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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섬의 위치는 내가 알아냈다.
“드림워킹.”
드르렁─. 나는 갑판 바닥에 누워서 잠들었다.
‘어젯밤 질펀하게 구르길 잘 했군.’
셰이드의 주술을 발동해서 해역을 싹 뒤졌다.
고대문명 황금시대의 유물도 내 눈깔을 벗어날 수는 없다. 위치를 찾아내고, 나를 감지하지 못한 보스 스펙터와 해역을 지나칠 만큼 철두철미하게 분석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험할 일이 없다지.
“오징어덮밥!”
조사를 마치고 기상.
중간에 잠깐 눈을 떠서 섬의 위치를 알려준 걸 빼면 1시간쯤 지났다.
시체섬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여기에서 가깝지 않았으면 표류했던 델타사는 우리랑 만나기 전에 죽었을 것이니까.
조금 접근하면 저쪽도 우리를 눈치채고 섬에서 나오든가 반격하려 들 듯 하다. 해상전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빠르게 접근할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나는 우리 아내님들을 불러서 말했다.
“유령선단의 지휘선은 저 시체섬으로 돌아갔어. 보스 스펙터가 유물을 돌려놓는 동안 잡졸이 잔당 처리를 나서는 방식인가 보더라고.”
“군을 분리했다고? 뭐가 그리 비효율적이래?”
“생전의 방식대로 한 거겠지. 패잔병이나 해적 놈들을 추적하는 정찰 부대를 편성하는 전략이라 생각하면 그럭저럭 멀쩡한 방식 아닌가?”
“글쎄다? 배가 수십 척 있으면 몰라, 11척밖에 없는데 3척이나 정찰로 빼는 건 멍청한 짓거리야. 네페르티티 말대로 지능은 높지 않은가 본데.”
다나는 내가 대답해주자 성유물 목걸이에 손을 가져갔다.
“운이 좋았네. 저기만 소탕하면 유령 새끼들이 생사람을 잡는 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
“우리 누나 이번 시즌에 왤케 착해짐? 슈퍼솔져 혈청을 잘못 맞았나?”
“나는 니놈 새끼 이외의 대다수에겐 친절해.”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이군. 가엾고 딱한 츤데레년.”
“자식이라면 미워도 떡 하나 더 주겠는데, 미운 남편 새끼는 정신 차리고 백조가 될 때까지 빤스 바람으로 쫓아내는 수가 있다.”
“가장의 의무를 잠시 잊고 외박 나가서 쉬다가 오라는 뜻인 것? 츤데레의 사고방식은 로키 특제 번역기로도 알아듣기 힘들군.”
“노르드 외박해? 그럼 나도 갈래.”
“가정을 버려두고 딴 여자랑 외박 나가는 씨발놈.”
“브루투스한테 찔린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랬나.”
뇌를 비우고 뱉은 멘트를 앨리웁으로 꽂아넣네.
내부의 스파이가 이렇게 무섭다. 내가 싸우기도 전부터 힘이 빠져 있자, 티르시가 얼굴이 굳어선 황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서방ㄴ…… 노르드! 큰일 났어요! 정박 가능한 해역에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있어요! 바다 밑의 암초에서 어떤 마법이나 유물이 작용한 거에요!”
“알고 있슴다. 처음엔 같은 히타이트의 배니까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암호가 필요한 시스템이라 100% 발동할 거 같더라고요.”
대답하는 내가 차분하자 티르시는 살짝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알고 계셨던 거네요. 전 또 이 비싼 배가 가라앉으면 어쩌나 해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왜 당황하나 했더니 그런 이유였냐고. 뼈에 밴 소비패턴과 금전 감각은 자산이 늘어나도 쉽사리 빠지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대귀족 출신인데 가계부를 꼼꼼하게 쓸 것 같은 우리 마법사님이시다.
”어떻게 하시게요? 유물을 부수시게요?”
“깊숙한 곳이라서 손이 많이 갈 겁니다. 이렇게 하죠.”
나는 갑판을 가로질러서 뱃머리에 올라탔다.
“은둔 생활을 청산할 시간이에요♡”
같이 올라온 라리루라가 권능으로 공간 은폐를 철거했다.
차원을 넘나들고 주무르는 유희신의 권능이다. 일개 보급기지가 저항할 수 있으면 그게 더 놀랄 노 자겠지. 비행하며 날아온 보스 스펙터가 아직 멀리 보이는 해변에 착지했다.
─바다여(????????????????), 거칠어져라(????????????????????).
생전에 제독이었던 보스 스펙터가 주문을 외자 쓰나미 일 듯 파도가 사나워졌다. 해상전에 아주 유리할 듯한 마법이다.
“우, 울프헤딘 백작님!! 큰일입니다!! 배가, 배가 가라앉을 겁니다!!”
갑판에서 델타사가 겁에 질려서 외쳤다.
암무나 호에 숨어있는 것보다 우리 근처에 있는 편이 훨씬 안전하니까 끌고 나온 것이었다. 단지 정신적인 부분에서까지 평온할 거라고는 보장 못 하지만 말이다.
