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쾅!!
‘황색 왕’이 휘두르려 했던 창이 프랑의 반격에 터져나갔다.
삽시간에 일어난 결과에 ‘황색 왕’은 놀라운 듯 부서져서 후방으로 날아가는 창의 파편을 살폈다.
“【〈백토인형〉】.”
마법이 펼쳐지고 골렘의 팔이 늘어난다. 무기가 ‘황색 왕’이 움직일 공간을 점하며 보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줄여가듯 행동범위를 줄였다.
혹시 모를 가능성의 가지를 쳐내듯이── 아니, 지금 막 ‘황색 왕’이 설계한 수백여 개의 전술들을 전부 봉쇄하듯이!
“……호오.”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영민하게 눈치챘다.
“또 미래예지인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군.”
지혜로 신에게 범접할 수 없는 그녀에게, 죽은 천공신의 힘이 올바른 답을 먼저 속삭여준 것이다.
‘미래를 읽고 내 승산을 줄여가고 있다. 저 상태에서 두뇌가 원활하게 작동할 턱도 없거늘. 무의식적인 움직임이기에 망설임이 없는 만큼 빠르군.’
흥미롭게 관찰하면서 ‘황색 왕’은 차원의 실들을 빠져나갔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은 대부분 1~2개다.
똑같은 문제를 두고 계산해서 정답을 도출하는 ‘황색 왕’과, 답안지를 펼친 프랑의 해답은 결과적으로 동일할 수밖에 없다. 틀린 답을 도출할 만큼 ‘황색 왕’은 어리석지 않으니.
하지만 이 우주에 비할 데 없이 현명한 그라고 해도── 즉시 답을 도출해내는 예지와 비교하면, 정답을 간파하는 속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움직임을 읽혔다. 내가, 권능을 사용 중인 지금.’
행동을, 판단을, 미래를 간파한다.
권능으로 가속해서 라리루라를 찌르려는 각도를 룬을 흡수한 바위 단검이 날며 막았다. 땅을 뚫고 시야를 벗어나려 하자 지면에서 뿜어진 진동파가 저지했다.
창을 버리고 마법을 발동시키려고 한 순간 검을 휘두르려는 자세에 들어갔다. 피하려고 몸을 움직이자 눈을 쫓는 것보다 먼저 공격을 펼쳐냈다.
‘황색 왕’이 인간을 초월한 지혜로 도달한 해답. 기상천외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옛 지배자의 지혜.
그 모든 지혜를, 인간에 불과한 그녀가 더 빨리 깨닫는다.
─오딘 님의 신좌에는 그만한 힘이 있느니라.
프랑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과거에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게 네가 오딘 님의 신좌를 계승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지.
이야기를 설명받은 그녀는 굉장히 황송해하며, 또 내심 믿기 힘들었다.
그녀의 나라의 주신. 가장 위대하고 강한 신.
그녀의 남편이 그분의 후계자라는 걸 자랑스레 여긴 적은 많았지만, 자신이 ‘그’처럼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단언컨대,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똑같은 천공신의 후계자로서 그와 늘어서는 건 황공할 만큼 멋진 일이긴 하겠지만, 감히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릴 거라고는 어찌 생각하겠는가.
─……네가 오딘 님의 신좌와 적성이 맞겠냐고?
─후후후. 주인님의 본처 자리와 비교하면 어느 게 더 대단한 입지인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군.
─그 간악무도한 시구르드조차 자격이 있었다. 우리의 주신께서는 선량한 신도에게 자비를 내려주지도 않으실 만큼 무자비한 분은 아니니라.
─믿거라. 너라면, 너와 내가 함께라면 가능하다.
최초의 골렘은 연금술에서 말하는 호문쿨루스, 인간을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래서 유사 생명체를 만드는 골렘의 재료로는 흙이 애용된다.
