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기기긱.
죽은 개체가 2배로 되살아나며, ‘무쌍의 만겁’이 5마리로 증식했다.
“【수감자여(Bandingi)】!!”
베로니카는 재빠르게 마법을 발동했다. 그녀의 봉인 마법이 그중 2마리를 봉인했다.
옛 지배자라고 해도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이나 단단한 봉인 마법이었다. 피하려고 들지도 않은 2마리는 속절없이 손바닥만 한 수정에 사로잡혔다.
─끼기기긱!! 끼긱긱!!
그리고, ‘무쌍의 만겁’이 5마리로 돌아왔다.
베로니카의 마법이 어떻게든 1마리를 더 가뒀다.
‘무쌍의 만겁’이 7마리로 늘어났다.
베로니카의 지팡이가 1마리의 공격에 부서졌다.
‘무쌍의 만겁’이 13마리로 늘어났다.
베로니카가 급하게 펼친 실드가 산산조각났다.
‘무쌍의 만겁’이 25마리로 늘어났다.
“카흑……!”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끼기긱!
상상 이상의 힘에 한순간 의식이 끊겼다. 잠시 날아갔던 의식을 되찾았을 때, 베로니카는 바닥에 떨어진 채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100마리를 가뿐히 넘는 옛 지배자들이 굽어봤다.
“끼기긱. 끼기기긱!”
그들이 본체의 100배만큼 강해진 건 아니었다. 기초 능력의 강화는 아마 10배 선에서 멈췄으며, 그 뒤로는 증식과 부활을 반복한 게 전부였다.
육체적 강함으로는 한손에 꼽힐 옛 지배자가 100마리 이상.
고작 그게 전부였다.
끝없이 부활하며 강해진다.
무궁하며 무쌍. 무진이며 무적.
그렇기에 그를 부르는 피휘는 ‘무쌍의 만겁’이다.
“아.”
정신을 차린 베로니카의 뿔과 눈동자가, 그녀의 주인의 색으로 빛났을 때.
우득, 까드드드드득!! 찌이이익─!!!!
백 마리의 ‘무쌍의 만겁’이 그녀의 피와 살점을 모조리 빨아 없앴다.
***
하찮은 적을 해치운 뒤, ‘무쌍의 만겁’은 증식한 자신을 재배치했다.
─현재 본체의 숫자는 124구.
─우리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최대치.
이 정도로 증식했다면 예언자로 보이는 그 인간 상대로도 두려울 게 없다.
그의 권능은 옛 지배자들을 상대로는 사용하기 힘든 힘이다.
‘백일몽의 연속성’이 깨지면 아무리 그라도 다신 부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백일몽, 그 경계에 존재하기에 성립하는 권능이다.
덕분에 스스로를 잡아먹고 늘어나려고 할 때도 반드시 1마리는 멀쩡하게 생존해 있어야 했다. 그 자신도 옛 지배자이기에 잡아먹으면 죽고 마니까.
하지만 동격이 아닌 하등종족을 상대로 싸우면 그는 무적일 수밖에 없다.
첫 번째의 하나뿐인 본체를, 옛 지배자가 아닌 존재에게 죽임당했을 때.
오직 그럴 때만 발동하는 ‘무쌍의 만겁’의 진정한 강함이다.
“고맙다. 너의 자만심 덕분에 여기까지 증식할 수 있었다.”
친히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은 깔끔하게 포식한 계집의 시체를 밟아 으깼다. 마른 시체가 바스라졌다.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본체 숫자에 비례한다. 124마리까지 늘어나면 120일은 버틴다.
─우리의 동포, 아직 싸우는 도중일 터.
─옛 지배자의 격으로 보이던 드워프 잡종이라 해도, 지금의 우리라면 압승하기 어렵지 않으리.
강인해진 힘으로 충족감을 느끼며 그는 차원을 넘어가려고 했다.
124마리의 돌진은 차원 자체를 부수고도 남을 터였으니까.
“흐음. 늦지 않길 망정이지, 끔찍한 꼴을 볼 뻔 했구나.”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끼긱?!
‘무쌍의 만겁’은 자기 종족의 언어로 경악했다.
그 목소리가, 조금 전에 짓이긴 세계수의 신족 나부랭이와 똑같았기 때문에.
그들 중 절반이나 되는 ‘무쌍의 만겁’이 으깨서 죽여놓았던 시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더럽혀진 드레스의 옷자락이 보일 뿐, 핏방울은 전혀 없었다.
마치, 그것들 모두가 전부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놀랄 일이더냐? 불쾌하구나. 내가 죽을 정도라면 주인님이 예지하고도 남으셨을 터인데. 인간의 힘을 받아들인 정도로 내 주인님의 권능을 웃돌 듯 싶더냐?”
옛 지배자가 긍지를 접고 인간의 힘을 받아들여봤자 한참 모자라다는 듯, ‘그녀’는 말했다.
