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79화 (79/131)

〈 79화 〉 헌터펫 살인사건(3)

* * *

장민호와 길드원들은 굉장히 불안한 얼굴로 길드 하우스에 모였다.

우리는 가장 먼저 그들의 차량 블랙박스부터 확인했다.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지만 한 대는 블랙박스가 꺼져있었다.

"이거 왜 꺼져있죠? 누구 차량입니까?"

"아, 제 차에요."

조심스럽게 한쪽 팔을 들어올린 것은 다름아닌 피해자의 부인이었다.

"얼마 전부터 고장난 것 같아서... 꺼놓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보닛이 따뜻한데, 외출하고 오셨습니까?"

"네? 아아, 자, 잠깐 이 앞에..."

피해자의 부인을 심문하는 내 모습에 길드원들의 눈매가 좁아졌으나...

나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사건 현장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그들을 나란히 세워놓곤 장민호에게 지시했다.

"아까 분명히 헌터펫이 죽였다고 하셨죠?"

"그렇다니까요!"

"그럼 장민호 씨는 그 때 어디 있었습니까?"

"여기... 이 자리에 있었어요. 제 헌터펫이 바로 옆에 있었구요!"

장민호는 소파 근처에 자리를 잡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의 흔적으로 보건대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그를 다시 옆으로 빼내곤 대신 그 자리에 섰다.

이제 사건을 처음부터 재구성할 차례다.

"지금부터 이번 사건을 재현해보겠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장민호 씨는 피해자 박진욱 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니, 내가 죽인 게 아니라니... 우웁!"

김정태가 장민호의 입을 닥치게 만들어준 덕에, 나는 설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길드원들은 무척 혼란스런 얼굴로 나를 지켜봤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길드를 탈퇴하고 싶은 기색이었으나... 조사가 끝날 때까진 안 된다.

"아무리 헌터라도 완전범죄를 실행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길드원 전체가 공범이라면 또 모르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죠. 공범이 많아질수록 위험부담도 커지니까요."

"마, 맞습니다. 저희가 뭐하러 진욱 형을 죽여요? 여긴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 길드였는데..."

나는 길드원의 추임새를 못 들은 체 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장민호 씨는 처음부터 완전범죄를 포기했습니다. 본인의 헌터펫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관리 미숙으로 약하게 처벌을 받을 계획이었죠. 계획 자체는 상당히 괜찮았어요."

문제는 실전에선 계획대로 잘 안 됐다는 것이다.

나는 티아를 불러서 내 옆에 쪼그려앉혔다.

"티아야, 네가 케르베로스 역할이야. 알겠지?"

"왈왈!"

짧은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즉답하는 티아.

덕분에 길드원들의 얼굴이 많이 심란해졌다.

나는 티아의 눈치가 많이 좋아진 것에 만족하며 사람을 한 명 더 불러냈다.

"앨리스가 피해자 박진욱 씨 역할. 저 자리에 서 있었을 거야."

"응."

앨리스는 그을음의 한복판, 신발 자국이 남아있는 자리에 등을 보이며 섰다.

나는 그대로 티아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여기서 장민호 씨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죠. 케르베로스, 박진욱 씨를 공격해!"

"끼, 끼잉..."

티아는 최대한 구슬프게 울면서 나를 쳐다봤다.

길드원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표정이었으나, 장민호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바로 헌터펫은 인간을 절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는 겁니다."

"그, 그런..."

"잠시만요 수사관님! 그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럼 누가 진욱 형을 죽였다는 말씀이신데요?"

"진욱 형은 분명히 강력한 화염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희 길드엔 화염계 헌터도 없어요!"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진정시키곤 트릭을 밝혔다.

"여기서 장민호 씨의 공범이 등장합니다."

"공범이요?!"

사실 공범의 존재에 대해선 나도 긴가민가 했지만...

조사를 진행하며 확신을 얻게 됐다.