“안 가라앉습니다.”
나는 제독의 마법으로 해일이 솟으려 할 때, 그 마나를 예지하고 배를 전진시켰다. 그러면서 적의 마법을 분해하고 통제권을 잠시 빼앗았다.
거칠게 날뛰는 소용돌이의 흐름이 내 손에 잡힐 듯 하다.
“다들 꽉 잡아!!!!”
나는 해일을 일으키는 물의 마나를 그대로 운동 에너지로 전환했다.
투우웅─!!!!!!
암무나 호는 녹 업 스트림을 맞은 것처럼 45도 각도로 발사되었다.
“히── 햐!! 이대로 꼴아박는닷──!!”
“끄아아아악!! 배를 버려라아아아아악!!!”
죽기 싫은데샤아아악을 외치며 정신이 나가버린 델타사를 발퀴리에가 낚아챘다.
배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정점에서 멈춘다.
추력을 잃었다면 이제 남은 건 추락뿐. 오황의 배, 사우전드 써니 호도 영원히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던가. 그 말엔 조금 어폐가 있다.
나는 날개가 없는데 허구한 날 하늘에서 떨어지거든.
그리하여, 암무나 호는 고향 친구들과 키스했다.
쿠르르르르르릉 쾅──!!!!
우지지지지직, 쿠구구궁!!!!!!
포탄처럼 날아간 암무나 호가 정박해 있던 유령선들을 갈아버렸다. 나는 초토화된 배의 파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착륙.”
“착륙은 씨발놈아 배가 땅에 내려야 착륙이고!!”
“우리 인간적으로 착륙하구 추락은 구분하자, 노르.”
자음은 비슷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암무나 호는 모래사장과 배 위에 어슬렁거리던 유령 선원들을 압사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당연히 그 대가로 살짝 옆으로 기울긴 했지만, 눈감아줄 수 있는 실수 아니겠나.
“훌륭한 히어로 랜딩이군요. 10점 드리겠어요.”
“……이 와중에 배는 멀쩡하군.”
“내가 지켰으니까.”
야수회귀의 마나로 선체를 감싸지 않았으면 이 배도 찌그러졌겠지.
“이제 혹시 모를 줄행랑은 불가능하다.”
배들이 엉키고 뒤집어져서 항해고 지랄이고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유령선들은 바다로 도망치지 못한다.
‘반면에 우리는 언제든 〈공간이동〉 등으로 튈 수 있지.’
적들의 퇴로를 막고 아군의 힘을 살린다! 이게 책략이 아니면 뭐겠는가!
“내가 지휘관의 자질이 있었네. 군인 대우만 좀 좋았으면 별 달았다.”
나는 초토화된 모래사장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흙먼지를 걷어내며 냉큼 창을 뽑았다. 날카롭게 선 브류나크가 화사한 햇살에 번뜩였다.
권능을 발동하며 기어올라온 스펙터 한 놈에게 바람구멍을 냈다.
“티르시! 전선의 마나를 얼려서 무차별 포격을 막아요! 다나는 에인헤리를 늘려! 프랑하고 네페르티티는 가호를 받고 수비! 베로니카랑 라리루라는 날 따라와!”
─츠팟! 오러로 적들을 도륙하며 돌진했다.
노리는 건 보스전이었다. 보스 스펙터의 마법은 제법 강했다.
권능을 쓸 수 있을 정도인가는 봐야 알겠지만─적이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분석도 못 하니까─, 좋을 대로 활개를 치게 두기는 위험했다.
─날개여(????????????????????).
음산한 목소리로 마법을 쓴 스펙터가 원념처럼 거무죽죽하고 암회색의 마나를 덮고 날아올랐다. 나는 구름을 발에 휘감았고 베로니카는 비행했다.
“히타이트에 화장(火葬) 문화는 있나요! 없다면 미안해요☆!”
권능으로 공간을 누비는 라리루라가 꼭두각시로 포격했다.
똑같은 화력 중시 모델의 링링이 7호가 막대한 화력을 투사했지만 스펙터는 피하지 않았다. 놈이 눈을 부릅뜨자 분홍색 레이저가 중간에 소멸했다.
“앗, 권능이에요?! 마스터 클래스 좀 너무 많지 않나요?!”
“인류의 시대는 길었느니라. 태초신들이 세상을 맡긴 혼돈의 총아들이 이 정도도 못하면 그게 더 곤란한 일이지.”
베로니카는 뿔과 눈을 빛내면서 지팡이를 앞에 내밀었다.
“그러니 그대도 이만 잠들거라. 수만 년을 거쳐 태어난 초월자들이 모두 영면을 거부했다간 인간 세상에는 독재와 침체밖에 남지 않느니라.”
성유물의 힘이 거리를 무시하고 보스 스펙터의 혼에 마법을 맞췄다.
힐끔 보자 비행을 금지시키는 마법이었다. 나는 곧장 몸을 대며 들어갔고, 적의 추락을 예상하며 【게르튀르 푸타르크】의 절기를 펼치려 했다.
