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님들……? 증원군이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문으로 다가가자 반색을 하며 받들어 모시는 위병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렇게 많은 성직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다니는 경우가 어디 흔하겠나. 이 숫자는 도시 하나에서 감당 가능한 수의 한계다.
대기 중인 군대는 수익을 못 내고 집에만 있는 주식 전문가와 같다. 일을 하기 전까지는 먹고 싸는 게 일과의 전부라는 말이었다.
〈문을 열어라!!〉
도시에서 감당 가능한 숫자를 전부 사제로 채워온 것에 이상함을 느끼는 듯 했지만, 신분 체크를 마친 위병들의 사기는 나름 높아져 있었다.
영주가 도망치는 걸 좌시해야만 했던 것일까? 썩창이 나 있던 표정이 교황을 보자마자 신앙심이 천장을 뚫어버린 듯 활짝 폈다.
쿠구구궁…!!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문이 열리고 안으로 향한 우리는 바로 참모본부로 들이닥쳤다.
“영주가 없으니 예식을 따지진 않아서 좋네요.”
우리의 대표로 뽑힌 티르시가 중얼거렸다.
교황은 군대의 대표로 삼기엔 방해가 많고, 또 보기에도 안 좋다. 다른 나라 귀족인 나도 그렇고. 로마니아의 귀족인 티르시가 이 일행의 대빵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도에서 오신 증원군이십니까?! 어찌 이렇게 빨리……? 아니, 감사할 따름이죠!〉
참모본부에서 호병대 대대장이라는 인물이 놀라 자빠질 듯 기뻐하며 외쳤다.
그는 일행의 대표를 찾는 것처럼 눈을 굴렸고, 티르시가 앞으로 나섰다. 대대장의 얼굴에 의문과 당혹이 스쳐지나갔다가 눈이 부릅뜨였다.
〈귀하께서는 혹시……?〉
아즈위시아는 옛날 아르마슈나스의 영토 중 하나였다.
넓은 개념에서는 티르시의 고향이겠지만, 부산 출신이라고 부산의 모든 지방을 고향으로 느끼진 않듯 티르시도 성새도시를 고향으로 느끼진 않을 것이었다.
그렇대도 나이가 예순을 넘어 보이는 대대장은 티르시를 본 적이 있던 것일까.
〈명예귀족인 티르시 리터 아르마슈나스입니다. 금번에는 원로원의 지시로 동부 위국전쟁 증원군 임시 대표를 맡았습니다. 현지 사령관이십니까?〉
〈아……! 예! 아즈위시아 호병대 대대장 디르막스입니다!〉
그녀의 여상한 대답에 큼지막한 눈으로 이채를 띄는 대대장.
티르시는 별 말 없이 대꾸했다.
〈상황 보고부터 받죠. 오는 길에 마차를 타고 이동 중인 귀족을 보았는데요.〉
〈보셨습니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대답을 기다리는 듯 티르시는 말이 없었다.
그 차분한 모습에 진정한 듯 대대장도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당초의 로마니아는 황제의 교시로 귀족들이 지방을 통치하는 구조입니다. 오랜 기간 가문 차원에서 관리하지 않는 한, 영주는 지방의 관리인에 가깝지요.〉
〈그러니까 도망쳤다?〉
〈군인도 아니니까요. 근무처에서 목숨을 걸긴 싫었는가 보죠.〉
이름값이 떡락한 황제는 어쨌든, 직전 상관인데 저런 태도라니.
대범하기는 했는데 신분제 사회에서는 무모하다 못해서 어리석을 정도였다. 대대장 정도의 위치를 맡은 사람이 저런 발언을 해도 되나?
‘되겠네.’
이런 위험지대에서 영지의 방위는 곧 국방으로 이어진다.
신분적으로는 귀족일 가능성이 높았다. 못해도 자작은 되지 않을까?
말이 자작 남작이지, 사실 이세계의 신분제에서 모든 신분의 기점은 백작이다. 백작 가문 출신의 귀족이 업무 상이나 훈장으로 받는 신분이 자작, 남작인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넓은 영지를 가진 백작이 변경백.