"이번 사건은 철저하계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장민호 씨와 공모한 범인은 헌터펫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곤 차선책을 떠올렸습니다."

"차선책?"

"바로 길드 창고에 있었던 헌터 장비입니다."

"!"

장민호와 공범에게 중요한 것은 헌터펫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러니 꼭 헌터펫을 시켜서 피해자를 살해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화염 공격으로 죽이면 대충 아귀가 맞는다.

길드원들은 내 설명에 그럴싸한 헌터 장비의 존재를 곧바로 떠올렸다.

나는 미리 뽑아온 길드 창고의 재고 목록을 펼쳐들었다.

길드 창고엔 위험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는만큼, 협회도 당연히 매번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곳 길드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 중 화염계 공격이 가능한 장비는 딱 하나. 불꽃 화살 스크롤 뿐입니다."

"스크롤이라면..."

"헌터 능력이 저장된 양피지 같은 거지. 다만 소모품이야."

"확실히, 스크롤이라면 위력은 충분하겠지만... 그건 일회용이잖아요?"

맞다.

따라서 저 길드 창고에 해당 스크롤이 없으면 장민호와 공범의 유죄는 확정이다.

스크롤은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니까.

나는 그렇게 주장하며 주저없이 창고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창고를 열어주시죠."

"예..."

길드원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지하 창고를 열자 단단한 벽과 천장으로 보호된 내부공간이 드러났다.

안쪽의 장비들은 대체로 잘 보관되어 있었다.

"스크롤이라면... 여깁니다."

"어, 잠깐. 여기 있는데요? 불꽃 화살 스크롤!"

길드원 중 한 명이 돌돌 말려있는 양피지 하나를 꺼내들어서 내게 건넸다.

장민호는 무척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였으나...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설명했다.

어차피 예상범위 안쪽이다.

"확실히 똑같은 종류의 스크롤이군요. 하지만 이게 범행 전에 보관되어 있던 것과 동일한 스크롤이라고 확신할 수 잇습니까?"

"예? 그야 똑같은 스크롤이니까 당연히..."

"현역 헌터들도 잘 모르고 있더군요. 사실 이런 소모품에도 다 일련번호가 붙어있습니다. 여기 재고 목록에도 적혀있지 않습니까."

"넷?"

군용 개인화기에도 총번이 붙는데, 이런 위험한 물건에 번호가 붙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스크롤을 전등에 비춰보며 일련번호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암시장에서 구한 건가? 일련번호가 없네."

"그, 그럼..."

"범행이 일어난 뒤에 부랴부랴 사와서 보충해놓은 거죠. 안 그렇습니까?"

내 말에 전원의 고개가 일제히 한 사람을 향해서 돌아갔다.

피해자 박진욱 씨의 부인.

차량 블랙박스를 꺼놓고 어딜갔나 싶더니... 새로운 스크롤을 구하러 다녀온 것이었다.

그녀가 바로 공범의 정체였다.

"마, 말도 안 돼! 네가 왜 진욱 형을..."

"아... 아냐. 이건 내가 아니라... 장민호가 했어. 저 새끼가 죽인 거라고!"

"우웁!"

나는 김정태에게 신호를 보내서 장민호의 입을 풀어주도록 했다.

장민호는 장민호대로 억울한 모양이었다.

"수사관님! 모두 사실대로 말할게요. 사실 저 여자가 죽인 거라구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거짓말이에요!"

"진짜입니다. 헌터펫이 말을 안 들으니까, 저 여자가 창고에 있던 스크롤을 가져와서 진욱 형을 공격했어요!"

이제 헌터펫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졌으니, 불꽃 화살 스크롤을 사용한 쪽이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 사실을 이해한 두 공범은 열심히 다른 한 명을 주범으로 만들려고 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범행 동기를 뒤늦게 조사했다.

"그래서, 왜 죽인 겁니까?"

"저 여자가 저를 꼬드겼어요! 진욱 형이 죽으면 본인이 길드를 매각할 수 있게 되니까요."