‘베로니카’가 죽는다면 그 미래를 노르드가 보지 못할 턱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아내의 죽음은 자기 죽음보다 더 처절한 파멸이고, 예언자는 파멸의 미래를 볼 때 최고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강해지니까.
“예언자의 권능의 원천은 지혜이며, 위기감이며, 사랑이다.”
목소리는 ‘무쌍의 만겁’이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녀의 주인님이 ‘베로니카’를 사랑하는 만큼, ‘베로니카’는 죽음의 위기를 겪을 확률이 낮아진다.
노르드가 지켜준다면 베로니카에게 죽음은 없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까지 몰려야만 했느니라.”
혼자서 옛 지배자를 싸우고, 무의식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천하무적의 ‘무쌍의 만겁’을 상대로 혼자서 죽기 직전까지 몰려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미래의 내가 남겨둔 기억을 떠올릴 터이니.”
발소리를 내며, 그녀는 모습을 드러냈다.
‘무쌍의 만겁’들에게는 조금 전에 속수무책으로 죽었던 여신과 똑같아 보였다. 바뀐 건 검소하던 드레스가 풍성한 귀족식의 옷이 된 정도였다.
뿔이 자라난 것도 아니고, 외모도 바뀌지 않았다.
요염하고 고혹적인 미소와 걸음걸이는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다.
조금 전에 ‘무쌍의 만겁’들이 살해했던 여신과, 갑작스럽게 여기 나타난 ‘저것’은 일말의 유사점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미래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외모가 늙지는 않을 테니까.
하물며 그녀는 【유희신】의 후손이자, 신마의 혈통이다.
혹시 정말로 ‘9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도 늙을 턱이 없다.
“어디 보자, 지난번 싸움은 무승부였던가? 네게 발목을 붙잡힌 탓에 주인님의 싸움을 보필하지 못했었지.”
파멸이 가까워질수록 예지의 권능은 강화된다. 그녀는 잊어버렸던 미래를 떠올리며 잠시 고개를 모로 꼬았다.
끼기긱…?!
끼이이익…?!
그런 언동과 존재 전부가 ‘무쌍의 만겁’들에게는 미지였다.
산산이 찢어발겨 놨거늘, 왜 상처 하나 없는가. 죽었을 터인 시체가 어떻게 되살아났는가.
애초에 죽지 않았나? 전부 환상이었던가? 저게 환상이었다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이지?
하물며── 하물며.
“그럼 이건 복수전이 되겠구나. 내 주인님께서 이르시길, 복수는 자기 손으로 해야 옳다 하셨지.”
하물며, 이 위압감은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저것은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이해 불능의 존재였다. 우주적인 공포의 상징을 미지라는 공포 속에 밀어 넣는, 불친절한 절망의 화신처럼.
‘무쌍의 만겁’은 존재한 이래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친 듯이 떨며 두려워했다.
미래의 기억을 떠올린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오너라. 미래의 나에게 기억을 받았으니, 나는 나의 복수를 대행하마.”
옛 지배자는 끝까지 진실을 알 수도 없고, 설명받지도 못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그리고, 공포를 견디지 못한 별의 바다의 지배자들은 군집하여 절망의 화신을 죽이고자 했다.
【에시르는 ‘저 높은 곳’이라 부르고, 바니르는 ‘바람을 짜는 곳’이라 하며, 요툰은 ‘윗 세계’라고 칭하니(en hlýrnir með goðum, kalla vindófni vanir, uppheim jötnar).】
번쩍이는 눈에 반사된 빛조차 느리게 숨 죽이는 찰나지간.
베로니카는 홀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주문을 완성했다.
【사람은 이를 ‘하늘’이라 부를지어다(Himinn heitir með mönnum).】
여신의 손가락이 별의 바다의 악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가장 나약하던 두 번째 ‘무쌍의 만겁’이 잿더미가 되고.
솨아아아아아──.
연결된 끈에 불을 지핀 것처럼, 남은 123구의 ‘무쌍의 만겁’은 한순간에 남김없이 즉사했다.
“……후우.”
잿더미를 바람으로 걷어내고서 베로니카는 남은 영혼을 봉인했다. 그녀는 옛 지배자가 아니니 프랑이나 노르드에게 부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몸에서 권능의 힘이 사라졌다. 해제하고 싶어서 해제한 게 아니다. 체력을 전부 소모해서 어쩔 수 없이 풀렸다고 하는 게 맞다.
권능이 내려준 마법과 기억도 물에 탄 설탕처럼 녹아 없어진다.
미래의 그녀가 보낸 안배는 이걸로 마무리됐다.
눈물로 집필했던 베로니카 에클립시스의 예언은 최후의 최후까지 올바르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남은 건, 다른 이들이 이겨주면……”
본인의 기억만을 남긴 베로니카는 그대로 벽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약간이라도 많이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무녀의 역할은 신을 보필하는 것이니까.
그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한, 잠들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