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73화 (972/1,009)

“이 수첩은 미래의, 꿈속의 베로니카가 날 믿고 남겨준 기적이다.”

나는 잃어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암기한 수첩을 꺼내서 흔들었다.

“대가리에 좆박은 주제에 엘리트주의에 심취한 저능아 새끼. 오딘의 신좌를 들고도 오딘이나 선지자는 고사하고, 우리 집 여신님보다 미래를 보는 눈이 어둡다니, 주인 잘못 만난 궁니르가 울겠다.”

“……………….”

“네놈이 본 미래는 전부 바뀌었다. 니 궤변대로 될 일은 없어. 그토록 실패한 미래에서조차,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은 운명을 극복해 보인 거야.”

그것도 나라는 예언자 없이도 말이다.

그 명백한 증거인 수첩을 품에 넣는다. 그리고 나는 시구르드가 나타난 이후로 가장 밝고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저 병신에게 도발 커맨드를 날렸다.

“너처럼 애미가 터진 범죄에 손을 물들여가며 ‘데뎃~ 내가 인류의 수호자인레후’ 거리지 않아도, 나 혼자서는 평화로운 미래를 지켜낼 수 없어도.”

대차게 실패하더라도 미래를 고칠 수 있다는 게 예언자의 힘이라면.

“우리 모두라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저 꿈속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바꾸고자 목숨도 내버렸다. 베로니카는 아무리 크나큰 실패를 저지르더라도 희망은 이어진다는 걸 알려줬다.

오딘이나, 선지자, 시구르드처럼 혼자만 미래를 알고 바꾸려 했던 예언자들과는 궤가 다르다.

‘정보의 공유는 양날의 검이라고?’

새끼, 말 한 번 잘 했네. 틀린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양날의 검이라는 건 단점에 버금가는 장점 역시 있다는 소리잖은가?

“나더러 니 후임이 되라고? 내 대답은 ‘좆까고 사은품만 주세요’다.”

〈편찬대대〉 같은 사이비 학살자 집단의 감투 같은 건 관심 없다.

단지, 개소리에는 관심이 없어도 잿밥에는 있다. 나는 내 목을 두들겼다.

“이제 그 모가지만 여기 두고, 지옥으로 꺼지셔.”

베니스의 상인이었던 샤일록이랑 다르게, 나는 시구르드의 목을 가져가면서 피를 몇 바가지 쏟더라도 재판장에게 혼날 일은 없지 않겠나.

“……후우. 예상을 벗어난 최악의 결론이군.”

시구르드는 깊은 한숨을 쉬며 궁니르를 잡았다. 그 눈에 살기가 타올랐다.

“알았다. 너를 죽이고, 인류의 문명을 한 번 더 리셋하마. 리치가 됐다간 운명을 비트는 힘이 약해질 염려가 크다만, 실패한 이상에야 어쩔 수 없지.”

“드디어 의견의 일치를 보겠군.”

우리는 살기등등하게 자세를 취하면서도 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싸워봤자 헛수고라고.

“노르드 폰 울프헤딘. 네가 왜 내 방문을 예지 못했는지 알겠나?”

처음 보는 무예의 자세를 취한 시구르드가 지껄였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결코 서로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언자들의 싸움은 무의미한 되풀이가 되니까.”

나는 그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타타타탓, 탓!!

아니, 눈치채는 것보다 조금 먼저 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차원이 일그러진 공간에,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누군가의 기척을.

“설득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예상 못했던 일이다만, 전투가 됐을 때를 대비해서 대책을 세워두지 않을 만큼 생각이 짧지는 않다.”

그 ‘누군가’를 일부러 안에 불러들였을 씹새끼가 속삭였다.

“예지와 운명을 비트는 건 인간의 강렬한 의지. 그렇다면── 나와의 싸움에 가장 굶주린 인간을 이 자리에 불러놓으면 될 일.”

예언자들만 가지고는 죽고 죽일 수 없으니, 또 다른 변수를 추가한다.

─휘익!!

그 계책을 따라서, 그녀는 격리된 차원에 몸을 던지며 난입했다.

“까아아악─!!!!”

브류나크가 울음을 터트리고, 그녀가 휘두르는 채찍이 시구르드를 노렸다. 당연히 예지한 씹새가 후퇴하며 피하자 그녀는 내 옆에 착지했다.

