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78화 (977/1,009)

【보면 알겠지? 내가 토르다.】

─콰릉! 금빛 번개는 국소적인 천재지변이라도 일으킬 듯 체내의 번개를 진동시키면서 떠들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망념이기는 한데, 쫌스럽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진 말자고. 긴 설명은 언제든 번거로운 법이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천둥소리 같다.

성량은 작은데 쩌렁쩌렁 울리면서 뼛속까지 찡 울리는 게 딱 천둥이다.

【그리고 제가 노르드죠.】

하지만 따로 두렵거나 한 건 아니었다. 알바생 앞으로 10만원 어치 팁을 주고 가는 따거 중국인들의 고성방가처럼 귀가 좀 따가울 뿐이지.

손가락을 세우며 까리한 자세를 취하자 토르는 껄껄대며 웃었다.

【얼씨구? 이 자식 넉살 좀 보게. 누가 보면 뭐 칭찬하려고 부른 줄 알겠어?】

【솔직히 칭찬하셔야죠. 제가 님 똥 치워준 게 몇 갠데.】

【그게 내 똥이냐? 오딘하고 로키 똥이지.】

【으으, 외간 여자들 가지고 똥똥 거리는 건 좀. 취향이 의심되네요.】

【뭐야? 이 녀석, 하하하! 으하하하하하!!】

다시 천둥이 쳤다. 웃어서가 아니다. 껄껄대면서 내지른 토르-펀치가 내 가슴팍에 꽂혀서였지. 난 꿈이 파괴될 듯한 펀치를 물러나지 않고 받았다.

꿈인데도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물러나지 않은 건 마초의 자존심이다.

그 뭐냐, 여친 앞에서 자꾸 가오를 부려대면서 염병하는 남자들이 있듯이 싸움 좀 친다는 사람들이나 헬창들은 엇비슷한 상대가 있으면 체면이란 걸 의식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자못 쿨하게 가슴의 먼지를 터는 척 존나 아픈 찌찌를 터치했다. 니미 씹, 다나가 치유 마법 건 혀로 하루 종일 핥아줬으면 좋겠네.

【아니 씹, 왜 때리고 지랄입니까? 꼽다고 주먹부터 나가면 소인배임.】

【때리긴, 가볍게 친 거지. 내가 진심으로 치면 네가 멀쩡하겠냐?】

【이 양반 보게? 어디 쳐 보십쇼, 미스터 망령. 내가 꿈쩍이나 하나.】

【흐, 그럴까? 승부욕 있는 점은 마음에 든다.】

이를 드러내며 웃은 금빛 번갯불이 내 와꾸에다 주먹을 갈겼다.

씨발 이 미친 야만인 보게. 치랬다고 면상부터 갈기는 새끼가 어딨어!

【커흡, 큼.】

【크하하! 야, 아프냐? 야, 아파?】

【잠깐 방심해서 침 삼키다가 맞아갖고 사레 좀 들린 겁니다. 어디 댁은 얼마나 맷집 센지 한 번 봅시다, 대가리 퓨즈 녹은 신님아.】

간만에 느낀 아릿한 아픔에 꼭지가 돌았다. 내 주먹이 무쇠처럼 번갯불의 턱주가리를 갈겼다.

─꽈릉!!!! 천둥은 북이 터져나가듯 장절한 소릴 터트렸다.

【끄으읍……!】

놀랍게도 전혀 힘을 빼지 않은 펀치였는데 금빛 번갯불은 물러나지도 않았다. 상체 힘으로 죽빵을 견디고 하체 힘으로 몸을 받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따라하듯 씨익 웃었다.

【댁 지금 다리 휘청했죠? 무릎에 힘 풀렸죠?】

【콜록, 눈이 삐었구만? 오래 앉아 있다 보니까 일어났을 때 다리가 좀 저린 거란다, 애송아. 나는 평생 쌈박질 중에 후퇴한 적이 없어요.】

【신화에선 뒤질 때 요르문 뭐시기한테 물려서 비실대며 아홉 걸음 물러나다 꾀꼬닥 했다는데?】

【……거, 거짓부렁이겠지. 거짓말이 분명해.】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니 머릿속에서만 말이야.】

포로롱─. 나는 하프를 만들어서 튕겼다.