‘이런.’
하지만 예지로 본 결과는 조금 이채로웠다. 난 창을 대충 휘둘러서 보스 스펙터를 베고 후방으로 뛰었다. 오러에 찢겨나간 보스 스펙터가 그 상태로 주문을 외웠다.
─압착(????????????????)!
순수한 압력이 베로니카를 노렸다. 나는 그녀를 안아들고 지그재그로 몸을 피했다. 베로니카는 그 와중에도 마법 반딧불들에게 주문을 준비시키면서 외쳤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막을 수 있었느니라!”
“못 막아. 너 뚫렸어.”
순간 말문이 막힌 듯한 베로니카. 나는 회피를 하며 마법을 받아쳤다.
“……그럴 만한 위력은 아니었는데?”
“권능이겠지 뭐. 저 새끼 저거 회복한 게 아냐. 내가 필살기를 맞춰도 안 뒤지더라고. 그래서 걍 간단하게 뿌리치고만 온 거고.”
내 눈은 예지의 힘을 빌어서 분석을 끝냈다.
“마나에 기인한 공격을 무효로 하는 권능이군. 출력은 낮아. 솔직히 그닥 강력한 권능은 아니지.”
애초에 권능이라기엔 한 발짝 모자란 수준이다. 생전에 뛰어난 마법사였던 놈이 죽어서 원념으로 강해져서 간신히 경지에 오른 듯한 인상이었다.
─콰직, 콰직!!
안 보이는 프레스기가 날뛰는 것처럼 모래사장 주변이 푹푹 파였다.
“꺄앗!! 날씬해지고 싶긴 하지만 짜부라지는 건 싫어요! 그리고 마나 공격이 안 통한다면 선배가 창으로── 아!”
공간지각력으로 마법을 감지하고 피하던 라리루라가 문제를 눈치챘다.
“유령은 창칼에 좀 맞는다고 안 죽잖아요?!”
“그래. 방금 봤잖아.”
─싹둑! 마법을 베어내며 내가 대답했다.
‘일단 저 새끼가 날린 마법 자체는 벨 수 있군.’
자기 몸만 지키는 권능일까? 마법사답긴 했다.
아니면 권능이 작용하는 대상을 고르는 식인가.
‘……해상전의 꽃은 포격이고, 이세계의 포격은 거의 다 마법이지.’
그래서 해군 제독인 보스 스펙터는 마법사였다. 배를 지키는 건 해상전의 기본일 테고, 적선(敵船)에서 날아온 마법을 막는 것도 저들의 일이다.
‘마법을 막는 권능이 생길 만해. 저놈이 바라고, 깨달은 마법의 진수는 거기에 있었을 테니.’
문제는 마나 자체가 감쇠당한다는 거랑, 순수한 물리 공격은 스펙터인 놈한테는 안 통한다는 거다.
“권능이 강하다기보단 스펙터가 돼서 단점끼리 상쇄된 거군.”
유령형 몬스터는 꽤 약한 경우가 많다. 영혼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건 마법에 존나 취약해진다는 뜻이니까. 갑옷도 없고 부랄을 덜렁거리며 싸우는 알몸 노예 같은 놈들이다.
그 종특의 단점을 권능이 커버한다.
그러는 한편, 권능이 가진 약점은 종특으로 씹는 거다. 베로니카는 눈을 반개하며 지팡이를 땅에다 찍었다. 집중해서 큰 기술을 날릴 때의 버릇이었다.
“기다리거라. 제압이 가능한 마법을 구상하마.”
“관둬. 다나의 가호를 받았어도 피하라고 하면 다 못 피할 거면서.”
다나의 권능 [용맹의 권세(Curadmír)]가 걸린 상태라도 베로니카는 전사가 아니었다. 몸은 나름 잽싸지만 보통은 그냥 공격을 실드로 막는 편이지.
“아무튼 마나만 쓰지 않으면 되는 거 맞죠! 제 권능으로 가둘게요!”
“히타이트 군인이니까 운이 나쁘면 빠져나올걸? 나랑 교대해! 이리로 와서 베로니카만 지켜 줘!”
라리루라에게 말하며 오러 창으로 보스 스펙터 새끼를 꿰뚫었다.
연기처럼 뚫고 지나가지만, 형태를 무너트리면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 영혼이 휘저어졌는데 마법 같은 걸 쓸 여력이 있겠는가.
‘권능을 써도 라리루라의 차원벽을 뚫을 화력은 못 낸다.’
들이박기 전에 천리안으로 관찰하고 확신했기에 그녀를 데려온 것이다.
베로니카의 마법이 뚫린 건 마나로 된 실드라서 그렇다. 마나보다 상위차원을 주무르는 권능으로 방어하면 문제없다.
차원을 찢는 공격은 유령의 몸으로 버틸 테고, 가뒀는데 아예 먼 곳으로 튀어버렸다가는 귀찮다. 왜 내가 배부터 조져놨는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차분하게 룬 스톤을 꺼내들었다.
이 정도의 적을 강적으로 여기기엔, 내가 건넌 수라장이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