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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르시의 결혼식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출마를 미네르바에게 맡기겠다는 얘기에 놀랐던 틀딱 듀오─어느샌가 재상까지 더해져서 트리오가 된 그들─도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니 결혼 준비에 거의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하지만 의원석 정도는 받아가도……
─기회야 또 있겠죠. 지금은 사랑하는 그이에게 충실하고 싶어요.
하룻밤 만에 완전히 암컷복종하고 포기했어요, 라는 말을 기품 있게도 하신다.
“식장은 잡았고, 공연이나 서순도 이 정도면 될 듯 합니다. 축사는 코르넬리우스 어르신께 맡기죠. 하객으로 불러서 올 만한 지인이 없다 보니 오는 사람은 대부분 남남인 귀족이겠지만──”
“다섯 번째다 보니 능숙하시네요.”
악. 이건 너무 아프다. 죽었다….
“후후. 장난이에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습니다.”
남편을 괴롭히는 못된 입이 닫히도록 옆구리에 끼우고 쬐만한 유두를 만지작대자 티르시는 다신 그런 나쁜 말을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빠르게 남은 일정을 소화하자 결혼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왔다.
“왜 우리 나라 백작인데 로마니아에서 결혼해? 왜 우리 나라 백작인데 로마니아에서 결혼해? 왜 우리 나라 백작인데 로마니아에서”
“사정이 있으니까 진정 좀 해요 공주님아. 정령들이 저한테 이빨 세우잖습니까.”
“결혼 축하한다. 앞으로 이 말을 몇 번 더 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노 코멘트로.”
《왔노라! 보았노라! 먹었노라!》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만, 파라오. 일은 안 하십니까?》
《……그, 아버님이 죄송합니다.》
나랑 안면이 있는 왕족 나리들이 직접 찾아와서 ‘마! 내가 울프헤딘 결혼식에도 참여하고! 으이?!’ 하다가 떠나갔다.
【니다벨리르와 금속 가공 기술을 협업하고 발전시키실 생각은……】
【파라오와의 계약 문제가 있어서. 그분을 먼저 찾아뵙고 대화를 나눠보심이 나을 줄로 압니다.】
【……그 셰드멘호테프께서는 어디에?】
【집에 가셨는데요.】
니다벨리르의 여왕님도 인형으로 축하하러 온 척 딜을 걸었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 본체로 오지도 않다니 감점이다. 예의를 밥 말아먹은 미-개하신 귀족은 용서하지 않아욧!
잘난 분들은 그만큼 바쁜지 축하와 선물만 건넨 뒤에 사라졌다.
끝까지 남아준 엘리자베트 부부에게 감사다.
〈이 경사스러운 날, 울프헤딘 백작의 부탁으로 주례를 맡은 코르넬리우스 폰 아르마알스입니다. 왕족 분도 계시는 와중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전언 철회. 어르신한테 ‘니가 먼데 차기 여왕을 두고 주례를 서냐 틀딱아’ 라는 암묵의 딜교를 걸 생각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묘하게 사람 좋은 파라오는 눈치까고 미리 가 준 거고.
물론 진짜 엘리자베트도 진짜로 멱살 잡겠다고 이니시를 건 건 아니다.
〈역시 아르마알스 경…. 실질적인 권력은 왕족 이상인가.〉
〈권위로는 사실상 다음 황제 수준이라더군.〉
〈아무렴. 원로원 안에서도 발언권과 조율을 할 역할은 있어야 할 터이니.〉
국가 체제를 쇄신하는 과정에서 그 일을 주도할 인물은 필수불가결하다.
개인의 권리가 정말로 동등하고 책임을 부과할 수단도 없다? 그러면 그 배는 산으로 직행하게 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조별과제가 좋은 예시잖은가.
교수들은 채점과 시험이 편하고 자신의 가학적 꼰대-스피릿을 충족시켜주는 조별과제를 남용한다. 그러면서 ‘사회에서도 이런 협력은 자주 있으므로 이건 사회 예습임’ 같은 소리를 하지.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겠다.
대학에 오는 학생 중 몇 명이나 조별과제에 책임감을 가지겠느냐고!
사회에서는 최소한 좆대로 굴면 대가를 치루게 될 여지라도 있지, 조별과제는 씹새들이 트롤링한 대가를 성실한 사람들이 받는다.
트롤러를 제재할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미물들을 통솔해서 관리하라는 말인가? 지들도 관리 못해서 강의평가도 좆 박고 조교한테 짬처리하면서.
인간은 얼굴에 달린 항문으로 똥을 싸지르다간 인생을 좆박는 회사에서도 끝내 염병을 떨어대다 인실좆을 당하곤 하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자기 행위에 페널티가 없다면 이 나라 귀족들은 극한의 이득충 마인드가 됐다가 그대로 과제를 폭발사산 시켜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지 않으려면 권위 있는 조장이 필요하지.’
