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사인회로 지쳤던 나는 베로니카 베개를 호출했다.
“……주인님. 거실에서 이러는 건 조금 아니지 않느냐?”
“벌 받는 중이면서 말이 많다. 어차피 누구 올 일도 없음.”
주인님 겸 서방님 이름을 무허가로 팔아먹었던 베로니카는 두 손을 들고 혼나는 중이었다. 나는 그렇게 벌을 받는 베로니카의 허벅-보지에 얼굴을 묻었고.
습하습하. 가끔 생각날 때마다 괘씸한 엉덩이를 주물러주면 베로니카의 변태 스위치가 들어가서는 야한 생각이 숨풍숨풍 떠오른다.
그럼 나는 허벅-보지의 감촉과 야설 매니아의 실감 넘치는 망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풍림화산인가 뭔가 하는 그거겠지.
“흐, 흥……. 별로 상관없다. 데이트 쯤이야 해 봤고? 다나한테도 굉장히 큰 폭으로 이기고 있고? 어차피 주인님이니까 나중에 벌충해줄 테고?”
“괜찮은 사람은 자기 입으로 괜찮다고 지껄이지 않습니다.”
나는 허벅지에 얼굴을 문대다가 말했다.
“라리루라는 자나?”
“어제 공연이 그만큼 화려했으니까 말이다.”
“그러게나. 자본력이 받침되면 저런 수준이 되는구만.”
화려함만큼은 다나의 연극에 지지 않았다. 원로원에서 나온 사람이 굽실대며 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까 남은 일정 동안 계속해 달라고 부탁할 지경이었으니까.
로키의 사정으로 거절했지만 라리루라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듯, 오늘 아침 다나랑 같이 티르시를 만나러 간 참이었다.
“헌데 기껏 축제 기간이거늘, 티르시는 또 어디 있는 것이냐?”
“저번에 재상 할배랑 만나더니 좀 바쁜가 봐.”
나를 위해서 하루를 남겨줬으니까 굳이 캐낼 건 없다.
‘부부라도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야 하니까.’
그렇게 베로니카랑 놀고 있자니 여관 거실 문이 열렸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쳐다봤다가 진심으로 놀라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네페르티티?! 웬 피에요?!”
얼굴과 옷에 피가 튄 네페르티티였다. 요 며칠 안 보이길래 걱정하긴 했는데, 어디서 뭘 했길래 저렇다는 말인가?
“내 피 아니야. 적의 피.”
얼른 상처를 살피며 얼굴을 닦아주자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대답했다. 씹, 존나 놀랐네. 댁이 맨날 몸 험하게 굴리니까 그런 거 아냐.
“아니 근데, 적? 무슨 적이요?”
“축제를 틈탄 악당들. 티르시랑 원로원 일. 내가 자원했어.”
아무래도 실력을 갈고 닦을 기회가 필요했던 듯 싶다. 나도 불러주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마 그렇게 되면 그녀는 보조역으로 들어갔을 테니까.
이 무식한 아가씨를 어쩌면 좋담.
내가 한숨을 쉬었을 때였다. 네페르티티의 눈이 내 고간으로 내려갔다.
“뎃.”
맞다. 딸감생성기 미스 펠라 핸들 때문에 한창 발기 중이었다.
네페르티티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노르드, 다친 여자한테 흥분해?”
“저는 그런 싸이코 변태 새끼가 아닙니다.”
나는 네페르티티를 깨끗하게 해 주면서 발기를 가라앉혔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베로니카가 무슨 이유로 벌을 받는 중인지를 물었다.
“응…… 어떤 일이든 칭찬과 질타는 중요.”
대강 설명하자 네페르티티는 내 핸섬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르드. 나도 일 많이 했어.”
“예? 아, 뭐 그렇죠?”
“모험가로서 보수, 원해.”
공손하게 손을 모아서 포상 ‘줘’ 라며 내미는군.
나는 당황했지만 티내지 않고 대답했다.
