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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가 우리 집 벽을 부수고 안에 들어오면 기분이 어떨까?
영혼 보내기 메타로 소리만 보내는 층간소음도 살인의 동기가 되는 시대잖은가. 우리 집 벽을 쳐부수고 들어온 새끼를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킹치만 부서진 벽이 알아서 고쳐진다면?’
그리고 집 주인이 벽이 알아서 고쳐지는 날만을 바라던 이들이라면?
“환영할게, 울프헤딘. 내줄 건 술하고 과일밖에 없지만.”
내 방문이 딱 그짝이었다. 이 씨발 머야 싶으면서도, 상황을 지켜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게 생각보다 손해는 아닌 듯한 느낌.
소베크라고 불렸던 파충류 눈깔 남신이 말했다.
“정말로 차원막을 고쳤군.”
“사람마다 아픈 곳이 다르고 몸 구조가 조금씩 다르듯이, 여기 걸 고쳤다고 지구 것도 고쳐질 거라고는 말씀 못 드립니다.”
“겸손하군. 신들도 어찌하지 못한 난제를 저리 쉽게 해결했으니,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보이는 것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미래의 베로니카가 실패했던 데이터가 있었기에 성공한 것이다.
한 차원, 한 세계를 통째로 멸망시킨 끝에 얻은 기술이니 여기까지 오는 데 쉬웠다고는 절대 말 못 할 것이었다. 내 말뜻을 짐작한 소베크가 고개를 숙였다.
“언사를 그르쳤다. 용서해다오.”
“괜찮습니다. 살아남은 신들께서 다 모이신 게 맞습니까?”
“그래. 보시다시피 이게 전부야. 숫자가 적어서 실망했니?”
스윽…. 나는 눈을 굴리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기대 이상입니다.”
헤니르가 지랄할 때 개입했던 손만 봐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많은 신들이 살아남은 듯 했다.
“예언이 성사됐다면 더 많이 살아남았어야 했지. 그들의 배역을 옛 지배자들이 빼앗고, 또 그렇게 살아남은 놈들과 죽고 죽이다 보니 이렇게 됐고.”
빨간 단발의 중성적인 신이 말했다. 그는 내게 목례했다.
“신유신(申諭神) 오그마 그리어나네크야. 그리고 저기 있는 게──”
“내가 그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라고 했잖아, 이 나잇살 허투루 처먹은 골방 늙은이야!!!!”
“겍! 겍! 겍! 그에에엑!”
오그마의 말을 끊고 빨간 머리 잼민이가 나한테 시비를 걸던 틀딱 의사를 밟고, 목을 졸라댔다.
노인공경의 정신이 싹 소멸한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광경! 그러나 내 눈과 신앙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변수가 있었으니, 잼민이의 등에 달린 날개였다.
“이 동네에서는 천사가 곧 죽을 노인을 저렇게 천국에 데려가나 보군요.”
“……백액신(白額神) 앙구스 막 오그와 시의신(侍醫神) 디안 케크트야. 연배는 비슷해. 우리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지만.”
어깨를 으쓱이는 오그마. 생긴 것도 쌉미남이라 분위기 메이커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놈이 정색 빨면 존나 카리스마 있지. 나처럼.
“앙구스 막 오그야. 편하게 백액신이라고 불러.”
한동안 디안을 줘패던 천사 잼민쿤이 말했다.
내민 손을 맞잡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앙구스가 더 부르기 편한데요.”
“아니, 너 말고 내가 편하니까 그렇게 부르라고.”
“이름을 보면 얼스터 쪽 분이신데, 혹시 얼스터 신들은 다 머리에 약간 하자가 있나요?”
저기 기절한 의룡인 할배도 그렇고, 우리 누나 선조님의 선조님은 인격파탄이 기본 옵션인가.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없으니까 신과 인간이지. 그렇지? 디어뮈드.”
키가 2미터는 될 듯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대답하는 말은 없었는데, 덩치도 덩치인데다 그리스 조각처럼 근육이 오밀조밀해서 제일 눈에 띄었다.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듯한 잼민이가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베테랑 전사를 아들이라고 부르다니?
