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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54 슈프레히펜스터(2) (54/89)



〈 54화 〉54 슈프레히펜스터(2)

어두운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로브를 뒤집어쓴 노파는, 허공에 흩어지는 희뿌연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손에 든 관을 입에 가져갔다. 테이블엔 기이한 형태의 수연통이 놓여있었다.

"──할멈."

와중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갑자기 새어들어온 빛에 눈을 찌푸리고 살펴보니, 문지방에 어떤 사내가 서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었고 희끗한 금발은 실크 햇을 덮어 대부분가렸다.

모자챙에 얇은 체인으로 연결된 금속판─10/6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이 흔들리며 짤랑 소리를 낸다.

그는 성큼성큼 안쪽에 걸어들어오더니 노파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무언가를 툭 던졌다.

그러나 노파는 그것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입에 머금은 연기를 사내에게 후욱 내뿜었다.

"…당황하고 있구나. 그건 연기를 머금지 않아도 알겠어."

바로  순간 눈앞에 있던 사내가 휙 하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노파는 낄낄 웃었다.

"할멈. 내가 지금 장난이나 치자고 찾아온 걸로 보이나?"
"저런.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제야 그녀는 테이블에 던져진 물건으로 손을 뻗었다. 인장이 뜯겨나간 편지봉투였다.

"흠. 그 고양이의 편지로군."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가락으로 봉투에 아직 붙어있는 붉은 밀랍을 젖혀본다. 부점의 길드장, 체셔 캣의 인장이었다.

"삼파전이라……."

그리고는 다시 낄낄거리는 노인이었다.

정보가 많지는 않았을 텐데 용케도 세 번째 배우의 존재를 알아차렸군. 어쩌면 그 정체까지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젠장할… 베누스 자식……."

뒤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노인은 한숨을 쉬곤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차분해져라, 하타. 조급하면 될 일도 망치기 마련이니까."

노파는 이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얀 여왕은 이전의 재앙을 막아낸 여파로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런 그녀의 대리를 맡아 제후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내였다.

…물론 실제로 여왕을 혼수상태로 만든  모자 장수 본인이었지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설 녀석 말을 믿는  아니었는데……."

모자 장수는 미간을 찌푸린  불평을 토했다.

그때부터 모든  잘못되기 시작했다. 자신 있다며 온갖 권한을 받아간 백설이 꼴사납게 박살나면서부터 말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난 일에 연연해서는 나아갈 수가 없는 법이야."
"틀에 박힌 말은 집어치워."
"에잉… 노인에 대한 공경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노인은 연거푸 혀를 찼다. 물담배는 이미 내려놓은  오래였다.

"그런 헛소리를  시간이 있으면 길이나 보여줘, 영감."
"길잡이가 무슨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냐?"
“고문이라는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주시지.”

모자 장수는 혀를 차는 노인을 여전히 노려보았다. 그러자 결국 어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그녀였다.

"일단 불러들여."
"과연  자식들이 제대로 협상에 응할까?"
"그럼 어쩔까? 외세를 끌어들여 내전 한바탕 해보고 싶다는 건 아니잖냐."

당연하지만 그다지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기에 모자 장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제 남은 길은 모든  걸린  판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고."

노인은 그를 향해 턱짓을 하다가 다시 물담배를 입에 물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자 장수는 어금니를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백설을 신임했던 것은 물론 최악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치 헤어를 내버려둔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

매일같이 색을 탐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뒤에서 칼을 갈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어떻게 얻어낸 자리인데… 순순히 빼앗길 것 같으냐, 마치 헤어."

모자 장수는 분노와 결의를 담아 중얼거렸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노파는 고개를 돌려 허공에 연기를 뿜어내었다.

노인의 눈동자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헤이어. 정말로 전부 네가 한 게냐?'

복수를 벼르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던 마치 헤어가 드디어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전부였을까?

그녀가 강하다는 것은, 또 교활하다는것은 노인도 아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백설의 비겁함을 짓밟고 승리를 거둘 있는 정도인가 물으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이야 괜히 믿었다며 백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모자 장수였지만, 사실 노인은 여전히 그녀가 뛰어난 모략을 가진 여자였다고 생각했다.

자신이었다면 백설의 게임을 돌파할  있었을까.  역시 의문이었다.

'또 성장한 걸까.'