“네페르티티라면 일부러 보수를 따지지 않아도 원하는 건 되도록 들어드릴 겁니다.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으세요?”
“응.”
이 뛰어난 투사 아가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주 간단한 부탁.”
그녀의 얼굴에 보기 힘든 기대감이 몽글거렸다.
***
우리 집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사람은 의외로 티르시다.
라리루라도 패션 센스라면 지지 않지만, 소량의 옷을 돌려입는 재주는 뛰어나도 옷은 많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 의외일 것도 없이 프랑이고.
말할 것도 없는 너드 여신 콤비 중에서는 겉옷, 바지 등을 TPO에 맞춰서 입는 다나가 그나마 더 낫다. 일하러 갈 때마다 가운을 입어서 그렇지.
그러면 네페르티티는 어디 쯤에 속하는가.
그 점을 얘기하려면 매일 전투복을 입고 다니는 걸 ‘패션 센스’의 일환으로 재단할 수 있느냐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네페르티티가 실내복과 전투복 외의 옷을 입는 걸 본 건 오늘을 포함해도 한 손가락에 꼽기 때문이다.
“외출 준비 끝.”
나르메르-나일의 귀족들이 입을 법한 의상이다. 판타지 느낌이 가미돼 있기는 하지만 장식이 근사해서 외출복 느낌이 들었다.
그 누구더라, 파라오 양반 딸내미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거였다.
“……우선, 피부색은 왜 그렇게 됐나요?”
“세크메트 길드식 위장술.”
“갈색으로 태닝한 게 어디가 위장입니까.”
맞다. 이 아가씨는 무려 매직 아이템을 사용해 자기 피부색을 건강한 갈색으로 바꿔버렸다. 이제 막 로키의 반지를 꺼내려던 나는 탄식했다.
“변신…… 변색? 어쨌든 하루면 풀려.”
“그건 다행입니다.”
태닝이 거부감이 드는 건 문신처럼 한 번 하고 나면 돌이키기 힘드니까다.
문신보다는 낫겠지만 몇 달을 갈색 피부로 사는 네페르티티를 볼 일은 없을 듯 했다. 그리고 그런 안심감을 포함하고 나서 보면 생각보다 괜찮다.
탄탄한 몸매에 갈색 피부라는 조합인데 안 꼴려?
나는 레이시스트가 아니기에 꼴린다. 가끔 먹는 스파이스로는 제법 좋았다.
“큿, 크으으읏……!!”
하지만 벌을 서는 베로니카가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달리 있었다.
“주인님, 어찌 안 되겠느냐?! 시종! 시종이라도 좋으니 나도 같이 데려가거라!”
“노예 취급을 해도 좋아할 테니까 안 됨.”
나는 베로니카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맞다. 두 발을 무릎 꿇고 있는 그녀와, 서 있는 내가 눈이 맞았다는 소리였다.
나는 잼민이처럼 작아진 손을 쥐었다가 폈다.
“그리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나이가 조금 어려진 것 뿐인데.”
맞다. 지금 나는 코난 도일도 좋아하는 회춘약 아포톡신 6969를 먹은 것처럼 잼민 북호로 변한 상태였다. 네페르티티의 부탁이 이거였던 것이다.
베로니카는 내가 단호박으로 굴자 네페르티티로 타겟을 바꾸었다.
“네페르티티! 우리들이 주저하느라 사용 허가를 요청하지도 못했던 비대칭병기를 혼자 독점하다니 너무하지 않느냐! 이건 폭거니라! 나도 어린 주인님을 안아볼 권리가 있다!”
“……천공신류 「오의」 애써릴 오버 드라이브.”
“아흑.”
전사의 승부에 비겁함이란 없다지만, 지금 저건 쬐까 치사한데.
창작자에게 있어서 부랄 공격에 버금가는 금칙 공격은 창작물 속 대사를 그대로 읊는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억 소리도 못 내고 침몰했다.
─휙.
9~10살 응애로 변한 나를 안아든 네페르티티는 특유의 어렴풋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페르티티가 좋으면 됐지.
