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998화 (997/1,009)

***

‘심해의 군주’였던 시체를 보자마자, 나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눈치챘다.

“개같이 지고지순하시군. 하지만 나는 몬스터가 인간이 되는 전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알간?”

구미호도 아니고 문어 주제에 인류가 멸망하기 전부터 영장류의 자리를 넘보다니, 200년 정도는 이를 텐데.

‘신격을 포기하고 인간으로 변했나.’

그냥 변신 좀 한 수준이 아니다. 무한한 수명에, 동급이거나 상위존재가 아니면 죽일 수 없는 불로불사를 포기하고 하늘의 별에서 인간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예상했던 부분이다.

자랑도 뭣도 아니라, 그 정도는 당연하게 깔고 가야 하는 추리였다.

‘신으로 남은 채여선 운명을 거슬러서 예언보다 먼저 옛 지배자들을 되살리기도 빡셌을 테니까.’

원래의 부활 시기는 약 200년 후였다.

그걸 일부나마 끌어당기려면 예언, 다시 말해서 운명을 초월해야 한다.

인류 사회를 흔들어서 혼란을 유도한 것도 아니면서 벌써부터 미래에서 보여준 부활 쑈에 버금갈 회복력을 뽐내고 있는 ‘심해의 군주’ 아닌가.

당연히 나였어도 씨팔씨팔 거리면서 퇴화 한 번 때렸을 거다.

잘 나가던 우주의 지배자 코스에서 흙수저 인간으로 타천하고자 한 결심은 무거웠겠지만, 그래도 뒤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충분히 그럴 만 하다고 본다.

나랑 싸울 것까지 따지면 저건 당연한 선택이다.

“그래도 힘까지 포기했을 리는 없지.”

‘심해의 군주’였던 시체를 눈으로 부검했다. 내 눈은 그 강대한 힘을 남긴 시체에 알맹이가 없단 걸 파악했다.

여기서 말하는 알맹이는 권능을 일컫는다.

사티스가 이승에 강림할 때에 쓰던 아바타 같은 것에 자기 의식을 넣고, 인간으로 타천했다면 저 안에는 권능이 남아있어야 옳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저 몸에서 내가 예르나를 쓰러트릴 때 빌렸던 것 같은 지혜나 권능은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다.’

망령도시에서, 명계에서 각각 1번씩 빌렸던 그 어둠과 음의 마나. 범람하는 듯한 마법의 지혜와 힘. 그게 저 시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유? 불 보듯 뻔하지.

여기 쳐들어오기 전부터 대굴빡을 잔뜩 굴려둔 덕분에 금방 답이 나왔다.

“신좌.”

기술이란 건 최첨단이 될수록 닮아진다.

이 경우에는 거의 노골적인 카피캣이었지만, 그런 걸 따진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년이 아니지.

“너는 한시기 오딘의 신좌를 보유하고 있었지. 그때 봤던 구조를 기억해내서 자기 힘을 불어넣은 신좌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고.”

정정하자. 어려운 일이 맞다.

단, 심해의 군주에게는 어렵지 않다. 그 권능의 일부를 맛봤던 나였기에 의심할 나위 없이 그렇다 할 수 있겠다.

그야, 따지고 보면 옛 지배자들과 신좌만큼 안 어울리는 것도 없긴 했다. 신좌는 후계자가 돼 줄 다음 세대의 후손에게 남기는 신들의 안배잖은가.

그런데 옛 지배자는? 저놈들은 불멸이다.

때론 죽기도 하지만 그 불사성을 생각하면 바로 결론이 나온다. 저것들이 퍽이나 남에게 힘을 물려주는 방법 같은 걸 생각해 봤겠다.

또 신좌를 만드는 게 가능한지부터 의심스럽다.

‘백일몽의 영속성’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기에 발현된 불로불사다.

옛 지배자의 육체와 정신을 이어줄 권능, 힘의 근간을 떼어내면 싸구려 접합 갈빗살처럼 영혼과 힘이 뿔뿔이 흩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 저기 보이는 전직 문어딸년처럼 말이다.

“후우우…….”

‘심해의 군주’는 풍만한 가슴에 손을 얹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화를 참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아니었다.

“……좋은 목소리. 마음에 울리는 것만 같아.”

저렇게나 달뜬 낯짝을 한 년이 짜증을 낼 리가 없지 않은가. 마치 비밀을 알아준 연인을 보는 것 같은 눈초리에는 나도 적잖이 오한이 들었다.