군대의 계급은 그 자체보다는 거기에 동반되는 규율이 있어서 힘을 가진다.
유교의 나라, 킹한민국에서도 나이가 1~2살만 차이 나면 신분이 ‘야’랑 ‘형’으로 갈리지 않는가.
굳이 신분이나 그런 게 아니어도 된다. 그냥 그 사람 눈치를 보느라고 시즌 34번째 증조할배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게만 돼도 충분하지.
‘교수 새끼들이 조장에게 그만한 권한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지만.’
교수는 보통 인간의 감정을 보유하지 못한 종족.
백날 말해줘도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랑 티르시는 매우 잘 알았다.
─귀족과 교수는 흡사합니다. 악행에 손을 물들이기 쉽죠.
─그 논리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지만, 하고 싶으신 말은 이해했어요. 권위는 존중에서 나와요. 귀족들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그것뿐이고요.
─예. 어르신께 권위를 부여해 드려야 합니다.
─이 결혼식이 기회가 되겠죠. 염려 마세요. 몇 번이나 말하지만, 저는 몹시도 계산적인 여자라서. 결혼식의 정치활극의 무대가 되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됐다.
‘니미 씨발. 귀족의 결혼이란 이런 법인가.’
역겨운 얘기지만 티르시가 원했으니 내가 싫다 할 수도 없다.
‘역시 교수는 어디에나 있고, 만악의 근원이군.’
턱시도를 입은 나는 입구 앞에서 티르시를 기다리며 치를 떨어야만 했다.
하여튼 씹놈들. 즈그들 연구비를 슈킹당했는데 대학에서 ‘나눠 쓰라고 줬구만 협력도 못 해놓고 펑크 냈으니 느그들 잘못임. 올해 연구실적평가는 C임’ 이라고 말해주면 바로 알아들을 텐데.
“왜 또 그렇게 기분이 나빠지셨나요?”
“그야 그렇죠. 좋은 날에 토 나오는 꼴을 보고 있는데 즐거울 리가──”
티르시가 다가오며 묻자 대답하던 나는, 가까이 온 그녀를 보고 입을 닫았다.
그녀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못 보는 문 앞에서 드레스 자락을 잡고 빙글 돌았다. 붕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드레스가 풍성했다.
“조용해지신 걸 보니 마음에 드셨는가 보네요?”
“……예, 뭐. 아름다우시네요.”
나는 뺨을 긁으면서 쪽팔리게 칭찬했다. 수수한 꽃다발처럼 꾸민 티르시는 팔짱을 꼈다. 데이트 때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어색하진 않았다.
“좋은 날이잖아요? 죽상 짓고 계시면 못 써요.”
남편의 입꼬리를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밀면서 우리 마법사님은 미소지었다.
“아니면 혹시, 저만 즐겁나 보죠?”
“……나빴다, 진짜. 여기서 가불기를 거시네.”
나는 어르신이 부를 때까지 그녀를 힐끔거리다, 결혼식장으로 나아갔다.
〈내 존경하는 친우의 손녀딸이 행복을 찾으러 떠나는 모습을 배웅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 천상의 신들께서 제게 꽃잎을 뿌릴 때까지 천명을 허락해 주셨음에 영광입니다.
이 노구(老軀)는 삶에 기쁨만이 있지 않음을 잘 압니다. 허나 걱정은 추호도 되지 않습니다. 이미 그녀의 품에는 넘치도록 많은 행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은 돌아가신 티르시의 조부와, 젊을 적에 짝사랑했던 조모님을 비춰보는 듯 자신의 축사를 음미했다. 그리고 온화한 목상처럼 미소지었다.
〈젊은이들이여, 꿈꾸기를 허락받은 보석들이여. 그대들의 앞날에 축복 있으라.〉
그날은 어르신의 축사와 교황들의 축복을 받고 나서부터 쭉 귀찮은 인간군상이 우리와 가족들의 주위를 파리 떼처럼 꼬여 왱왱 울어댔지만.
내 곁에서 연신 웃는 티르시의 얼굴을 한 번 슥 보면, 그것만으로 웃음꽃이 피는 결혼식이 되기에 하등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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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인한 놈들. 파릇파릇한 것들이 늙은이를 부려먹다니.〉
결혼식의 뒷정리를 하는 자리에서 어르신은 팍 찡그린 얼굴로 불평을 하셨다.
뭐지 쓰벌. 좋은 말 하시다가 갑자기 왜 이러셔.
〈왜기는 왜인가? 난 끝내 죽을 때까지 저 욕심 뒤룩뒤룩한 귀족 놈들 똥을 치워야 할 처지잖나. 그것도 젊은 것들이 지들은 하기 싫다는 이유로.〉
〈하하하하하.〉
조별과제 조장을 맡게 된 어르신께서는 불만이 많으신 모양.
