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모터의 매연이 매캐하게 코를 찔렀다.
두다다다다다다다….
크리스토프 신시아는 보트의 모터 소리를 듣고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선배, 모터가 죽으려 하는데? 급했다곤 하지만 너무 구닥다리 어선을 빌려온 거 아냐?”
“나더러 뭐 어쩌라고? 협회에서 자금이 나왔냐, 뭐가 나왔냐.”
대답을 들은 크리스토프는 칠레에서 빌린 어선 갑판을 새삼 구경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조금 크기만 한 배가 퐁당 가라앉으면 우리 둘 다 태평양 물고기 밥인데?”
“아, 아, 됐어. 듣기 싫으니까 집어치워. 태평양 한복판에서 코즈믹 에너지의 유출이 감지됐다고? 하, 우리 같은 말단 마술사들이 돈이 어디서 나서 거기까지 간다고 정찰 지시를 내리시나 몰라.”
실력은 그보다 살짝 못한 마술사 선배의 노골적으로 빈곤한 대답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구교도 연맹이 음지에서 감추고 있는 저 고대 마법 중에는 크리스토프가 배웠던 룬 체계의 모던-미드가르드 매직보다 뛰어난 기술도 있을 듯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가난한 건 크리스토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깨를 풀었다.
“슬픈 얘기는 하지 말자고. 나도 고향에 두고 온 결혼자금이 생각나니까. 망할 로마니아 은행 놈들. 지금쯤 내 예금은 홀라당 다 처먹고 입 싹 닫았겠지?”
“니 엄마라는 학회장님이 어련히 잘 처리해주셨겠지. 그 얘기 1번만 더 하면 100번째다, 임마.”
“좋네. 발파라이소(Valparaíso) 항으로 돌아가기 전에 100번 채우자고. 칠레 요리보다는 입에 맞을걸.”
“잘나셨어요. 아주 그냥 니가 이세계물 주인공 하지 그랬냐.”
“하하! 글쎄. 난 말할 것도 없고, 만약 이 세상 사람이 미드가르드로 날아가면 그 험한 세상에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는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인 지구와 고향을 늘 하듯 비교해보고,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몬스터를 피해서 도시 근처에 떨어져도 어차피 밀입국 노예 코스 확정…… 잠깐만, 선배! 멈춰!”
중얼거리던 크리스토프가 안색을 바꾸며 외치자 선배는 배를 감속시켰다.
잡담을 나누는 모습은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들 역시 마법과 미드가르드의 존재를 은닉하는 삼대 세력의 한 축── 바이에른 마술 결사의 구성원이었다.
일반 시민은 상상도 못 할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들이다. 어지간한 일 정도로 냉정을 잃겠는가?
그러나, 그런 그들도 지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선배. 여기 무인도가 있었나?”
“……21세기에 해도에 표기 안 된 무인도라고? 나랑 농담해?”
물어본 그도 대답하는 선배도 기분은 비슷했다.
크리스토프는 이 세상에 처음 떨어졌을 때처럼 당혹스러운 기분으로, 지도에 있지 않은 무인도를 가리켰다.
“그럼 저 섬은── 저 사람은 뭔데?”
해안가에 검은 가죽 갑옷을 입은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크리스토프가 보기에, 그건 드워프가 만든 듯한 가죽 갑옷이었다.
그것도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강대한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야, 저거 혹시.”
“혹시랄 것도 없어. 미드가르드에서 온 양반이 맞아, 선배.”
끄트머리만 조금 잘라서 가져가면 협회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한 갑옷을 입은 표류자. 두 사람은 안색을 굳히면서도, 입장 상 별 수 없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보세요, 저기. 일어나 보셔.”
“영어는 통할까? 생긴 걸로는 동양인인데.”
“말 걱정은 하지 마. 일단 절차대로 이쪽 세상 말로 대화를 걸겠지만, 딱 봐도 우리 세상에서도 보기 힘든 전사야. 어쩌면 절정 고수일지도 몰라.”
크리스토프는 냉철하게 표류자를 분석했다.
“인종은 동양인이어도 지구인일 가능성은 없고, 아마 바이츠니아나 그쪽 혼혈이겠지. 장비를 보면 서방대륙 물건이고. 모험가나 귀족 같은데……”
“허, 천만다행이네. 너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다른 표류자들이 오는 동안 선배가 이 양반을 붙들고 있었어야지.”
“죽을 뻔 했네. 생긴 거 살벌한 것 봐. 말 한 번 잘못 하면 머리통이 뽑히겠는데?”
“그건 모르지. 나는 지적으로 보이는데.”
“네 희망사항이겠지. 지적인 양반이 아니면 이 섬이 우리 무덤이니까. 아, 지금 움직였다. 일어나려나 봐.”
─샤샤샥.
그들은 조금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로선 이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예측하기 힘들어서였다.
그리고 그들이 강함을 읽지 못한다는 건 절대로 좋은 전조는 아니다. 그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강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으니까.
힘없는 약자? 장비만 봐도 그럴 일은 없다.
무기는 어디 두고 온 듯 보이지 않았지만, 맨손만 가지고도 곰을 찢어 죽일 듯한 위압감이 잠든 사내에게는 있었다.
“으……?”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는 수수께끼의 사내.
크리스토프와 그의 선배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난 10년간 크리스토프밖에 없었던 미드가르드 표류자를 대하는 절차를 충실하게 밟았다.
“정신이 드십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실 수 있으십니까? 영어는 하실 줄 아시고요?”
“……외국인? 윽. 죄송한데, 여기가 어딥니까?”
그는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붙잡고, 그들이 잘 모르는 언어로 말했다.
