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81 숨은 그림 찾기(1)
정말로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겠으나, 세상에는 돌파구가 없는 문제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리적이든 논리적이든, 이론상이든 실질적이든 간에.
적어도 루살카는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얼굴이 많이 붉네요."
그녀의 이마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는다.
불그스름한 머리칼의 소년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자면 아주 로맨틱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루살카는 거기에 전혀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했다.
심장이 미칠듯이 요동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오로지 두려움과 긴장 탓이었다.
요점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알몸이었다.
머리가 잠깐 훼까닥 돌아버린 것인지 육욕을 참지 못한 루살카가 헐벗은 채 자위를 하던 와중 방에 콜린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그나마 노크는 해주었기 때문에 다급히 이불로 몸을 가리기는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직 잘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콜린이 몸이 안좋냐고 질문했던 것이다.
여기서 루살카는 한 가지 계책을 짜내었다.
콜린이 의사를 부르러 가면 그 사이 잽싸게 옷을 입는다는 작전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콜린이 통신기를 사용해 원격으로 의사를 호출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식은땀이 엄청난 것 같은데… 닦아드릴까요?"
"아, 아뇨! 괜찮습니닷!"
남자가 신체를 닦아준다. 루살카로서는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는 이불을 걷어내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의유예을 얻어냈을 뿐이다.
콜린이 부른 의사는 언젠가 도착하게 될 것이고, 적어도 이렇게 아슬아슬한 버티기를 유지할 수는 없으리라.
그저 최악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미뤄보려 발버둥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프신 분이 있다고 해서 왔답니다."
"시, 실례합니다아……."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끝이 나게 되었다.
어느새 두 명의 여성이 방으로 들어온 탓이다.
체구는 일반인에 비하면 훨씬 작았지만 그 비율 탓에 땅딸막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율을 유지한 채 키를 늘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빼어난 몸매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체구에도 불구하고 성숙함이 느껴지던 것은 이 때문이었으리라.
또한 그녀들의 특징은 이상하리만치 서로 닮아있었다는 점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약간의 성격이 드러나는 표정과 목에 걸린 초커의 문양, 그리고 비교적 당당해보이던 쪽이 분홍색의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던 정도다.
"아이쉬마 다이바. 의사입니다."
"보조 레브요슨이에요……."
"그, 그렇군요…?"
당연하게도 진짜 의사는 아니었고 백설의 난쟁이들이었다.
애초에 루살카가 정말로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콜린이었으므로 괜히 의사를 헛걸음하게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자고로 119는 가장 장난 전화를 하면 안 되는 번호인 법이었다.
…장난 전화에 비해 의료인 사칭이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은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정말로 진단을 해줄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자, 그러면 우선 진찰부터 해볼까요."
"아니, 그, 저기!"
이내 아이쉬마는 침대로 다가가 손을 뻗는다.
그녀의 접근에 루살카는 기겁하며 이불을 꼬옥 쥐었다.
"얼굴만 보고 진단을 내릴 수는 없는데요?"
"그… 그게 말이죠…?"
루살카는 전력을 다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당황이 잔뜩 흘러나오는 표정이었다.
아이쉬마는 슬쩍 미소를지은 채 그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문제가 있어서요!"
인생 최대의 두뇌 혹사를 실현한 후, 루살카는 겨우 이 상황을 타파할 계책을 떠올렸는지 눈을 부릅떴다.
"실은 열이 많이 심해서요… 그, 너무 더워서 무심코 옷을 벗어버린 상태거든요……."
"저런, 그랬군요?"
"네, 그래서 조금 이해를 해주셨으면……."
루살카의 얼굴에 순식간에 안도의 빛이감돌았다.
그녀의 사고는 지금 알몸이라도 괜찮을 당위성을 도출해내고 말았던 것이다.
루살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은 꽤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진찰은 해보도록 해요."
아이쉬마는 친절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여기까지 거부할 생각은 루살카에겐 없었다.
이미 자신의 평판이 깎이지 않는 방법으로 옷을 입고 있지 않음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 시점에서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그러면 적어도 콜린 님은 밖으로……."
"어… 그건 말이죠."
그래도 일단 남자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는 건 조금거부감이 있었기에 루살카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쉬마가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당연하게도 이런우스꽝스러운 연극까지 하고 있는 이유는 루살카를 골탕먹이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그래도 남의 집에서 아주 각잡고 자위해대는 꼴은 괘씸하지 않은가.
