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당연한 얘기를 하자.
세계와 차원을 건너도, 시대를 초월해서도 변함없는 사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따라서 현대인들도 ‘중세인 쉐에끼들 노예 정신 존나 미개하네’ 하고 말할 순 없다.
21세기 사람도 전염병이 한 번 돌면 흑사병에 목숨을 잃은 옛날 사람들을 깔볼 수 없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이라고 ‘귀족님 굉장해앳!!’ 거리지는 않았을 거걸랑.
현대인의 갬성으로 좆 같은 일은 언제 어느 시대에서도 좆 같다.
너는 평민&천민. 하지만 우리는 귀족. 그러니까 꿇어라.
이 말에 좋다고 따르기엔 인간의 DNA가 신분 사회를 받아들인지가 아직 몇천 년밖에 안 됐다. 창조론의 부산물인 이세계인들만 봐도 그냥 뼈에 새겨진 본능 같애요.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영웅, 초인의 존재를 갈구한다.
나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그 심리를 분석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칭 전문가들이 ‘요즘 웹소설의 트렌드는 대리만족이며 이는 내면의 고단함을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임’ 하고 평론하는 거랑 같지.
일반화는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궤변이거든.
그래도 굳이 의견을 게재하자면, 그건 초인들을 섬기고 싶어서라기보단 자신들이 처한 개좆 같은 상황을 대신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 한다.
다른 곳, 다른 상황에서는 몰라도 이 아즈위시아에서는 말이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신의 가호가 우리를 지켜주심을 믿습니다.〉
천장도 없는 시내에 기도가 메아리쳤다.
〈운명은 잔학하지만은 않고, 선행에도 죄에도 보답과 응보가 있음을 믿읍시다.〉
그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티르시였다.
사치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경건하게 꾸민 우리 마법사님의 백발머리에, 시민들은 그녀가 누군지 대충 눈치챈 것 같았다.
‘안 그러면 곤란하지.’
일부러 병사들 사이에 흐른 소문이 민간에 흘러들어갔는지 확인까지 했는데.
〈저 분은 혹시……〉
〈기사 못 봤나? 헤르마이온 길드랑 합병했던 그, 어쩌고 신문사 말이야.〉
〈알지. 정확한 정보만 기재하기로 유명하다는 그곳 아닌가. 대단도 하셔. 판매량보다 국민들에게 사실을 전해주는 걸 중요시하는 곳이잖아.〉
〈명예귀족이 되서 돌아오셨다곤 들었는데……〉
몰락 이전에도 아르마슈나스 가문이 이 영지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지.’
원래 뉴스 헤드라인에 걸린 사람이 뭐 해 먹고 살던 사람인지 미리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잖나. 대부분은 기사를 읽고 나서야 내막을 알고, 그때 가서 생각을 정한다.
인륜을 져버린 황제의 명분 없는 숙청으로 몰락했으나, 일신의 능력만으로 출세하여 금의환향한 대귀족의 영애!
그런 그녀가 귀족의 몸으로 한때 고향 땅이었던 구 아르마슈나스 령에 왔다.
다름도 아닌,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말이다.
〈개새끼가 가고 영웅이 오셨어.〉
〈도망친 영주 새끼 얼굴 기억나는 사람? 나는 안 나는데.〉
맞다. 영주 놈의 이기적인 역돌격이랑 대비되는 멋진 그림이다.
이 뽕 차는 그림 앞에 시민들은 눈을 반짝이며, 사실 어제까지는 잘 모르기도 했던 티르시에게 큰 호감과 지지를 드러냈다.
〈티르시 아가씨…….〉
〈……훌쩍. 장성하셨군요. 몰라볼 만큼 아름다우십니다.〉
10년 전의 대귀족들을 기억하고, 티르시의 명예 귀족 취임 소식도 챙겨들었던 이들은 눈시울이 쫌 시큰해지는 모양이었고 말이다.
‘냉소적으로 굴면 전쟁에서 이름을 떨치려고 온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여기가 어디다?
원로원이 가면 뒤진다고 선출한 최전방 of 최전방이다.
저들이 빡대가리도 아닌데 활약하기보단 뒤져나가기 딱 좋은 아즈위시아에 교황를 데리고 돌아온 그녀에게 침부터 뱉을 사람은 없었다.
