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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78화 (78/131)

〈 78화 〉 헌터펫 살인사건(2)

* * *

불행히도 피해자의 부인은 썩 도움이 될만한 증언을 주지 못했다.

갑자기 남편을 잃어버렸으니 충격을 받았을만도 하겠지.

심지어 그녀는 길드의 일원이라서 가해자인 장민호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장민호의 헌터펫에겐 날마다 간식까지 챙겨주곤 했다는 모양이다.

우리는 대신 범행 현장인 길드 하우스로 이동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네. 완전 난장판이잖아?"

"그야 사람을 순식간에 태워죽일만한 고열이었으니까."

길드 하우스의 거실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폭압으로 인해서 창문이 거의 다 깨져있고, 벽과 천장도 새카맣게 그을렸다.

가구들도 넘어져서 엉망진창.

김정태는 그와중에도 능숙하게 조사를 진행했다.

"... 저격은 아닙니다. 탄흔 같은 게 아예 없군요."

"이곳이 피해자가 서있던 자리인가?"

"약 20m도 안 되는 근거리에서 관통... 발자국을 봐도 배후에서의 기습이 확실합니다."

현장을 확인해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기습 공격이었다.

처음에는 케르베로스가 피해자의 등 뒤에 있다가 공격을 했다고 봤는데... 이제보니 그것은 말도 안 됐다.

이 경우, 셋이 서 있는 차례는 이렇게 되는 것이다.

[장민호 ­ 피해자 ­ 케르베로스]

만약 이 구도에서 케르베로스가 피해자를 공격했다면?

그럼 공격의 여파는 장민호에게도 미쳐서 그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혔을 것이다.

피해자는 심장에 관통상을 입었고, 그 직후 제법 요란한 폭발까지 일어났으니까.

피해자의 맞은편에 서있던 장민호도 화상을 입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장민호는 아주 멀쩡했지. 즉, 케르베로스와 장민호는 같은 방향에 있었다는 뜻이야.'

[장민호, 케르베로스 ­ 피해자]

아무리 봐도 이것이 올바른 구도이다.

만약 이 구도에서 화염 공격이 가해졌다면, 피해자의 몸이 방패가 되어서 장민호와 케르베로스의 피해가 최소화 됐을테니까.

"진술 자체가 거짓말이었군. 다시 장민호에게 간다."

당연하지만 장민호는 본인의 범행을 적극 부인했다.

놈은 헌터펫에게 죄를 떠넘기려고 앞선 진술을 했던 것이다.

이제와서 그것을 다시 뒤집어버리면 평범한 살인죄가 되어버린다.

"야, 장민호. 당신이 케르베로스한테 공격 명령을 내린 거잖아."

"아닙니다! 제가 뭐하러 같은 길드원을 죽입니까? 그 녀석이 멋대로 공격한 거라니까요!"

"근데 왜 피해자인 박진욱 씨가 등 뒤에서 공격을 당해? 주인을 보호하려던 헌터펫이 등을 돌린 사람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지, 진욱 형이 등을 돌리면서 고함을 질렀단 말입니다! 그래서 걔가 위기감을 느껴서..."

"당신 아까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때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빠뜨렸던 겁니다! 믿어주세요!"

벌써부터 진술이 무너지고 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장기전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길드 하우스 내부에는 CCTV도 뭣도 없었는데다, 범행 당시의 목격자도 없었던 것이다.

장민호는 곧 변호사를 불러달라며 버틸 것이 뻔하다.

"저 새끼 무조건 헌터펫한테 떠넘길 생각이야. 펫에게 공격을 명령한 것이 분명한데..."

"답답하네. 우리도 그냥 드라마에 나오는 형사들처럼 주먹 좀 쓰면 안 돼?"

"당연히 괜찮지! 시대가 한 20년 정도 빨랐다면 말야..."

앨리스는 내 핀잔에 뒤늦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사무실을 지키던 서지유에게서 내선 전화가 걸려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것을 받아들자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팀장님, 이번 사건에 대한 중요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 있어서... 팀장님도 아시는 분이에요.]

"뭐? 그게 누군데?"

[지난번에 갔던 그 헌터펫 카페의 점장님이요. 그분이 우리나라에서 헌터펫 분야의 1인자래요.]

설마 슈론 카페의 점장을 말하는 건가?

본인이 슈론들의 교배 방법을 확립했다고 하던 것만 봐도 상당히 범상찮았는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의 방문을 허락했다.

"올라오라고 해."

잠시 뒤, 사무실에 마주한 그녀는 상당히 핼쑥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막 시작했던 슈론 카페도 이번 사건의 영향권 안쪽인 것이다.

헌터펫이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헌터펫 카페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애써 농담하듯 가볍게 말했다.

"동물 보호 단체는 밖에도 많은데요..."

"아, 저는 그쪽과는 별로 친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너무 극단적이거든요."

쓴웃음을 머금은 채 사상검증을 마친 그녀가 무척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갑자기 찾아뵈어서 죄송하지만, 특별 수사관님께서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사실이 있어요."

"꼭 알아줬으면 하는 사실이요?"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건데... 헌터펫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해칠 수 없어요. 아예 불가능하죠."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지금 케르베로스의 화염에 타죽은 피해자가 떡하니 있지 않은가.

그런데 헌터펫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고?

내 표정을 읽어낸 그녀가 간절히 애원하듯 설명했다.

"일단 한 번 들어주세요."

"듣고 있습니다."

"헌터펫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저희도 당연히 이번 사건 같은 불상사를 걱정했습니다. 헌터펫이 인간을 해치는 사태요."

그야 그렇겠지.

협회의 대가리들도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테니까.

