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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9 발가락 (19/89)



〈 19화 〉19 발가락

도시 펠레이라의 경비대는 크게 기강이 잡힌 조직은 아니었다.

레니라는 심각한 예외를 빼면 그리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딱 '도시 내의 소요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이들에게 알맞는 평가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업무라 해봐야 순찰과 훈련 정도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대부분 비교적 대충인 경우가 많았다.

"이야, 확실히 엄청 재능이 있네."
"목마르지?  안 필요해?"
"쟤가 길드전에 보옥 깼다는 걔야?"
"저기! 혹시 애인 있으신가요!"
"야! 저 미친 년 또 저러네. 끌어내!"

그런 사람들이었으니 그 사이에 남자가 끼었을  훈련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했다. 투구를 쓴 여성들의 접근을 콜린은 멋쩍은 웃음으로 넘길 뿐이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이야기하려면 조금 이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대략 이틀 전의 일이다.

아라크네 길드와의 친선전이 끝난 그날 밤, 꽤나 어처구니없는 형태로 콜린과 한나의 관계를 레니가 알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이쪽 세계라고 해서 근친상간에 대해 개방적이고 그런 건 아니었고, 레니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도망쳐버렸다.

그런 모습을 봤으니 레니 입장에서도 두 사람을 대하기가 껄끄러울  분명했다. 그러나 콜린은 자기 때문에─물론 이 사태의 8할 정도는 한나가 원인이겠지만─ 한나와 콜린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그다지 원치 않았다.

그래서 해명이든 설득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제 레니를 찾아갔다. 최근의 일들을 통해서 검술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어울려주길 바란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레니는 머릿속이 꽤 복잡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일이 바쁘다며 만나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그런 와중에 검술 훈련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게 어쩌다보니 화근이 되어 다른 병사들에게 붙잡혀 훈련을 함께하고 말았다.

사실 앞서 말했듯 비교적 해이한 편에 속하는 조직의 훈련이었고, 그나마도 콜린을 배려하여 강도가 몹시 낮았으므로 실제로는 일종의 레크리에이션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에 또 은근히 봐주기까지 하니 예능 방송에서 게임을 할 때 여자 탤런트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어지는 시간이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재미를 붙이게 해서 간간히 여기 찾아오게 만들 작정이거나, 혹은 그저 개인적으로 호감을 사고 싶었을 뿐일 거라고 콜린은 생각했다.

"콜린. 선배님이 불러."

그러던  그의 주위에 모여 있던 병사들 사이로 나타난 것은 은발을 등까지 늘어트린 여성, 시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장에서 선배라고 하면 콜린이 여기까지 온 목적인 레니뿐이었다.

"아, 그러면 여러분. 저는 이만 가볼게요."

콜린은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처에서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그를 빼앗아간 시안에 대한 장난스런 야유가 들려왔다.

시안은 나머지 사람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저벅저벅 앞서나갔다.  뒤를 콜린이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살짝 돌아보며 작게 손짓하자 저쪽에서도 각자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온다.

"…그래서 사실은 왜 부르신 거예요?"

경비대 건물로 들어가 바깥에서 훈련하던 병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콜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눈빛을 보더니 어깨를 흠칫 떠는 시안이었다.

"아니, 딱히 속이려던 건 아니고……."

시안은 콜린에게 꽤 저자세로 나왔다. 지금만 하더라도 억울하다는 표정이 아니라 제발 믿어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서 콜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시안은 콜린이 알고 있는 인물들 중 가장 그의 속내를 잘 알고 있는 여자일 것이다. 수싸움을 즐기고, 또 장난으로 타인을 몰아세우곤 하는 소악마. 그것이 콜린이라는 남자의 본질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안은 그를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하필이면 성향이 그런쪽인 탓에 콜린에게 종속당하길 바라는 변태였다.

아무튼 시안이 그런 여자였으므로 콜린은 적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콜린은 그럼에도 레니가 그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레니라는 인간상에 대해서도 대충은 파악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를 마주하기어색해서 바쁘다는 변명으로 만남을 거부했던 그녀였다.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변심하여 냉큼 그를 불러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높은 확률로 시안의 말은 거짓이리라.

물론 그녀의 말대로 악의가 있지는 않다는 것도 확실했지만 말이다.

"선배랑 무슨 일이 있던 거 맞지?"
"뭐, 그렇죠. 누나랑 하다가 걸렸거든요."
"누나랑?!"

예상치 못한 발언이 튀어나온 탓인지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안이었다. 그만큼 그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딱히 부주의하게 꺼낸 말은 아니었다. 고작  정도로 시안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낮아지리라곤 생각되지 않았고, 어디 가서 떠벌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만약 콜린이 그저 그녀에게 약간의 우위만을 점한 상태였다면 이를 약점으로 삼아 이용할지도 모르겠지만, 콜린 쪽이 존댓말을 쓰고 있기에 착각하기 쉬우나 시안의 굴복은 겨우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흠흠, 아무튼 그거 때문에 계속 선배랑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레니는 정말로 시간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심리적인 요인으로 콜린과의 만남을 피하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시안의 그 말은 레니가 있는 곳에 그냥 쳐들어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긴 했다. 사실 콜린도 그런 방안을 충분히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콜린이 아직은 레니에게 '좋은 동생'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걸 시안은 알아차렸다. 따라서 콜린과 레니의 관계를 보다 못한 나머지 자신이 총대를 메고 콜린을 데려왔다는 형태로 명분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것을 눈치채고서 콜린은 피식 웃었다.