자기가 토르라고 밝힌 망령이 입을 훔쳤다. 그 바람에 나도 무심코 입을 매만졌는데. 이 씨부랄, 꿈속이긴 해도 입술 터진 게 아닌가?

과연 토르 썬더-펀치. 뒤지게 매콤하군.

【그리고 앉아 있었다고 다리가 저려? 그건 댁 근육이 좆밥이라…… 이 씨바랄, 그러고 보면 너 혹시 나랑 우리 아내님이 뒹구는 거 여기 앉아서 관음했니?】

【이 자식이 미쳤나? 나를 뭘로 보고 그딴 소릴 지껄여?】

【니가 거인이랑 해서 자식을 낳았다는 전승도 있던데?】

【야, 솔직히 나보다 10배는 큰 미인이 있으면, 어 임마? 조금은 관심이 생기는 게 정상 아니냐? 로키 그 할매도 거인하고는 해 봤어!】

나는 그나마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여성 거인이라고 할 만한 바이콘 아델라이데를 떠올리고, 그 아름답지만 체급이 다른 여신에게 남자가 달라붙는 꼴을 생각해봤다.

‘불가능.’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성적 취향은 존중하지만 좀 아니지 않나.

로키의 경우는…… 로키니까 라는 말로 설명이 되니까 생략.

이미 미스(Myth) 레전드-말박힘이인데 변신한 채로 거인이랑 했을 수도 있지. 애초에 그 아델리아데도 로키 쪽 혈통에서 나온 덩치일 거 아냐.

나는 토르한테 맞고도 물러나지 않았던 다리를 슬금슬금 물렸다.

【으, 미개한 번식 마니아 야만인들 같으니. 나 같은 금욕적인 마초는 엄두도 못 낼 일이야.】

【니가 수억 년씩 살아봐라! 아무리 잘 참아도 자식 한둘 안 생기나!】

【네, 씨 없는 수박이죠? 지가 자백했죠?】

【너 이 새끼 사실 오딘이지? 그 할매가 죽지도 않고 살아남아서 변신한 거지? 아가리 놀리는 게 딱 오딘인데? 턱주가리 대라 짜샤. 피부 벗겨지나 보게.】

【나는 오딘처럼 허당이 아니란다, 토르야.】

【오딘 할매도 맨날 지가 똑똑한 줄 알고 로키 할매랑 사이 좋게 깝치다가 사고만 치고 다녔지. 아주 빼박이구만. 대체 니가 왜 내 신좌를 가지고 있는 거냐?】

【개좆밥들이 들고 다니길래 줘패고 뺏음. 느그 망치도 조금 전까지 나랑 뜨거운 밤을 보내던 아내님이 한 방에 부쉈다?】

【……너 요툰이랑 결혼했냐?】

【이 거인박이 새끼가 뒤질라고!!】

진화가 덜 된 원시인과 진화 끝에 Z-용사가 된 지구 출신 사이어인은 우끼끼 거리며 우격다짐을 하다가, 쌍방폭행으로 입건될 만큼 피멍이 들고서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망할 놈. 드워프 혼혈이 아내면 아무튼 요툰 비슷한 여자가 아내 맞긴 하구만 뭘 성질이야.】

【이 씹…… 하, 됐다. 망령한테 성질내 봤자 내 손해지.】

저 금빛 번갯불은 토르이지만 토르가 아니다.

내가 꿈에서 만들거나, 혹은 미래에서 본 라리루라가 진짜 당사자의 영혼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과거에 내 앞에 나타났던 오딘이 그녀가 남긴 안배였던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프레이야의 신좌를 얻는 시험에서 봤던 프레이야랑 비슷하군.’

문제는 따로 내가 시험을 지를 의지가 있던 게 아닌데 이 무례한 야만인 새끼가 뭣하러 내 앞에 튀어나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금빛 번갯불은 자기 턱을 매만졌다.

