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60 당연히 T로 시작하는(4) (60/89)



〈 60화 〉60 당연히 T로 시작하는(4)

테이블 위에 카드가 펼쳐진다.

이내 자신의 승리를 확인한 붉은 머리의 소년이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애매한 상황에서 승부를 걸어봤는데 다행히 승리의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준모양이었다.

"……?"

그러나 콜린에게 칩을 내밀던 딜러가 느닷없이 표정을 굳었다.

굳이 따지자면 당황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즐기고 계신 모양이라 다행이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해보면 한 사람의 여성이 서있었다.

"유디트 씨?"

신체에 딱 맞게 만들어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정장. 검은 머리칼은 올림머리로 정리했다.

물론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디트,  카지노의 관리인이었다.

그녀에게 고용된 입장일 딜러가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갑자기 사장님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긴장하리라.

유디트는 콜린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

"무슨 문제는 없으실까 싶어서 찾아와봤습니다."
"하하… 관리인 분이 신경 써주시니 고마운데요."
"형식적으로는 귀빈이시니까요."

다정한 목소리와 친절한 웃음. 그러나 그게 순전한 호의가 아니라는 것을 콜린이 모를 리 없었다.

'형식적으로'라는 것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의미였으니까.

호의적이지 않은 관심을 받는다는 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 저와도몇 판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유디트 씨와…?"
"예. 이따금은 저도 게임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콜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왜 하필 지금…….'

짜증과 긴장이 뒤섞인다.

콜린은 눈동자를 굴려 가지고 있는 칩을 흘깃 바라보았다.

조금씩 불려온 덕에, 처음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1.5배 정도 되는 양.

그야말로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었으나, 방해가 들어온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괜찮으시다면… 어떤가요?"
"좋아요. 관리인 씨의 실력도 한 번 보고 싶은걸요?"

하지만 콜린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째선지 그녀에게서는 희미한 경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이 상황에서 물러났다간 되레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저도 당신의 실력이 궁금하더군요. 일전에 아라크네 길드와의 모의전에서 보여준 지략에는감탄했습니다."

'…이게 경계심의 원인이었구만.'

콜린은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부점 길드에서 온 일행에 전투력이 부족한 그가 참가한 시점에서 콜린의 역할은 두 가지로 추측해볼  있다.

하나는 남창, 그리고 또 하나는 참모.

만일 유디트가 그때의 전투를 확인했다면 전자는 아닐 확률이 높다고 확신했으리라.

"그러면 방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따라와주시길."

이것은 시험이었다. 부점의 참모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히면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기회일지도 몰랐다.

적당적당한 상대를 연기함으로써 모자 장수 측에 방심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엄밀히 말해서 부점 길드에는 순수한 참모라고  만한 사람이 없다.

하다못해 체셔조차도 어느 정도 전투력이 있으며, 책사보다는 군주에 가까운 케이스였다.

즉, 현재 시점에서 콜린을 비교해볼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었다.

참모로 내세운 걸 보면 부점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알겠는데,  길드의 평균적인 지략이 고만고만 하다보니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면 얼마든지 평가를 낮출 수 있지.'

콜린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참모로서의 평가를 최대한 낮출 수 있을까.

"유디트 씨야말로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카드게임은 정말 잘하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로 실력을 보고 싶군요."

자신감이 넘쳐나는 콜린의 말에 유디트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약간의 비웃음이 맴돌고 있음을 콜린은 놓치지 않았다.

좋은 경향이었다. 콜린은 '하룻강아지'가 되기로 결정했으니까.

자존심이 콧대를 찌르는, 겉멋만 든 꼬맹이.

참모에게 있어 그것은 최악의 평가일 것이다.

물론 멍청하다는 표현은 그 시점에서 참모로 보기 어려우니예외로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두 사람은 안쪽의 방으로 이동했다.

구석에 놓인 책상과 서류들. 중앙에 놓인 테이블과 마주하게 배치된 소파.

콜린은 내부를 훑어보며 그야말로 관리인의 개인실 같은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유디트는 몸을 살짝 비키며 소파를 가리켜 그가 앉도록 했다.

그리고는 서랍에서 카드 한 벌을 꺼내더니 그녀 역시 맞은편에 앉아 콜린을 바라본다.

"자, 그러면 어디 시작해볼까요?"

×


아로마라도 피워둔 것인지 랄콤한 냄새가 은은하게 맴돌았다.

"…휴우, 이쯤 할까요?"

유디트는 살포시 웃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칩의 대부분은 콜린 쪽에 쌓여있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콜린과 같은 양의 칩을 가져온 유디트였으므로 콜린이 꽤나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음을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 성과에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내는 유디트였다.