〈여기 계신 모두가 풍요신님을 믿지는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곤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는 데 있어, 신앙과 신분의 차이를 고려해서는 신들께서도 노하시겠죠.〉
금의환향 방패를 내세운 교황이 기도문을 받고 예배를 계속했다.
신앙을 긁어모으는 일에 있어서 신의 절대성과 고결함을 과시하는 건 당연하다. 앞서 말한 초인, 영웅을 끝없이 올려치는 게 종교니까.
신은 전지전능하고 선하시다.
믿으면 천국. 안 믿어? 너 니플헤임.
그러다가 신은 선량한데 세상은 왜 이 꼴이냐는 소리가 나오면, 그때부터 슬슬 얘기가 길어진다. 음. 역시 종교 문제엔 중립이 최고야. 잘못 건드리면 훅 간다고.
단지, 이세계의 신들은 이 전지전능 메타를 탈 수가 없다.
그치만 여기 신들은 푹 찌르면 악 하고 죽는걸? 그렇게 치면 이 동네 민간인은 마굿간 똥 치우는 쇠돌이도 롱기누스여.
유일신이요? 로키가 들었다간 명계 관광 투어를 정규편성화 하자고 제안하겠군.
그럼에도 이세계인들은 종교를 보편화 시킬 수 있었다.
─번쩍!!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신성력이 있거든.
〈괴물로부터 아즈위시아를 지키고자 한 그대의 분전에 감사합니다.〉
뭐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정찰부대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교황의 모습에 사람들은 기존에 믿던 신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고개를 숙였다.
부러지다 못해서 잘려나가기 직전이었던 다리를 다시 붙여놓는 기적!
엘릭서 뺨치는 회복력은 7대신 중에서도 치료에 가장 뛰어난 풍요신 교단의 교황다운 기적이었다. 남은 삶을 장애인으로 살 뻔 했던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났다.
〈이 기적은 비단 저희 교단의 자비가 아니고, 하물며 풍요신님만의 힘도 아닙니다. 저희로 말미암아 신민을 보살피는 모든 신들의 자비입니다.〉
로키의 제안─내가 뒤에서 귀띔한 것─에 따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손수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교황과 성직자들!
의료 서비스 전면 무료화 앞에는 요즘 교단들의 실태를 예로 들며 냉소적으로 굴던 사람들도 비아냥대지 못했다. 전쟁의 막막함이란 그런 것이었다.
〈순국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기도합시다.〉
치료를 끝낸 교황이 묵념하자 시민들도 따랐다.
〈기도하여 승리와 구원을 바랍시다. 풍요신께 묵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신들이 계심을 믿읍시다. 저희의 노력을 신들께서 보살펴 주심을 믿읍시다.〉
교황으로부터 빛이 새어나오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 현상은 성직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부디 외적으로부터 고향을, 나라를 지켜줬으면 한다는 소망이 기도와 힘으로 변하여 하늘로 치솟았다.
〈저희의 기도를 구원을 바라는 오만이 아니라, 신들께 바치는 믿음으로 여깁시다.〉
─반짝.
시민들의 바람이 힘으로 변해가는 것을, 성녀와 같은 모습의 티르시가 지켜보았다.
오늘, 이제까지와 다른 형태의 신앙이 처음으로 싹을 틔운 것이었다.
***
“후~!! 개운하다!!”
예배를 마친 뒤, 교묘하게 성직자들에게 꼽사리 껴 있던 로키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녀의 손엔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리는 마나가 뭉쳐 있었다.
티르시가 시민들과 얘기를 나누는 걸 천리안을 써서 지켜보던 나는, 내가 있는 골목을 귀신 같이 찾아오는 그녀의 솜씨에 픽 웃었다.
“그게 그거야? 사람들한테 받은 마나?”
“그렇지! 아직은 작은 마나지만, 목적이 더 명료해지고 강해지면 더 많은 양이 모여들 거야. 물론 신자들이 늘어나도 그렇고!”
“그 점은 각 지역에 파견 나간 교황 나리들한테 맡기자고.”
이 시국에 종교 코인에 탑승해서 윈윈이 가능한 영지는 여기만이 아니잖은가.
나는 한쪽 눈만 천리안을 켜서 티르시를 살피며 말했다.