신박한 느낌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도 사정은 비슷했다. 내 아들이 나만큼 크면 프랑이나 라리루라랑 눈을 마주칠 때 허리를 수그려야 할 것이니까.
나는 그 디어 뮈시기 씨의 실력을 대충 감 잡고 화제를 되돌렸다.
“보셨다시피 차원막을 고칠 방법은 마련했습죠. 저희는 부탁드리는 처지에서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제 대답을 들을 차례라고 보는데, 아닙니까?”
“성급하네. 아니면 우리의 신중함이 과했나?”
날개 잼민이 앙구스가 하늘을 날며 턱을 괬다.
“네 말을 경솔하게 흘려들은 적은 없어. 그래도 우리는 이날을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오랜 시간 기다렸지. 그래서 결론을 서두를 수 없었던 거야.”
천상── 이세계인들이 사후세계로 여기는 차원 중 하나를 둘러보자, 나는 그렇겠거니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아무 것도 없네.’
나무나 그런 게 몇 그루 자라나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적인 천국은 물론이고, 좋은 의미에서 보는 천국 같지는 않았다.
구름바다와 초원이 맞닿은 듯한 공간이다. 여기 죽치고 앉아서 까마득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니? 혈통보증서 딸린 신들이라도 눈앞이 아찔해지겠지.
엘프여도 1만 년 정도 기다리면 미쳐버릴 거다.
‘병장을 달고도 외출외박 없이 20년 군복무하는 느낌이겠는데.’
지루하다든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정신병동에 갇혀도 그것보단 낫겠다.
그렇게 병장으로 20년을 갇혀 지냈는데, 갑자기 나라의 명운을 걸고 북괴 놈들의 수령을 해치우고 모가지를 싸우러 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거기서 하루만에 답을 내면 그게 미친놈이지.’
기다리다가 지쳐서 차라리 한 판 붙고 끝내자고 생각하기에는 저들의 어깨에 걸린 목숨이 존나 1~2개가 아니잖은가.
그리고 저들이 이렇게 스스로를 가둔 건, 그들 자체가 취약해진 【차원막】의 차원막에는 재앙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를 위해서 희생했다고 말해도 좋았다.
신대가 끝난 후부터 거의 모든 세월을 말이다.
그런 이들이 인류의 존망을 건 선택을 몇 달쯤 고민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차원의 살풍경함을 목격한 지금은 그랬다.
나한테는 1달이래도 저들한테는 몇 시간 이하의 감각일 텐데, 우리가 실패해서 인류가 멸절했다는 미래를 예언자가 던져놨는데 저렇게 침착한 게 더 대단한 게 아닐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내 쪽에 대고 고개를 끄덕거린 사티스는 낯빛을 차갑게 하고서 다른 신들이 보는 곳으로 나섰다.
“출신도, 성향도, 소원도 무엇 하나 맞지 않았던 나의 벗들이여. 석양이 질 때 도망쳐 온 동굴에서 전쟁을 기다리는 나날, 정말 수고 많았다. 생살을 찢는 듯한 인내를 견디고, 이리도 밤은 저물었다.”
신들을 둘러본 사티스가 주먹을 부르쥐었다.
“내 그대들에게 묻겠다. 예언의 때가 무르익기 전까지 힘을 기르려 했으나, 그리하여 여기 있는 신인류의 영웅과 그의 동료들보다 강대한 동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수명은 짧아. 우리가 고작 200년 힘을 비축했다고 저들의 협력보다 효과적일 턱이 없지. 그리고 저들은 인간이니, 100년쯤 지나면 다시는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우려가 커.”
팔짱을 낀 오그마가 손을 저었다.
신들은 예언에서 ‘심해의 군주’가 깨어난다는 그 날의 한계 직전까지 존버할 생각이었던 거겠지.
저항해도 예언이라는 운명을 파괴하지 못하는데 무식하게 굴어도 소용없다. 옛 지배자들이 다 깨어나기 전에 승리할 수 있다면 유효한 전략이다.