난쟁이를 부를 때도 진상을 미리 알려주었던 콜린이었다.
그녀들에게는권능을 통하여 말 없이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요컨대 오로지 루살카 한 사람만이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방금 그녀가 했던 부탁은 조금 곤란했다.
이른바 일종의 연극인 셈이었는데, 정작 그 관객인 콜린을 바깥으로 내보내달라는 이야기였으니.
"…실은, 최근 위험한 열병이 유행하고 있거든요. 감염에 대비해서라도 진단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결국 뒤이은 말에 루살카는 그녀의 의견을 굽힐 수밖에없었다.
전염병 문제라고 하는데 자신이 뭐 어떻게 반박해야 한단 말인가?
'뭔가 간극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분 탓이겠지?'
잠깐 그런 의문을 품긴 했으나 이내 그런 잡생각은 떨쳐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의 의심은 사실이었다.
아이쉬마는 일찍이 백설의 난쟁이였던 존재로, 지금은 콜린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그가 바라는 걸 이루도록 협조하고는 싶었으나, 남자를 밖에 내보내달라는 루살카의 의견을 부정할 만한 말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의 발언은 콜린이 전해준 아이디어를 그대로 읊었을 뿐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모로 가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법이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한 아이쉬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무튼 이제 앉아주세요."
"…네."
루살카는 주춤주춤 하면서도 결국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조심스레 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서 앉았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피부가 드러나지 않도록 몸에 이불을 휘감는다.
"진찰을 해야 하니 이불은 조금 치워주시면 고맙겠네요."
"꼬, 꼭 그래야 하나요…?"
여전히 주저함이 남아있는 루살카의 반응에 아이쉬마는 미간을 찌푸렸다.
"레브!"
"미, 미안해요…!"
"흐이익?!"
그리고 이내 곁에 있던 난쟁이의 이름을 외치는 그녀였다.
이름이 불린 난쟁이─레브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루살카가 붙잡고 있던 이불을 확 잡아당겨버렸다.
유일하게 방패가 되어주던 이불을 레브에게 빼앗기고 나자, 루살카의 뽀얀 피부가 완전히 드러나버린다.
루살카는 순식간에 몸이 굳어버렸다.
역시 이쪽 세계의 여자라 그런지 콜린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꺄악 소리치며 몸을 가리려는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귀가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확실히알아차릴 수 있었다.
"필요한 조치니 양해 부탁드려요."
아이쉬마는 이제야 조금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서, 선생님…?"
"가만히 있으세요. 정밀함이 중요하니까요."
그리고는 양손을 뻗어 나름 볼륨감이 있는 루살카의 가슴을 살짝 거머쥐었다.
"응어리가 졌는지 확인을 해봐야 하거든요──."
"으읏……."
이어서 상냥하게 가슴을 주무르며 아이쉬마는 시선을 근처에 있던 콜린에게로 돌렸다.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아요.]
[후후… 레브, 들었죠?]
어디까지 해도 괜찮을지 확인하려던 것이다.
분명 루살카의 육체는 탐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이쉬마에게도 자제심이라는 게 있었다.
아무리 맛나 보인다 해도 사냥개가 주인이 먹으려고 준비한 고깃덩이까지 삼켜버리면 어쩌겠는가.
그래서 콜린의 의사를 넌지시 물었던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는 지금 당장은 잠시 물러나서 아이쉬마가 루살카를 어떻게 다루는지 구경하려는 것 같았다.
"하으읏…?!"
허가가 떨어졌다면 더 이상 참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이쉬마는 손의 움직임을 바꾸어 루살카의 유륜을 살살 간질이기 시작했다.
명백히 성적인 것으로 변화한 자극에 그녀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저, 그… 너무날뛰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대체 어느 틈에 침대로 올라온 것인지 뒤에서 그녀를 껴안듯 붙잡은 레브에 의해 제지당하고 만다.
날개 때문에 백허그를 하기에는 조금 불편할 법도 했으나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잠깐… 으엣…!"
"호흡기도, 검사할 필요가 있어요……."
"아으에에……."
이어서 레브는 루살카의 말랑말랑한 입술을 몇 번 건드는가 싶더니 입 안쪽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구강 특유의 체온에 덥혀진 질척질척한 침을 검지와 중지로 이리저리 휘저으며 안쪽을 더듬는 그녀였다.
"흐에엣……."
레브는 루살카의 입을 잠시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을 V자로 만들더니 혀를 붙잡아 바깥으로 쭈욱 잡아당겼다.
