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1005화 (1,004/1,009)

오딘과 나는 검은 설원을 내달렸다.

공허한 세상에 흐르는 눈이 누군가의 추억이란 걸 눈치챈 건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눈보라는 기다림의 시간과 허무의 눈꽃이었다.

그야 그런가. 나 혼자 죽은 게 아니었지.

몸이 연결된 채로 죽었으니, 그 녀석도 여기에 있을 것이었다.

“……왜일까.”

역풍을 뚫느라고 더 거세게 느껴지는 눈보라를 맞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석사와 박사의 차이 말고도 많았다. 남기고 온 미련은 세는 게 어리석다.

프란체스카와 ‘심해의 군주’.

지금까지 직면한 의문을 거의 해결하며 여기에 도달한 나조차, 그녀들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비슷한지는 모른다. 알아내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단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찝찝해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찝찝하게 느끼는 게 학자로서의 내 수양이 부족했다는 증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자가 일생을 바쳐도 풀지 못하는 문제는 있다.

잘난 머리로 평생 노력해도 풀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불가사의가 현실에는 어엿하게 존재했다.

그래서 학자의 성장은 뭘 얼마나 더 많이 알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남을 가르치고 하나의 학문을 원숙하게 이해하려면 많이 아는 것만으론 모자라다.

정말로 원숙한 학자는 자기가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이 현명하니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거만한 식자는 참된 학자가 될 수 없다.

학문을 배우는 경지에서 끝나는 학부생과, 조금 더 다양한 지식을 쌓은 수준에 머무르는 석사.

참된 학자라면 그들과는 본질부터 달라야 했다.

모르는 상태로 안다. 모르는 상태로 이해한다.

알지 못하는 걸 알지 못한다고 받아들인다.

─누누이 말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짓은 이해 못 할 놈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내가 자주 되뇌이던 신조였다.

표현은 매번 조금씩 달라도 누차 하던 말이다.

보라. 이 얼마나 오만한 발언인가?

물론 저 생각엔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나라고 하는 엘리트 마초가 저렇게 생각하게 됐던 계기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열심히 고찰하고 노력하면 어떤 의문도 풀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눈보라를 뚫으며 중얼거렸다. 오딘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리석었지. 나는 내가 남들보다 좀 더 기름칠 한 대가리만 있으면 개새끼들의 행동도 다 꿰뚫어 보고, 세상만사를 전부 능수능란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래서 마지막 적에게 혼자서 이기지 못했다.

이과식 사고관에 절여진 이성으로 자기 자신도 불태워버리는 애정을 어떻게 예측할까? 내가 봐도 개소리였다.

“끝까지 박사가 되지 못했을 만하지. 운명이란 놈이 허락해주지 않은 거야. 나는 모르는 걸 알려 하지 않았으니까. 내 대가리로 이해하지 못한 건 광증이라고 무시했거든.”

많은 죄인의 과거를 보았다. 또 죄 없는 사람의 영혼도 잔뜩 구해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에만 내 감정과 이성을 쏟았다. 울프헤딘의 권능이 인도해 줬던 타인의 과거를 동정하거나 경멸하면서 자기 좆대로 이분(二分)했다.

그게 학자의 자세였을까?

아마 예르나가 들으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었다.

그 좆프년은 절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 사회를 관측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로맨티스트 이전에 에고이스트였군. 석사 엔딩도 당연한가.”

그러니까 최후의 최후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에 이해심을 발휘해 봐도 좋을 것이었다.

노르드 울프헤딘, 본명 강북호.

한때는 전사이고 영웅이며 마법사였지만, 그의 시작은 미약한 학자였으니 끝도 그러하리라.

나와 오딘은 검은 설원에서 멈췄다.

툰드라 같은 수정 나무가 피어 있는 숲 근처의 설원이었다. 수정에는 나와 오딘의 얼굴이 깨끗한 거울처럼 비쳤다. 검은 눈꽃이 내게 달라붙었다가 녹았다.

“……토르한테 직접 들은 건 아닌데.”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조금 전에 로키 얘기를 할 때처럼.

