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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1달가량 흘렀다.
시간이란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이 그 뒤에 있을 때는 쏜살같이 간다. 입대나 전쟁이 그렇다. 이번 경우의 우리는 존나 후자였다.
30일이 넘었을 때, 나는 저택의 만찬실에 앉아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꺼-억.”
“까-악.”
까마귀의 모습으로 실체화한 브류나크도 100% 생과일 쥬스를 여우와 두루미 설화처럼 할짝댔다. 럭셔리한 한때지만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구구구구….
나는 【힘의 허리띠】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나랑 주먹다짐을 했던 토르─의 의식이 깃들어 있던 허리띠─는 이 권능을 뺀 생전의 힘으로 내 상대를 했었을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쓰벌 허리띠가 어떻게 허리띠를 매?
아무튼 천하에 힘으로 겨룰 상대가 없었다는 그 토르의 권능이다.
원래 힘도 야수회귀를 켠 나랑 비슷한 마초 놈. 그런 녀석이 권능을 발동하고 힘을 휘둘렀으니 뭐 생각이랄 게 필요했겠는가. 걍 후려패면 앵간하면 뒤질 건데.
그리고 직접 차보고 깨달은 건데, 이 권능이란 그냥 힘만 늘려주고 땡치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니 뭐 대단한 효과는 아닌데…… 쉽게 말해서 활력이 늘어났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비아그라를 먹으면 이럴까?
정력이라는 게 심신의 활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는데, 그런 느낌이었다. 몸에 힘이 넘치고 별 생각 없이 그냥 주먹을 휘두르고 싶어지는 느낌.
“이러다 나까지 무식쟁이 돼겠어.”
“삐엑.”
“알어. 그러니까 연습 중이잖니.”
파-킨!
잔에 손을 뻗자 유리잔이 박살났다. 존나 그럴 수밖에. 말하자면 유압 프레스보다 수백 배는 쎈 압력에 노출된 건데 유리잔이 버티고 배기겠나.
나는 착잡한 눈으로 그걸 바라봤다. 무협지에서 이르길, 작은 힘을 다루지 못하는 놈은 큰 힘도 못 다룬다고 하였다. 확실하진 않은데 대충 그런 말이 있던 것 같다.
“음, 그 말이 백번 옳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전부 내 것으로 삼지 못하면 힘에 휘둘리지. 세상 섬세한 절기를 펼칠 때도 틈이 생길 테고.”
“뺘악?”
“딱히 ‘심해의 군주’가 그 빈틈을 알아챌 정도로 무술에 안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싸움이라는 거 하다 보면 ‘뭐야 씨발’의 연속이잖니.”
큰 싸움을 앞두고 부족한 몸 상태로 가고 싶진 않다. 그러다가 지기라도 하면 너무 억울해서 내 영혼이 심마에 들어서 유령으로 부활할 거라고.
나는 손을 흔들어서 유리잔을 지우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칭카라 호잇.”
쏟아진 술과 함께 사라진 유리잔이 뿅 하고 새 술을 채워서 나타났다.
뭐냐고? 뭐겠어, 창세의 권능이지.
“역시 술은 맥주지.”
연습은 중요하다. 나도 네페르티티도 새 권능에 적응하기에 1달로는 부족하다.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도 있으면 애용했을 건데, 존나 아쉽네.
─달달달달!
나는 힘 조절을 하느라고 수전증 환자처럼 떨기 시작한 손으로 잔을 들었다.
나무 맥주잔에는 지문이 푹 박히는 정도로 적응했으므로, 이제는 유리잔을 깨지 않을 정도까지만 체득하면 【힘의 허리띠】를 내 것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술맛이 좋네.”
아마 좋은 소식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어서겠지.
아셰라드가 치료를 마쳤다는 소식도 듣고 엘리자베트로부터 영지도 받았다.
색마 귀족이랑 혈연인 대귀족의 영지를 기어이 갈취했다던가.
그 영지는 내가 임시로 통치하던 휴스로이트를 산맥 하나 건너서 연결되는 위치에 있었다. 아마 나한테 주리란 걸 눈치깐 대귀족 나으리가 약삭빠르게 군 모양이다.
─내가 신임하는 신하, 울프헤딘은 헌신의 보수로서 위 영지를 통치하라.
─현재 영주 대리로 통치 중이었던 휴스로이트 또한 그대의 관할로 남긴다.
─그 대신 왕실의 이름으로 명을 내리니, 영지 간을 잇는 왕가 소유의 산맥을 그대가 관리하라.