“내가 있는 데를 바로 찾아낸 걸 보면 유희신의 힘이 좀 돌아왔나 봐?”
“뭐?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뭐냐니? 네 앞으로도 마나가 조금 돌아갔던 거 아냐?”
“뭔가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로키는 나를 어이 없게 쳐다보다가 웃통을 훌렁 젖혔다.
미친년아. 브라 좀 입고 다녀.
“나는 죽어가는 몸이야. 신앙을 받아들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지. 사람들의 방향성 없는 소원을 내 앞으로 끌어모은다고 죽다 만 영혼이 고쳐지겠어?”
“……아, 그러셔.”
“기왕 받은 거 조금 남겨두고 써먹긴 하겠지만, 네가 말하는 ‘자기 몫을 받고 기도에 응하는 신’이 돼 줄 수는 없어. 늙은이는 물러날 때를 아는 게 미덕이잖니.”
─휙휙!
로키는 아지랑이를 실타래처럼 풀어서는 머리를 묶는 것처럼 땋아서 내밀었다.
“그러니까 이건 네 몫이야. 맘대로 쓰렴.”
“그래.”
따로 말하지 않고 받아들자 그녀는 씨익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겼다.
“먼저 갈게! 너희 마법사 아가씨도 잘 챙겨줘!”
“아파, 이 년아.”
“메롱.”
자식과 후손만 만 명 단위인 로키는 그렇게 휙 사라졌다. 내가 건네준 99대대 집행관들의 〈공간 도약〉 유물의 힘이었다.
나는 로키한테서 받은 신앙의 결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노르드. 끝났어요.”
얼마간 그러고 있자 조금 상기된 티르시가 나를 찾았다.
고생 많았다고 말하려다가, 그녀가 오늘 만났던 사람들을 고생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 그만뒀다. 그런 내게 티르시가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성공적이었어요. 노르드는 어땠나요?”
“실패했습니다. 동물들이 절대 가기 싫다네요.”
“네?”
내가 그녀를 따라나섰던 건, 이쪽 지방의 야생 동물들에게 정찰을 맡기고 싶어서였다.
그렇지만 정작 동물들은 먹이고 지랄이고 안 할 거니까 개소리 말라더라.
“몬스터들이 야생동물이 씨가 마르도록 보이는 족족 잡아죽이고 있다는군요.”
야생 수리에게 쪼인 손등을 흔들며 말하는 나. 별로 아프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의 파파고 해석능력을 아는─지구인들이 받는 만언신의 축복을 아는─ 헤니르 씹년이 지도편달을 오죽 잘 했는지, 동물들은 얼씬도 하기 싫어했다
내가 가진 첫 번째 권능을 활용하려는 작전인데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습니다. 상황은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도망친 동물들에게 어디가 가장 수상하고 가기 싫은지는 들었다.
또한 내 정찰 수단은 비단 동물 드론에 한하지 않는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말했다.
“지금 티르시밖에 도와줄 수 없는 일이 있는데, 해 주시겠어요?”
“어머. 명령하시면 되는데요? 잠자리에서처럼.”
쿡쿡 웃던 티르시가 대답했다. 최면 세뇌 플레이라도 하라는 얘기인가.
그녀의 웃음에 이끌린 나는 즐겁게 대답했다.
“그것도 좋네요. 그럼 바로.”
“네?”
티르시의 손을 잡고 골목 뒤로 빠져나간다. 인기척은 없고, 나타나면 우리 기감에 바로 걸리겠지. 마법으로 골목의 청결을 해결하고 쪼그려 앉았다.
─쑥!
그리고 티르시의 치마를 밑으로 잡아당겼다.
“…………?!!”
말로 못할 경악에 비명도 못 지르는 티르시.
“제, 제, 제정신이에요?!”
─홱!! 내가 끌어내린 치마를 다시 끌어올리며 그녀는 기겁하며 내게 니킥을 갈겼다. 피해냈지만 우리 마법사님의 분노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무슨 생각이에요?! 이런 곳에서!!”
“셰이드의 주술이 필요해서요.”
“헤? 아, 아! 미약이라도 잘못 마시셨나 했더니 그런……”
멍을 때리면서 납득하려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셰이드랑 섹…… 성교는 같은 뜻이잖아요.”