콜린은 그것을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거 종목을 바꿔야 할 지도 모르겠군요."
"바꾸다니요?"
"제후 대리와 하기로 했던 게임이 있잖습니까?"

모자 장수와의 사이에서 협의된 '게임을 위한 게임'. 아마도 그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콜린은 그 말에 무심코 침을 삼키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설마……."
"예. 제가 카드를 받은 여섯 중 하나입니다."

그리 말하며 유디트는 품에서 새하얀 카드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 위에는 필기체로 'How'라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본래라면 포커로 승부를 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상대가 이런 분이서여야 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마를 짚은 쓴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그 눈을 콜린은 지그시 바라보았다.

"혹시 도망치시는 건가요?"
"…후후, 그렇게 나오시는 겁니까?"
"그렇게 나온다니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는 눈을 살짝 흘기며 도발했다.

물론 그녀가 고작이 정도 도발에 넘어갈 인물이 아니라는 걸 콜린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내일 다시  번 승부를 내봅시다."

하지만 유디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여자로서 자존심이 도망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연기였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차마 연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그런 말을 해오니 자칫하면 깜빡 속아넘어갈 것 같았다.

콜린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레니 씨. 벌써 오셨어요?"
"뭐… 그렇게 됐어."

그리고 바깥에 나가려 고개를 돌리니 그 자리에 레니가 서있었다.

그녀는 몹시 멋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니 씨는 앞으로 도박하면 안 되겠어요."
"그러게나 말이야……."

그도 그럴  레니가  방에 오는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대략 20분 정도 전에 레니는 가진 칩을 모두 탕진해버리고 콜린을 찾아왔다.

어차피 칩도 다 떨어졌겠다 콜린의 게임이나 구경하러  것이었을 테지만, 이미 유디트에게서 꽤 칩을 따놓은 상태였던 그는 레니에게 칩을 쥐여주고 다시 돌려보냈다.

그런데 결국 그마저도 죄다 잃고 돌아온 것이다.

이쯤 되면 심각하다 못해 처참한 수준의 실력이라고  수 있었다.

"누나는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얘기를 들어보면 한나도 비슷한 상황인 듯 했다.

물론 레니처럼 탈탈 털린 수준은 아니라곤 해도, 칩이 고작 몇 개만남았다고 하니 솔직히 도긴개긴이다.

하긴 두 사람 다 뭔가를 숨기거나 남을 속이는 재주는 없는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뭐, 앞으로 도박은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은 충분히 얻었겠네요."

콜린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떼었다.

"칩은 안 가져가십니까?"

 모습에 유디트는 조금 의아한  물어왔다.

"아, 환금은 안 받으려고요. 이런 식으로 벌었던기억이 남아있으면 나중에 이상한 버릇이 들까봐."

생각해보면 애초에 원금부터가 자기 돈이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거였어? 한나는 이미환금한  같던데."
"얼마 안 되는 돈일 테니 그 정도라면괜찮아요. 오늘 저녁이나 사라고 하죠."

아마 조금 비싼 가게에 가면 한 끼로 바닥이 날 정도의 양일 것이다.

그리 생각한 콜린은 유디트에게 인사를 남기고 방을 떠났다.

"레니 씨.  나가기 전에 잠시 화장실만 좀 들렀다 올게요."

용무를 마치고서 콜린과 레니는 카지노를 나왔다. 바깥에서는 한나가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으, 다음부터는 잘  이쪽 방향으로 머리도 두지 말아야지."

그녀는 두 사람을 보더니 한탄했다.

"대체 얼마나 털린 거야?"
"상대가 나빴어. 죄다 엄청난 고수들이었다고."

콜린의 물음에 한숨을 쉬며 변명을 하는 한나였다.

"어떻게만만한 녀석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지?"
"그런 말이 있지. 노름판에는 반드시 호구가 있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호구는 당신이다."

이내 한나는 입을 다물었다. 레니 역시도 조금 찔리는 게 있는지 시선을 피했다.

"그보다 콜린. 너는 어떻게 정도로 딴 거야?"

잠시 그렇게 침묵한 채 걷다가 문득 레니가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제후 대리의 신임을 받는 녀석이 포커를 제안할 생각이었다고 하면 실력은 꽤  텐데 말이야."
"그야 접대였으니까 그런 거죠."

콜린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게임에서 콜린은 승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인간, 타짜였어요."
"…그런 것까지 구분할 수 있어?"

레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카드로 수작을 부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는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눈으로 슥 본다고 구분이 되는 것이던가? 의아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야 타짜들 손은 못 따라가죠. 애초에  여자가 무슨 기술을 쓸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콜린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근데 반응이 이상했어요. 자기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베팅했다가 져놓고, 얼굴은 이미 그럴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니까요."