“무슨 언어지? 중국어?”
“아니, 한국어 같다. 요즘 유명하잖아. 목소리가 작은 걸 보면 중국인은 아니고, 헤엄을 못 치니까 일본인도 아니야. 닌자라면 물에서도 숨을 쉴 줄 알겠지. 우리 배에 김치가 있던가? 스팸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개소리가 이세계 출신인 자신이 아니라 영국인 선배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면서도, 크리스토프는 천천히 질문했다.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미드가르드…… 【중간 가지】의 바이츠니아에서 오셨습니까?”
“……【중간 가지】? 바이츠니아?”
“아, 영어를 하실 줄 아는군요. 바이츠니아는 『진련국』을 말합니다.”
“모르는 지명인데요. 진련국은 어느 나랍니까? 또 여기는 어디고요? 저는 분명 군대 동기랑 술을 마시다가…… 윽.”
“군인이셨습니까?”
“예, 예에. 아 맞다. 그런데 한국은 징병제라서 군인이라고는 해도 이제는 민간인 신분입니다. 그 점 오해 없이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크리스토프와 선배는 눈을 마주쳤다.
─의외로 말이 통하네. 두통이 있는데도 군인이 아니라는 걸 바로 어필하는 걸 보니까 머리도 잘 돌아가고.
─그게 문제야, 선배? 위화감이 장난 아니잖아.
─하긴, 저 튼튼해 보이는 가죽 갑옷이 뭔 괴물한테 뜯긴 것처럼 엉망인 걸 보니까 보통 문제는 아닌갑다. 갑옷이 저꼴인데 몸은 멀쩡한 것도 영 수상하고.
바이츠니아 어로 발음한 『진련국』이 국가라는 걸 알아들을 언어 지식이 있고, 장비는 확실하게 미드가르드의 물건. 그것도 왕족도 쉽게 못 입을 최고급품.
하지만 본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는 자각도 없는 상태다.
그러면 이 수수께끼의 인물은, 혹시 지금……
“……기억상실?”
그들이 어안이 벙벙하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쩌억!!
그들이 있던 하늘에서 공간이 쩍 열리더니, 흰 피부의 여인이 몸을 던지듯이 나타났다.
“노르!!”
프랑은 눈을 의심하며 무기를 뽑는 크리스토프 일행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백사장을 굴러가며 그녀의 남편을 부러트릴 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찾았다……! 간신히 찾았어……! 읏, 그래! 다, 다쳤던 곳은?! 가슴에 났던 상처는?! 노르 덕분에 ‘심해의 군주’는 소멸했어! 옛 지배자들도! 우리가 이겼어! 그러니까 죽지 마, 노르!! 죽지 말아줘!!”
“뎃? 데에에……?”
프랑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자 그는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 그, 괘, 괜찮…… 괜찮습니다. 옙.”
“정말이지? 우릴 두고 없어지는 거 아니지? 난 쓰러진 노르가 사라지구, 로키 님이 브류나크한테 물어보려 하니까 이상한 말을 해서…… 흐윽……”
뚝, 뚝….
가빠오는 감정에 숨을 못 쉬는 프랑의 사파이어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이 후둑후둑 쏟아졌다.
“흐윽, 다행이야…….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야, 노르……”
쏟아지는 눈물을 닦거나 진정할 시간은 없었다. 프랑은 눈물을 흘리면서 남편의 가슴이나 상처가 났던 곳을 뛰어난 손재주로 조심조심 쓰닫ㅁ었다.
”노르, 아픈 데는 없어? 상처는 어떻게 치료한 거야? 나는 또 노르가 나쁜 버릇 못 고치고 몸을 던졌다구 생각해서 머리가 하얘졌는데, 다 생각이 있어서 한 거였구나. 왜 미리 말 안 해줬어? 우리 엄청 걱정했단 말야.”
남편의 뺨을 매만지며,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걸 다시 확신하고 나서야 프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슴을 졸이며 그의 흔적을 찾아서 몸을 던졌던 탓일까. 걱정이 컸던 프랑은 그때 문득 노르드의 낯빛을 살폈다.
“……노르, 얼굴이 빨개. 열이라도 있어?”
“아, 어, 아니, 그게……”
“잠깐만. 독이면 어떡해. 열 좀 재 볼게.”
이마를 맞대 보려고 하자 두꺼운 손에 막혔다.
프랑은 눈을 깜빡거렸다.
“……왜 그래?”
“크, 크흠. 아, 어, 으음, 음.”
얼굴이 빨개진 그는 말을 버벅대다가 뒤통수를 긁었다.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좀, 내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헤?”
“그 뭐시냐, 일단 제 이름은 노르가 아니어서요. 그보다 어느 나라 말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듣지? 아, 이게 아니고. 남친이나, 지인분이랑 헷갈리신 거 아닌가요?”
“……노르. 내가 누군지 못 알아보겠어?”
“어…… 어디 모델이나 배우 분이신가요? 무척 미인이신데, 그러니까 조금 내려와 주셨으면……”
“……………………………………………………….”
침묵. 그리고 다시 침묵.
프랑은 상황을 지켜보던 협회원들이 긴장감으로 등이 축축해질 때까지 말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몰려오는 피로에 그만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다. 악몽이구나.”
─훼까닥.
“흐으엑.”
격전의 피로와 충격에 의식을 잃은 프랑의 눈이 뒤집히고, ‘심해의 군주’가 만들어낸 무인도는 또 한바탕 대혼란과 의문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30분 후, 프랑을 쫓아온 그녀의 가족과 신들이 강림하며 크리스토프와 그의 선배까지 기절해버릴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