나는 픽 웃었다.

“어떻게 제가 어디 있는지 아셨습니까?”

“몰랐어. 찾아낸 건 브류나크 덕분.”

실체화한 브류나크가 삐엑거리며 그녀의 어깨에 앉아서 시구르드를 향해 사납게 울어댔다.

물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네페르티티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녕, 시구르드 카네쉬 히타이트.”

“기억에 있는 얼굴이군.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앞을 가로막는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만.”

복수를 위해서 찾아온 네페르티티는 무표정하게 살기를 뿜었다.

─파츳!!

찰나지간에 발현된 시구르드의 마법이 우리들을 노리고, 내가 창을 휘둘러서 그 마법을 베어냈다.

그러나 시구르드는 마치 그 장면을 처음 본다는 듯 대처하지 못했고, 나도 같은 입장이었기에 그 일합은 평범한 전투처럼 가볍게 흩어졌다.

반복되야 할 예언과 죽음의 나선이 파괴된다.

쩌저적…!

─쨍그랑!!!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미래가 박살나고, 예언자 2명의 돌고 도는 데드 레이스는 끝났다.

이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비할 데 없는 강력한 의지력! 복수심을 불태우는 그녀의 존재가 우리의 예언을── 운명의 나선을 깨트린 것이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솔직히 존나 속 시원한 기분이다.

“피차 볼 장 다 봤고, 이젠 그냥 죽이기만 하면 되겠군.”

“……한 가지, 깨닫지 못한 듯하니 알려주마.”

─뱅글. 시구르드는 창을 한 바퀴 돌렸다.

네페르티티의 존재로 서로의 예지가 무의미해진 게 자신에게는 좆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처럼.

“내가 오딘의 신좌를 얻은 건, ‘심해의 군주’를 척살한 뒤다.”

…투확!!

삽시간에 마법진이 밀폐 공간을 메웠다. 벗어날 틈도 없는 공간 차단과 마법 포화는 히타이트의 옛 기술을 마법으로 재현한 절기였다.

옛 지배자라고 해도 처음 보면 태반이 파훼하지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 공격.

예지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의지력 앞에 무너진 지금, 나는 그 마법을 감지하는 게 조금 늦어졌다. 적어도 네페르티티를 지킬 만한 여력은 없었다.

하지만 내 미소는 오히려 짙어졌다.

“스으으으으……”

처음부터 시구르드가 자신이 쓸 수 있는── 날 상대하는 중에도 아꼈던 최고의 절기가 힘을 뿜어내려고 했을 때, 네페르티티가 기술을 펼쳤다.

《사막의 뱀과 같이(r-Hr.i ir.kwi mi sA-tA n smt).》

그 기술은 몇 번이고 봤던 그녀의 기술이다.

그러나.

쩌저저저정──!!!!

위력 하나만은 비교할 수도 없이 늘어나선, 시구르드가 아껴둔 필살의 절기를 정면에서 파훼했다.

포위망을 형성한 마법이 한순간에 소멸했다.

“……………….”

시구르드의 침묵은 경악에 의한 것이었겠지만, 그건 네페르티티가 선보인 기술의 위력이 강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강하기만 해서는 파훼할 수 없는 기술을, 처음 보는 순간에도 전부 파훼했다.

그건 예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미래예지는 큰 의미가 없다.

애초에 네페르티티는 예지의 권능을 갖고 있지 않고, 내가 운 좋게 공격을 예지했다고 쳐도 그녀에게 파훼법을 전해줄 만한 여유는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시구르드는 예상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치명적인 일격으로 우리의 전력을 큰 폭으로 깎아내겠다고.

그리고, 지금 보다시피 화려하게 실패했다.

“왜 첫 수부터 말아먹었는지 궁금하지, 씹놈아?”

얼음과 불의 마나가 회전한다. 시구르드가 흠칫 정신을 차리고 방어하려고 한 순간, 네페르티티는 무표정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빠캉!!!!

그 채찍은 다나의 가호와는 또 다른 광채로 번뜩이면서 시구르드가 펼친 실드의 취약점을 억지로 만들고, 벌려서 파괴했다.

절대천공영역의 투창이 벼락불을 머금고 시구르드의 몸에 적중했다.

우르르르르콰과과광─!!!!

