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01화 (899/1,009)

라리루라의 남편은 매일매일이 바쁘다.

그렇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진 적은 별로 없다. 그녀는 자신에게 솔직한 편이므로 불만이 완전히 없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지만, 거기는 이해심을 발휘할 부분이다.

인공신좌의 자연스러운 반환. 참전한 사람들의 부상 회복이나 보답.

로마니아의 승전 발표. 참전의 보수와 헤니르와 벌인 싸움을 공공연하게 하는 성명.

그밖에 하나하나 셀 수 없는 일들로 무척 바쁠 타이밍 아닌가.

헤니르의 죽음을 인지하고 미쳐날뛰던 거미 신족마저 쓰러트린 뒤, 딱히 맡은 일이 없어서 브리타니아의 영지로 돌아온 라리루라다.

이제 와서 남편의 귀가가 늦는 정도로 떼를 쓸 생각은 없다.

“헤유으…….”

그러니까, 그녀가 한숨을 쉬는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소파에 조신하지 못하게 누운 라리루라는 그만 한숨을 푹푹 내쉬고 말았다.

“하아…….”

같은 소파에 앉은 베로니카도 한숨을 쉬었다.

어디 사는 누구인가 하는 상인이 선물해줬다는 소파에는 베로니카가 힘없이 앉아 있고, 그런 베로니카의 무릎에 라리루라가 누운 상태였다.

─고로롱.

그리고 그런 라리루라의 가슴에는 애완 고양이 테레사가 오랜만에 손길이 기분 좋은 것처럼 라리루라의 쓰다듬을 만끽하고 있었다.

괴도 자매의 여동생과 바이콘들이 보살펴주고는 있었지만, 의외로 정이 많은 고양이였다.

“으부엡.”

고양이를 쓰다듬던 라리루라의 뺨과 머리카락을 베로니카가 건성으로 쓰다듬었다.

얼굴이 떡처럼 뭉개졌지만 라리루라는 무력하게 반죽당할 뿐, 싫다는 말 한 마디 없다.

실연당한 소녀들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

“……10년이라.”

“기네요…….”

거의 그녀들의 공통된 우상이나 다름없는 여신.

크라운 크라운이라고 불린 로키=로두르가 치료 때문에 장장 10년간은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으니까.

“그야 저도 있죠~? 계속 상처를 앓거나 돌아가시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요…….”

“안다. 나도 알고 말고.”

더는 아무 말 하지 말라는 듯 베로니카는 동생 같은 소녀의 코를 집었다.

로키는 수술 따위는 싫다는 스탠스였지만, 치료 소식을 접했던 모든 사람들─및 바이콘들─의 리액션을 보면 공수표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는 이별도 서운하기는 마찬가지건만, 최소 10년은 절대 만나지 못해서야 슬퍼질 법 하지. 기쁜 일이니 울지는 않겠다만.”

베로니카는 우울한 표정으로 사랑스러운 동생의 뺨을 주물거렸다.

“연구와 수행으로 공간의 제약은 하등 의미없어졌건만, 아직도 시간 상의 거리를 극복한다는 건 요원할 따름이구나.”

〈공간 이동〉으로 대륙 간 출퇴근도 가능하게 된 그들 그녀들이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은 물론 신족인 베로니카에게도 길게 느껴졌다.

─달칵!

“다녀왔습ㄴ…… 무슨 일?”

노르드가 맡은 영지, 휴스로이트에서 외출했다 돌아온 네페르티티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할 노릇이었다.

“아, 다녀오셨어요…….”

설렁설렁 손을 흔드는 라리루라. 네페르티티는 나름 그녀들이 저러는 이유를 추측했다.

“……노르드, 오늘 귀가 못해?”

“그렇다고 하면 슬프긴 하겠는데요~…. 그냥요? 로키님이랑 10년이나 작별할 생각을 하니까 벌써 맘이 무거워서 있죠…….”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히잉 울상을 짓는 소녀가 사랑스러울 만도 한데,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좌로 우로 갸웃거리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살아있으면 또 만날 수 있어. 수술, 실패할까봐?”

“수술의 성패는 우리가 고민한다고 바뀌는 일은 아니잖느냐.”

