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84화 (983/1,009)

세인트-꼰대가 나를 내려다보며 턱짓했다.

─그렇게 간청하니 받아들여 주마. 내 친히 네 능력을 시험해주지. 우선 【중간 가지】의 차원막부터 고쳐보아라.

거의 자기 직속 팀원 겸 부하를 대하는 태도네.

관상으로 사람을 재서는 안 된다지만, 저 새낀 말투부터가 영 글러 먹었으니 쌉꼰대라고 일반화 해버려도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단, 실패한다면 너희가 우리의 지시를 따라라.

턱짓을 하던 꼰대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인간이면서 오직 일신의 능력과 재주만 갖고 신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 했으니, 가진 능력이 모자라다는 게 발각되면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겠지.

─내가 그와 대화하는 중이다. 멋대로 끼어들지 마라, 디안.

─무엇이 두렵지, 소베크? 저 인간이 예지했던 미래가 무섭나? 그렇다면 더 거부해서는 안 되지. 싸움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너도 보수적으로 변했군.

소베크라는 신이 입을 다물었다. 저들의 관계를 모르는 나조차도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확 찌푸린 표정이었다.

같은 신들한테도 경원시 당하는 틀딱이 말했다.

─실험은 늘 진취적이어야만 한다. 당장 시작해.

“아, 예. 그렇게 합죠.”

근데 이 새끼는 뭔데 자꾸 말을 쳐 놓지.

인간 왕족들 같은 양반들도 나한테 반말을 까긴 하지만, 꼴에 신이라고 아주 윗사람 행세하는 게 몸에 밴 놈이었다. 어? 꼴받네? 빡치네?

나는 엘리트 대갈통을 굴려서 생각을 해 보고, 쿨하게 들이박았다.

“근데 할배요. 왜 반말이시죠?”

─……뭬라?

“거기 딱 기다리십쇼. 제가 올라가면 잠깐 면담 좀 하십시다.”

─까딱까딱. 하늘에다 대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내가 토게피 같은 포켓몬이었으면 지금 걸로 지진 나갔어. 알어?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 사회 귀족들도 아니고, 알 거 아는 분이 왜 그리 예의가 없습니까? 제가 존대를 해드리는 건 오늘 처음 보는 당신이 존경스러워서가 아니거든요? 서로 지킬 건 지킵시다. 전 할 일만 하면 터치 안 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너희의 창조주다.

“제 창조주는 우리 엄마 아빠고, 그분들이 사는 땅이랑 맞닿은 바다에 댁들이 놓친 문어가 잠자고 있답디다. 시발 생각해보니 날 여기 끌고 온 것도 그년이네? 원흉은 그년이라고 치고, 원인 제공자는 누굴까요?”

─……………….

“생판 모르는 세상까지 끌려와갖고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고 있는데 염치가 있으면 좀 미안한 눈치라도 있어야지. 어떻게 오딘의 망령보다도 예의가 없으시답니까?”

말하다 보니까 꼴받네. 오딘이랑 사티스는 존나 눈치 염치라도 있어서 우리를 존중하는 척이라도 하고,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는 꽤 쭈구리처럼 굴었는데.

‘역시 꼰대란 종족은 밑사람을 즈그들 소유물로 보는 것인가?’

꼰대와 교수의 교집합이 적지 않은 걸 고려하면 역시 신도 신 나름이다.

탑골 공원의 깨달음이 아니었다면 벌써 빡침을 수습 못 하고 성질을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같이 싸울 사이인데 앙금을 남겨둘 순 없죠. 제가 못 미덥다고 하셨죠? 그러시다면 아마 실력도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시겠네요. 세상에 마상에, 어떻게 나약한 좆간 따위가 신들 싸우는 데 끼어든대?”

─아, 아니, 자네의 힘을 의심하지는……

“제가 거기 올라가면 가볍게 치고받읍시다. 딱 대표 한 분하고만 치고받으면 와! 세상 믿음직한 도우미가 왔구나! 하고 사기가 충천하시겠죠? 아, 지금 저랑 얘기하시는 분은 제가 아까 면담 예약 잡히신 거 잊지 마시고요.”