"잘 했어요. 나중에 상이라도 줄까요?"
"……!"

그리고 시안의 옷깃을 잡아 그녀를 끌어당기고선 귓가에 속삭였다. 시안이 놀라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이내 다시 거리를 벌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에는 당황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에 또다시 키득대며 콜린은 그녀의 등허리를 톡톡 두들겼다. 어느새 그녀의 걸음이 멈춰있던 탓이었다.

"얼른 가요."
"그, 그래. 그래야지."

뒤이어 어느 방 앞에 멈춰서더니 시안은 벌컥 문을 열었다.

"선배님."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무슨… 콜린?!"
"워낙 피하시는 것 같기에 답답해서 데려와봤습니다."

 안에 있는 책상에는 서류가 몇 장 놓여있었다. 레니는 의자에 앉은 채 퉁명스럽게 답하다가 뒤늦게 콜린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안. 다짜고짜 데리고 오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혼이라면 나중에 날 테니까."
"시안!"

그러더니 멋대로 휙 떠나버리는 시안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는 레니였다. 그러나 이내 애매한 위치에 서있는 콜린에게 시선을 향하더니 어색한 얼굴을 했다.

"저… 그러니까, 콜린."
"네, 레니 씨."

레니는 연신 입술만을 달싹이며 머뭇거렸다. 콜린이 무슨 이야기를 하러 이 자리에 온 것인지는 레니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었다. 친구 남매가 그런 관계라는 걸 알았고, 둘이 몸을 겹치는 모습을 보고 자위하고야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를 평소처럼 대하라니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도 누나하고  지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걸 봐서 어색한 건 알지만……."

결국 먼저 말문을 튼 것은 콜린 쪽이었다. 꽤 멋쩍은 듯한 미소였다. 관점에 따라서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실은 아시다시피 저희 누나가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거든요."

콜린에게 한나는, 그리고 아마도 레니 역시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자신 탓에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죄악감을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적어도 레니가 여태껏 봐온 콜린이라는 소년의 성격이라면 그러할 터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것을 생각하니 가슴께가 욱신거렸다. 따끔거리는 무언가가 배를 콕콕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콜린과 한나의 정사를 목격하고서 이틀. 사실대로 말하자면 레니가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자위를 한 것은 그날만의 충동적인 일탈이 아니었다.

오늘 이 시간이 올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때 봤던 광경만을 상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동시에 몸이 달아올랐다.

그렇게까지 되고 나니 제아무리 레니라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콜린에게 크든 작든 추잡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

레니 테세오는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시안이 그에게 접근할  괜스레 기분이 나빴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갔다.

"저기, 콜린. 혹시 한나랑은 사귀고 있는 거야…?"
"네? 아뇨. 일단은 아닌데요……."

그리고 무심코 물었던 그 질문에 부정의 답이 돌아왔을 때는 어쩐지 모를 기쁨까지 느껴졌다.

"그러면……."

뒤이어 레니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을 이으려 했다.  모습에 콜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한데.'

그녀가  뭐라고  예상이 갔던 탓이었다.

"나는 어때?"

아니나 다를까 레니는 희미하게 욕망과 기대가 뒤엉킨 눈동자로 예상대로의 말을 해왔다.

타이밍도 대사도 고백으로서는 칭찬할 수가 없었다. 아마 레니의 인생에서 첫 번째일, 그리고 혼란에 빠진 나머지 멋대로 튀어나온 충동적인 고백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레니라는 여자는 결코 나쁜 상대가 아니었다. 힘도 좋고, 직업도 나름 안정적이며, 예의도 바르다. 오히려 숙맥이라는 점만 빼면 남들에게 무엇 하나 밀리는 게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건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콜린이 거부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방금 전 그의 부탁을 대가로 자기 요구를 밀고나올지도 몰랐다.

정말 최악으로는 한나와의 관계를 소문내겠다는 협박이 뒤따를 가능성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콜린으로서는 누군가에게 묶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언젠가는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좀 더 이 세계를 즐기고 싶었다.

설령 이 세계에서 일부다처제에 대한 허들이 꽤 낮다고는 해도, 여전히 완전한 싱글로 있을 때보다는 부자유할 터였다.

"콜린?"
"…아, 죄송해요. 조금 당황해서요."
"그, 그래? 역시 내가 너무 갑작스러웠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으니 레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해온다. 그제야 콜린은 의식을 현실로 되돌렸다.  이상 생각하느라 시간을 끄는 건 곤란할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억지로 자기 의사를 밀고 나갈 생각까지는 없어 보인다는 것일까.

