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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을 때는 브라타니아 왕궁의 정원이었다.
지금까지 본 광경은 눈을 잠시 깜빡인 것에 불과했다는 듯, 안광이 잦아들고 있는 시구르드가 내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알렸다.
프랑도 라리루라도, 전부 백일몽 속의 환상.
정말 꿈이라도 꾼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내가 꿈속의 기억을 최대한 온존했는데도 이 정도이니, 준비하지 않고 깨어났다면 대략적인 기억만 남고 말았겠지.
그 꿈속에서 ‘현실’이었던 건 2개.
‘진짜 영혼’을 가지고 개입하다가 뒤져버렸던 옛 지배자 2마리의 죽음과──
…툭.
지금도 내 안주머니에 잡히는, 한 권의 수첩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내 기억이 만들어낸 서글픈 허상에 불과하다.
‘……아니, 나로서는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 추측이지만, 아마 ‘황색 왕’을 물리친 미래의 프랑은 다른 우주 괴물들과 같은 옛 지배자로 승격─혹은 진화─한 상태였던 모양이니까.
혼돈의 이계에서 오딘의 눈을 고치는 과정에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옛 지배자는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불멸이다.
하지만 반대로 ‘진짜 혼’이 죽으면 그게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죽는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자신의 죽음도 꿈으로 치부하는 씹사기인 능력의 당연한 단점이다.
‘그러니까 만약 현실의 프랑이 내 꿈에 들어왔더라면, 꿈속의 미래 프랑이 죽을 때 현실의 프랑도 죽었을지 몰라.’
미래에서 죽은 프랑이나 ‘심해의 군주’.
그들은 내 권능이 시구르드에게 촉진되서 생긴 진짜에 한없이 가까운 가짜다. 그러니까 꿈에서의 죽음이 현실의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일은 없다.
게임으로 치자면 프리 서버를 열어서 다른 유저 캐릭터를 100% 카피한 캐릭터를 생성하고 죽인 수준에 불과하다.
‘꿈의 등장인물은 현실의 본인이 아니야. 옛 지배자라고 해도 똑같지.’
그게 아니면 그냥 꿈속에서 ‘심해의 군주’만 떡 하니 만들어놓고 죽이면 해결 아닌가. 반대로 나 혼자 그놈 꿈에 불려가도 이상할 것 없고.
다행히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셰이드의 꿈에서 만난 오딘의 분신이 진짜 오딘의 영혼을 지닌 당사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카피 캐릭터랑 대결해서 잡는다고 그 유저에게 이긴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내가 만든 100% 똑같은 카피 캐릭터를 유저 본인이 조종하다가 진다면? 그건 무대가 좀 바뀌었을 뿐 확고한 승리가 맞다.
‘휘왕’과 ‘황색 왕’은 오딘의 분신처럼 내 꿈의 등장인물에 빙의해서 개입했다가 그대로 죽었다고 봐도 되겠지.
저 새끼들에게는 정신적인 죽음도 진짜 죽음과 동일하니까.
애초에 현실에 있는 지금의 프랑은 옛 지배자도 아니고, 걱정할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머리가 복잡해 보이는군.”
시구르드 새끼가 입을 닫고 있는 나한테 말했다.
“그래, 개새꺄. 덕분에 인생을 스포일러 당했다. 뒤지게 고맙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이 감사한 마음으로 저 새끼를 백일 밤낮 능지처참할 계획을 취소하고 깔끔하게 머리만 터트려줄 의향도 있다.
“그래서 뭔데? 나한테 저딴 미래를 보여줘 놓고 내 말대로 안 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저렇게 될 수 있어요~ 하고 야부리가 털고 싶은 거냐?”
“최악의 경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미래를 보여주기 전에 지은 웃음을 아직 없애지 않은 씹놈은 현실을 부정하지 말라는 듯 지껄였다.
“그 미래야말로, 본래의 너에게 허락된 최고의 결말이다.”
아니꼽지만, 저 말은 맞다.
미래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여기 있는 나라고 해서 그것보다 잘 해낼 거라고는 자부하기 어려울 만큼이나.
시구르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저 미래를 예지하지 못했다면 백일몽 속의 인류멸망 엔딩은 현실로 이뤄졌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너는 이미 예지를 보았지. 미래는 바뀔 것이다. 다음도, 그 다다음도. 그리고 언젠가는 네 손에 옛 지배자들도 영멸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최선의 미래’를 보여준 놈은 다시 표정을 지웠다.
“그래서, 언제까지 실패하지 않을 수 있지?”
“……………….”
지금 본 미래를 극복해도, 다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무턱대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하는 건 차가워진 대갈통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 자체는 절대 0%가 아니었으니까.
이미 9년 뒤에 현실적인 실패를 일으킨 미래를 보고 왔다.
