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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59 당연히 T로 시작하는(3) (59/89)



〈 59화 〉59 당연히 T로 시작하는(3)

"역시 협상이라는 건 피곤하단 말이죠──."

콜린은 침대에 몸을 던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잘 된 거 같아?"

레니는 그에게로 시선을 향하곤 물었다.

모자 장수와의 협의가 끝난 직후 콜린은 배정된 방으로 왔다.

아무래도 그들이 모자 장수를 상대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미리 짐을 정리해둔 모양이었다.

"어떨지는 지금부터 생각해봐야 해요. 그나저나 한나 누나는요?"
"옆방에 푸는 거 도와주러 갔어."

그럼 금방 오겠네요. 콜린은 그리 중얼거렸다.

여기서 머무는 동안은 콜린, 한나, 레니 세 사람이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제일 무력이 떨어지는 두 사람을 레니가 보호하기 위한 형태였다.

"그보다 콜린, 이건 대체 뭐였어?"

이내 레니는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구석에 놓인 가죽 자루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건 콜린이 준비한 물건이었으니까 말이다.

"난쟁이들이 뭐 이것저것 하는  같던데?"
"제후 대리를 분석하기 위한 작업이에요."

제후 대리, 모자 장수. 그가 가진 권능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런 능력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하는  몹시 어리석은 일이므로 어떻게든 약점을 찾아내어 찔러야 했다.

"시간 정지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검증해보는 게 목적이었어요."

발단은 마치의 설명이었다.

이전에 그녀가 모자 장수와  주위 인물들에 대해 설명할 때, 마치는 그의 주요 공격 방식이 총격과 나이프 투척이라고 말해주었다.

근접한 상황에서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프 투척'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당연하지만 레니처럼 아예 괴력이 있어서 화약 이상의 힘으로 나이프를 던질 수 있는 게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총이 압도적으로우수한 무기다.

'굳이 나이프를 써야 한다면 총을 사용할 수 없는 순간일 테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그게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건 높은 확률로 시간을 멈추고 있을 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시간정지 도중에는 총을 작동시킬 수 없다… 아마 화약에 불이 붙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그런데 이는  일부 물리법칙 역시 함께정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자, 이제 조금 깊게 생각해봅시다. 어떤 물리법칙이 멈추는 걸까요?"

레니가 가리킨 자루 속에 있던 것은 풍선, 양초, 그리고 동전이었다.

각각 기압 차로 인한 공기의 흐름, 빛, 중력을 검증하기 위한 도구였다.

여기에는 난쟁이들이 정말로 고생을 해주었다.

우선 풍선을 불고 다시 바람을 빼는 걸 반복한다. 여럿이서 돌림노래를 하듯 항상 바람이 일정한 속도로 빠지는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다.

"이걸로 알 수 있는 건 뭘까요?"
"…글쎄?"

하지만 콜린의 설명에도 레니는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 레니는 모르고 있나 싶어서 쓴웃음을 지은 뒤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통은 호흡을 하면 공기가 들어와서 가슴이 부푼다고 생각하죠."
"그게 맞지 않아?"
"사실 그 반대에요. 실제로는 가슴이 부풀어서 공기가 들어오는 거예요."

횡격막의 움직임에 의해 흉강의 기압이 변화하고,이를 통하여 공기가 안팎으로 움직이게 된다.

"어라? 잠깐만 그러면……."
"네. 모자 장수는 시간을 멈추고 있는 동안 호흡을 할 수 없어요."

난쟁이들은 어느 한 순간에도 공기의 흐름이 변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풍선을 놓았을  공기가 빠져나가는 이유는 압력 때문이다.

그 움직임에 변화가 없었던 이상 가설은 검증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즉, 시간 정지는오래 지속할  없으며, 연속적으로 사용하기도 곤란하다."
"…뭐랄까. 분명 말도  되는 능력이었는데 벌써 뭔가 대응할  있을 것 같아졌어."

레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콜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1분 정도는 잠수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1분이면  사람을죽이고도 남을시간일 터였다.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셈이었다.

"다음으로양초."

당연하게도모든 난쟁이가 풍선에만 몰두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다음으로 그가 난쟁이들에게 맡긴 일은 양초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일이었다.