─기, 기다리게. 내가 좀 흥분해서 말실수를……

“아악! 해외전화는 수신료 많이 나가는데! 이만 끊겠습니다!”

나는 천리안을 뚝 끊고 베로니카에게 손짓했다.

“시작하자. 실험에 부족한 재료라든가 없지?”

“준비할 시간은 많았으니 괜찮다만……”

“그럼 복구부터. 대략적인 수복만 해 보자. 크게 규모를 확장하지만 않으면 만에 하나 문어 썅년이 옆에서 버그를 일으키려 들어도 수습하기 쉽겠지?”

“으, 으음. 그렇게 하마. 적당히 하고 오거라?”

그걸 정하는 건 내가 아닌데. 신님들이 얼마나 빨리 그 양심 없는 자존심을 접을까의 문제지.

“가끔은 치고받다가 친해지는 사이도 있지. 힘 차이가 너무 나면 괴롭힘이 되겠지만, 명색이 전쟁을 준비하는 신들인데 나한테 맞기만 하겠어?”

“……주인님이 이르길, 침묵은 금이라 했다. 난 말을 아끼마.”

암, 말은 조심하는 게 좋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면 똑같이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 파릇파릇한 펠라 핸들 여중생쟝(추정 연령 100세 이상)께서도 아는 사실을, 로키를 치료해준 장본인인 듯한 천상계 의느님께선 잘 모르시는가 보다.

그래도 괜찮다.

‘모르면 배우면 되지.’

공자 왈, 삼인행 필유아사언이라 하였다.

3명이 지나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단 뜻이다. 한국의 자기계발서가 말해주듯 인생인즉 공부의 연속이니, 신이라고 해도 인간에게 못 배울 게 뭐 있는가?

“장소부터 바꾸자꾸나.”

베로니카는 마법으로 우리를 바이콘들의 성지, 정원섬까지 옮겼다.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만, 저택의 한가운데에서 혹여 큰일이라도 나면 좋지 않겠지.”

“부탁할게. 아, 내가 부수고 신들이 있는 곳까지 다녀와야 하니까 내가 지나갈 구멍은 내버려 둬.”

“특히 취약한 부분을 찾아서 주변만 보수하마.”

“좋네.”

건물도 그렇지만 기반이 튼튼하면 구멍이 조금 난다고 무너지진 않는다.

그러니까 베로니카가 단단히 굳혀두면 나 하나 왕복한다고 차원막이 방울처럼 터지지는 않는다.

─번쩍!

베로니카가 룬 만다라를 한가득 펼쳤다.

그녀의 뿔과 눈은 주인님─나─의 색으로 변해서 권능을 펼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허공에다가 그었다.

츠즈즈즈….

접착제로 용접하는 것처럼 녹고, 달라붙는 공간!

오딘의 눈으로 봐도 순식간에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난해한 기술이었다. 나도 나름 그 수첩의 기록을 달달 외웠지만, 실전에서 바로 실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마법 분석이 뛰어난 나조차 이렇다.

저 마법은 베로니카가 아니라면 못 쓴다고 봐도 과대해석이 아니겠지. 천만 다행히 그만큼 섬세한 마법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고쳐지고 있군.’

바닥에 준비한 시약, 재료 등을 설치하고 땀을 흘리며 차원막을 수복하는 베로니카. 그녀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무너진 벽을 보수하듯 두께며 구멍 같은 게 회복됐다.

‘우려했던 일도 없고.’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지만 그녀의 마법에 개입할 듯한 기척은 없다.

하긴, 미래에서 했던 개입도 만만찮은 힘을 소모할 것이다.

미래에서처럼 개입 좀 해서 신의 한 수를 낼 수 있다면 하겠지만, 곧 우리가 쳐들어갈 텐데 자기 힘만 낭비할 짓을 할 머저리는 아니다.

“나의 그대여. 저곳이니라.”

베로니카가 공간에 둥글게 띠를 묶었다. 황금색 원은 내가 지나가기 쉽게 공중에 그려둔 서커스의 불꽃 고리 같았다. 저길 부수면 된다는 거구만.