"아녜요! 장민호 저 새끼가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멋대로 그이를..."

"뭐야? 내가 왜 너 같은 년이랑..."

길드 창고는 순식간에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가 됐다.

결국 추가 조사 결과, 스크롤을 사용한 것은 여자 쪽으로 밝혀졌다.

장민호는 헌터펫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 없게 된 시점에서 범행을 포기하려 했으나, 피해자의 부인이 스크롤을 들고와서 강행해버린 모양.

이미 벌어져버린 일인만큼, 장민호는 그녀의 보상을 약속받곤 죄를 뒤집어쓰기로 했다.

만약 수틀리면 자백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심산이었다.

혼란 속에서, 나는 장민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새끼 아주 악질이네. 네 헌터펫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미안하긴! 그 녀석은 내가 없었다면 진작 도살당했을 놈이라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거야말로 헌터펫의 존재의의 아니겠어?"

머리에 열이 오른 나머지 상대를 못 알아보고 미쳐 날뛰는 장민호.

다음 순간, 놈은 비명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빠악!

"끄악! 이, 이 새끼... 수사관이 사람 패도 되는 거야?"

"헌터 살인 용의자가 물불 못 가리고 있는데 당연히 제압해야지."

"..."

장민호는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옛 동료들을 돌아봤으나...

그의 공범은 물론이고 길드원들도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눈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판결을 내려뒀다.

지금껏 헌터 전용 교도소의 자리를 아껴둔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두 사람 다 사이좋게 보내줘야겠네. 개새끼들, 위증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잠깐만요 주인님! 그럼, 케르베로스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일단 살처분은 면했지. 애초에 헌터펫이 죽인 게 아니니까..."

녀석의 처리는 나도 좀 고민된다.

원래 주인인 장민호는 감옥행 확정이고, 다른 길드원들도 딱히 인수를 원하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녀석을 부려먹기로 했다.

"좋아, 너는 이제부터 특수대 소속이다."

"멍, 멍!"

케르베로스는 힘차게 대꾸하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티아야. 당분간 네가 얘 담당이다."

"엣? 아, 알겠어요 주인님. 근데 애는 훈련 다 받지 않았나요?"

"아직 모자라. 얘는 이제 특수대 소속 헌터펫이니까 사람도 물어죽일 수 있게 하고, 블래스트번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그 블래스트번이란 게 도대체 뭔데요..."

나는 티아를 놀려먹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네 능력은 뭐니? 티아마트 보고서를 보긴 했는데, 황금색 머리는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아앗, 너무하셔요! 티아마트의 여섯 머리들은 각각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어요. 지난번에 주인님께서 상대하셨던 검은색은 '마력' 담당이고, 파란색 머리는 '민첩' 담당이었죠."

아하, 각 머리마다 특화된 능력치가 있었던 건가?

나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티아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무슨 담당이었는데?"

티아는 내 질문에 가슴을 자랑스레 쭉 펴며 말했다.

"저는 보시다시피 매력 담당이에요!"

"... 도대체 어딜 봐서?"

"네가 최약체네."

앨리스도 옆에서 단정짓듯 말하자 무척 억울해하는 티아.

"제가 지금 마력이 없어서 그렇지, 마력만 더 공급해주시면..."

"꿈도 꾸지 마."

"히잉..."

우리가 수다를 떨고있자 이서우가 착잡한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그를 치하했다.

"솔직히 이번에는 서우 씨가 거의 다 했네. 앨리스도 잘 거들어줬고... 나는 좀 쉬어도 되겠는데?"

"에이, 아닙니다. 팀장님도 충분히 늦지 않게 눈치채셨을 걸요. 그나저나 이번 사건도 불륜 때문이라니..."

뜨끔!

나를 비롯하여 제 발 저린 도둑들은 난처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못 들은 체 했다.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케르베로스가 꼬리를 마구 흔들며 티아와 함께 인사를 다녔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