“어디로 갈 겁니까?”
“축제는 안 돼. 오늘은 제일 번잡한 날.”
그렇겠지. 7대신의 인공신좌가 돌아왔다는 것을 과시하는 이벤트가 있다.
로키가 안 보이는 이유도 그거다. 이제 거기서 교황들이 로키를 언급하고 기도를 할 예정이니까. 오늘내일은 실타래 뽑느라 바쁠 걸.
“그럼 어디로?”
“티르시네 옛날 영지.”
“엥?”
─파앗!
네페르티티는 날 데리고 워프 장치를 탔다. 몇 번 워프 셔틀로 불렀더니 바이콘들이 만들어다 준 매직 아이템이었는데, 덕분에 눈을 뜨자 우리들은 처음 보는 영지에 있었다.
─뚱, 땅! 뚱, 땅!
망치질 소리가 요란하다.
골렘들이 디스토피아 SF 사회처럼 인력을 대체해버린 공사현장이었다.
대체 뭘 만드는 건지, 가난한 작은 마을을 거의 밑바닥부터 새로 짓는 것처럼 고쳐 세우고 있다. 로마니아의 직인들과 드워프, 가끔 엘프도 보인다.
“뭐하는 데랍니까, 여긴?”
“라리루라, 아무 말 안 했어?”
라리루라 또 또 너야?
무슨 존나 큰 케이지에 들어간 햄스터도 아니고 눈을 잠깐 뗐다 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구만. 내가 혀를 내두르자 묵직한 소리가 났다.
“꺄아아앗─!! 다나 언니!! 무너져요, 무너져─!!”
“실험이라매!! 실험이라매!! 시발 당연히 한두 번 쯤 무너지지!!”
쿠구구구궁─!!!!
폭격이라도 있었나 싶어서 쳐다봤더니, 큼직한 쇳덩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날아다니는 발퀴리에들이 받쳐서 옆에 눕혀놓기는 했지만.
“프랑! 측정 틀린 건 아니지?!”
“응. 계산대로 맞췄어. 드씨 말로는 이 크기여선 하중을 못 견딘대.”
“젠장. 아무리 마나 금속이 양산 가능해도 이거 이상의 금속은 단가가 안 맞는데.”
다나가 먼지를 닦으며 혀를 차자 클라라가 펄쩍 뛰었다.
“아녜요, 아녜요, 사모님!! 지지대만 잘 받치면 아무 문제 없어요!!”
“아핫♡! 취소될 일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이 프로젝트는 멈추고 싶어해도 늦었거든요! 티르시 언니가 원로원의 후원과 인가까지 받아버려서!”
“행동력 장난 아니네. 한 번 더 갈까?”
“그러자. 내 마나는 괜찮아. 골렘들이 몇 마리나 부숴지긴 했지만. 헤헤.”
뭐여 시벌. 우리 마누라들이 다 모여 있네?
티르시 이름도 나왔고, 네페르티티도 날 데려온 걸 보면 알고 있던 듯 싶다. 그럼 나랑 베로니카만 몰랐다는 거네?
이 여편네들이 건방지게 서방님을 따돌려? 유교 탈레반의 정신으로 남편이 얼마나 하늘 같은 존재인지 알려줘야 할 때가 와 버린 것인가?
“테에엥……. 왕따당한테치……. 슬픈테치…….”
내가 훌쩍대자 네페르티티가 나를 쓰다듬었다. 마마, 위로해주는테치…….
“그래서 뭔 일입니까, 이게?”
훌쩍대다가 질문하는 나. 이 스케일을 보아하니 상당히 굵직한 작업 같았다.
‘인부들 숫자만 봐도 꽤 되고.’
전선 요새라도 구축하나 싶었는데, 성벽은 벌써 골조를 잡아놨고 아내님들은 뭔가 기동 실험 같은 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네페르티티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댔다.
“비밀. 말 못하도록 유출 엄금 당했어.”
“엥? 저한테도 비밀이라고요?”