그걸 위해서 사티스는 지상에 가호를 내려주고 뛰어난 인간 전사들을 모았다. 그럴 종교가 남지 않은 신들도 나름의 방책을 꾸린 모양이었고.
반인반신 아들을 동반한 날개 잼민이 앙구스도 끄덕거렸다.
“나는 좋다고 봐. 이제 바위나 나무처럼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는 나날에서 깨어나서, 인간들처럼 1분 1초에도 충실해야 해. ‘심해의 군주’는 그렇게 할 테니까.”
파충류 눈깔 소베크는 묵묵하게 원시적으로 생겨먹은 증표를 내밀었다. 아마 저게 동의의 뜻인 듯, 다른 신들도 똑같은 증표를 내걸었다.
소베크가 기절한 노인네를 힐끔거렸다.
“……디안 케크트는?”
“기다려 봐.”
앙구스가 날개를 파닥이며 그의 증표를 꺼내서 가져왔다. 시시덕대는 꼴이 소매치기에 성공한 것 같았다. 사티스가 무겁게 승낙했다.
“우리는 오직 하나의 기치 아래에 모였으니, 그 뜻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으리.”
활을 만들어낸 그녀가 하늘의 별에 대고 쏘듯이 화살을 발사했다.
“나의 사냥개들이여, 호각을 불어라!! 이는 개전(開戰)의 봉화니라!!”
피유우우웅─!! 파츠츠츠츠츠─!!
화살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서, 정말로 어딘가에 있을 별을 꿰뚫을 듯 했다.
어째서였을까? 천리안을 켠 것도 아닌데, 나는 하늘에서 이미 나를 주시하고 있던 거대한 기척이 흥미롭다는 듯이 꿈틀거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화살이 폭발하며 어떠한 권능이 이 차원에 작용했다. 나는 잠들어있던 영혼들이 발퀴리에가 부른 에인헤리처럼 깨어나는 걸 보고 눈치를 깠다.
오프툼처럼 과업을 완수하고, 사티스의 품으로 돌아간 사냥개들!
사티스가 예언이라는 운명을 비틀고자 모아왔던 용사들이, 지금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촉수처럼 맥박치는 은하를 관찰했다.
새삼스럽게도, ‘심해의 군주’와의 결전이 다가온 듯한 실감이 들었다.
***
“사티스님의 용사들은 왜 잠들어있던 겁니까?”
선전포고 아닌 선전포고가 끝나고, 나는 그녀를 멈춰 세우며 물었다.
“인간에게 세월은 가혹한 형벌이니까. 기다림은 말할 나위도 없고.”
언제 전쟁해도 좋도록 임전태세로 대기했었던 듯, 사티스는 대범하게 대답해줬다. 갑자기 집합이 떨어진 당나라 군대에서 보여줄 법한 조바심과는 연이 없어 보였다.
설마 그녀가 위기감을 못 느껴서 그럴까.
이건 그 위기감을 자기 곁에 두고 사는 이들의 반응이다. 자다가 폭격이 떨어져도 바로 총 들고 전선으로 달려가는 숙련된 특수 부대 같군.
“내 권능은 사냥과 사냥감의 갈무리다. 이렇게 말하면 박제라도 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목표물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도 내 권능의 일환이지.”
“꼭 동면 같네요.”
“완벽한 비유였어.”
사티스는 입술을 비뚜름하게 끌어올렸다. 나름 미소인가 보다.
“동면을 하는 생물의 공통분모를 알아? 겨울을 견디는 습성을 가졌다는 건 장수하는 생물이라는 뜻이야. 겨울이 오면 자손만 남기고 자기는 죽는 생물도 많거든.”
내 비유의 정확성 말고, 거기 내포된 뜻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대답하는 사티스였다. 하긴 내 말대로라면 그녀의 신도들이 오래 살 수 있단 뜻이 되니까.
“들어 봤습니다. 전 고향에서 동물을 치료하며 살고 싶었걸랑요.”
“……사냥꾼한테 악감정은 없지?”