까비. 생각보다 똑똑하셔.
쌉정색을 한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들어 보세요, 티르시. 예지라는 건 미리 알고, 멀리 보는 힘을 말합니다. 제 권능은 천리안으로 공간을 초월하고 미래예지로 시간을 초월하죠.”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 마실래요? 속옷이 엄청 끼어서 하나도 집중 안 돼요.”
엉덩이를 빼며 덜 끌어올려진 팬티를 주섬주섬 당겨입는 티르시.
쓰바, 꼴리네. 발기 쌉가능이다. 가죽 갑옷이라 그런지 서니까 꼬추 존나 땡긴다.
“천리안으로 정찰할 겁니다. 하지만 눈이 닿지 않는 거리에요. 협곡 너머까지 보려면 제가 처음 천리안을 켰을 때 정도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그때는 같은 아틀란티스에 있던 티르시의 속옷 차림만이 아니라, 거의 대륙 건너에서 뒹굴어대던 유니콘 앨리스까지 보였을 정도였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천리안의 성능을 높여야만 했다.
그리고 정신성 마법의 강화에 있어서 셰이드의 주술은 아주 유용하다. 신화에서도 예언자(무녀)의 의식이라고 불렸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 저를 덮치시겠다는 건가요?”
쭈뼛거리며 긴 치마를 걷어서 팬티를 당겨입는 티르시.
나는 투시능력으로 그녀의 맨가슴을 응시하면서 긍정했다.
“짧고 빠르게 끝낼게요.”
조루와 지루를 자유롭게 오가는 힘. 시발 이게 권능이지.
쥬지드라의 구속구를 풀면 운석 충돌로 세계가 멸망하기까지 3분 남았을 때라도 10발은 족히 쌀 수 있다. [속사]라고 불러주실까.
“……이치는 알았어요. 네.”
머리의 나사가 덜 풀린 티르시는 마음으로 납득하긴 힘든지 그렇게 대답했다.
“대신 하나만 물을게요.”
“질문하는 걸 물어봐도 되는지 허락받을 필요는 없는데요.”
“이 옷.”
티르시는 성녀가 입을 듯한 흰색 수녀복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금실이 자수된 의상에 조신한 가슴의 모양이 드러나자 은근 야릇해진 것 같다.
얼굴이 빨개져선 치켜 뜬 눈으로 나를 힐끔대며 묻는 티르시.
“제가 이걸 입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꼬, 꼴리셨다던가 하는 건…… 아니죠?”
“않이 지금 저를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에잇.”
내가 정색하자 티르시가 긴 치마를 걷었다.
…발기잇!
윽, 들켰다. 쥬지 터질 것 같애.
“……후으.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살짝 기뻐보이는 건 내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마누라 한정 관심법이다 이거야.
티르시는 메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챱챱 소리가 나게 흔들었다.
특수한 용기에 들어 있는 러브 젤이었다.
─쪼옥.
티르시는 속옷을 걷어내리더니 그걸 아랫도리에 살며시 짜넣고는 치마를 걷었다. 그리고선 도저히 내 얼굴을 못 보겠다는 듯 외면하며 허리를 내게 내밀었다.
“자요. ……진짜 1번만 하기에요?”
옷을 입고 선 자세로 박는 건 또 색다르군. 난 절대 아무도 오지 않도록 오감을 일깨웠다. 이럼 촉각도 예민해져서 금방 싸겠지.
─푹♡
나는 파렴치하게도 직접 치마를 걷어올린 음란 성녀를 거침없이 덮쳤다.
***
정사를 끝내고, 티르시의 옆에서 물담배를 피우듯이 수면 가스를 들이켰다.
간략화시킨 셰이드의 주술이 발동하자 내 혼은 내면세계로 빨려들어갔다.
화아아아악…!!
이대로 잠들면 되지만, 굳이 꿈속 평원까지 갈 것도 없었다.
“삐에에에─!!”
아득해지려는 내 시야에 까마귀 깃털이 휘날렸기 때문이다.
오딘은 살아생전 까마귀 두 마리를 어깨에 얹음으로써 그들의 지능을 빌렸다고 한다. 나도 우신 토벌전 때는 대충 비슷한 짓을 했던가.