“그건 이별도 똑같아.”

“……에잇, 박정한 것 같으니. 가을에는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이 나는 법이라고 나의 그대도 말했느니라. 지금은 감정적이 되는 계절이란 말이다.”

“아직 여름.”

그야 고민해봤자 이별하는 기간이 짧아지는 건 아니긴 했다. 삐진 것처럼 라리루라를 안으며 투덜거리는 베로니카.

“냐아아악?!”

풍만한 가슴 사이에 묻힌 테레사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서는 네페르티티 앞에서 멈칫했다. 테레사는 꼬리를 바짝 세우고서 그녀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안고 있는 봉투에 관심이 간 듯 했지만,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저었다.

“네 간식은 없어.”

“……냑!”

…탁!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테레사는 꼬리를 내리곤 바닥을 앞발로 치더니 올라가버렸다. 아마 자신의 애교에 약하기로는 라리루라 다음 가는 프랑에게 가려는 듯 했다.

“으규윽…… 뭘 사오신 거에요……?”

베로니카의 베어 허그에 시달리던 라리루라가 인형처럼 늘어져서 묻자, 네페르티티는 봉투를 바스락거리며 털실 뭉치를 꺼냈다.

“이거.”

“털실? 앗, 스웨터를 짜신다고 하셨죠?”

“응. 이제 손에 익어서. 좋은 실로 샀어.”

그것 외에도 프랑한테 향초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려고 이것저것 사 온 그녀였다.

“……손이 바쁘면, 시름도 잊혀져.”

털실을 만지작대던 그녀는 조심조심 물었다.

“뭐라도, 해 볼래? 나라도 괜찮으면…… 도울게.”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에 선뜻 공감할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그녀는 아니다.

그렇지만 브류나크나 다른 가족들처럼, 그녀가 정을 많이 준 이들과 10년 넘게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렴풋이 이해가 가는 것도 같았다.

베로니카와 라리루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네페르티티는 멈칫하더니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나, 이상한 말 했어?”

“……풋, 아하! 아하하하하♡! 아니, 그럴 리가요♡! 하나도 안 이상해요!”

─폴짝! 비 오는 날의 진창 같았던 우중충함을 떨쳐내고 라리루라는 네페르티티한테 달라붙었다. 괜히 달라붙는 그녀를 네페르티티는 꾹꾹 밀었다.

“……떨어져. 더워.”

“아핫♡! 네페르티티 언니, 삐지셨구나! 하여튼 귀여우시다니까!”

“하나도 안 귀여워. 저리 가.”

끈적거리는 포옹을 한사코 사양하는─그렇지만 팔에 그다지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 그녀에게 달라붙은 라리루라는 헤실거리며 웃었다.

무릎을 정돈한 베로니카도 애써서 밝게 웃었다.

“그렇지. 우울해 하고 있을 시간이 있으면 좀 더 진취적인 데에 쓰자꾸나.”

“네에~♡! 로키 님이 잠자는 공주님이 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는걸요!”

“라리루라, 방해돼. 떨어져.”

그렇게 그녀들이 자기 할 말만 하며 시끌벅적해졌을 때였다.

─우웅!

저택 거실의 구석에 자리한 마법진에서 광채가 뿜어졌다.

저택에 돌아올 때, 〈공간 이동〉의 좌표를 한 곳에 설정하지 않고 남발하면 적이 습격해오거나 할 때 방심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저택 전체에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술식의 마법진을 설치하고, 인증을 받은 사람만이 마법진 위에 워프하도록 설정해둔 공간이었다.

치링─ 치링─.

로마니아에서 귀가한 티르시는 격리공간의 해제 패턴을 입력하고 거실로 걸어나왔다.

“다녀왔어요. 어머? 이제 기운은 차리셨어요?”

“후흥. 그야 당연하죠! 계속 우울해 하고만 있었다간 선배가 로키 님을 수술대에 묶어놓기 힘드실 것 아녜요! 저희 가족의 마스코트인 저는 언제나 미소로 가득해야 한답니다♡!”

간신히 떨어져서 우쭐거리는 라리루라. 꽁하니 삐진 네페르티티는 눈을 반개했다.

