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신도들의 신앙이 늘어날수록 강해지는 신. 존나 흔해빠진 국룰 아니냐?’

보통 신도가 늘면 신이 강해져야 하는데, 웬걸?

케어해 줘야 하는 신도가 늘어날 수록, 신좌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인공신좌들은 가공할 완성도로 수백 년의 혹사 아닌 혹사를 견뎠지만, 상식적으로 이 꼴이 말이 된다고 보는가?

바이콘들 상대로 우상숭배 좆까를 외쳤던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단언하겠다.

‘차라리 교황들이 신자를 상대로 헌금이며 노동력을 더 많이 갈취했겠다.’

우리 동네에서 신이라고 하면 말이야, 어? 인성 좋고 착한 경우가 없어요.

인성이 빻다 못해 터져갖고 죽은 사람들을 대충 주워다가 이세계에 던져놓고 마왕 잡으라고 하고, 용사들이 좀 쎄지면 토사구팽하려 드는 건 기본.

성직자들을 시험하고 존나 콧대 높게 시련이란 핑계로 괴롭히다가, 쫌만 맘에 안 들어도 빼애액 거리면서 사악하네 악마에게 홀렸네 하며 끝없이 가스라이팅.

‘오죽하면 마왕이랑 편 먹는 꼴이 너무 대세가 되서 클리셰라는 소릴 듣겠냐고.’

마왕이 사악하고 신이 착하면 참신하다는 소릴 듣는 세상에서 찾아온 나다.

이 세계수랜드를 보며 늘 느꼈던 점에 대해 소신발언을 하겠다.

〈믿고 매달릴 거면 돈 내고 믿으십시오. 그게 더 건전한 논리 아닙니까?〉

〈어. 그, 그, 그게……〉

〈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구 근성인지 부모 마음인지는 몰라도, 왜 그렇게 퍼주기만 합니까?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다. 세상의 이치 아닙니까?〉

이세계의 신들이라고 전부 착한 신은 아니겠지. 인간 맛있다 헤헤 거리는 놈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성파탄자 아니면 호구라는 극단적인 이중택일이래?

〈저, 저……. 저희가 할 말은 아니겠으나, 그, 신성모독은 아닌지……?〉

〈적당히 잘 해주면서 월급처럼 노동의 대가를 타 가는 게 뭐가 이상합니까?〉

당장 그 헤니르부터가 딱 이 짝이잖나?

받은 만큼만 일하려고 했으면 저 병신이 저렇게 삐뚤어졌겠냐고.

저놈은 지도 감당도 못할 소원을 짊어지려다가 와장창 엔딩을 꿈꾸게 된 병신의 훌륭한 예시였다. 반면교사 헤니르다. 저래서야 과보호로 자식들만 망치는 꼴이지.

〈신이 약골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호구여선 안 됩니다.〉

그건 신도들과 신, 둘 다 좆망하는 지름길이다.

세상만물에는 정당한 대가와 균형이 필요하다.

‘공짜야말로 가장 비싼 요금제다.’

담합과 사기의 달인, 통신사들에게 사기당해본 나는 안다.

공짜폰이라는 건 결국 약정 2년 잡고 요금제를 비싸게 올려쳐서 핸드폰 원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상술 아닌가?

30만원짜리 폰으로 2년만에 100만원을 버는 개씹 바가지 상술!

그게 공짜의 실체다.

그러므로 나는 종교에도 알뜰 요금제를 원했다.

신에게 바라는 것만큼 신에게 베풀어야 한다면 신자도 무책임한 애원은 안 하게 된다. 하다못해 뇌물도 기브 앤 테이크의 이치에 충실하니까.

〈신도들의 마나를 받는 정도로 충분할까요?〉

〈예. 넘쳐나고도 남습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기적의 수학자처럼 말했다.

〈여러분의 마나를 다 더해도 베스타교의 일반 신자 20만 명 분량의 마나는 안 나옵니다. 20만 신도의 마나를 1%씩만 모아도 2천명 분량이니까 말입니다.〉

2000 곱하기 7은 14000.

7대신의 신도를 다 합치면 일반인 1만명 분의 마나를 넘는다.

복수의 신을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베스타교에 비해 신도가 훨씬 많은 교단도 있다. 평균을 내면 최소 100만에 최대 200만 신도도 가능하다.

그러니 숙련된 먹물쟁이인 내가 이만한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는가?

‘절대 못 놓치지. 이 시장을 낼름 처먹으면 하루 아침에 구독자 200만 명 각인데.’

200만 팬에게 매일 10원씩만 도네를 받아와도 월급이 6억! 연봉만 무려 72억이다.

큿! 교황 이 몹쓸 사람들……! 이런 꿀 사업을 자기들끼리만 해먹었단 말인가?