말하자면 휴스로이트-똥땅 산맥-새 영지까지의 넓은 영토를 내 소유로 관할하라는 뜻이었다.
나쁜 제안은 아니었기에 받아들였다. 어째선지 나보다 휴스로이트의 시민들이 더 기뻐했는데, 딱 보니까 대귀족의 영지였던 곳 사람들은 우울해 한 모양이었다.
‘별 수 없긴 하지.’
내가 무력, 재력 면에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대귀족의 밑에 있는 것만큼 안정적이진 않을 테니. 하지만 나로서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싸움에 대비해야 하니까.
“까악─?”
“귀찮은 일은 겪지 않아도 돼. 지금 엘리자베트 이름으로 나한테 밀명을 내렸다는 소문을 내놨어. 영지 관련해서 내가 시간을 뺏길 일은 없지.”
엘리자베트가 미래의 백일몽에 대해 기억해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슬픈 꿈은 깨고 나서도 사람을 눈물을 짓게 하는 법이다. 그녀에게 부탁해서 내가 몇 달 정도 자유롭게 활동할 만한 여지를 받아냈던 것은 그런 덕분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나는 지금 여왕 폐하의 명령을 받고 일하는 중이다.
“세상을 구하라는 밀명이라고 하면 듣기 웃기긴 하지?”
“뺘앗.”
별로 그렇지는 않다며 빈 유리컵을 내미는 브류나크.
창세의 권능으로 만들어도 되겠지만, 꿈속에서 마셔도 되는 걸 굳이 여기로 나온 녀석이다. 내가 또 내면세계에서 창조한 쥬스를 주면 미안하잖나.
“더 줄게. 기다려.”
딸랑─! 나는 핸드벨을 흔들었다.
자꾸만 봉사본능에 충실해지려 드는 바이콘들이 만든, 말하자면 식당 테이블에 붙어 있는 호출벨 같은 것이다.
물론 부른 건 바이콘들이 아니라 발퀴리에다.
솔직히 자꾸 이렇게 욕구를 안 채워주니까 나를 숭배하는 책, 박물관, 동상 같은 것들에만 정신이 팔리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 고치기엔 늦어버린 우리 관계였다.
그런데 벨을 듣고 온 건 발퀴리에가 아니라, 내 하나 뿐인 시종 겸 무녀님이었다. 베로니카는 발퀴리에한테 대신 받아온 듯한 쥬스를 가지고 말했다.
“주인님, 잠시 시간 괜찮으냐?”
“왜? 너도 한잔할래?”
“평소였다면 맛 정도는 보겠다만, 오늘은 조금 그렇구나. 다나와 잠시 사티스님께 다녀왔다. 다른 신들을 설득하는 게 진척이 없는 모양이야.”
“쓰벌. 꼰대라고 하기엔 그 양반들 어깨에 걸린 게 많긴 하지.”
그냥 입만 산 꼰대가 아니라는 건 미래에서 다 죽을 걸 알면서도 끝까지 항전했던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9년 뒤의 미래는 더 처참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 양반들의 협력도 필요한데.’
말을 쉽게 들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한 달쯤 전에 찾아갔던 사티스부터가 나우넷의 진흙을 한 움큼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를 믿어주면서도 반신반의했을 듯 했고.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랑 타이밍을 못 맞출 텐데……”
“그래서 고민 중이라 하시더구나. 뭔가 뾰족한 방법을 생각 중이다.”
“아니, 그런 데 정신 팔리지 마. 내가 오늘내일 중으로 해결할게.”
“무척 믿음직하다만, 그럴 방법이 있으면 미리 말해줄 수는 없었느냐?”
여봐란 듯이 볼을 부풀리는 베로니카. 이지적인 외모에 안 어울리는 듯 어울렸다. 진심이 아니란 걸 아니까 칭얼대는 것도 귀엽기만 하네.
“나도 최근에야 얻고, 깨달은 거라서. 아무튼 그 일은 나한테 맡겨. 솔직히 우리끼리 부딪히기에는 무리가 많고, 계속 튕기면 억지로라도 말을 듣게 해 줘야지.”
“……지나친 폭행은 하지 말거라?”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그나저나 나도 존나 출세했네. 무녀한테 신들을 줘패지 말라는 소리를 다 듣고.”
“힘 조절을 못 한다고 낮에는 우리랑도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어야지, 원.”
“그 슬픈 고행의 시간이 내 성장의 비료가 되어주는 거야.”
“낮에 못 만난 만큼 밤에 치덕거린다는 얘기를 들었다만.”