흙은 생명이 태어나고, 진토가 될 때 돌아가는 곳.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가지고 많은 마나에 적성을 가지는 힘. 그래서 그 성질이 지나치게 깃든 금속에는 도리어 다른 마나를 부여하기가 곤란하기도 하다.
죽음을 다루는 흑마법사가 골렘들을 낳고, 조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그래서였다.
─그렇기에, 프랑. 흙의 마나에 적성을 보유하는 자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 모두를 관장할 수 있다.
한때, 빛의 마나를 타고 났던 어느 유니콘이 그 적성으로 흑마법을 쓰는 골렘을 만들었던 것처럼.
─99%의 마법사는 이도 저도 대성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어느 한쪽인가만을 추구한다만은.
─그리고, 네게는 그런 양면성이 있다.
─티없이 자비로우면서도, 적에게 분노할 때는 주인님보다 매섭지.
─나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만, 감히 그 양면성을 모성이라고 칭하마.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것도, 꾸짖는 것도 어미의 몫이지.
─그렇기에 너는 천공신님의, 오딘 님의 신좌에 적성이 있다. 적어도 나와 비교하면 훨씬 말이야.
오딘은 죽음의 신이며, 세계수를 만든 창세신.
인류를 낳은 어머니이자, 그 목숨이 꺼져갈 때 곁을 지키는 여신.
지혜의 신, 마법의 신은 오딘이 보유한 수많은 이름과 일면의 한 가지일 뿐.
빛과 어둠의 양면성이야말로, 천공신의 본질에 가장 흡사하다.
─그러나…… 그래.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네 생각대로, 고작 일부분이 흡사한 정도로는 오딘 님의 신좌를 계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지금 시점에서는 신좌 계승을 성공시키기까지 대략 3개 정도, 우리에게 모자란 요소가 있느니라.
─하나는, 네가 결전 이후에 살아남을 방법.
─둘은, 네가 가진 오딘 님의 신좌에 대한 적성.
─셋은, 오딘 님의 신좌 그 자체다.
모자라다. 모든 것이.
그녀와 누군가가 살아남은 미래에는 무엇 하나 갖춰진 것이 없었다.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신좌를 획득할 방법이 없었다. 손에 넣은 신좌를 계승할 자격이 없었다.
그녀는…… 신들의 전쟁터에서는 이리도 무력한 존재였다.
─후후. 왜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이더냐.
─잊지 말거라. 네가 할 일은, 그저 언제까지고 주인님을 향한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니라.
─그 밖의 모든 문제는, 내게 맡기거라.
─나는 베로니카 에클립시스. 주인님의 시종.
─미래 한두 개 정도, 바꿔 보이고말고.
그녀는 그 이상을,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알지 못한다.
기적을 이루고, 지금까지 섬기던 예언자들처럼 신의 몸으로 운명에 저항하려고 했던 그 고결하던 여신이 무엇을 했는지. 그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여신은, 그녀의 친구는 기적을 이뤄냈다.
한 번 죽었을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에게, 다시 이승을 밟을 힘을 주었다. 이 손에 한때 세계수를 창조하고 지키던 위대한 신의 힘을 쥐여줬다.
그러니까, 질 수는 없다.
드워프의 강함은 결핍의 강함.
모든 것을 잃어버린 죽음과 결핍을 넘어서, 이 순간 프랑은── 모든 우주를 통틀어서 강대한 옛 지배자의 앞에 검과 창을 겨눴다.
“……큭!”
─콰광!!!!
창을 쥔 골렘들의 팔이 ‘황색 왕’을 두들겼다.
노르드와 같은 창술을 펼치는 창을 피해 물러나면서 ‘황색 왕’은 공격을 피해냈다. 프랑이 반격을 넘어서 선공을 가하는 경지에까지 이른 탓이었다.
‘불가능하다. 예언자에게 운명을 바꾸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렇게나 강대할 수는 없어.’