“이 몸, 어떻게 보여? 마음에 들었을까? 노르가 좋아할 만한 모양으로 갖춰봤어. 의상은 어떤 걸 선호하는지 몰라서 포기했는데, 이해해 줄 거지?”

“니가 거적때기를 입건, 빨가벗고 있건 쥐뿔도 관심 없어. 미친년아.”

“따로 요망이 있다면 들을게. 사실은 아직 숨을 쉰다는 감각이 익숙하질 않아. 그치만 정말, 정말 정말 좋다. 예지로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노르랑 직접 말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건 처음이니까.”

마음이 한가득 채워졌다는 것처럼 수줍게 손을 포개는 그녀.

진심으로 귀찮은 건 그 언행의 어디에도 가식, 장난 같은 걸 엿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지껄이고 있단 뜻이다.

“있지, ‘수’라고 불러줘. 귀여운 이름이지. 원래 쓰던 이름에서 최대한 사랑스럽게 바꿔봤어. 엄청 열심히 생각했는데, 괜찮게 들려? 수, 스우. 나는 좋다고 생각해!”

“죄송하게 됐네요. 애칭을 부르기엔 처음 뵙는 분이셔서 토 나올 것 같거든요. 너는 문어년이면 충분하답니다.”

곧 죽을 놈의 이름을 기억하는 취미는 없다.

없지만 기억나는 이름도 있지만, 저 우주 문어 괴물은 남은 평생 미치광이 문어년으로 기억해둘 생각이다. 자서전를 쓰게 되면 이름 표기가 힘들 테니 첨삭해야겠군.

아니, 저년에 관한 내용은 쓰는 것만으로 보는 사람을 미치게 할 테니 쓰지도 못하겠다. 하여튼 개똥만도 못한 씨팔련이 좆도 쓸 데가 없어요.

“자작 깜빵에 갇혀 살더니 뇌 구조가 쌈박하게 돌아버렸군. 일곱 번째 아내 자리는 채울 생각도 없고, 채우게 돼도 니가 들어갈 일은 더욱 없다.”

6보단 7이 낫다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 아닌가.

저 개또라이년을 집안에 새 신부로 들일 바에야 내가 출가해서 부처님한테 귀의하고 만다. 나는 【게르튀르】의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

“부활한 옛 지배자의 숫자가 예상보다 적더군. 13마리는커녕 10마리도 채 못 채웠던 모양이지.”

“제물이 필요했는걸. 인간의 몸을 만들어본 건 처음이라서 시행착오가 살짝 많았어. 덕분에 무척 예쁘게 뽑혔다? 그야 노르는 관심 없겠지만.”

옷을 둘러보는 것처럼 발뒤꿈치를 돌아보거나, 손목 관절 같은 걸 점검하는 문어년. 내가 저러는 중에 창을 던져서 죽여버려도 좋다는 듯 구는 게 눈에 거슬렸다.

“마음만 받지. 역시 선물은 마음이 담긴 물건이어야지 않겠냐. 기왕 받는 거, 니 영혼이 담긴 물건이면 좋겠군. 바로 태우고 귀가하면 되겠어.”

“응! 그렇게 말할 것 같더라. 다행이다! 노르가 뭐라고 말할지 맞춰버렸네? 에헤헤. 조금 잘난 척 하고 싶어졌어.”

옛 지배자였던 존재는 활기찰 정도로 밝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무저갱처럼 텅 비어 있었다.

“어떤 미래를 봐도 노르가 나를 사랑해줄 일은 없더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슬펐어. 무슨 일이 있어도 노르랑 나는 이뤄지지를 않아서,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때까지 3년이나 걸렸어.”

“그거 헛수고 많았네.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건──”

“죽음뿐이지? 알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녹색과 푸른색이 섞인 눈동자의 안쪽에서 붉은 흉광이 언뜻 스쳤다.

“내가, 그 여자들보다 노르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아줘.”

“……뭐, 이 새끼야?”

“노르에 관한 일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걸. 나야. 내가 노르의 운명의 상대야. 나 외엔 없어. 나밖에 될 수 없어. 나 외엔 있어선 안 돼.”

‘심해의 군주’는 처음 만든 쿠키를 건네주는 숫처녀처럼 말했다.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계속 찾고 또 찾고 찾아봐도, 역시 없었어. 이렇게밖엔 만날 수 없고 이렇게밖엔 대화할 수가 없었어. 내 옆에서 웃는 노르는 어디에도 없었어.”