“이런 쓰벌, 넌 바빠서 못 만났으니까 모를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낮까지 권능을 다루는 연습을 하다가, 밤에는 쌓인 만큼 아내들과 뒹굴던 걸 들켰나.
근손실? 그런 걸 두려워하는 건 마초가 아니다. 정액 좀 하루에 몇 리터 뽑는다고 약해질 근육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정력은 마나량에 근간하니, 마나통을 혹사하면 거시적으로 마나-근성장이 보일 것이다. 질싸로 효과를 보려면 아내들을 하루에 20시간씩 안아야 할 테지만.
“잠깐 뿔 엄마랑 얘기하다 올게. 놀고 있으렴.”
“까악.”
나는 베로니카를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목에다 코와 입을 대자 베로니카는 저항하는 기색도 없이 신음을 흘리다가 나를 밀쳤다.
“……자꾸 유혹하지 말거라. 주인님이 눈웃음을 지으면 허리에 힘이 풀린다.”
“힘 좀 풀고 가. 요새 바빴잖아. 그리고 의외로 냄새는 안 나네. 솔직히 살짝 기대했는데.”
“변태 같은 소리 말거라. 그대 앞에서는 언제나 깔끔하고 아름다운 시종으로 있고 싶구나. 그리고 밤일은 내일까지만 참을 것이다.”
“내가 해줄 일이라도 있나 봐?”
“음.”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프랑과 라리루라를 품거라. 대충…… 시간상으로는 72시간 정도?”
“……죽을 텐데.”
나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내가 ‘고작’ 두 명 데리고 사흘이나 마르지 않는 정력을 퍼부어댔다가는 그녀들이 진짜 가버리다 죽을 것이다.
우리 수준의 고수들이 삽입하다가 헐거나 하는 참사는 없겠지만 말이다.
“설명은 가면서 들을게.”
뭔가 이유가 있기는 하겠지. 베로니카가 갑자기 관능소설도 써보고 싶어져서 우리 셋이 뒹구는 걸 옆에서 관찰하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간단히 말해서, 프랑에게 오딘님의 신좌를 적용시킬 방법을 찾았다.”
베로니카는 앞장서며 말했다. 절로 만지고 싶어지는 애플힙이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으면서 말했다.
“어떤 방법이길래? 조금 상상이 가긴 하는데.”
“이뤄지지 않은 미래는 백일몽이다. 그대와 내 손으로 바뀌어버린 9년 후의 세계는 이제 일어날 수가 없지. 만에 하나 우리가 지더라도 그 미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겠지. 지금 시점에서도 이미 너무나 많이 달라졌으니까.”
특히 학살에 특화한 ‘휘왕’과 강자를 죽이는 데 뛰어났던 ‘황색 왕’의 죽음은 크다. 그 두 녀석만 없어도 승산이 확 뛸 정도니까.
‘휘왕’은 막말로 다나의 발퀴리에를 포함한 모든 레이드 전법을 봉쇄하는 놈이었고, ‘황색 왕’에게 맞서면 아무리 강해도 감지/예측에 뛰어난 권능이 없으면 즉사다.
내가 베로니카의 엉덩이에게 대답하자, 그녀는 시선을 느낀 듯 손으로 살짝 가리면서 나를 뚱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어쨌든, 미래는 바뀌었다. 그리고, 그대가 아니더라도 그 미래에서 살아남은 몇 명은 꿈결에 불과한 희미한 기억이나마 그때의 인상이 남았지.”
“그건 아는데, 그렇게 큰 의미가 있었나?”
엘리자베트는 본인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라리루라를 본명으로 부르거나, 프랑에게 고마워했다.
단, 그녀의 머릿속에 미래의 기억은 전혀 남지 않았을 것이었다.
만약 나도 그냥 깨어났다면 그렇게 됐겠지. 저 수첩은 가지고 오지도 못했을 거고 희미한 기억만 남아서 불길한 미래가 온다는 것만 기억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이 지나간 미래를 기억하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어떤 술수를 부려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라면, 미래의 베로니카가 나한테도 현실로 돌아간 뒤에 그렇게 하라고 말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래. 큰 의미가 있다. 적어도 그 둘에게는.”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베로니카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론은 나 자신도 이해 못했을 만큼 복잡하니 결론부터 말하마.”
베로니카의 눈과 뿔이 형광색으로 빛났다. 권능 발동 상태에서 얻는 미래의 지식은 베로니카조차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사용하는 거던가.
“이룰 수 없는 미래는 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꿈속에서라면 그들은 미래의 자신과 거의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잔류한 기억이나마 꿈속에서 미래의 자신을 보지 않았느냐?”