흔히 도박과 관련된 작품을 보면 나오지 않던가?

자기 패가 높다고 생각해서 마구 판돈을 올리다 더 높은 패에 털리는 포지션. 그걸연기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콜린이 생각하는 그대로판이 풀리는, 접대 냄새가 풀풀 나는 게임이었다.

"그럴 필요가 있어?"
"일단 형식적으로 귀빈이라는 점도 있고요,저를 테스트하려 했던 것도 있겠죠."

접대 게임인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실력이 뛰어난 줄 아는 콜린의 모습을 유디트는 속으로 비웃고 있었으리라.

물론 이쪽도 연기였지만 말이다.

"거기에 저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은근히 알려줘서방심하게 만든 뒤 내일 박살내려고 들 수도 있겠네요."

만약 콜린이 정말 그녀의접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내일의 카드 쟁탈전에서 그가 유디트의 상대로 나갔을 게 분명했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제가 놓치고 있던 걸 하나 알긴 했으니 이득이네요."
"놓치고 있던 거?"

이번에는 한나가 끼어들어 질문했다.

마찬가지로 두뇌싸움에는 그닥 능통하지 않은 그녀였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걸 세는 편이 빠른 한나로서는, 자기가 보기엔 모든 걸 내다보는 듯 보이는 콜린이 대체 무엇을 모르고 있었나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라크네길드와 모의전을 했었잖아. 그때 일을 잊고 있었어."

유디트는 그 영상을 보았던 것인지, 콜린을 부점 길드의 참모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수도에서는 최대한 실력을 숨기고 움직이려 했던 그였기에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괜히 모자 장수와 협상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렸겠는가.

그런데 그가 그때의 영상을 봤다면 모처럼 그런 번거로운 수단을 썼는데 의미가 없어진다.

"뭐,  일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모자 장수는 콜린을 그다지 고평가하고 있진 않을 것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콜린은 그때의 그가 자신을 마치의 애첩 취급하고 있었던 점을 떠올렸다.

그런 것들을 보면 아마 유디트가 그를 바라보던 것 이상의 평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런 것보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해가 저물기 전에는 돌아가야지."
"응, 그래. 오늘은 내가 산다!"
"누나 돈 아니잖아."

정확하게는 유디트에게 받은 돈 중에 대부분을 탕진하고 그나마 남은 돈이지. 굳이거기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기에 콜린은 말을 삼켰다.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조금 침울해지고 마는 한나였다.

"뭐, 그래도 공짜를 마다할 이유는 없는  아니겠어?"

거기에 레니는 피식 웃으며 호응했다.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농담을 괜히 꺼내지는 않기로 했다.

애초에 여기 사람들이 알고 있을 리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


밤이 찾아오고, 침실에 여덟 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아무리 넓은 방이라고 해도 사람 수가 있다보니 미묘하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물론즐거운 파자마 파티는 아니었다.

"정보가 나왔어."

체셔는 그리 말하며 테이블에 여섯 장의 종이를 내려놓았다.

종이 위쪽에는 필기체로 큼지막하게 단어가 하나씩 적혀 있었다.

─When. Where. Who. What. How. Why.

그리고  아래로는 여러 문장들이 쓰여있다.

이게 바로부점 길드에서 온 전원이 이 자리에모인 이유였다.

콜린은 번역 아이템을 이용해서 그것을 읽어보았다.

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인물과 그들이 있는 장소. 그리고 그들과 맞붙게 될 게임의 룰이 정리된 자료였다.

"우선 언제. 그리푸스라는 녀석이 담당인데…이건 제일 간단하겠네요."

마치는 종이를 손가락으로 한  짚더니 그것을 읽었다.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게임 규칙이 아니라 거금을 주면 카드를 팔겠다는 계약서에 가까웠다.

"어… 그래도 되는 건가?"

레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아마도 다들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뭐, 누가 이기든 벌어보겠다는 거겠죠. '언제' 정도면 비교적 가치가 낮기도 하고."
"하…  놈은 정말로 돈의 망자라니까."

마치의 추측에 백설이 혀를 찼다.

아마 그녀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이건 빚을 져서라도 무조건 먹는 걸로 하죠."

이야기들을 듣고서 콜린은 결론을 내렸다. 이른바 따서 갚으면 된다는 식의 전략이었다.

"빚까지 질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 까마귀 길드를 포함해 다른 길드의 협력을 받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겠지."

체셔는 거기에 수긍했다.

카드 쟁탈전이 끝나면 서로 번갈아가며 하나씩 규칙을 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계약이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카드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다. 규칙에 아무런 영향을  수 없는 '왜'조차도 없는 것보단 갖고 있는 게 이득일 정도니 말이다.