“응. 노르드랑 뿔 엄마한테는 특히 비밀.”
뿔 엄마라는 건 베로니카의 애칭? 같은 거였지. 나는 조금 눈을 찌푸렸다.
“쟤네가 저러는 거면 다 이유가 있겠죠. 이해해 주면 그만이긴 한데, 그럼 네페르티티는 절 여기 데려오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비밀인 것 자체는 상관없다. 저번에 라리루라가 뭔가 아이디어를 얻은 거 같았고,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조만간 알려줄 것 아닌가?
네페르티티는 살포시 미소지었다. 마치 비밀을 공유해주는 연상의 언니 같았다.
“데려오지 말라고는 안 했어.”
“……그거 참.”
말은 하기 나름이라지만 대단도 하십니다. 나는 히죽 웃었다.
“저한테 숨긴 걸 보면 몰래카메라를 노린 듯한 느낌인데, 이런 장난은 당하는 척 거꾸로 속이는 게 또 꿀잼이죠.”
“응. 역시 마음이 맞아.”
알아줘서 기쁘다는 듯 미소짓는 네페르티티.
그러나, 그때였다.
─파앗!
우리가 있는 곳이 전망이 좋은 포인트였기에, 이 위치로 다른 누군가가 〈공간 이동〉을 시전하는 기척이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어머?〉
아니,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바로 등뒤에 나타난 사람이 어지간한 실력자였기에, 이 타이밍에 몸을 날려도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는 들키고 말 것이었다.
우리 달인급 전사 부부는 찰나지간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행동을 자제했다.
네페르티티의 옆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돌아본 곳에는 아름다운 백발의 미녀가 1명. 요즘 바빠서 보기 힘들던 우리 마법사님, 티르시였다.
‘시발 좆됐죠? 바로 들켰죠?’
심장이 덜컹했지만 나는 초월자의 전투본능으로 바로 이성을 되찾았다.
오히려 잘 됐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막막했겠지만, 상대는 내게 몸도 마음도 영혼도 내주는 흑우, 아니 백우 티르시 아닌가?
이건 당장 덮쳐서 자박꼼해준 다음에 최면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없겠군. 으럇! 최면 시간이닷! 듬뿍 질내사정해서 내부 첩자로 만들어주맛!!
〈아, 혹시 나르메르-나일에서 와 주신 투자자 분이신가요?〉
……데뎃?
우리에게 말을 건 티르시는 마치 누구인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처럼 비지니스 미소를 지었다. 꼭 돈이 한참 필요한 와중에 돈 나올 구석을 발견한 것처럼.
‘……아, 로키의 반지!’
불현듯 손가락이 끼운 반지를 보는 나.
로키가 말하길, 이 반지는 내 원래 얼굴을 아는 사람한테는 안 통한다고 말했다. 안면인식장애를 거는 환상이지만 미리 기억해둔 뇌의 정보까지는 간섭 못 한다는 뜻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네페르티티는 도미노시티의 듀얼 토너먼트에서 제물을 숨긴 폭탄을 쓸 것 같은 섹시한 태닝 여신관이 돼 있었고, 지금의 나는 초1 잼민 모드.
둘 다 기존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그 덕에 효과가 발동한 거라면?
티르시는 우아하게 손바닥으로 공사현장을 가리켰다.
〈잠시 같이 와 주시겠어요? 설명해 드릴게요. 분명 아드님 마음에도 쏙 드실 거라고 생각해요.〉
아드님이라. 우리가 나르메르-나일에서 온 태닝 마담과 그 아들로 보이는 걸까.
나랑 네페르티티는 아이 컨택트를 시전했다.
─무슨 일인지 말하지는 말랬지만, 듣지 말라곤 안 했죠?
─노르드, 악당 같은 표정 짓고 있어.
─피장파장이죠.
우리는 마치 친밀한 모자처럼 웃었고, 네페르티티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설명 부탁해.〉
흐흐. 투자자를 원하는 거라면 말을 하지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