다시 말해서 대귀족. 후작이라는 이름의 제후다. 우리 틀딱 콤비는 이 후작이지.
공작은 왕족 황족의 혈연이 나라의 대빵이 다스리는 영지가 너무 넓을 때, 그걸 나눠서 통치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보기 힘든 건 그래서였고.
정복국가라면 식민지 같은 곳을 맡기도 한다.
아르마슈나스는 아마 후작 가문!
초대 원로원 가문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일이라 그닥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그만큼 넓은 영지를 다스리던 대귀족이 숙청으로 댕겅 날아갔다.
대대장은 높다란 영주 저택을 보며 말했따.
〈지난 10년 간, 구 아르마알스 령은 각 영지를 쪼개서 영지들의 관할로 들어갔습니다. 그 귀족은 반역을 우려했는지 5년 주기로 바뀌었는데……〉
〈지금 도주한 자는 부임한지 얼마 안 됐던 것 같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고작 1년 반이었죠.〉
분주한 참모본부에서 싸구려 종이를 넘겨보던 티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무보다 제 목숨을 중히 여겨 도망쳤으니, 그 벌은 저들이 귀족으로 살아가는 한 기필코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비겁자보단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해서 생각하죠.〉
〈감사한 말씀입니다.〉
─척척!! 호령도 없었는데 군기에 맞게 경례를 하는 그들.
티르시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작게 웃고서는 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표를 맡기는 했으나, 보시다시피 지휘관의 소질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전황 판단 등의 실전 업무는 디르막스 대대장님, 당신이 계속 유지하여 주시길.〉
〈영광입니다. 편제를 재편하기에 앞서서 우선 증원군 구성을 듣고 싶습니다.〉
〈치료 능력이 뛰어난 포모나교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입니다. 인원은──〉
빠르게 서류가 오가고 대대장이 다소 곤혹한 듯 표정을 기이하게 만들었다.
〈실례합니다. 제 착오가 아니라면 편제에 다소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만……〉
〈성기사가 적다는 말씀이시죠?〉
〈부끄럽습니다만, 예. 제 눈엔 그리 보입니다.〉
혹시 서류에 미비가 있느냐는 듯 묻는 대대장.
다들 알디시피, 풍요신 교단은 의료계와 농업의 핵심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기사는 많지 않지.’
당연하지 않은가? 돈과 의료계의 인맥만 제대로 붙잡아도 물리적인 힘에 굶주릴 필요가 없어진다. 달인급 모험가도 돈으로 고용되는 세상인데.
오히려 나라의 핵심을 움켜쥔 교단이 병사까지 많으면 견제의 대상이 된다.
지구에서나 여기서나 힘은 권력을 유지할 일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풍요신 교단이 권력을 유지하기에는 그런 게 없어도 충분했고 말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번 위국전쟁에 참여한 성기사들은 수가 적다.
아즈위시아의 특성─성벽 밖에 즐비한 몬스터의 양과 질─을 감안하면 거의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것이다. 원로원들이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고.
그래서 대대장은 불문곡직하고 말했다.
〈잠시 제 본분에 충실하여 직언 드립니다. 이 편제는 선발부대입니까?〉
아니, 대놓고 말했다기엔 좀 완곡된 화법인가.
─힐러만 많고 전투원의 수가 이상하게 적다.
─아니면 병사들을 치료하려고 본대보다 한 발 먼저 와 준 부대인가?
해석하자면 대충 이 정도다.
그렇겠지. 성기사가 탱딜의 심벌이어도 숫자가 적으면 의미가 없다. 아즈위시아의 병사들은 무척 수준이 높아 보였지만 아무리 힐을 받아도 한계가 있겠지.
─쿡.
하지만 티르시는 작게 웃었다.
〈아니오, 디르막스 대대장님.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증원이 도착한 뒤입니다.〉
〈도착한 뒤라고요? 대체 어디에……?〉
곤혹하는 그에게 티르시는 가슴을 피며 말했다.
〈당신의 앞에,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준신급 면면이 빵빵한 우리 가족이 다 모였다.
헤니르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면, 이 전쟁에서 아즈위시아만큼 안전한 곳도 없겠지.