"다음으로는'어디서'를 갖고 있는 빌. 종목은 차투라지네요. 그것도  진영을 하나로 묶어서."

이즈음 하면 되었다 싶었는지 마치는 다음 종이로 넘어갔다.

"저… 차투라지가 뭡니까?"
"체스 비슷한 거에요. 4인용이긴 하지만."

여태껏 조용히 있던 리온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질문했다. 암사자의 복슬복슬한 손이었다.

'…발바닥은 그다지 말랑해보이진 않네.'

조금 유감스러운 느낌이라 남몰래 속으로 한숨을 쉰 콜린이었다.

"그럼 세 진영을 하나로 묶는다는 건 3:1로?"
"쉽게 말하자면 저쪽  개수를 세 배로  체스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건… 너무 억지 아닙니까."

어처구니가 없다는 리온의 표정에 콜린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러나 종목을 정하는 건 저쪽인 걸 어쩌겠는가.

"그나저나 시간제한이 안 적혀있네요."

콜린은 룰에 대해 불평하는 대신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그야 어차피 일몰이 되기 전까지 카드를 빼앗아야 하는 건 우리 쪽이니까."
"어? 그러면 시간제한을 넣어달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레니가 답을 했고 거기에 시안이 당황하며 질문했다.

저쪽에서 차례를 안 넘기고 계속 미루면 어쩌냐는 의미였다.

"아뇨.이건 내버려두죠. 그리고 이 카드는 백설이 맡아."
"어? 콜린 님. 죄송하지만 저는 차투랑지란 게임은 전혀……."
"괜찮아. 방법이 있으니까."
"뭐…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조금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무언가 전략이 있는  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백설이었다.

"다음은 '누가'… 백토(白兎)라는 녀석이 갖고 있네요. 알고 있는 녀석이에요."

거기까지 말하고서 마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제안은… 어느 하나가 죽을 때까지 일대일 결투."

이내 그녀의 말이 끝맺어지자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어떤 사람인가요?"
"강해요. 호전적이고."

한참 뒤 침묵을 깨고 콜린이 묻자 마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치 누나와 비교하면 어때요?"
"…정면승부라면 승리는 장담 못해요."

마치는 이쪽의 최대 전력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면 엄청난 강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럼 포기하죠."

콜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만한 실력자라면 레니나 마치 정도가 아니면 상대할 수도 없으리라.

만약 둘 중 하나가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정작 본 게임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어버린다.

특히 마치가 죽으면  게임에 마치 헤어와 모자 장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칙 탓에 자동으로 실격당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콜린은 주위 사람들에게 괜히 위험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
"…마치 누나?"

하지만 마치의 의견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녀는 콜린의 눈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명백한 각오가 깃들어 있었다.

"할게요."
"위험해요."
"그래도 해야 해요."

마치는 주먹을 꽉 쥐고서 말을 이었다.

"너무 중요한 카드잖아요. 이건 꼭 받아와야 해요."
"마치 누나. 너무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책임감 때문이 아니에요. 단지  일에 여러분을 휘말리게 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물론 전혀 그런 걸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하며 마치는 쓴웃음과 함께 덧붙였다.

"어차피 '누가' 카드를 얻지 못한다면 분명 본 게임에서 백토와 싸워야 할 거예요. 그것도 모자 장수와 함께 말이죠."

그녀의 말은 그 카드를 받아오지 않는다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모자 장수가 마음대로 게임 참가자를 결정할  있으므로, 심한 경우에는 마치 헤어를 상대로 다섯이서 몰아세우는 형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콜린. 당신도 '누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뇨. 꼭 필요하진 않아요."
"거짓말. 콜린은 분명히 탐이 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는걸요."

마치의 지적에 콜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진실을 꿰뚫고 있었다.

"…네, 맞아요. 그렇지만 여러분  누구도 죽게 두고 싶지는 않아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콜린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죽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아는 사람들을 밀어넣으란 말인가.

"솔직히 말할게요.  카드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콜린. 저는 그런 게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 '누가'를 받아온다고 가정하면 본 게임의 승률은 어떻게 되죠?"
"…아마도 7할 이상."
"그럼 당연히 해야죠."

그리고 평소와 같은 다정한 미소를 지어오는 것이었다.

"하아. 그래요. 마치 누나가 그렇게 나오면 어쩔 수 없네요. 싫다고 해도 갈 거죠?"

결국 콜린은 한 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절대 죽게 두지 않을 거예요. 공정한 결투를 기대하고 있다면 꿈 깨세요."
"후후, 그야 물론이죠."

'──사랑스러운, 나의 간사한 왕자님.'

그 말은 목구멍 아래로 파묻은  마치 헤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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