북, 북, 북….

팔뚝 살갗을 손톱으로 긁어내면서 피를 흘리는 ‘심해의 군주’. 꼭 누군가의 얼굴을 헤집는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듯 하다.

“그래서 있지? 나 생각했어!”

심해처럼 칙칙한 홍채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밝아졌다.

“내가 노르한테 받을 수 있는 게 죽음뿐이라면 말이야? 그걸 만끽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때가 기다려졌어! 조금 더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워졌어!”

그렇게 말하면서 까딱이고, 내딛고 미소를 짓는 행동거지가 모두 내 눈에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섬찟하다.

연쇄살인마의 집에서 나온 소녀가 발에 딱 맞는 슬리퍼를 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둔 채,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즐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뒤져도 좋은 거면 얌전히 대가리 박고 있어라. 협조적으로 나오면 아프지는 않게 해 주마.”

“안 돼. 그런 말 하지 마. 노르가 그랬고, 나도 말했잖아? 죽음은 내가 노르한테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야. 아무리 노르라도 양보 못 해.”

결국에는 어느 한쪽이 뒈질 때까지 싸우자는 거 아니냐.

“죽여달라 이거지? 알기 쉽군. 맘에 들어.”

나는 차라리 속 편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덤벼, 끝판왕 년아. 바삭하게 튀겨주마.”

─탕!!!! 나는 탄환 격발음 같은 진각을 밟으며 돌진했다.

‘심해의 군주’는 연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온몸의 급소란 급소를 훤히 벌렸다. 환하게 웃는 얼굴은 아까부터 미소가 지워지려는 기미가 없었다.

“노르. 노르, 노르! 노르! 부를 수 있구나. 이젠 혼잣말이 아니구나. 엄청 행복하다. 노르에게 말을 걸 수가 있다니! 노르가 내 목소리를 들어준다니!”

‘심해의 군주’가 권능을 전개했다. 녹색 다발의 마나가 촉수처럼 넘쳐나서 그녀를 지키듯 덮으며 길게 뻗었다.

그 순간, 세상이 녹아내렸다.

“……씨발, 이거 순 미친년 아이가.”

달려들던 내가 멈춰버리고 말 정도의 격변!

황산을 끼얹은 듯 무너져내리는 세상이 질척한 타르처럼 쏟아졌다.

아니, 세상이 아닌가. 삽시간에 붕괴한 건 다름 아닌 내 예지였다.

권능이 고장난 거라면, 저 미친 악신이 모종의 수작으로 내 예지를 봉쇄한 거였다면 마음이나마 편했을까. 쫄리기는 했겠지만 그것뿐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속 편한 얘기가 못 된다.

온 세상이 새빨갛게 깜빡였다. 썩어가던 악신의 시체가 해골을 드러내며 녹아내리고, 내게 보이는 만물이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듯 하다.

시간과 공간이 죽는다. 더 이상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공간의 한계와 넓이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나와 그녀만이 무한한 듯한 허무공간에 남았다.

경악스럽게도, 이건 단순한 의지의 작용이었다.

운명을 비트는 ‘심해의 군주’의 의지.

저 괴물의 의지가 그 자체만으로 세상의 법칙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신이었기 때문에 나오는 힘이 아니다. 인간으로 전락해서 얻은 힘과도 거리가 멀다. 이건 그저, 저 미친 괴물이 품은 감정이 살짝 흘러나온 것에 불과하다.

“노르, 노르, 노르! 주지 않아도 돼! 네게 무엇 하나 받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저 줄게! 네게 내가 가진 모든 걸 줄게! 목숨도 마음도 전부!”

오롯이 감정 하나로 온 세상을 떨게 만들면서, ‘심해의 군주’는 이 두 사람뿐인 좁다란 세계에서 신으로 군림했다.

아무 기교도 없는 창세의 권능이 순수한 마음, 그 자체처럼 그녀가 꿈에 그리던 풍경으로 현실을 수정했다.

“내게서 가져간 모든 걸 다 버려도 돼! 노르가 버리고 또 버려도 네 주변을 한가득 메울 정도로, 다른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랑할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있지, 노르!”

내 기억을 한순간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 바로 다음 찰나에 ‘심해의 군주’는 내 뺨을 만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이 화사하게 미소지었다.