─오? 폼 잡네. 멋지다, 우리 티르시.
휘익─. 다나는 휘파람을 불며 심념을 날렸다.
─……시끄러워요.
티르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
증원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아즈위시아는 조금 활기를 되찾았다.
〈어차피 쉰네들 고향은 정기적으로 습격을 받는 곳입니다요!〉
〈피 냄새를 맡으면서 빵을 못 뜯으면 이 영지 사람을 자칭할 자격이 없습죠!〉
전쟁은 미친 짓이고, 전방은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으로 애국 메타와 뽕을 채우며 그 미친 짓을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은 꽤 많았다. 아즈위시아도 예외는 아니었고 말이다.
태어난 토지라지만 이동, 통신이 발달한 현대랑 사뭇 다른 이세계 아닌가.
저들의 고향에 대한 애착은 몹시 컸다.
〈부탁드립니다요, 성기사 나리.〉
그렇지만 불안이 없는 건 아닌 듯, 날 성기사로 착각한 사람들이 건네준 과일 바구니는 여러모로 묵직했다. 실제 무게도, 거기 담긴 마음도 말이다.
〈존맛.〉
─와삭!
성새도시이면서 물류의 중심이기도 한 도시여서 그런가. 과일은 뒤지게 맛났다.
싸울 의욕이 절로 생겨날 정도로는 말이다.
〈백작님.〉
과일을 우물대며 돌아다니자 교황이 불렀다.
‘아, 맞다.’
선물을 챙겨야지, 참.
나는 아내님들을 불러서 성물들을 둘러보았다. 교황은 손수 설명하려는지 말했다.
〈여기 이 ‘천명의 결정체’는 저희 교단의 ‘추수동장’에 비견될 일급 성물입니다.〉
저 〈추수동장(Messis Repono)〉이란 건 내가 먼저 번에 받았던 성물 얘기다.
─슬쩍. 나는 오른손을 새삼 바라봤다.
포모나의 늑대가 새겨진 성물 장갑이다. 효과가 여러 가지였지만, 시험해 본 결과 내게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보물이었다.
그에 비견되는 급의 성물, 〈천명의 결정체〉는 말하자면 강화 아이템 같은 거랜다.
〈번영신 포르투나 님의 권능이 담긴 성수죠.〉
물건이나 생물의 힘을 아무 부작용 없이 성물, 유물 급으로 올려주는 물건!
포르투나의 동상에서 1년에 한 방울 떨어진다고 전해지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포르투나교 교황 양반, 셈이 빨라 보이더니 거 라인을 탈 줄 아는 사람이네.
〈감히 조언드리자면, 강력한 아이템에는 쓰지 않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효과가 약하거나 물건 자체가 손상되는 경우마저 있다더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하지만 2병이나 있는데 어따 쓴담.
‘다나나 라리루라한테 마시게 해?’
아니지. 냅둬도 미스릴 클래스가 될 그녀들이다. 효과는 없을 것이었다.
‘이걸 마신다고 미스릴 클래스보다 강해지면 이 성물이 2병이나 남아 있겠냐고.’
포르투나 교단에서 얻는 즉시 교단 사람들에게 마시게 했겠지.
그러니까 달인급보다 위의 강자에게는 안 통할 거라고 보는 게 맞다.
우신 부산물 세트도 안 된다. 초월종 몬스터의 장비니까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성물에도 못 뿌린다. 베로니카의 지팡이에다 쓰는 것도 선택 중 하나지만, 그러다가 부숴지면 전쟁을 앞둔 지금 여간 좆 되는 게 아니다.
“흠.”
나는 고민하다가 그냥 한 병을 땄다.
─퐁!
─뚜둑!
그리고 어깨에 단 견장을 뜯어냈다.
“앗, 씨팔.”
대충 뜯었더니 우신 가죽 갑옷에 꿰맸던 실밥이 뜯겨나왔다. 이거 그리 질기지는 않아도 토나슈일루카틀의 수염이라 존나 귀한 건데.
내가 멍청한 짓을 했다며 울상을 지었는데, 그 꼴을 본 다나도 당황한 듯 말했다.
“야, 야. 설마 다른 데도 아니고 거따가 붓게?”