“오히려 사람 고치는 의사보다 사냥꾼들이랑 더 친할걸요.”
포수들이 시골 마을에 내려온 곰이라든지 밭을 조지는 난폭한 멧돼지를 잡으면 수의사를 부르곤 했으니까. 99%의 수의사들은 성적 따라서 동물병원으로 간 거겠지만.
“우리가 인간 영웅들을 모은 건 운명을 비틀기 위함이었어.”
앙구스가 무중력 공간의 실러캔스처럼 허공에서 헤엄쳤다.
“프레이야의 에인헤리, 알지? 걔도 같은 맥락이었고. 하지만 마스터 클래스는 1명뿐이야. 쟤네는 우리를 잘 믿지 않으니 인연을 맺고 여기 데려올 방법이 없었어.”
“로마니아의 7대신이라든가요?”
“응. 그리고 지금 지상에 있는 아이들도 우리를 믿지는 않거든.”
앙구스는 악의없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난 로키가 아쉬워. 그 할망구가 여기 있었으면, 로마니아 7대신 한둘 정도는 여기 데려올 수 있었을 텐데.”
“확실히. 포모나는 로키 신도였다고 했었죠.”
“인연이 닿으면 우리의 신도는 사후에 이곳으로 불려와. 아스가르드의 발할라는 소멸했지만, 이곳 마그멜은 아직 영혼을 인도하는 기능이 남아있는 덕분이지.”
마그멜. 얼스터 인들이 말하는 사후세계다.
로마니아 신앙세계에서 말하는 엘리시온은 문명 통제를 위한 황실의 거짓부렁으로 밝혀졌지만, 이 마그멜이나 아스가르드는 실존하던 세계다.
세계수에 맺힌 열매, 그 다른 차원 중 하나겠지.
아스가르드는 라그나로크 때 옛 지배자들이 다 모여서 날뛰다가 죽고 죽여댔으니 파괴됐겠지만.
“그래, 마그멜엔 아직 신도를 보우하는 기능이 남아있긴 한데…… 에휴.”
한숨을 짓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겠다.
얼스터 신앙은 뭐, 알다시피 거의 멸족한 상태.
우리 다나와 하이로메인이 〈은애절〉 축제 때 얼스터의 신화를 그린 동화를 팔며 흘렸던 눈물이야말로 그 강력한 증거였다.
오죽하면 고고학자인 나도 앙구스, 오그마, 디안 같은 신들의 이름은 난생 처음 들어봤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세상 일반인들이 그들을 믿다가 사후 여기로 영혼이 불려올 일이 있겠는가. 앙구스가 뒤통수에서 깍지를 꼈다.
“아~ 고대문명의 에린이 남아있을 적에는 아직 몇 명 왔었는데.”
“지상에서 영혼이 소멸되면 못 올 테고, 누구든 여기 계신 분을 믿기만 하면 불려오는 겁니까?”
“마나와 신앙심이 충분하면. 근데 우린 그다지 유명하지 않거든~. 사티스보다 더 유명한 창세신 할망구가 여기 앉아서 자길 믿는 용사를 모으고, 나나 게베크가 지상에서 별의 자손을 사냥했어야 했어~.”
역할분담이 잘못됐다는 듯 말하는 앙구스.
오랜만에 만난 뉴 페이스에 신바람 나서 떠드는 걸 보면, 이 잼민이도 실력에 자부심이 큰 모양이었다. 허리에 찬 검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긴 했다.
“그런데, 저기 계신 분은 저희를 영 못 미덥게 보는 눈치인데요?”
그래서 나는 생각해온 말을 읊었다.
“……디안 케크트가 폭언을 했다며?”
“넹.”
“용서해 줘. 내가 이렇게 대신 사과할게.”
정색하고 땅에 발을 내리는 앙구스. 행동거지가 성숙해서 총명한 소년처럼 보인다. 나보다 수만 배 연상일 테니까 그럴 만도 한가.