“의외로 허리띠부터 노리는 게 효율적일 거야. 부수면 힘이 약해지니까.”

─툭. 나는 내 허리춤을 쳤다.

토르의 권능, 【힘의 허리띠】가 머무는 곳이다.

“그러니까, 여차할 때는 여기에 한 방 부탁한다. 죽음과 마법과 폭풍과 분노의 신, 존엄하신 주신 오딘 님의 마법을 있는 힘껏 때려 넣으라고.”

“……………….”

“실패했을 때의 얘기지만, 혹시 모르잖아. 내가 우신 놈들을 잡고 나서 봤던 미래처럼 저 새끼가 내 몸이나 영혼을 빼앗을지.”

하말에서 내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삼도천까지 와서 그렇게 된들 무슨 의미겠냐만, 만약 내가 폭주하거나 지배당하거나 한다면 약점 정도는 알려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히죽거리며 웃었지만, 오딘은 웃지 않았다.

“……이런 미래는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어.”

설원의 어둠도 이제부터 받아들이게 될 영원한 소멸도 무관하게, 천공신의 기억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였어. 우리는 너희의, 아이들의 유년기를 지켜줄 책무가 있었어.”

슬레이프니르에서 내린 그녀는 과거에 이 길을 지나갔을 진짜 오딘도 짊어졌을 십자가를 자신의 등에 지웠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까지 너를 끌어들이고 말아서──”

“고마웠습니다.”

나는 말을 끊고 조금 일찍 대답했다.

존댓말 때문일까. 내가 뱉은 말 때문일까. 꿈에 나왔던 그대로의 모습을 한 오딘은 입을 닫았다.

“저는 감사하고 있거든요. 오딘님 덕분에 다른 사람들하고도 만났고.”

‘심해의 군주’와 오딘, 어느 쪽이 없었다면 나는 여기 오지 못했다.

고난은 많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아픔 만큼의 행복이 있었기에 나는 웃으면서 이 저승길을 갈 수 있다.

─척.

손가락으로 V를 만들고 내밀자, 오딘은 조금만 더 입을 닫고 있다가 그러면 됐다는 듯 끄덕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지켜봐 주세요. 저의 변신.”

눈보라는 거세지고, 나는 검은 설원에 섰다.

‘심해의 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나만이 ‘심해의 군주’를 이해할 수 있다.

그 괴물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상대는 이 세상에서 오직 나뿐.

그러니까 나도, 그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스슥.

나는 성호를 긋고, 그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과거에 그 녀석이 내게 뻗은 손길을, 이번에는 내 쪽에서.

어둠의 건너편으로 하얀 손이 2개 뻗고── 그 녀석은 내 손을 잡았다.

…쿠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영혼에서 어둠이 넘쳐났다.

그건 지금까지 몇 번 빌려 썼던 힘. 나와 녀석 사이에 연결된 링크.

녀석이 내 기억과 영혼을 오염시키는 데 쓰고, 내가 녀석의 힘을 빌려서 위기를 타파할 때 썼던 우리의 악연.

하지만 그 어둠과 음의 마나에 나를 폭주시키는 광증은 없다.

저승길에 핀 수정 나무에 비친 자신이 보였다. 자신의 오만을 모르던 몹쓸 꼴마초 새끼는 좌우의 눈깔이 형광색과 검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그 녀석과의 연결고리다. 아직도 사그라들 줄을 모르는 무저갱 같은 검붉은 애정을 여실히 느낀다.

“……………….”

나는 오딘을 한 번만 돌아보고, 검은 설원으로 달려갔다.

아내들이 그렇게 해 줬던 것처럼, 검은 설원에 홀로 주저앉아 있을 그 녀석을 찾아서.

눈보라는 그치지 않는다.

이 눈보라는 그 녀석의 기억이었다. 내 의문과 미련처럼 생애의 의문. 죽어도 잊을 수 없는 한.

“……왜 나로는 안 됐던 거야?”

지평선도 분간하기 어려운 검은 설원에 ‘심해의 군주’는 주저앉아 있었다.