아니 씹, 내 실수에 당황한 게 아니라 강화 템 낭비가 걱정되는 거였냐고.
게임에서 끝판왕이랑 붙을 때까지도 스탯 상승 아이템을 안 쓸 성격이군, 이 누나.
“응. 쓸 건데? 이 견장은 훌드폴크의 유물이야. 잠재력은 충분할 거라고 보걸랑.”
방어력을 올려주는 오우거의 견장.
호르샤 놈의 따까리들을 족치고 얻었던 것인데, 마스터 클래스가 된 나한테는 조금 급이 후달리는 물건이다. 강화할 가치는 있었다.
“거 시바 찔끔찔끔 먹여보다가 넘칠 것 같으면 멈추면 땡이지 뭐.”
“백작님. 보통 그렇게 미세한 효능 조절은 불가능합니다만……”
“쟤는 할 수 있을 걸? 눈이 남다르걸랑.”
포모나교 교황은 말을 아끼며 만류했는데, 마침 성물 하나를 집어든 로키가 첨언했다.
“로키님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거겠죠.”
바로 납득하냐. 신앙이란 게 이래서 무섭다니까.
어깨를 으쓱한 나는 엘릭서의 약효를 조종하는 마법으로 성수 1병을 증발시켰다.
효능의 액기스를 견장에 퍼붓는다.
─파앗!!
약효를 오딘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사용했는데, 놀랍게도 견장 2개로 1병을 전부 소모했다. 낡은 견장이 새것처럼 바뀌어선 은은한 품격을 흘렸다.
“때래래래랭~.”
노르드 님이 +20 훌드폴크의 견장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흠? 성공한 것이 맞느냐?”
“왠지 김 빠지지 않아요?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 나는데요?”
“글쎄. 그러지도 않을걸.”
오딘의 눈으로 술식을 살핀 나는 강화 아이템이 아깝지 않은 성능에 히죽거렸다.
“노르, 노르! 어느 정도길래 그렇게 웃어?”
드워프의 피가 끓는지 프랑이 견장을 보겠다고 까치발을 들며 기웃거렸다.
“흐흐. 써 보면 알 거야.”
굳이 어린왕자의 도입부 식으로 어른들도 알기 쉽게 수치로 표현해 보자면……
‘쌍칼쟁이 반인반신 듀라한이 권능을 써도 버틸 정도는 되겠군.’
그야말로 목숨 코인 +1이다.
나는 실밥도 녹아 없어진 견장을 프랑과 라리루라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받아. 쓰던 거라 면목없지만 꽤 요긴할 거야.”
“어? 우리 주게? 노르는?”
“나는 생존기가 많아서 괜찮음.”
내가 쓸 바엔 아내들의 안전 보험으로 거는 게 더 나았다.
프랑이랑 라리루라는 앞에서 싸울 때도 많은데 맨몸 방어력은 좀 부족하니까.
“……응! 고맙게 쓸게, 노르!”
프랑은 견장을 만지작대다가 선물한 사람이 다 기쁘게 웃었다.
“으응……. 그런데 이거 어디에 어떻게 달지?”
“프랑 언니. 이렇게 목에 달면 브로치 같아서 좀 예쁘지 않아요~♡?”
“앗, 그러게? 라리루라는 센스가 좋네.”
꺅꺅 웃으며 견장을 장비하는 그녀들.
남은 아이템의 배분은 신속하게 마쳤다. 어차피 성능을 볼 기회는 앞으로도 많다.
나는 마지막 남은 귀걸이들을 집었다. 놋쇠로 된 귀걸이다. 녹은 슬지 않았다.
〈예하. 이 귀걸이는요?〉
〈생구신님의 성물이군요. 체력을 소모해서 집중력을 극도로 올려줍니다. 주문 영창, 고등 무술을 쓰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고 하는군요.〉
〈집중, 필중이군요. 액티브 스킬입니까?〉
〈예? 어, 어…… 발동 여부는 정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요긴하겠네.
4개로 2쌍이 있길래 하나는 네페르티티를 줬다. 귀를 뚫지 않아도 낄 수 있는 매직 아이템이라서 바로 장비해 보는 네페르티티.