투명한 군침이 한 줄기 늘어지다가 루살카의 쇄골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이쉬마는 씨익 웃더니가슴 한쪽에 달라붙어 유두를 핥아대기 시작했다.
"흐읏… 으에에… 헤에에……."
혀를 강제로 내밀어진 채 희롱당하는 통에 루살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마구 요동쳤다.
[레브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모르셨나요? 기가 많이 약해서 그렇지 저희 중에서도 특출나게 야한 아이거든요.]
[아, 으, 그… 저는, 아니… 아니에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콜린을 향해 아이쉬마는 염화를 보냈다.
콜린 쪽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으나 전해지는 감정으로 그녀의 웃음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떠올려보면 난쟁이들의 아직 백설의 권속으로 있을 때 그를 범했던 난쟁이들 중에도 레브가 있었다.
"으아앗…♥"
[그나저나 의외로 저항이 약하네요. 나름 본인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뭐… 아마도여자 쪽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같으니까요.]
이어진 아이쉬마의 의문에 콜린은 적당히 답해주었다.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선 마치에 대한 반응을 보면 여성도 어느 정도 허용 범위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기원도 이쪽 계열을 떠올리게 했다.
루살카라는 것은 동유럽, 슬라브 신화의 정령 이름이다.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음에 이끌며, 그 성격은 지역에 따라 스킬라(Σκύλλα)와 같이 나타나기도 세이렌(Σειρήν)과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녀는 사랑을 위하여 바바 야가(Баба-Яга), 즉 마귀 할멈에게 목소리를 대가로 소원을 빌었으나,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비극을 맞게 되어버린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녀는 어떠한 '루살카'인가?
앞서 말했든 루살카라는 존재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콜린은 그녀가 아예 신화적 존재와 조금 차이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루살카가 말하길, 그녀는 바다마녀의 심복이었다.
다만 바바 야가는기본적으로 숲과 대지, 그리고 하늘에 기반을 둔다.
즉, 바다마녀는 바바 야가와 별개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루살카는 신화와 거리가 있는 존재라고 보는 게 옳다.
슬라브의 루살카를 기원으로 두고, 바다마녀라는 이름과 엮여있는 존재.
사람과 같은 다리를 가졌고 등에는 하얀 날개가 돋아 있었으나, 그 본질은 분명 '인어공주'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천사와도 같은 외견을 갖고 있었기에 오히려 인어공주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보통 인어공주 이야기는왕자를 위해 희생하는 그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원작에서는 약간의 후일담이 더 남아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야기의 끝에서 인어공주는 승천하여 불멸의 존재가 된다.
이는 인어공주의 주제가 사랑하는 자를 위한 희생, 그리고 이를 통한 정신적 성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어공주는 작가 본인의 투영이며, 동시에 동성애의 표상이다.
콜린이 루살카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으리라 생각해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흐엣…♥"
정말로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아무튼 루살카는 즐거워보였다.
'…그보다 어쩐지 내 주변에 이쪽 성향인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나?'
그러다 문득 주위에 있는 사람의 면면을 떠올리고서 콜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지, 아니면 주위에 있으면 그런 성향이 생겨버리는 건지가 의문이었다.
"저, 저기… 환자 분…?"
"으에…?"
그렇게 한참 그렇게 애무가 이어지다가 레브는 그녀의 혀를 놓아주고서 속삭였다.
"이제… 그, 다른 곳도 진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곤 가볍게 손짓하여 콜린을 이쪽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쯤이면 되려나 싶어서 멈추면 아직 부족하다는 듯 더욱 끌어들였다.
"그게, 열병은 원래 목을 잘 살펴봐야 하거든요……."
이내 그녀의 팔이 닿을 거리가 되자 레브는 손을 뻗어 콜린의 바지를 붙잡았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바지를 내렸다.
콜린의 페니스가 드러나자 안쪽에 쌓여있던 남성의 냄새가 풍겼다.
"도구를 써서 목구멍도 검사할 건데… 협조 해주실래요?"
"……."
레브는 귀가 녹아내릴 것처럼 끈적한 목소리로 루살카에게 소근거렸다.
기대인지 긴장인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 역병 대책이라고 하셨으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눈앞에서 점점 부풀기 시작하는 자지를 바라보며 루살카는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최대한 평정심을 가장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답했다.
하지만 그 시선에는 명백한 열락이 깃들어 있었다.
루살카는 다시금 입을 벌리고서는 혀를 내미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