노인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려 웃었다.

아무래도 부점 길드에서 지내는 동안 마치 헤어도 성장한 듯 했다. 약간의 뿌듯함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협상 대비는 확실히 해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옛 관계가 어떠했듯 지금은 적이었으니까.

"특히 마틸다는 이번 협상에서 좋은카드가 될 거다."
"마틸다…? 아아, 그 쥐새끼 말인가."

모자 장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겨우 기억해낸 듯 중얼거렸다.

"생각은 해두지."
"생각만 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노인은 아마도 모자 장수가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끌어오리라 짐작했다.

다른  몰라도 행동력만큼은 뛰어난 사내다.

…그게공포정치에 이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일 뿐.

노인이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뜨니 모자 장수는 또다시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오긴 했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인 조언을 바라기보단 한탄할 상대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 녀석… 누누이 문은 닫고 다니라고 말했건만."

그러다가 노인은 여전히 열려서 빛이 새어들어오는 문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달갑지 않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낡은 의자가 삐그덕 소리를 내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닫고자 나아가다가 그녀는 문득 멈춰섰다.

정말로 느닷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꼴이 이상하리만치 우습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쥬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않아?"

미치광이처럼 혼자 낄낄 웃으며 노인은 다시금 마저 걸음을 옮겨 문을 닫았다.

녹슨 경첩에서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권력이라는  그렇게나 달콤한 건가? 저토록 망가질 만큼?"

노파는 옛 친구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말을 허공에 내뱉었다.

그리곤 조금 섬뜩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쥬브쥬브 새를 조심해라, 피하거라. 더펄카한 호룡수를!

×

똑똑.

레니는 마치 헤어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쥐여저 있었다.

"마치 씨."

안쪽에 대고 방의 주인을 부른다.

그러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 나갔나…?'

다시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기에, 외출이라도 했나 생각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안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니. 들어와요."

그리고 마치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어째서인지 조급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레니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있는 마치와 눈이 마주쳤다.

"미안해요. 급하게… 뭐  정리하느라."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사람이 언제나 만전의 상태인 건 아니지 않은가. 타인에게 그다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이따금씩 있는 법이다.

그래, 분명 그렇다.

'…뭐지?'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레니는 생각에 잠겼다. 저절로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뭔가 이상했다.

"저기, 원래 책상이 거기 있었습니까?"
"으응? 그야 당연하죠…?"

잠깐 시간이 지나고서야 레니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주 저택의 집무실에는 물론 책상이 있고, 방에 들어가면 체셔와 눈이 마주치게 된다.

이는 그의 집무실이 단지 업무 장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맞이하는 장소─물론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야 할 때는 따로 마련된 응접실을 이용하곤 하지만─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떠한가? 마치의 개인실이고 침실인 이 방은 말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실에 책상을 비치하는 경우 대부분은 앉기 편하면서도 괜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게 놔둔다.

이렇게 복잡하게 말했지만 요컨대 보통 벽에  붙이고, 의자도 벽을 바라보게 놔둔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마치는 책상을 중앙에서 조금 뒤로 치우친 곳에 둔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체셔의 집무실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였다.

"흐음… 아… 그래, 서… 무슨 일로 왔나요…?"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레니의 눈은 상황을 더욱 관찰하기 시작했다.

마치의 뺨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호흡이 거칠어 어깨가 들썩이는 게 보일 정도였다.

 부분 역시 레니에게 위화감을 안겨주고 있는요소 중 하나였다.

"흐으읏♥"
"……?!"

쥬르르릇!

느닷없는 소리에 레니는 몸을 흠칫 떨었다.

'뭐, 뭐지…?'

한 발 늦게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입에 대고 격렬히 빠는 것만 같은 소리가…….

"……."

그리고 레니는 침묵에 잠겼다.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고 만다.

"아♥ 흐응♥"

저 책상 아래에 무엇이 있는가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상황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든다.

"아니, 그, 그게… 편지가 왔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밖에서 들었던 소음의 정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레니의 방문을 확인하고서 마치가 책상을 옮겨 이런 구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오로지 레니라는  사람의 관객을 위한 연극이었다.

"흣♥ 그런가요…? 하앗♥"

그리고 연극의 주연은,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소년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레니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라면 분명히 장난기 어린 미소로 즐거워하며 마치에게 협력했으리라.