"역시 그런 거면 없던 일로……."
"아뇨!"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는 레니였다. 이내 자기 말을 철회하려고 하기에 콜린은 그녀를 멈춰세웠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야말로 평생 그녀와는 어색한 채일 것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확실하게 끝맺을 필요가있었다.

무엇보다도 콜린은 레니의 눈동자에서 조금 일그러진 욕망을 읽었다. 그를 향한 레니의 감정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욕망은 조금 다른 곳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이기도 했다.

'무슨 감정인지 후보는 추려볼 수 있겠는데… 정확히 뭔지 확실하게 보이질 않네.'

그렇기에 콜린은 한 번 그녀의 안쪽 깊숙이 잠들어 있던 것을 유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기뻐서 그랬던 거예요."
"코, 콜린, 그 말은……."
"저도, 예전부터 그러고 싶었어요. 아마도 거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짝사랑이 아니라 쌍방향의 감정. 그것을 입에 담자 레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콜린은 그와 반대로 표정에서 감정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저는 깨끗한 몸이 아니에요."

레니는 그날 콜린과 한나의 관계를 목격했다. 그것을 넌지시 언급하며 콜린은 그녀의 반응을 흘끗 살폈다. 표정의 변화가 있었다.

콜린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 더 파헤쳐보기로 했다.

"언제 누나랑 단둘이서 술을 먹다가 어쩌다보니……."

말을 살짝 끌며 시선을 데굴 굴려 레니를 바라본다. 그녀는 과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질투나 거부감일 수도 있다. 어쩌면더러워진 몸이라 할지라도 그를 사랑한다는 순정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아님을 콜린은 확신했다, 레니는 아주 약간이지만 흥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본인조차 자각하고 있지 못할 그런 배덕적인 흥분을 말이다.

'그래. 이쪽이었던 건가.'

콜린은 속으로 비쭉 웃었다. 어쩐지 한나와의 관계를 목격한 뒤로 갑자기 마음을 자각하고 고백을 해온다 싶었더니…….

"하지만 누구나 실수는 하잖아."
"아뇨. 단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는 건 레니 씨도 직접 봤으니 알고 계시잖아요?"
"그건……."
"처음에는 저도 기분 나쁘기만 했어요. 그런데 계속 몸을 겹치다보니… 어느새 그걸 즐기고 있는 제가 있더라고요."

상대를 파악하고 나면 그 다음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상대에 맞춰서 대응하기만 하면  뿐이다.

물론 말로만 쉬운 일이긴 했다. 그러나 한나는 본심을 숨기는 능력이 몹시 떨어졌고, 콜린은 적어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는 재주가 있었다. 콜린은 조금씩 그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면 여차할 때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라는 식으로 그녀의 고백을 거절할 수도 있으니 무리할 가치는 있었다.

"저는 그런 남자에요. 이런 몸으로 이제 와서 레니 씨와는……."
"그렇지 않아. 콜린, 괜찮아."

레니는 어느샌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 콜린을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않는 순정남… 아니, 순정녀였다.

"…정말로 저 같은 걸로 괜찮나요?"
"괜찮아."

그녀는 연인이 얼마나 추잡한 과거를 갖고 있든, 현재의 그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줄 게 분명했다.

"고마워요, 레니 씨."

하지만 콜린은 그녀의 감정이 단순히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레니는 오히려 그 연인의 추잡한 과거에 흥분하는 타입이었다. 이른바 네토라레 성벽이라는 것이다.

물론 레니는 그런 성벽이 없었다 해도 이런 상황이었다면 콜린을 받아주었으리라. 여태껏 콜린이 봐온 레니는 충분히 그런 행동을 할 법한 여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뺨이 살짝 붉게 달아오른 것은 단순히 연심이 넘쳐흐른 탓만은 아닐 것이라고 콜린은 확신했다.

레니의 성벽이 얼마나 심한 정도일지는 아직  수 없었다. 허나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콜린은 가능한 데까지 그녀를 개발할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한동안은 아주 즐거울 것 같았다. 콜린은 웃었다.

흡사 뱀과 같이 눈을 번득이는 소악마의 표정을, 소년을 꼬옥 끌어안은 레니는 보지 못했다.

뒤이어 레니가 콜린을 마주보았을 때, 그는 그저 기쁜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레니는 한동안 콜린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목에 살포시 손을 휘감는다. 그녀의 생각을 이해한 것인지 눈을 감은 소년에게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벌컥. 문이 열린 것은  순간이었다.

“아, 미안해요. 방해  할 테니까 계속하세요.”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라며 문을 바라보니 그 자리에는 히죽이는 토끼가 서있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레니는 당황하며 콜린을 떼어내고는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평정을 가장하며 마치에게 용건을 묻는다.

“에이, 진짜 방해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진심으로 아쉽다는 투를 내보이는 마치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콜린 님은… 아니, 그냥 당신도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군요.”
“제가 나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시면 너무 배려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아뇨. 당신과 관련된 일이에요. 원래 그럴 계획은 없었지만 여기 있는 김에 듣는 게 좋겠어요.”

이내 마치는 한숨을 내쉬며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왔다.

“…곧 감찰관이 올 거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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