“우리가 죽도록 패서 성질을 고쳐놓으려고 하긴 했는데, 신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어서……”
“알다마다요.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고통에 굴복한다면 여러분은 이 마그멜에서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하셨을 겁니다.”
불변한다는 건 유연성이 없다는 뜻이다.
철은 찰흙보다 단단하지만 모양을 바꿀 때 드는 수고도 차원이 다르니까.
“그게, 원래도 상당히 재수없고 질투심 넘치고 미친놈이었는데…… 이래저래 많이 있어서. 죽은 아들 때문인 것 같기도 해.”
소곤소곤 말해주는 앙구스. 하지만 남자 새끼가 내 주변 30cm 근처에 낯짝을 들이미는 걸 허가한 기억은 없다. 나는 소년 신을 밀어내면서 말했다.
“이해합니다. 이해하고 말고요. 그런데, 앞으로 목숨을 걸고 같이 싸울 사이에 실력을 믿기 힘든 채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소베크한테 들었는데, 진짜로 붙자고? 싸움이 멀지 않은 지금?”
“뭐 죽자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제가 나름 한 끗발 한다는 걸 보여드려야 여러분도 ‘크, 우리가 이렇게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린 게 이놈을 만나기 위해서였고만’ 하고 무릎을 탁 치시죠.”
“그, 있잖아? 니가 헤니르를 실컷 줘패는 꼴을 여기 앉아서 다 같이 구경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의심 같은 걸 하겠어. 디안이 까분 건 멍청이라서 그런 거고……”
“아, 제가 고졸이라 어려운 얘기는 모르겠슴다. 너무 그러지 마시고. 가볍게요, 예? 가볍게 몇 분 붙어보기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협박 톤이 되지 않게 조심하며 말했는데, 그때 거의 골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던 거한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버지.”
“디어뮈드, 네가?”
“보아하니,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상 저희가 못 미더운 듯 합니다.”
“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하십니까?”
나는 속내를 들켰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이놈 이거 눈치는 빠른데 눈치가 없네. 일찌감치 눈치 깠으면 대충 입 다물어주면 어디 덧나나.
디어뮈 뭐시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요청대로 간단하게 힘만 겨루겠습니다.”
“……참고삼아 질문드리는 건데, 귀하의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 이 마그멜 안에서입니다.”
“인간 출신으로는 최고라고 평가받으나, 신들께 칼을 내민 적은 없어서 모릅니다. 과거에 저처럼 부모의 권능을 계승한 반신과는 비등했습니다.”
그렇다면 평균치를 재는 정도로는 적절하겠다.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남자랑 부대끼는 취미 같은 건 없지만, 상대도 마초이자 헬창이니 팔 힘 싸움 한 판 붙어보자는 걸 뺄 수는 없잖은가?
“권능은 뺍시다. 신체강화 마법은 봐 주십쇼.”
“마법 또한 당신의 무기입니다. 불만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말한 거한이 발을 맞댔다. 테이블이 없는 팔씨름 같은 걸까. 힘을 줘서 상대를 옆으로 고꾸라트리는 쪽이 이기는 힘겨루기였다.
“하나, 둘, 셋에 시작해. 자, 하나, 둘──”
앙구스는 관심이 동했는지 신호를 줬다. 날개를 퍼덕이며 물러난 그가 높이 들었던 팔을 내렸다.
“──셋!”
셋이라는 말의 발음이 끝난 직후, 우리가 손에 힘을 준 바로 그순간.
─쩌저저저적!!
차원막이 세로로 쭉 찢어졌다.
우리가 힘 싸움을 벌인 탓에, 내가 이미 찢어둔 차원막이 고쳐지다가 말고 쫙 찢어지고 만 것이다.
“……어, 애미.”
“마그멜의 차원막에 파손이 발생. 수복에 쓰일 동력 소모 계측……”
디어뮈시기가 눈을 반개하다가 날 쳐다봤다.
“당신이 돌아갈 만한 여유 에너지가 남지 않은 듯 합니다만, 귀환할 방법은 구비해 두셨습니까?”
“……이런 쓰벌.”
좆됐다. 외박하게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