서로 눈을 깜빡여야  때는 신호를 주면서 적어도  사람 이상은 계속 양초를 보고 있도록 한다.

"만약 불꽃이 갑자기 밝아지는 순간이 있다면 정지된 시간 속에서 빛이 움직인다고 볼 수 있겠죠."

시간은 정지되어 있는데 빛만 움직인다면 찰나에 비교적 대량의 빛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닥 반응이 없었다고 난쟁이들은 보고했다.

이는 곧 정지된 시간 속에서 빛 역시 움직임을 멈춘다는 의미였다.

"모자 장수는 시간을 멈추고 있는 동안 앞을 제대로 볼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시각이라는 것은 물체에 부딪혀 튕겨나온 빛을 감지하여 인식하는 감각이었다.

그러니 빛이 멈춘다면 시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일 좋은 상황은 아예 시간을 멈추기 직전의 시야로만 볼 수 있는 경우.

물론 이건 정말 최선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였다.

빛이 움직여서 눈에 들어오지는 못해도, 눈이 움직여서 빛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이 경우에도 실제로 보는 것과는 많은 왜곡이 생겨나리라. 아마 실루엣 정도만  수 있을 것이라 콜린은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전은… 중력 확인이죠."
"계속 위로 던지는 걸 반복하다가 갑자기 순간이동을 하면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였다는 거지?"
"네, 맞아요."

 번째가 되니 이제 레니도 대충 감이 잡힌 듯 말해왔다. 콜린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해주었다.

시간 제한, 불완전한 시야, 중력 무시.

모자 장수의 권능에 대하여  특징을 정리하면 위와 같았다.

'관성에 대해서도 정지하는 모양이지만, 여기까지 세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이제부터 이걸 기반으로 대응책을 연구해야겠죠."

콜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맞다, 레니 씨. 나중에 누나 돌아오면같이 카지노라도 가보실래요?"
"카지노?"
"일단 형식적으로는 카지노를 새로 지었네 마네 하면서 기념으로 부른 거잖아요?"

어차피 어느 정도 정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들 두 진영이 담판을 짓기 위해 모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목적인 변명은 중요한 법이었다.

"도박은… 좀 그렇지 않아? 빠지거나 하면 위험할 텐데……."

다만 레니는 조금 불안한 기색이었다.

"에이, 괜찮아요."

그 모습에 콜린은 싱긋 웃었다.

"돈을 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고요. 저는 그냥 스릴을 즐기러 가는 거니까요."

이어서 그리 당당하게 말해오는 것이었다.

'…그게  위험한  아닌가?'

차라리 돈에 눈이 돌아간 거면 장사 쪽으로 건전하게 방향을 틀어볼 수나마 있는데, 도박 자체를 즐기는 거면 방도가 없지 않은가.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고야 마는 레니였다.


×

"우와아……."

화려한 형태의 건물이 시야를 가렸다.

카지노 앞에  한나는 입이 벌어져서 그 휘황찬란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나, 그러고 서있으면 사람들이 촌놈인  알걸."
"이런거에 비하면 우리 동네는 촌이 맞지 않아?"
"그건 그렇지."

한나의 자학적인 농담에 콜린은 킥킥 웃었다.

"너는 의외로 안 놀라네."
"뭐, '저쪽'에서는 더한 것도 봤으니까."
"그렇구나……."

물론 콜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카지노의 이미지는 밤거리에 네온샤인을 비추며 번쩍이는 궁전이었기에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넌지시 그런 이야기를 건네자 콜린이 다른 세계의 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던 한나는 납득하는 듯 했다.

'그나저나 이쪽에도 네온샤인 비스무리한 게 있으려나?'

어쩌면 여기도 그런 시설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엄청 크긴 하네."

곁에 있던 레니도 감탄을 품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은 것 같았다.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을종합해보면 그녀는 다른 지방 제후의 딸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훨씬 굉장한  보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그리고 세 사람이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자 정장 차림의 여성이 맞이해주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올림머리로 단정하게 묶었고, 왼쪽 눈에 금빛의 모노클을 끼고 있었다.