물론 내가 받아올 건 돈이 아니라 마나다.

그리고 훗날 ‘신님은 죽은데스’ 라고 선언할 예정이라서 이마저도 많이 받아올 수는 없다. 그래선 거짓말이나 다름없기도 하고.

그래도 찔끔찔끔 모으기만 하면 절대로 마르지 않는 샘물이 생기는걸?

〈그, 그럼 그만한 마나를 저장할 그릇은……?〉

〈당연히 있죠. 걱정일랑 접어두셔도 됩니다.〉

마나를 저장할 그릇? 그런 게 왜 필요해?

‘저희 집에도 신좌 4개 정도 있을걸요.’

크흐흐흐. 크흐흐흐흐흐흐흐!!

혹시 눈치챘는가? 맞다. 바로 맞췄다.

‘원래 중매를 서 주는 사람들은 수수료도 좀 떼 가고 그러는 거야.’

인공신좌들은 명계에서 마나를 중계해줬다.

그 자세한 구조는 〈강림〉 마법과 아르마 슈나스의 프로토타입 연구, 초대 원로원의 일지에다가 〈청동 옥좌〉의 설계도로 거의 파악이 끝났다.

베로니카가 권능으로 미래 지식 치트를 써가며 바이콘들과 술식을 만들어줬고.

‘우리 아내들의 신좌로도 같은 일이 가능하다는 결론은 진작에 나왔다.’

이게 바로 내가 프랑에게 말했던, 우리가 얻는 세 번째 이득이다.

우리 가족의 신좌에 그만한 마나가 오고 간다?

그럴 수만 있으면 아내님들의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막대한 마나 소모와 그에 따른 마나량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꾀할 수 있었다.

‘즉, 숨만 쉬어도 경험치가 무한정으로 공급된다 이거지.’

헤니르를 상대로 신좌의 힘은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연히 다치는 일이 없도록 아내님들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게 인지상정.’

부담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마나를 운용하고서 내준다면 근육의 초회복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마법사들이 마나통을 늘리는 기본 요령이다.

‘그 벌크업을 종교 코인의 버프를 받아서 수백 배로 뻠삥하는 거다.’

나랑 베로니카, 바이콘들의 계산으로는 1달 쯤 지나면 MP통이 에퀴녹스급이 된다.

물론 이 방법으로 늘어나는 건 마나량 뿐이다.

게다가 안전 마지노선을 고려하면 딱 거기까지. 막 1년, 2년씩 굴리면서 내 마나량 수준이 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벌크업도 지나치면 100% 부작용이 나오잖나.

─미스릴 클래스 상위권 수준까지가 적당할 듯 합니다.

종교 코인을 세팅해준 바이콘들의 말이었다.

‘그래도 시발, 그게 어디야?’

마침 우리 가족 중 신좌 보유자는 거의 전원이 MP빨을 잘 받는 편이다.

신좌를 빼놓고도 미스릴 클래스까지 오르는 건 누워서 떡먹기일 것이었다.

‘아내님들도 깨달음과 싸움 경험치는 얻을 만큼 얻었고.’

무이자 대출이라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경영 게임 좀 해 본 사람이면 알 걸?

나 때는 말이야. 축구선수 키우기 게임을 해도 사채를 수억 원씩 땡겨서 컨텐츠를 죄다 즐기다가 캐릭터가 파산하면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그랬단 말이지.

〈그, 그런 기적이 가능하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무거운 운송기가 안전하게 착륙하려면 엔진이랑 그걸 굴릴 연료는 필수!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만큼, ‘교단’이라는 폭탄을 실은 운송기를 연착륙(軟着陸) 시켜보겠단 듯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교황들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견적을 짜 볼까요.〉

그래서였을까. 나 역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노트를 꺼냈다.

〈저는 우선 베스타 교단의 성물에 관심이 가는군요.〉

〈……예? 저, 저희 교단의 성물은 또 왜……?〉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꼬며 떠는 알키 뭐시기 씨.

왜들 이러실까. 자꾸 이러면 장사하기 곤란해.

교황들을 둘러본 나는 쌉정색을 하며 말했다.

〈세상에 무이자 대출이 어딨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내일이면 이름도 까먹을 사람들이랑 떠들어댔겠어.

아내들의 레벨 폭업? 아, 그거야 남편을 잘 둔 우리 애기들의 당연한 특권이고.

‘슬슬 템 세팅도 바꿀 때가 됐지.’

우리 아내님들이 앞으로 올릴 레벨이 얼마인데. 썩어도 종교 단체라면 성물이든 유물이든 뭐라도 가진 게 있을 거 아냐?

알아들었으면 빨리 에픽 아이템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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