“……거짓말. 라리루라 조금 전까지 슬퍼죽으려 했어. 허언증. 건방져.”

“그야 프로라도 무대 뒤에서는 한숨 지을 때가 있다구요~? 이거, 어린애도 아는 사실이니까 꼭꼭 기억해 두시기에요♡? 네페르티티 언니는 이렇게 순수한 면이 있어서 좋은 거지만요!”

“……이젠 서커스 공연도 못하면서.”

“……백작 부인이라도 공연할 수 있는데요? 저 아직 완전 현역인데요? 파릇파릇 탱글탱글한 스무 살 추정의 팬 서비스도 뛰어난 서커스단 에이스인데요?”

“귀족님을 상대로 박수밖에 못 치는 공연…… 빙 돌아간 아첨 강요. 라리루라 백작 부인의 폭정, 이대로 괜찮은가.”

“티르시 언니! 네페르티티 언니가 괴롭혀요!”

“먼저 까분 게 잘못이에요.”

뉴스 기사를 읽는 아나운서처럼 정말로 일어날 법한 가정을 읊는 네페르티티. 사이가 좋아진 증거기는 했지만, 라리루라는 아군 한 명 없는 처지에 슬프게 훌쩍였다.

“훌쩍…… 으?”

그러다가 티르시가 겨드랑이에 끼운 로마니아의 신문을 눈치채는 그녀.

‘바이츠니아 황족, 20여년만의 공식 방문?’이나 ‘다시금 되살아나기 시작한 7대신 교단의 성물들, 천상의 가호인가’ 같은 기사가 언뜻언뜻 보였다.

하지만 라리루라의 센서가 가장 먼저 감지했던 문구열은 다른 것이었다.

─전승 축제! 각양각색의 페스티벌이 준비되어 있는 수도, ‘라벤나폴리스’로!

“축제?! 축제죠?! 축제군요?! 오랜만에 서커스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군요?!”

라리루라는 로마니아의 수도에서 다시금 축제가 열린다는 기사를 콱 물고 늘어졌다.

“아, 그랬죠. 말해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활짝. 티르시가 신문을 펼쳤다.

“보시다시피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에요. 연례의 기념행사인 천통절도 국내 정서 상 거의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잖아요? 상당히 성대한 축제가 될 듯 하네요.”

그녀는 이 축제가 놀 거리가 많지 않은 【중간 가지】에서 민심을 달래고자 애용되는 권력자들의 상투 수단이라는 사실은 일부러라도 삼갔다.

정치권에 얽힌 복잡한 계산과 이야기는 전쟁의 후유증을 달래며 즐기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잖은가? 하다 못해 혹자의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로마니아가 지금과 일변된 체계로 도약하려는 첫 걸음이 되겠죠.”

“……어, 혹시 막 진지하고 숭고하고 금욕적인 축제에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진 라리루라에게 티르시는 다정하게 미소지었다.

“설마요. 연인들의 데이트나 각국의 무기, 음식, 술 장인들까지 초청하는 원로원 휘하의 첫 공식행사인걸요? 즐길 거리는 충분할 거에요.”

“꺄아아아아앗♡!! 역시 코르넬리우스 후작님에 천검제후 님!! 뭘 아시는 분들이세요!! 아니, 이럴 때가 아니죠!! 서커스 준비랑 예약 장소를 잡으러 갔다 올게요!!”

보란 듯이 기뻐하는 라리루라만큼은 아니어도,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가족들을 보며 티르시는 속으로만 몰래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노르드의 입김이 닿은 축제는 그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을 듯 했다.

***

로마니아의 수도, 라벤나폴리스.

승전의 활기로 밝은 햇살처럼 반짝이는 한때의 제국의 지하에서, 깊은 후드를 눌러쓴 남녀가 한 데 모여 음산한 촛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원 모였군. 회의를 시작하지.〉

근골융성한 체격의 사내가 의장처럼 말했다.

누군가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이 자리에 집결한 전원이 그의 말을 신의 경전이라도 되는 듯 집중하고 있었기에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잊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만, 머지 않아 이 로마니아에 축제가 시작된다.〉

─칫.