이후의 싸움에서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현실에선 브류나크와 교수 슬레이어를 못 불러내니까.’
그때는 배경이 다나의 천공성이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하지만 로키의 말로는, 오딘은 평상시에도 그걸 해냈다.
창세의 권능으로? 설마.
오딘의 룬 마법은 권능을 진일보시킨 상위호환 스킬이잖나. 그리고 룬 마법이 끝내주는 건 다른 사람도 배우고 쓸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까마귀들은 아마 마법으로 불러낸 소환체.’
베로니카가 미래 치트로 불러냈던 반딧불들이랑 똑같다.
미래의 그녀는 오딘의 전승과 술식을 모티브로 주문보조마법을 만든 것이겠지.
물론 권능으로 미래의 지식을 얻은 베로니카는 그 지식을 금방 잊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 오딘의 눈 보유자지.’
내 눈은 그녀의 마법을 분석하는 게 가능하다.
사용할 수 있는지는 논외로 두고 말이다. 우리 여신님은 무슨 페르마의 증명 같은 걸 실시간으로 한단 말야. 저걸 어떻게 따라해 시팔.
“삐엑? 뺘뺘!!”
“알아. 부탁한다.”
그래도 일부분을 따 와서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
희고 검은 까마귀들을 어깨에 얹은 나는 손벽을 합치며 외쳤다.
“선인 모드 ON.”
─쿠확!!
정신세계의 어둠이 걷히며 현실의 풍경이 나의 앞에 드러났다.
가부좌를 튼 나를 티르시가 꽁하니 쳐다보는 게 보였다. 진짜 넣자마자 5분만에 1발만 싸고 끝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제대로 1번은 퓨퓨 시켜줬는데. 보지는 허접하면서 기준만 높아졌다니까.
“아르마슈나스 경! 여기 계십니까!”
“히에악!?!”
잠든 나를 구경하는 데 정신이 없었던 티르시는 사람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기겁하면서 속옷을 끌어올렸다. 사정량은 조절했지만 보습 효과가 꽤 탁월해지겠군.
“우으, 찝찝해……”
“아르마슈나스 경!!”
“저, 저 여기 있어요!!”
아랫배와 고간 사이를 만져보던 티르시는 살짝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피식 웃고 시야를 전환했다.
“뺘뺘! 삐엑!”
브류나크가 내 뺨에 얼굴을 부리다가 날아갔다. 녀석이 앞으로 갈 수록 천리안이 넓어졌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뛰어난 서포트에 놀랐다.
“……생구신의 귀걸이 때문인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귀걸이를 빨아먹고 그새 또 성능이 올라갔나.
생각해보면 창한테 체력 소모고 좆이고 없잖아? 성물의 부작용 없이 긍정적인 효과만을 손에 넣은 브류나크는 단숨에 나를 협곡 건너로 데려갔다.
협곡과 수풀이 자라난 경계를 넘어, 섶나무 숲 너머의 심층으로.
그리고 그곳에 똬리 튼 늪을 찾아낸 나는 볼 수 있었다.
“끄르르르……!! (아파……!!)”
【신군의 축복을 거부하지 말라.】
어딜 뜯어봐도 신족으로 보이는 새끼가, 커다란 슬라임을 붙잡고 있었다.
순간 굴라나뢰크의 새 멤버인가 했는데, 정답은 정답이지만 조금 틀렸다. 저 새끼는 십중팔구 헤니르가 본격적인 준비에 앞서 창조한 신족이겠지.
어느 신화에서도 비슷한 전승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
헤니르의 목적과 다음 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그 신족은 자신과 비슷한 놈들 두어 놈 더 데리고서 이 영토의 터주 같은 놈에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너는 간택받은 것이다. 총애에 경희하라.】
늪처럼 진녹색의 안광을 터트린 신족은 머리에 기른 사슴 뿔을 빛냈다.
【힘과 자격을 주마. 인간들에게 자식을 잃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복수를 꿈꾸거라.】
꾸르르르르르…!!
슬라임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물결치면서 그 형태를 바꾸어갔다.
‘……흐음.’
슬라임의 주변에 전투 흔적이 있던 걸 확인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 씨팔, 호부견자 없다더니.”
왕후장상의 씨는 없어도, 개새끼의 씨는 있긴 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