“어째서 나는, 어떻게 해도 노르에게 사랑받을 수 없었던 거야? 그 애들은 너무나 쉽게, 그렇게 당연한 듯이 가질 수 있었는데. 어째서 나만?”

“너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나는 대답했다.

“너는 세상 무엇도,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해.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하는 편식쟁이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밖에 없다.

내 여자들이 나를 사랑하기까지 들였던 노력을 존중하지도 않고 따라하지도 않아. 남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깔보는 잘난 머리통이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지 않아.

그래서, 그토록 오만한 너는 나와 무척 닮았다.”

“……닮아?”

“닮았으니 맞물리지도 않지. 결혼생활이라는 건 서로 닮은 부분만큼, 닮지 않은 부분도 중요해.”

자기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만큼 남들도 뭔가를 소중하게 보듬고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면.

저렇게 수많은 목숨을 짓밟고 빼앗으며 사랑을 갈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신이어도 인간이어도, ‘심해의 군주’는 자신밖에 보지 않았다. 섬기던 놈들도 죽이려던 놈들도 다 똑같이 무관심하고 써먹을 상대로만 여겼다.

나를 향한 사랑조차도 자신의 감정이기에 보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으니, 남에게도 관심이나 감정을 향하는 방법을 배울 겨를이 없었다. 저런 긴 시간을 살면서 그녀의 곁에는 노예와 적 외엔 없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할 줄 몰랐다.

인간이 되었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까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베풀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며, 남들이 가진 걸 탐한다.”

사람들의 피와 땀의 결실을 빼앗고 자신의 훈장으로 삼는 족속.

“나는 그런 놈들이 싫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네가 이 세상에 날 데려오기 전부터 쭉 그랬지.”

나라는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부터 도저히 허용하지 못했던 비틀리고 사악한 가치관.

제대로 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면, 내가 그런 족속을 가장 혐오한다는 걸 처음 나를 본 날부터 깨닫고 있었다면──

그랬으면 운명도 이 괴물의 사랑을 허락해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기다릴 뿐이었다면, 최소한 나는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나간 날은 바꿀 수 없다. 예언자는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맞이하고자 노력해야 했다.

‘심해의 군주’는 그런 미래가 이뤄지길 바랐고.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왔어.”

나는, 그 미래를 비틀었다.

“……뭐든지 해도 괜찮아?”

“죽어서도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지만, 모르지. 지멋대로 먼저 뒤져버린 남편 새끼가 저세상에서 바람까지 피웠다는 걸 알면 내 여자들도 기꺼이 새 삶을 찾을지.”

“……정말 나쁜 사람이네, 노르는. 포기하려 할 때마다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어주는데, 그 애들이 너 외에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어.”

‘심해의 군주’는 눈물을 닦고, 내 손을 잡았다.

죽거나 죽일 생각으로 내지르던 손이 다정하게 깍지를 꼈다.

그저 그것만이 바람이었다는 듯, 깍지낀 양손을 자기 뺨에 대면서 ‘심해의 군주’는 헤벌쭉 웃었다.

“내 이름, 불러줄래?”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계수의 언어도 지구의 언어도 아니라, 그들의 종족의 언어로.

“……고마워, 노르드.”

첫사랑을 실연한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건 돌려줄게. 내 마나에 조금 더러워졌지만 용서해 줘.”

─반짝.

죽음을 거부하던 여인의 품에서 내 혼의 조각이 빛났다. 마치 이곳에서 쭉 내 혼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내가 잃어버렸던 혼을 돌려준 것이었다.

……‘심해의 군주’.

내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해선 안 됐을 터부의 옛 지배자. 인간이 되어서까지 나라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악신.

그녀는 그렇게 내 가슴의 구멍에 살을 채우고, 설원에 만개한 눈꽃보다 조금 먼저 봄날을 맞았다.

“──사랑해, 노르. 언제까지나.”

눈꽃처럼 소멸하는 여인의 미소에 배웅받으며, 내 의식은 다시 깨어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석사가 원숭이의 꿈을 꾸는가, 원숭이가 석사의 꿈을 꾸는가.

그건 아마, 현실에서 깨어난 뒤에 고민해 봐야 할 화두일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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