〈그치만 손주 분께 이것저것 물려드리려면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그거라도 아니었으면 처음 만난 날처럼 칼을 뽑았을 걸세.〉
히히. 이젠 맞아도 안 죽지롱.
〈황권이 무너진 이상, 우리는 신앙심과 타협을 기반으로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서 군웅할거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자네들에게 맡길 만한 일은 아니긴 해.〉
몇 마디 불평하던 그는 담배를 물었다.
〈쯧. 내 정신 좀 보게.〉
그런 다음 티르시를 보곤 도로 집어넣었다.
〈참지 말고 피우셔도 돼요. 저는 괜찮아요.〉
〈됐네. 손주 놈을 봐서라도 끊어야겠네. 자네도 결혼까지 했으면 머지않았을 텐데, 나 치매 걸리기 전에 좋은 소식이라도 들려주는 게 훨씬 더 기쁠 걸세.〉
노인네들이 자식 낳으라고 뭐라고 하는 건 만국 공통인가.
아니, 세계 공통이군.
〈그래. 축사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감개무량한 일이군. 그 녀석들 피가 안 끊어지고 제대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럴 자격도 없을 텐데 감격스럽기까지 해.〉
혀를 끌끌 차던 어르신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이 행운을 귀히 여기게나. 좋은 남편도, 좋은 애비도 못 된 노친네의 조언일세. 귀 기울여줬음 좋겠군.〉
〈오늘따라 왜 그렇게 패기가 없으십니까? 좀 더 평소처럼 대담하게 말씀하시지.〉
나한테 가문의 명패를 내주던 분이 이러시니까 불안하잖아.
〈자고이래 고약한 늙은이는 남은 날도 무기로 쓸 수 있어야 하는 걸세.〉
내가 챙겨온 아르마알스 가문의 명패를 흔들자 그는 껄껄대며 말했다.
〈티르시 양은 힐끗 봐도 쑥맥에 얌전해 보이니 밤낮 가리지 말고 배려해주게. 이만한 미인을 부인으로 둔 자네에게는 힘든 얘기겠지만.〉
〈예. ……예? 아, 음, 예. 그렇죠 뭐.〉
〈조금 불만스러울 수도 있지만, 강요해서는 안 돼. 부부란 상대방에게 맞춰줘야 하는 걸세. 어느 때라도 말이야.〉
그렇게 말한 어르신은 마치 처음 연애하는 친구네 중딩 손녀딸을 보는 표정으로 티르시를 보고서 지팡이를 짚으며 떠나가셨다.
나는 그렇게 그가 떠나가기를 10초 정도 기다렸다가, 다른 아내님들이 하품하며 다가오길래 때가 늦어지기 전에 납득한 것처럼 말했다.
“가녀리고 병약하며 정숙한 미인 영애가 저처럼 억센 남편의 밤일을 못 따라왔다는 얘기, 의외로 귀족들 사이에선 드물지는 않은가 보더군요.”
“……………….”
“그야 뭐, 귀족의 의무는 후손을 낳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평범한’ 영애는 거친 밤일에는 미처 못 따라올 만 해요. 티르시는 워낙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예쁘장하고 덧없는 미인이시기도 하고요.”
하얀 머리에 눈썹도 피부도 다 하얘서, 신비한 눈의 정령이나 여신 같은 느낌은 든다. 특히 인공신좌를 계승한 지금은 더 그랬고.
“최소한 응아아악♡ 히이이이♡ 보지 망가져엇♡ 거릴 듯한 느낌은 아니죠.”
아암. 그렇고 말고.
최면 어플에는 약하게 생기긴 했지만 말이다.
“케히히히. 정숙하고 얌전한 영애님? 왜 대답이 없으시데샤아아악?!”
─콰직!
나는 구두를 벗은 티르시에게 진심 어린 힘으로 발을 밟히고 비명을 질렀다.
단지, 밟히는 나보다도 티르시 쪽이 사춘기 때 찍은 자위 동영상을 들킨 사람처럼 자살하기 일보 직전인 얼굴이라 항의 한 마디 할 수가 없었다.
“……못됐어. 못됐어!! 못됐어!!! 노르드, 진짜 못됐어요!!!!!!!”
울며불며 내 발등을 밟는 티르시.
분명 이번 건 내가 지나쳤다. 못 들은 척 하고 넘어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티르시도 좋다고 응아악 했으면서!!!!”
“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콱! 뒤지게 아픈 정권 지르기가 명치에 꽂혔다.
“응아아아악──!! 결정타 데샤봇──!!”
체감상 수르트 뺨치는 데미지에 나는 뒤로 나뒹굴었다.
우리 대마법사님은 펀치력도 초일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