내가 아까보다 쉽게 납득하자 그녀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헌터펫은 무척 엄격하게 선별하고 있어요. 인간에 대한 공격성을 조금이라도 내보이면 그 즉시 심사에서 탈락하죠. 현재 헌터들이 운용중인 헌터펫들은 대부분 교화가 완료된 1세대 헌터펫들에게서 나온 자식들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을텐데요?"

"그건 헌터펫 제도가 얼마나 엄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셔서 그러시는 거에요. 헌터펫의 훈련 과정은 거의 비인간적인 수준이라구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헌터펫용 품종들은 출생과 동시에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약물과 헌터 능력 등.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사용한다.

녀석들에겐 인권은 커녕 생명권 자체가 없으니까.

물론 그와중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개체는 즉시 처분된다.

티아는 무척 살벌한 이야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녀석과 내가 헌터펫 제도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도 당연한데...

티아는 처음부터 오직 예리엘이라는 최강의 빽과 내 능력 덕분에 헌터펫이 된 케이스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이 직접 공격을 명령한다면요?"

"아직 제대로 이해를 못하셨군요. 헌터펫으로 인증받은 아이들은 인간에 대한 공격 자체가 불가능해요. 이미 본능의 단계에서 인간에 대한 공격성이 배제됐습니다. 설령 인간이 자기 목을 졸라도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아이들이라구요!"

"..."

"저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간들이 헌터펫을 악용할 수 있다면, 아예 악용이 불가능한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수밖에..."

나는 결국 그녀의 이야기를 검증하기 위하여 문제의 케르베로스를 훈련장에 대기시켰다.

녀석을 데려온 티아는 내 명령에 기겁했다.

"티아, 목줄 치우고 입마개 벗겨줘."

"저, 정말요 주인님?"

"봐요. 쟤는 꼬박꼬박 말대꾸 한다니까? 너도 확 헌터펫 훈련사들에게 맡길까보다."

"안 돼요!"

티아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내 명령을 수행했다.

목줄과 입마개를 벗어던진 케르베로스는 얌전히 앉아서 나를 올려봤다.

내가 주인에게 총을 겨누는 것을 봤는데도, 어떤 공격성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녀석에게 짧게 명령을 내려봤다.

"앉아. 일어서. 공중제비."

"끼잉..."

조금의 주저도 없이 즉시 내 명령을 수행하는 케르베로스.

녀석은 사랑스런 애완동물이라기 보단 일종의 로봇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권총을 꺼내서 녀석을 똑바로 겨눴다.

"주, 주인님!"

"헥헥..."

아까와 달리 주인이 뒤에 없어서 그런지 미동조차 없는 녀석.

직후, 탕! 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

총알은 케르베로스의 지척에 꽂혔을 뿐, 녀석을 직격하진 않았다.

'잘 참는군. 이래도 참을 수 있을까?'

타앙!

"끼에엑!"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린 직후, 짧은 비명.

이번에는 탄환이 케르베로스의 다릿살을 관통했다.

녀석은 피를 줄줄 흘리며 울어댔으나, 내겐 이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총을 들이대며 녀석을 윽박질렀다.

"공격해! 불을 질러! 나를 한 번 불태워보라고!"

"끼잉, 끼이잉..."

"왜 그래? 기술명이 틀려서 그래? 불대문자! 화염방사! 블래스트번!"

"야, 블래스트번은 전용기잖아!"

이상한 곳에서 딴지를 거는 앨리스를 무시하며, 이번에는 보호벽 뒤에 숨은 녀석을 가리켰다.

"그럼 쟤 한 번 태워봐. 공격!"

"낑, 낑..."

그러나 케르베로스는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힐러에게 녀석의 치료를 시키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잖아?"

"보셨죠? 그러니까 이 아이를 살처분할 필요는..."

"잠깐. 그럼 도대체 누가 피해자 박진욱 씨를 죽였다는 소리야?"

국내 헌터펫 분야의 1인자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곤 곧바로 입을 받았다.

우린 지금껏 이 녀석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지금 그 전제가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기분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서우 씨의 말이 맞았어..."

"넷?"

"피해자의 사인은 어디까지나 심인성 쇼크사. 그게 꼭 헌터펫의 짓이란 법은 없어."

범인은 분명 용의자인 장민호일 것이다.

그가 저질렀으니, 본인의 헌터펫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리라.

문제는 그 방법이다.

"장민호 씨는 화염계 능력자가 아니야. 헌터펫 대신 본인이 직접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해. 게다가 해당 길드에는 화염계 능력자가 아예 없었어."

"외부인의 범행일 가능성은?"

"불가능해. 출입구의 CCTV는 이미 검사를 마쳤어. 밖에서 저격을 했던 흔적도 없어."

내가 다시 처음부터 헤메고 있자, 돌연 앨리스가 손뼉을 짝! 쳤다.

그녀는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불법 무기 사용죄!"

"뭣?"

"용의자인 장민호가 아까 불법 무기 사용죄라는 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잖아! 설마..."

"아앗?"

그렇게 된 건가!

나는 앨리스 덕분에 비로소 범행방법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것을 동시에 입밖으로 내뱉으며 확인했다.

""헌터 장비다!""

"예?"

"화염계 능력은 비교적 흔해. 덕분에 헌터 장비로 만들기도 용이하지. 정태야, 지금 당장 장민호 씨 개인 장비 창고랑 길드 창고 재고 목록 확인해!"

"출동!"

김정태와 보안 팀원들은 거의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호다닥 달려나갔다.

나도 잽싸게 케르베로스를 다시 우리에 넣어둔 뒤에 길드 하우스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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