“계산은 완벽하다. 이 정도로 보수했으면 몇 번 그대만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 왕복해도 파괴는 면할 테지. 자, 칭찬해줘도 좋다.”

“우쭈쭈. 잘했어요.”

“……후후후. 후후후흐헤헷♡”

턱을 긁어주자 좋다고 내밀고 웃는다.

우리 여신님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타고 난 성정이 저런 거겠지.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닌 듯.

“혹시 모르니까 나만 갔다 올게.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있어. 혼자 기다리라고 하기엔 불안해서.”

“……음. 걱정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없겠구나. 하루 정도 기다리겠다. 더 늦는다면 우리도 천상에 돌격하게 되리란 건 명심하고.”

“너 혼자 우리 가족이 넘나들 만큼 수복하기는 힘들지 않겠어?”

지금 나 하나 왔다 갈 여유를 만든 것만으로도 베로니카는 거의 녹초가 됐다.

마스터 클래스다운 마나량을 가진 그녀가 저리 될 정도라니.

하긴, 그 정도가 아니면 우주에서 오는 위협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겠는가. 이 수복 계획은 최소 신급 마법사가 10명 이상 모여 10년 단위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었다.

“힘들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은 있는 법이니라. 하여간 그대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다녀오면 될 일이지.”

“그것도 그런가. 알았어. 먼저 가서 쉬어.”

“음. 부디 무탈하게 귀가하시길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주인님.”

“자기 좋을 때만 주인님이지.”

“그렇기에 나는 연중무휴 그대의 여자니라.”

반론을 못 하겠네. 나는 집으로 가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한 번 천리안으로 제대로 귀가했는지까지 확인하고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추가로 【힘의 허리띠】를 발동했다. 내 허리에 룬 허리띠가 감겼다.

계측하는 게 바보 같은 힘이 주먹에 깃들었다. 권능이 물리법칙에 개입한 영향일까. 악력만으로 공간이 조금 일그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여기에 하나 더.’

패링의 극의, 【엘든 링】.

─쿠오오오오!! 매서운 벼락불이 주먹을 덮었다.

어떤 물질, 개념에도 간섭할 수 있는 성뢰신의 권능을 개량한 마법이었다. 저런 개념적인 역장을 건드리는 데 이만한 기술이 또 없지.

간단해 보이지만 자그마치 3개의 권능이 조합된 컴비네이션이다.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스매시!”

지면에 금이 갈 만큼 세게 디딤발을 딛고, 어깨 뒤로 당긴 주먹을 내질렀다. 공기가 주먹에 실은 힘과 속도에 밀쳐지며 정원섬을 뒤흔들었다.

─빠캉!!!!

게임에 도입시키면 고티는 따놓은 당상일 듯한 시원시원한 타격감!

힘껏 내지른 주먹이 차원에 구멍을 냈다. 낭비 없는 위력은 깜빡 차원막 전체에 균열을 내는 일 없이 지름 5m 정도의 구멍을 냈다.

주먹을 회수하고 구멍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울프헤딘?》

풋사과─를 닮은 과일─을 먹고 있던 사티스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과일을 떨어트리고, 저 뒤편에 있는 분수대에서 틀딱 할배가 자지러졌다.

[으아아아악!! 미, 미친 놈!! 맨손으로 차원을 부숴?! 네가 정녕 인간이냐?!]

[뭐야뭐야뭐야?! 전쟁!! 전쟁이다!! 뿔피리 불어!! 미친 외신이 마그멜의 차원막을 주먹질로 부수고 쳐들어왔다!! 아들!! 내 아들 디어뮈드 어딨어?!]

신들이 거하는 천상이라기엔 짠내가 좀 나는데.

거의 사람 사는 곳에 빠루 든 강도가 엔트리한 듯한 리액션이다. 이 나사 빠진 새끼들이랑 같이 싸울 생각을 하니 앞일이 진지하게 걱정되는데.

물론, 내 입은 내심과는 다르게 친절한 서비스 정신으로 대응했다.

로키의 치료법을 적은 종이를 꺼내면서, 전방에 미소 발사.

“논문 배달시키셨죠?”

사진 리뷰랑 별점 5개 잊지 마시고요.

댁들 집 주소도 아니까, 처신 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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