〈네페르티티, 어때요?〉
〈괜찮아. 장신구는 익숙해.〉
〈마음에는 들구요?〉
〈……응. 마음에 들어. 네가 준 거니까.〉
그렇다고 하니까 다행이었다.
집중력이 올라가면 그녀가 셰이드의 꿈에서 몇 주 넘게 연습한, 고난이도의 무예를 펼칠 수 있게 된다. 다음 경지를 잠시나마 체험할 기회가 되겠지.
“남은 1쌍은 누가 가질래요? 티르시?”
“저는 됐어요. 선조님의 장비에 비슷한 물건이 있어서.”
〈강림〉 마법을 쓰면 원시 고대 풀셋으로 스위치하는 티르시는 부작용이 과해지면 독이라며 사양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주인님에게 축복을 받은 나다. 주문을 외우는 속도에 곤란을 겪을 것 같으냐?”
“그랬지, 참.”
미래 치트로 주문 도우미 반딧불 마법이 부르는 베로니카한테도 무쓸모다.
“주인님이 끼웠다면 커플 귀걸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끼웠겠다만.”
“거 낯뜨거운 사족일세.”
허나 꼴마초는 귀걸이 따위 하지 않는 법이지.
─웅웅!!
내가 이걸 어따 쓸지 고민하고 있자, 팔찌에서 진동이 일었다.
나는 오른손의 성물 장갑, 〈추수동장〉을 브류나크에게 갖다 댔다.
“……너 달라고? 이 귀걸이를?”
─웅웅! 웅!
“짜식, 패기 넘치네. 자신 있나 봐?”
웅…… 웅…… 웅웅!!
기운차게 대답하는 브류나크. 맨날 불량식품만 먹던 녀석이 웬일로 보약을 탐내네.
‘근데 브류나크가 다른 마나를 흡수하는 건 내 권능의 연장선인데……’
마나 계승은 비슷한 마나를 흡수하는 현상이다.
표현을 달리 하면, 비슷하지 않은 마나는 흡수할 수 없다.
가축의 신이랑 내 공통점이 뭔데? 그 팔레스란 양반도 생전에 드루이드였나?
웅~ 웅~.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간식을 보채는 녀석을 달래주고 귀걸이를 위로 던졌다.
〈백작님? 뭘──〉
〈도려내 주겠어욧!!!〉
파킨─!!
귀걸이 두 쪽은 창질 한 방에 네 개로 변했다.
슈와아아악─!! 작살난 귀걸이에서 마나가 흘러들어와선 브류나크로 빨려들어갔다.
‘옵션 이전 성공.’
팔찌의 미스릴이 더 영롱해지는 걸 확인한 나는 그럭저럭 만족했다.
역시 강화는 언제 해도 즐겁다니까.
그러나 역사 깊은 유물이 철 쪼가리로 변하자, 포모나교 교황은 놀이터에서 말싸움을 하다 부랄 킥을 맞은 잼민이를 방불케 하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해지고 말았다.
〈……로, 로키님?〉
녹슨 부랄까기 인형처럼 저래도 되냐는 듯 로키에게 눈으로 의견을 묻는 그.
〈응?〉
실타래를 갖고 실뜨기를 하던 로키는 뒤늦게 내 발밑을 구르는 귀걸이 조각을 보고는, 애기가 신문지를 찢고 노는 걸 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됐어, 됐어. 저 정도는 내가 소싯적에 부숴먹은 것들에 비하면 쥐뿔도 아니지.〉
로키마저 그렇제 말하자 소년 교황은 진지해진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읊조렸다.
〈그럼 저도 괜찮습니다.〉
〈아, 예.〉
역시 이 새끼도 정상은 아냐.
로마니아의 교황답지 않은 트루-종교쟁이께서는 단단히 미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친 놈이어도 우리 미친놈이지.’
나는 눈을 반개하며 쳐다보았고, 그는 내 시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수긍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내에서 한바탕 예배를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자고로 사람은 지가 아쉬울 때만 하느님, 부처, 알라 신을 찾는 법.
신앙 코인을 풀 매수할 기회가 빠르게도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