가슴은 작다곤  수 없을 크기였으나 전반적으로 딱 달라붙는 형태의 복장이었기에 뚱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조금 묘한 느낌인데.'

그녀를 보고서 콜린이 가장 먼저 받은 감각은 위화감이었다.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콜린이 품고 있는 카지노 직원에 대한 이미지는 정장 조끼를 입고 있는 인물이었던 탓이다.

의문을 품으며 콜린은 주위를 잽싸게 훑어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직원으로 보이는 다른 인물들과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 소개부터 드려야겠지요. 이 카지노의 관리인, 유디트라고 합니다."

 모습에 콜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럴 거라곤 생각했지만 말이지.'

물론 콜린을 비롯한 일행들은 공식적으로는 일종의 귀빈이었으므로 관리인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대체 무슨 수로 그들이 카지노로 올  알고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부점 길드는 반역군의 수장이니 감시가 없는 게  이상하긴 했다.

다만 지금의 이 행동은 '너희를 감시하고 있으니까 알아서 기어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응?"

그런데 유디트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기려던  아주 약한 무언가가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상황에 따라서는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약한 감촉이었다.

"아, 설명드리는 걸 잊었군요. 이 카지노는 장소 자체에 근원적 계약이 걸려 있답니다."
"그런 것까지 가능한 건가요?"

콜린은 조금 당황하여 물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특정 장소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 계약이 성립되어 버린다면 자기도 모르는  함정에 빠져버릴 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길. 이런 건 근원적 계약이 합당하다고 판단한 내용에 대해서만 성립되니까요."
"…카지노에 걸려있는 계약은 뭔가요?"
"카지노의 비품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유디트는 그렇게 덧붙였다.

요컨대 카지노 전용 카드를 몰래 가져가서 똑같은 복제를 만들거나 하는 등의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아, 물론 유일하게 저는 예외랍니다. 아무도 카지노 비품을 건물 밖으로 꺼낼 수 없게 되면 곤란하니까요."

유디트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우아하게 웃었다.

"칩은 제공해드릴 테니 모쪼록 즐겨주시길."

그리 말하며 그녀는 직원을 하나 불러서  사람에게 천으로 된 검은색 주머니를 각각 건네주었다.

끈을 살짝 풀고 안을 살펴보니 색색의 칩이 들어서 절그럭 소리를 내었다.

"뭐, 제후 대리와 본격적으로 붙는 건 내일부터니까 오늘은 실컷 놀자."

이내 자리를 뜨는 유디트를 바라보다가 콜린은 고개를 돌려 다른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니, 느닷없이 즐기라 해도……."

다만 여전히 불안해보이는 한나의 모습이었다.

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소시민에 가까울 그녀에게 카지노는 너무 갑작스러웠을까.

그야말로 아기 사슴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에 콜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레니 씨, 누나 잘 부탁할게요."
"응. 일단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볼게."

결국한나에게는 보호자를 붙이기로 했다. 그래도 레니가 붙어있으면 괜찮을 것이다.

'…성격을 감안하면 호구잡히긴 딱 좋은 조합이긴 하지만.'

물론 그 뒷말은 다시 삼켰다.

감정이 표정에 죄다 드러나는 한나와 정직함을 모토로 삼고 있는 레니. 상대를 잘못 만나면 그대로 털릴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뭐, 어차피 자기 돈이 아니니까 상관없긴 했다.

오히려 탈탈 털리고 도박의 위험성을 깨달아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혹시 모르는 일이다. 초심자의 행운이 발휘되어서 대박을 터뜨릴지.

'아무렴 좋은 일인가.'

따거나 따지 못하거나, 그건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콜린은 어차피 칩을 환금할 생각이 없었다.

'이걸로 돈을 벌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으면 나쁜 버릇이 든다… 그 정도 명분이면 되겠지.'

마지막에 돈을 받지 않고 칩을 돌려준다. 콜린은 그럴 작정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가 콜린은 시선을 좌우로 훑어 테이블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돈으로 바꿀 의향이 없다는 거지, 따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카드 게임을  해본 지 너무 오래  거 같은데. 오랜만에 재미 좀 보겠는걸."

아니, 오히려 딸 생각으로 가득이었다.

콜린은 잠시 비릿한 웃음을 지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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