베로니카가 열심히 문을 열었다. 안을 들여다본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
양탄자에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나란히 나신으로 누워 있는 프랑과 라리루라가 있었다. 둘 다 깊이 잠든 듯 단지에서 향초가 피어올랐다.
“……제물을 깔아놓은 마녀라고 한다면 화낼래?”
“……으, 음. 분위기를 조성하는 걸 깜빡했구나. 나로서는 신에게 성은을 입을 여인들을 목욕재계 시키는 무녀 같은 마음으로 한 것이었다만.”
“기다려 봐.”
나는 토르의 권능을 해제하고, 창세의 권능으로 방 전체를 덮었다.
샤아악─!
저택의 방이 그럴싸한 신전처럼 바뀌었다. 제물 2명을 눕혀놓은 마녀의 실험실보다는 이게 낫겠지. 겉으로 보기에는 사이비 종교 느낌도 난다만.
아니 뭐, 나르메르 나일은 무녀가 시중을 드는 게 보편적이기도 하고.
‘이세계인의 눈으로 봐라…….’
내가 마음을 바꿔먹자 베로니카도 확 변한 방의 모습을 크게 반겼다.
“나쁘지 않구나. 그래, 설명 도중이었지. 다나가 프레이야님의 신좌를 계승했을 때를 기억하느냐? 그때도 꿈속에서 신좌를 이어받았었다는걸.”
“뭐, 그렇긴 했지?”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가 눈치를 깠다.
“아, 글쿠만? 오딘의 신좌도 꿈속에서 계승식이 이뤄진다면……”
“미래의 프랑이 갖췄던 조건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느니라.”
다시 말해서, 죽었다 깨어나는 과정이 없더라도 오딘의 신좌에 적성을 가지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라리루라는?”
“9년 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던 건 저 아이밖에 없잖느냐. 꿈결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논문과 창작 등에 쓰는 건 드물지도 않은 일이다.”
“미래 라리루라의 경험치를 이어받을 수 있다?”
“실패해도 따로 나쁠 건 없는 시도잖느냐?”
그렇게 말한 베로니카는 나를 말 없이 쳐다봤다.
“그리고 기탄없이 말하자면, 아무리 잠들었다곤 해도 그대를 상대로 혼자서 72시간이나 버텼다간 프랑의 건강이 심히 우려돼서 그런 것도 있다.”
“……으흠.”
나는 통하지도 않을 변론 대신 헛기침만 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역할은? 셰이드의 꿈을 꿀 수 있게 돕기?”
“그건 부차적인 요소다. 애초에 미래를 완전히 기억하는 건 그대뿐이다. 이 의식을 마친다고 해도 저 아이들이 지난 미래를 기억해내는 건 아니다. 이미지를 보충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그럼 다행이고.”
내가 내심 안도하자 베로니카가 잠깐 눈웃음을 지었다.
“프랑과 라리루라에게 미래의 기억이 생긴다고 하면, 그대는 결전 때 힘이 부족할지언정 이 의식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아니더냐.”
“주인님을 속속들이 꿰고 있네. 좋은 시종이야.”
“머리는 쓰다듬지 말거라. 지금의 나는 그대의 손길에 목말라 있느니라.”
“미안.”
이렇듯 베로니카는 내 성격을 아주 잘 알았다.
9년 뒤의 미래라는 백일몽에 존재하던 그녀들.
나와 작별했던 미래의 아내님들은 그저 소멸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프랑과 라리루라의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았다.
과거가 사라지지 않듯, 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나가 있으마.”
베로니카는 내 옷을 조신하게 벗겨주곤 탁자에 모래시계를 뒀다.
“기억하거라. 72시간이다. 오딘님의 신좌에 시련 등은 없을 듯 하다만, 프랑이 신좌에 완전히 적응하려면 그 정도는 걸릴 것이니라.”
“어련히 믿지. 프랑하고 라리루라도 널 믿으니 저기 누워 있는 거고.”
“……흥. 고맙다고는 하지 않겠다. 미래의 못난 바이콘 계집과는 달리, 그대 앞에 있는 나는 그런 커다란 실패를 저지른 적은 없으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기는.
그래도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구애되는 것보단 허세를 부리는 게 낫지. 나는 베로니카를 보내고 옷 한 벌 입지 않은 채로 마법진에 누웠다.
그리고 잠든 아내님들의 가슴을 양손에 붙잡고 만지작대며 중얼거렸다.
“아스가르드산 의식은 어째 다 기승전섹스네.”
역시 오딘은 최고의 통치자였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