“크으으으으읍……?!”

궁니르가 순간적으로 움직여 위력을 죽였지만, 내가 빈틈을 노려서 펼친 필살기는 옷 밑에 갖춰 입은 갑옷을 반파시키며 놈을 바닥에 뒹굴게 했다.

“이러니까 내가 예지의 권능에 의지하는 버릇을 안 들이려고 한 거야.”

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이죽거렸다.

“지가 본 미래에만 정신이 팔려갖고, 싸움 중에 일어난 위화감도 눈치 못 챌 만큼 대굴빡을 쓰는 능력이 떡락하잖아?”

조금 전, 내가 미래를 보기에 앞서 시구르드와 싸울 때.

내가 예지 속에서 저놈에게 32번을 죽는 동안, 저 병신 놈은 내 손에 100번 가깝게 살해당했다.

내가 저 새끼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서?

그렇다고 하면 듣기는 좋겠지만, 사실은 다르다.

3배에 가까운 킬댓 차이.

그 차이는 바로 경험의 차이에서부터 나온 것이었으니.

“에퀴녹스와 싸울 때, 너는 그놈을 해치우고자 온갖 마법을 사용했다. 로키와 함께 싸웠을 때는 신좌를 얻기 전이었으니, 네가 원래 가진 본연의 무예를 펼쳤고.”

라리루라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나는 라리루라, 베로니카, 로키와 함께 셰이드의 꿈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아내들을 남겨놓고 로키랑만 잠깐 빠져나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로키에게 요구한 건, 언젠가 싸우게 될 시구르드의 전투법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셰이드의 꿈속에서라면 그 광경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얼마 전에 우리는 나우넷의 진흙이라는 아주 쓸모 넘치는 아이템을 얻지 않았는가?

나와 네페르티티는 그 안에 들어가서, 어떤 한 사람의 강적과 싸움을 거듭했다. 내가 없을 때는 브류나크랑 네페르티티 둘이서만이라도 말이다.

“네 전법은 이미 90% 이상 파악했단다, 빡통련아.”

그 강적이란 다름아닌 눈앞의 저 앰뒤 씹놈.

시구르드 카네쉬 히타이트가 가진 모든 기술들.

우리는 그것에 맞서고, 파훼법을 구상하며 놈과 싸우게 될 날을 기다렸다.

그래서 저놈을 만나자마자 나는 무식하게 서른 번이나 뒤져가며 언뜻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싸움을 시도했던 것이다. 마치 도발에 넘어간 것처럼 굴며.

왜냐고?

‘저 옛날, 과거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기술을 봐두기 위해서지.’

서른두 번의 【시재회귀】는 에퀴녹스를 해치운 시절에는 쓰지 않았던 기술들을 확인해두기 위한 포석!

그리하여 지금, 나와 그녀는 시구르드가 펼치는 기술을 대부분 숙지했다.

그 파훼법까지 말이다.

“네페르티티. 약속한 대로 모르는 기술이 뜨면 제 뒤로 물러나십쇼. 방어는 제게 일임하시고, 저 씨팔럼을 마음 풀릴 때까지 패버리시면 됩니다.”

“……응.”

네페르티티는 살기 어린 무표정을 잠깐 풀고서, 내게 다정하게 미소지었다.

“노르드.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이제부터에요. 복수와 악연을 마무리 지읍시다.”

우리는 상의한 대로 포지션을 잡았다.

우리의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건 승리를 노리는 살기와 자신감이었다.

천하의 병신 시구르드 님께서 후임이 들어오는 날을 꿈꾸며 자위해대고 있는 동안, 나와 그녀는 이 싸움의 승률이 100%가 되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기 때문에.

굳은 얼굴로 일어나는 시구르드. 나는 싸늘하게 타오르는 살기를 창 끝에 불어넣으며 가다듬었다.

“일부러 뒤지러 와줘서 고맙다, 머저리 새끼야.”

뭐?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했다고?

그래서 네페르티티를 안에 들였다고?

우리 아내님의 원수가 예언자 뽕에 취해서 뇌를 똥통에 넣고 다녀주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다소곳하게 중지를 세웠다.

“보험이라는 건 이렇게 드는 겁니다, 사장님.”

인생 조지기 싫으면 빨간 줄 긋지 말았어야지, 금수저 범죄자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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