아니, 콜린이 먼저 아이디어를 내고 마치가 협력한 쪽일 가능성마저 있었다.

"제후 대리의… 초청장입니다."
"흐응♥ 그렇, 읏, 군요…♥"

찌걱찌걱. 물소리가 조용한 방에 울려퍼졌다.

어떻게든 평정을 가장하고 용건을 마치려던 레니였지만, 그녀의 몸은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오는 것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흐아아앗♥"

레니가 책상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차렸다. 진즉에 그걸 파악하고 있었는지 마치는 씨익 웃었다.

그렇게 숨길 생각도 없이 달뜬 한숨을 흘리다가 그녀는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

마치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치 씨…?"
"으응…♥ 아, 잠시만요…♥"

그러다가 느닷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기에 레니는 순간의아하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마 저런 자세인 것은 레니에게 헐벗은 하반신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겠지.

애초에 들키는  전제로 한 플레이였지만, 그럼에도 빼도 박도 못하게 모든 걸 드러내어서야 재미가 없다.

마치는 그렇게 생각한  틀림없었다.

"실은 의자를 새로 샀거든요… 으읏♥"

그러더니 마치는 조금 전까지 앉아있던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하고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흐으으읏♥"

그리고는 한동안 꼼지락거리다가 쑤욱 내려간다.

레니의 위치에서는 책상 너머로 겨우 어깨가 보였다. 마치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거의 바닥에 쪼그려앉은 정도였다.

과연 그녀의 엉덩이 아래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레니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흣♥ 레니…♥ 편지 좀 가져다, 흣, 주세요…♥"

팡팡팡팡!

뒤이어 살갗이 세차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 너머로 드러난 마치의 상체가 위아래로 격하게 들썩였다.

원래부터 숨길 생각이라곤 없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교성을 억누르는 척도 하지 않았다.

"레니잇…?"
"아, 저기, 그… 네!"

레니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벅지끼리 문질러대다가 깜짝 놀라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편지♥ 흐읏♥ 이쪽으로…♥"

그리 말하더니 마치는 한쪽 팔을 책상 위로 쭈욱 뻗었다.

팔은 몸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고, 손가락은 쾌감의 여파로 움찔거렸다.

레니는 머뭇거리면서 책상으로 다가갔다.

찌걱. 찌걱, 찌걱.

가까이 갈수록 음탕한 물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레니는 너무 흥분한 탓에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손을 벌벌 떨며 쥐고 있던 종이를 내민다.

톡. 마치의 손끝이 내밀어진 편지를 건드렸다.

"흐윽♥ 앗♥ 흐아아아앙♥"

이내 마치는 종이가 살짝 구겨질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그녀는 턱을 책상 위에 올린 채 파들파들 경련했다.

"읏… 들어오고 있어요오……♥"

나지막이 중얼거린  마디. 그 순간 레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마치의 음란한 핑크빛 자궁에 끈적끈적한 백탁액이 쏟아지는 영상이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후으응…♥"

한참이 지나서야마치의 떨림이 멈추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치켜들더니 달뜬 숨결과 함께 야릇한 한숨을 내뱉었다.

이내 마치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조금 전의 행위 탓인지 상의가 말려올라가 그녀의 하복부가 보였다.

"아, 마치 씨 오셨어요?"
"코… 콜린?"

거기에 대해 무언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책상 아래에서 붉은 머리칼의 소년이 불쑥 튀어나왔다.

레니는 당황하며 주춤 물러섰다.

"아, 책상 아래를 좀 청소하고 있었어요."
"그… 래?"

물론 절대그럴 리 없다는 걸 레니는 알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투명한 액체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셈 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째선지 곤란해질 것만 같아 무심코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실은 손이 안 닿는 곳이 있거든요. 레니 씨가 와서 청소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뒤이은 말에 레니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초대였다. 저 두 사람이 하반신을 드러내고 있을, 아직 보이지 않는 문란한 영역으로의 초대.

"……."

너무나도 당연하게, 레니는 흥분 탓에 자꾸 거칠어지는 숨을 어떻게든 억누른 채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는 하반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년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리는 살짝 벌려 고간을 그대로 드러냈고, 거기엔 정액과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음란한 육봉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청소, 해주실 거죠?"

레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남자의 하복부에 얼굴을 파묻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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