【씁, 새끼 주먹 좀 치네. 술 없냐? 남자가 치고받았으면 술잔을 나눠야지.】

【니가 만들어서 처드세요. 혹시 창세의 권능도 없는 찐따니?】

【니도 없어 뵈는데 뭘, 자식아. 신좌에 남겨둔 의념에 불과한 이 몸이 신좌의 힘을 끌어오는 게 가능하겠냐? 이렇게 정신을 차린 것도 거의 수만 년 만인데.】

【형이라고 부르면 한 잔 쏴준다, 틀딱아.】

【아우야. 술 좀 따라보거라. 내 신좌의 권능에 관심 없느냐?】

【븅딱아, 니 망치 내가 떼갔다니까? 망치 빼면 좆도 없는 게.】

【흐흐. 진짜 나라면 어쨌든, 신좌에 한해서라면 별로 틀린 말도 아니군.】

의외로 대범하게 웃어넘긴 그놈이 술잔을 드는 시늉을 했다.

【근데 말귀가 나쁘군. ‘내가 신좌를 가진 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잖냐? 니가 싸운 내 계승자가 나에 비해 훨씬 후달리는 느낌은 없드냐?】

【두 놈 만났는데, 처음 만난 하나는 존나 약한 개좆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느그 망치만 홀랑 빼서 쓴 새끼였어.】

이름이 뭐더라. 엔 뭐시기였던 〈인신〉.

시구르드가 세상에 개입하면서 꾸린 〈편찬대대〉의 속해 있던 토르의 적성을 가진 전투광 놈. 프랑의 아버지를 병들게 했던 염료를 뿌려대던 그 드워프의 호위 말이다.

묠니르도 제대로 실체화 못하고, 아직 미스릴도 못 찍었던 나한테 절대천공영역의 딜량 승부에서 털리고 죽었던 병신이 있었다.

나름대로 강하기는 했지만, 트루-틀딱 고인물 〈인신〉이었던 시구르드와 레티티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좆밥이 맞다.

금빛 번개가 이를 드러냈다.

존나 호방한 미소였다. 면상도 없는데 호감이고 지랄이네.

【왜 그렇게 약했다고 생각하냐?】

【내가 어떻게 알겠냐, 새꺄. 뜸 들이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하렴.】

【네 근력을 2배── 아니, 3배로 늘려주마.】

─샥! 금빛 번개는 그렇게만 말하고 손을 냉큼 내밀었다.

【혹했지? 한 잔 따라봐라, 아우야.】

【예엡!! 토르 형님의 아우 노르드가 술 한 잔 따라보겠습니닷!!】

얼른 맥주를 만들어서 잔을 들려주고 따랐다. 이 야만인 새끼가 증류주 같은 걸 처먹을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냥 21세기의 기네스 맥주였다.

자존심? 가오?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심해의 군주’랑 싸우게 될 텐데,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우리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거래처 꼰대에게 술 몇 잔 못 따를까!

이게 가장의 무게다. 아버지(애 없음)의 비애인 것이다.

‘구라 깐 거면 죽여버려야지.’

아니, 망령이니까 살인이 아니라 제령 아닌가? 한 대륙과 차원의 신이 지박령이 되기 전에 얼른 구해주는 거니까 오히려 이건 선행이다. 게임이면 카르마 포인트가 플러스 3쯤 올랐을 것.

그렇게 거품을 하나도 내지 않고 술을 따른다는 초월자의 손재주 능력을 선보였는데, 정작 술잔을 받은 씨팔럼은 내 유교식 술자리 예의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토르는 벙쪄서는 눈을 깜빡였다. 죽은 사람이니 일부러 술도 세 차례에 나눠서 따랐는데 개새끼가 안 보고 뭐하는겨?

【……이 새끼, 진짜 오딘의 후계자가 맞았네.】

【헤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오딘, 아니 오 씨 그 양반도 저처럼 속물적이고 그랬습니까? 어휴, 머리 좀 좋다고 설치는 샌님들이 다 그렇습죠.】

【그게 아냐. 뒤를 봐라, 멍청아.】

【데뎃?】

혹시 이렇게 돌아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딱밤이라도 날리려는 유치한 수작인가? 그러면 확 뒤로 자지러지면서 넘모 강하시닷─! 하고 재롱도 부려줄 수 있는데.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두둥실.

궁니르가 우릴 찾아온 것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삐에에에엑!!! 뺘아아아아아악!!!!!”

그 옆에는 까악거리며 계속 궁니르를 쪼아대는 브류나크도 있었고.

맞다. 여긴 우리 브류나크쟝의 홈그라운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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