의장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여성이 발을 꼬으며 혀를 찼다.

마치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래상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것처럼.

후드를 눌러쓴 의장은 그녀의 방만한 태도를 좌시하고 손을 깍지꼈다.

〈우리 5인의 멤버에게 있어, 이때만큼 적절한 기회는 그밖에 없다……. 승전 직후기에 안이해진 시민들. 축제를 관리할 병사도 절반 가량 참석해 흐트러진 분위기. 절호의 기회지.〉

〈기대되네요. 자기과신으로 들떠 있을 놈들의 비명과 절망이 보고 싶어요.〉

여성스럽지 않게 손이 가친 여인이 키득거리자 의장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5인은 하나의 뜻 아래 천명토록 하자.〉

파란 촛불보다 밝게, 호롱불 같은 눈동자를 불태우며 의장은 낮게 속삭였다.

〈우리들── ‘로마노 연애조작단’의 발족을!!〉

뜻을 같이 하는 4명의 추종자들을 모은 이유를 말이다.

〈……저, 노르드 님?〉

〈뭐. 왜. 질문 있나, K?〉

의장 노르드는 후드 속에서 음산한 형광색 눈을 빛냈다.

〈아뇨. 그 바보 같은 컨셉이랑 코드네임은 그만두시고요.〉

─꾹꾹. 가만히 듣던 캐서린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눈가를 누르며 거수했다.

〈저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도움을 받을 만한 문제도 없으니 그만 가 봐도 됩니까?〉

〈입 다물어, C!! 나한테 이건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한 축제니까!!〉

─훌렁! 후드를 넘긴 오드리가 빼액대며 외쳤다.

〈망할 연놈들이 알콩달콩 거리며 놀고 다니는 건 배알 꼴리지만, 그런 분위기에서라면 나도!! 나도 오프툼 씨랑 핑크빛 기류를 형성할 수 있어!!〉

〈……그 뭐였지, 낮져밤이 작전? 은 관뒀어?〉

〈이것도 전부 오드리일 때랑 니르바나일 때의 갭 차이를 노리는 작전의 일환이야!!! ‘내 데이트 권유에 즐거워하는 일상 속의 그녀가, 어딘지 모르게 음지에서의 일의 동료를 생각나게 한다……?’ 라는 컨셉이라고!!!〉

〈나더러 오프툼 씨한테 축제에 가서 소문이나 정보를 모아달라고 부탁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그거야……?〉

넌더리를 낸 캐서린의 시선이 슬쩍 움직였다.

거친 손의 대장장이, 클라라는 엄지를 척 세웠다.

〈듀나미스 공방이 길드로 승격할 찬스에요! 제 금속 사랑을 비웃던 동업자들이 축제 중에 열리는 대회에서 저한테 지고 낙선해선 좌절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기대되네요!!〉

〈……아, 네.〉

물어본 그녀의 잘못이다. 캐서린은 이어서 별로 기대하지 않는 얼굴로 그녀의 고용주이자 위대한 성공신화의 주인공, 노르드 폰 울프헤딘 백작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헤니르와 싸울 때보다도 각오를 다잡으며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축제에서, 나는 티르시한테 청혼하겠어.〉

〈……축제가 개최되도록 돈과 인맥을 풀가동한 이유는.〉

〈프로포즈 각이 안 서서.〉

원래 전쟁이 끝나면 청혼하는 게 국룰 아닌가. 노르드의 결심은 확고했다.

〈아─핫핫핫핫핫핫!!! 축제!!! 대회!!! 그야말로 빵과 서커스!!!!! 사람과 사랑이 모여드는 곳에서, 향긋한 금화의 향기는 솔솔 풍겨오는 법이랍니다!!!!!〉

4명이나 아내를 들여놓고도 한결같은 고용주의 모습에 한숨을 쉰 캐서린의 귀에, 마지막 멤버의 누군지 뻔한 웃음소리가 파고들었다.

‘……도둑질 따위 하지 말고 착하게 살걸.’

더 이상 항의하길 포기한 캐서린은 열받는 푸른 촛불을 입김을 불어서 꺼트려버렸다.

축제까지 앞으로 3일.

정보상 캐서린의 업무 외 업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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