길어지는 싸움은 어느덧 1시간을 넘었고, 이미 몇십 분인가 전부터 ‘황색 왕’은 모든 공격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미래에서 그가 유리해지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언어도단이다.
그가 손도 발도 쓰지 못하는 것은 ‘황색 왕’에게 유리한 미래를 저 인간 계집이 남김없이 파괴하고, 비틀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 외에 설명할 수단이 있으랴.
하지만.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강한 의지가 있어야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지?
어떤 생각,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의 고동이 저리 작은 인간 계집에게 모든 운명을 극복하고, 신을 죽일 만한 의지를 부여하지?
‘황색 왕’의 사고능력은 한순간, 아주 잠깐 동안 그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풀 길이 없는 의문에 잠식됐다.
인간은 옛 지배자를 이해할 수 없다면, 옛 지배자라고 해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 미지에 공포를 느낄 만큼 수준 미달의 존재는 아니었으나, 미지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만큼 탐구열이 결핍된 존재도 아니었다.
그래서 태어나버리고 만 의문.
적수의 미래예지를 쫓아 생각을 거듭하던 뇌를 지배하고, 다음 행동을 고찰하던 사고력을 더디게 하는 1초 미만의 호기심.
“잡았다, 가짜.”
그 찰나의 틈을 라리루라의 실이 휘감았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이 찢어져라 외치며 라리루라는 모든 여력을 몰아넣어서 창세의 권능을 펼쳤다. 시공을 넘어서 질주하는 ‘황색 왕’을 실만으로는 구속할 수 없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국!!
대신, 질량이라면 가능하다. 시공간과 블랙홀의 중력조차 빠져나갈 수 있는 ‘황색 왕’의 권능이라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질량을 100%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확률이 1%라면 100배를, 0.1%라면 1000배를 동원하면 그 가능성은 100%가 된다.
라리루라가 체력을 전부 소모하며 불러낸 질량. 구 무게는 ‘황색 왕’을 짓누르고, 그가 탈출하려는 것보다 빠르게 프랑이 【희토성(希土星)】으로 창을 뽑아냈다.
관통에 특화한 일격. 태산에 비견할 만한 질량.
‘황색 왕’은 자신이 빠져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적의 공격에 맞으며 살아남을 가능성을 냉정하게 고찰하고, 그 희박한 승산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죽음까지의 남은 시간을 자신을 패배까지 내몬 의문을 푸는 데 사용했다.
어떤 의지의 힘이기에 저리도 강렬하고, 죽음과 운명마저 초월시키는가.
인간에게 나름의 호의와 선의를 가진 그였기에 답을 내리는 건 빨랐다.
“사랑이라…… 나는 이해 못 할 감정이군.”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지금 그를 붙잡은 신좌들의 원주인들이, 오딘과 로키가 그랬듯이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신이면서 실패와 파멸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변해버린 ‘심해의 군주’처럼, ‘황색 왕’도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 고찰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
“훌륭하다. 젊은 옛 지배자여.”
‘황색 왕’은 마지막 남은 시간으로 얼굴에 썼던 노르드의 가죽을 지우고, 원래의 자신에게 그나마 가까운 얼굴로 그를 이긴 인간에게 미소를 보냈다.
“동생이 바람을 피우려던 남자의 아내에게 맞아 죽는다…… 흐음. 이건 좀 인간다운 최후 같은데.”
재미없는 농담도 자신이 재밌으면 그만이겠지.
달빛처럼 빛나는 창이 가가대소를 터트려대는 ‘황색 왕’을 두들겼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창세의 권능이 아닌, 오직 인간 스스로 빚어낸 힘. 오딘의 신좌와 무관하게,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하는 여인이 만들어냈던 마법이다.
성간우주의 주인은 조그만 섬을 반으로 쪼개는 파괴력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꽈릉─!!!!!!
옛 지배자의 불멸성을 파훼하는 공격에, 별들의 바다에 군림하던 ‘황색 왕’의 영혼은 산산조각 나며 소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