“더 이상 그 여자들에게는 넘겨주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것보다 창이 빨랐다. 브류나크가 미친 괴물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살을 찢고 근육을 헤집으며 파고든 창날에 ‘심해의 군주’가 피를 토했다.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노르, 씀씀이가 지나쳐!”

피를 토하면서도 ‘심해의 군주’는 브류나크를 콱 잡았다.

“나한테 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라더니! 이렇게 오싹하게 해 주면 어떡해! 이러다가는 나, 분명 지금까지 이상으로 노르가 좋아져 버릴 거야!”

놓지 않으려는 듯한 힘에 궁니르의 힘을 썼다.

간신히 관측한 3초 뒤의 미래에서 나는 어떻게 창을 빼냈다.

‘지금!’

후퇴하길 성공하는 미래를 궁니르로 고정했다. 그렇게 미래를 확정시키고 창을 뒤틀었다.

“안 돼, 노르. 어디에도 못 보내.”

그러나, ‘심해의 군주’의 힘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까드드드득…!!

챙강─!!

브류나크의 창대는 뽑히지 않고, 고정한 운명이 핀을 후려친 것처럼 무위로 돌아갔다.

궁니르의 힘이 ‘심해의 군주’의 의지에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오싹!

순간적으로 오감이 곧추섰다. 가드하자 급하게 올린 팔에 타격이 들어왔다. 옆으로 튕겨나간 난 벽에 착지했다. 팔뼈가 부러진 듯 욱신거렸다.

예지는 질척하게 녹아서 보이지도 않았다.

미래를 엿봐도 보이는 거라곤 빨갛게 녹아내린 운명과, 그걸 녹이는 용매제── ‘심해의 군주’의 감정이 다였다.

─나를 봐. 내 곁에 있어 줘.

─보내지 않아. 새치기는 허락하지 않아.

─다른 여자들의 머리카락 결, 너를 보는 시선, 피부의 감촉, 아양 떠는 혀, 네 목소리를 훔쳐 듣는 귀, 네게 때를 묻히는 손, 네 주변을 서성이는 발, 무엇 하나 두 번 다시 떠올리게 하지 않아.

─지금 너와 함께 있는 건 나야.

─지금은 나만이 노르의 전부야.

눈에 끓는 쇳물을 붓는 듯한 느낌에 예지하기를 멈췄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지만, 저 의지를 계속 수용했다간 정말 내 머릿속까지 오염될 것만 같았다.

“피의 맛이야, 노르! 네가 준 아픔이 느껴져!”

콰드득, 찌지지직…!!

‘심해의 군주’가 상처에 손을 집어넣고 헤집었다. 그 상처가 사랑스럽다는 듯.

“역시 다정하구나! 노르가 준 첫 선물, 소중하게 간직할게!”

“……퉷.”

나는 피 섞인 침을 뱉었다.

나나 저년이나 상처는 깊었을 텐데, 이미 아픔 따위는 씻은 듯 사라졌다. ‘심해의 군주’도 부상은 남았지만 행동에 제약은 없어 보였다.

죽어도 죽지 않고, 내 상처도 고쳐놓은 것일까.

마법이나 권능 같지는 않다. 나와 죽고 죽이는 이 순간이 꿈결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이 공간의 모든 걸 자유자재로 지배하고 있는 듯 했다.

“죽일 생각도 없는가 보군.”

“죽여? 내가, 노르를? 어째서?”

‘심해의 군주’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것처럼 망연자실하게 대답했다.

“죽이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러면 뭔데.”

“노르가 나를 죽이는 거야. 여기서, 둘이서, 쭉. 언제까지고 계속.”

그러니까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여기는 ‘심해의 군주’가 꾸는 행복한 꿈속. 현실 위에 덧씌운, 그녀가 꿈꾸며 기다리던 영원한 그 날. 죽지 않는 영면. 그녀가 그린 별의 바다였다.

남들은 개입하지 못하고, 우리가 깨어나는 일도 없다.

“춤추자, 노르. 봐! 드디어 밤이 저물었는걸!”

심해의 군주는 더욱 많은 상처를 바라는 것처럼 가슴을 벌렸다.

“우선은 2000년 정도만── 나를 죽여줘!”

증오보다 뜨겁고 살의보다 차가운 감정.

정해진 운명을 능멸하는 인간의 의지.

그건 이 우주의 모든 걸 무가치하게 보던 자가 품은, 단아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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