저것만 해결하면 앞으로 다시는 인류를 곱창낼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식을 탐구한 끝에 파멸한 게 ‘심해의 군주’와 눈이 마주친 오딘 아닌가.
미래에서 차원문을 연 베로니카와 미래의 나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고. 세계를 곱창낸 건 다른 인간들의 의지였다지만 그 계기엔 우리의 책임도 있을 것이었다.
“헤니르는 어설펐지만 현명했다. 우유부단하며, 강함도 부족했으나 미래를 예상했지. 인간의 절제 없는 욕망을 방치하면 어떻게 될지 알았으니까.”
인류멸망을 꿈꾸던 악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놈은 자기 눈을 만졌다.
“나도 그러했다. 오딘이 신좌를 얻고, 미래를 본 그날부터 줄곧 눈꺼풀 뒤에서 절망적인 미래상이 사라지지 않는 날이 없었지.”
황금시대의 대전쟁 무렵, 아틀란티스와 에린이 히타이트와 싸운 대전쟁 때.
그때 히타이트의 왕자였던 시구르드는 ‘심해의 군주’가 손을 쓴 재앙과 맞서 싸워서 물리쳤다고 들었다.
아틀란티스의 공주였던 레티티아, 크라운 크라운으로 변장했던 로키, 그리고 바이콘 신족의 선지자 마기도라. 이 3명을 동반한 멤버로 말이다.
라그나로크 전후에 오딘의 신좌를 빼앗았던 그 문어 대가리 년에게 신좌를 되찾고, 그 신좌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 로키와 선지자를 찔렀다.
그 두 사람이 보지 못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잠들어도, 눈을 떠도, 오늘 세계 어딘가에 있는 인간들의 독단, 욕망, 집착이 머지않아 온 세상을 파멸시키는 예지가 보인다. 먼 미래를 본다는 건 예언자들끼리 부딪치는 싸움과 비슷해.”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파멸이 보인다.
예지의 권능이 최우선으로 관측하는 미래는 파멸이니까.
그래서 놈은 로키와 선지자를 배신했다.
레티티아와 〈편찬대대〉를 꾸리고, 세계 곳곳에 손을 썼다.
로키는 치명상을 입었고 선지자는 몸을 피해서 일족에게 글을 남기지 말라는 예언을 남겼다.
하지만 선지자는 자신이 울프헤딘이라고 믿었던 남자의 배신을 밝힐 수 없었다. 예언이 틀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로니카를 포함한 선지자의 후계자들은 일족을 구원할 ‘예언의 계도자’를 일평생, 그리고 대대손손 찾아 헤맸던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구르드는 인류 사회에 그 정체를 들키는 일 없이 영향을 끼치고, 때로는 엘프들의 나라까지 멸망시켰다.
선지자의 예언을 거스르고 진실을 글로 남기려 했던 유니콘을 몰살했다.
프랑의 아버지처럼 재능이 뛰어난 니다벨리르의 드워프 장인들이 인류 문명을 황금시대 수준까지 복구하기 전에 성장세를 꺾었다.
“그러던 나날의 한중간, 나는 네 존재를 보았다.”
명계를 지배하려던 에퀴녹스를 죽이러 갔을 때.
얼마나 미래인지도 모를 훗날에서 자신을 보는 나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얼마나 훗날 찾아올지는 몰라도 시구르드는 예언의 계도자인 ‘울프헤딘’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걸 알았다.
“레티티아는 네 손에 죽었었지.”
궁니르를 놓은 시구르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너를 회유하려고 하진 않았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게 제일이겠으나, 거부한다면 죽여야 한다고 여겼겠지. 손을 더럽히는 걸 꺼리는 자는 자신을, 그리고 나를 대신할 재목이 아니라고.”
자기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시구르드의 눈이 빛났다.
“위선을 버려라. 시시한 신념을 꺾고 내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라.”
〈편찬대대〉로서 하던 일을 계승해라.
그렇게 말하는 그놈의 얼굴에는 광적인 집착이 드러났다. 파멸할 뻔한 미래를 몇 번이나 저지한 예언자가 가질 법한 확신이었다.
“우리는 오딘과 다르다. 운명을 비틀 힘을 가진 예언자로서 원하는 미래를 관철해라. 너 스스로의 안녕과 9할의 인류를 위해, 남은 1할의 인류쯤은 솎아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라.”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들의 연장선이다.
헤니르와 싸울 때처럼 예지력을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미래가 되도록 가진 능력을 다하는 것이다.
단지, 〈편찬대대〉처럼 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하는 것을 꺼리지 마라.
그래야만 9년 뒤와 같은 파멸을 막을 수 있다.
오딘이 ‘심해의 군주’를 봤던 것처럼, 우주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위협에서부터 인류 전체를 수호하려면 그리 해야 한다.
시구르드는 그렇게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도 좋겠지. 하지만 네가 더 잔혹하게, 네 지혜를 양심과 신념 따위에 묶이지 않고 사용했다면 저런 미래가 찾아올 일도 없었다.”
시구르드가 발을 내디뎠다. 내 살기에 궁니르가 경고하듯 떨리기 시작했지만, 놈은 맞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침략자의 범선처럼 꿋꿋이 걸어왔다.
“지식의 공유는 양날의 검이다. 너는 너 자신의 판단으로 지식을 통제하고,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해낼 힘이 있다. 그걸 가능케 하는 지혜가 있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몸소 체험하게 되겠지. 이번에는 현실에서.”
놈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원한다면 지금 여기서 내 목숨을 가져가도 상관없다. 그 대신──”
파앗─!
시구르드의 손에서 토르의 신좌가 피어났다.
“너는 나를 이어, 〈편찬대대〉의 왕이 되어라.”
미래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데 실패한 후계자를 타이르듯이.
나는 팔짱을 끼고 창을 휘두르면 대가리를 후려갈기기에 딱 적당한 위치에 멈춘 놈을 바라봤다.
“대답하기 전에 하나만 묻자.”
하고 싶은 말은 존나게 많았지만, 나는 턱까지 올라온 별의별 말들을 목구멍 밑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딱 하나,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내가 ‘황색 왕’에게 죽으면 어쩔 생각이었지?”
나를 설득하고자 미래를 보여준 거라면, 거기서 내가 옛 지배자들에게 냠냠쩝쩝 처먹힐 위험성은 방치해서는 안 됐다.
그래서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뜬 후에, 여기 서서 놈의 개소리를 듣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새끼들 중 어느 한쪽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니까 말이다.
─꿈틀. 시구르드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꿈에서 깨어났겠지. 네가 미래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꿈속에서 죽은들 현실에서 깨어날 뿐이지. 살아남은 세 마리를 해치우기라도 했나?”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대답.
그 대답이야말로 내가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흐.”
치미는 비웃음은 짧게 억눌렀다.
한 번 웃기 시작하면 몇 시간은 웃음이 그치지 않을 듯 했으니까.
나는 미친놈처럼 웃는 대신 냉소를 띄웠다.
“미래는 얼마든지 바뀐다. 내가 봤을 때는 이미 바뀐 뒤였어.”
“……어리석은 소리. 네가 개입해서 미래가 바뀌었대도, 그 시점에서는 이미 돌이키키는 늦었──”
“미래를 바꾼 건 내가 아냐, 병신아.”
우리 쿨하고 똑똑한 아내님이지. 나는 코웃음을 치며 눈을 반개했다.
‘……베로니카.’
미래의 그녀는 이 시대의 내가 미래를 보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서, 변수를 창출했다.
과거의 자신에게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일어나지 않은 꿈속의 미래에 변화를 일궈냈다. 시구르드는 그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구르드는 보지 못한, 나만이 볼 수 있던 미래!
그 결과가 우리 앞에 나타났던 프랑이다.
“아무래도…… 너랑 내가 본 미래는 사뭇 다른 모양인데.”
손을 뻗으면, 내 안주머니에는 변함없이 수첩이 남아있다.
창세의 권능처럼 꿈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수첩. 달달 외운 한 줄 한 줄의 눈물로 번진 잉크도, 그 떨리는 필적도 나는 글자 하나 잊지 않고 머리에 새겨두었다.
미래의 베로니카가 겪은 모든 절망을 총망라한 기록.
이건 미래의 절망이자, 우리 시대의 희망이다.
─톡톡. 나는 관자놀이를 두들기면서 침묵하는 병신 놈에게 말했다.
“네가 본 미래에서는 우리 프랑이 되살아났던? 그 꿈속에 ‘휘왕’과 ‘황색 왕’이 개입해서 지들을 현실로 데려가 달라고 설쳐대던?”
“……………….”
“아니겠지. 네가 길을 제시하고, 내가 예지한 그 미래는 네가 본 것과 전혀 달랐을 거다. 짐작건대 살아남은 라리루라와 생존자들이 전부 죽는 미래쯤 됐을 거다.”
하지만 그 미래는 이뤄지기도 전에 바뀌었다.
내가 본 시뮬레이션에는 이미 변수가 입력되어 있었던 것이다.
‘베로니카가 처음으로 권능을 각성했을 때.’
그때 벌써, 9년 이후의 미래는 이뤄지기도 전에 바뀌었다. 그녀가 일으킨 나비효과는 내게 예지한 미래를 다른 양상으로 변화시켰다.
죽기 전, 미래의 베로니카는 그 시대에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았겠지.
하지만 그녀에게는 운명을 바꿀 힘이 없다. 그 의식과 기억을 과거로 돌려보내도,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혼돈의 총아인 인간들뿐.
그리고 그 인간 중에서도 예언자인 나뿐이다.
그래서 언젠가 미래를 볼 나를 위해서, 프랑의 협력과 수첩을 남겼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미래를, 과거에서 찾아온 내가 바꿔주길 바라며!
“우리 병신 왕자님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으니, 네가 허락해준 질문권은 다른 데 쓰지. 너는 내가 느그 후임이 돼 줬으면 하는 것 같던데, 왜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서 나를 밀어주는 그녀의 손을 느낀다.
내 엘리트 대갈통은 지금까지보다 더 원활하게 돌아가는 듯 하다. 나는 오딘의 눈을 희번뜩거리며 답을 밝혔다.
“──수명.”
이 우주의 어떤 존재도 영원하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들 인간은, 특히 더 영원하지 않다.
“너도 레티티아도 가히 수백 년 전의 인간이지. 그 정도라면 뭐, 엘프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았다고 치고 넘어가자고.”
이만한 수명은 〈인신〉, 신좌를 계승한 효과로 보기엔 너무 길다.
어떤 수작을 부렸겠지. 수명을 늘려놓는 기술이 있으니까 시구르드는 아직 살아있다. 결과물이 저 앞에서 알짱대고 있는데 그게 가능한지 의문시할 것도 없었고.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만큼 더 살아갈 수는 있겠냐?”
개소리.
자기 힘으로 마스터 클래스에 올랐던 7대신조차 각자의 사정으로 죽었다.
죽어서 자신의 권능이랄 것들을 초대 아르마슈나스의 권능으로 명계에 안착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인간의 수명은 영원하지 않기에.
시구르드는 다를까?
다를 것이다. 수백 년을 살았으니 천 년도 넘게 가뿐히 살며 어떤 엘프보다 오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리치가 되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지만.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연명할까.
“로키가 그러더군. 나는 다른 인간보다 오래 살 거라고. 네가 바라는 건 그거겠지. 예언보다 수백 년 뒤에 나타난 울프헤딘. 너를 대신할 후계자.”
예지의 권능.
혼돈의 총아로서 가진 운명을 극복하는 힘.
십중팔구는 신들에 필적할, 어쩌면 옛 지배자와 같이 불멸할지 모를 수명.
그와 같은 소질을 갖추고 자신과 같은 일을 해 줄 후계짜.
시구르드는 그런 울프헤딘을 바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
미래의 베로니카는 오딘의 신좌를 구해서 그걸 프랑에게 계승했다.
한 번 죽고, 되살아난 삶과 죽음의 지배자.
오딘의 일화를 그대로 재현해서, 목숨을 잃었던 프랑이 언제고 되살아나서 내가 미래에서 희망의 열쇠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 오딘의 신좌는 어디서 났지?’
설마 베로니카가 시구르드를 족치고 신좌를 가져갔을까.
예언자의 모순은 베로니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심해의 군주’처럼 운명에 귀속된 존재다. 그러니 미래에서 내가 그 문어 대가리를 해치웠던 것처럼 패배할 가능성이 더 컸다.
베로니카는 불리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데, 저 새끼는 싸움의 전개가 꼬우면 회귀해서 우리 여신님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보면 결론은 자명하지 않은가.
“너, 뒤질 날까지 몇 년 남았냐?”
시구르드는 늦어도 9년 내로 죽는다.
그러니까 미래의 베로니카는 과거로 온 것이다.
과거의 자신에게 무의식을 새겨넣는 것으로,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미래를 한 차례 바꿨다. 운명에 거스르지 않고 기적을 일으켰다.
시구르드가 죽기 전에 어딘가에 감췄을 신좌.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미래이기에 망설임 없이 죽음을 택했을 시구르드가 더 절망적인 미래상을 만들고자 감추어뒀을 오딘의 권능.
과거로 의식을 날린 베로니카는 9년 내에 그걸 찾아냈다.
찾아내고, 프랑에게 부탁해서 그 힘을 9년보다 조금 더 미래로 맡겼다.
언젠가 내가 관측할, 조금 더 훗날의 미래로!
틀림없다.
‘내가 본 그 미래는, 이미 한 번 과거가 수정된 미래였던 거야.’
그래서 프랑은 오딘의 신좌를 손에 넣고, ‘황색 왕’을 쓰러트리며 우리를 도와줄 수 있었다.
왜냐? 베로니카가 이미 한 차례 예지의 권능을 발휘해서 내가 관측할 미래를 바꿔놓았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세계에서 절망만을 보고 돌아오고 말았을 내게──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