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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7화 (37/139)



〈 3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7화

빠른정비를 위해서 빠른 복귀가 필요했다.
경험치는 충분했기에 길잡이 스킬 레벨을 올렸다. 가본 적 있는 곳을 가거나 연관된 곳을 가는 능력은 그대로지만, 계단 하나로 두 층을 뛰어넘을  있게 되었다.
지금처럼 빠르게 복귀해야  때, 정비가 급하거나 시간이 중요한 순간에는 경험치 값을 하는 스킬이었다.

미궁 지하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지하 9층에서 지하 7층으로 뛰어넘고, 지하 7층에서 지하 5층으로 뛰어넘었다.

*

우리의 거점이 된 '굳은 땅의 은둔자'의 거처로 돌아왔다.
계단을 통해 들어가자마자 에드샤가 일행의 입장을 감지하고 다가왔다.

“경계에 전념해줘.”

에리를 웃으면서 맞이하는 에드샤에게 부탁했다.지시와 다름없지만, 에드샤는 에리의 목숨과 연관되면 당연한  수행했다.

“에드샤, 이제 토벌을 예상하고 대응한다. 특히, 우리가 없을 때는 그냥 빠져서 우리를 기다려.”

에리가 나의 뜻에 따라 에드샤의 손을 잡았다. 에리는 평상시에 에드샤를 향해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지시한다면 표정을 만들 수 있다. 에드샤를 느끼지 않기에 표현할 감정이 없을 뿐,감정표현 자체에 장애가 있지 않았다.

나의 의도에 따라 에드샤의 호감을 이용했다.
본심이 아니라고 해서 꺼릴 일이 아니었다. 에드샤를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에드샤를 살리는 일이었다.

에드샤는 거점 방어 본능이 있었다. 교단에서 토벌 가능 규모로 침범해오면 일단 싸웠다가 상처 입으면 뒤로 빠질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한 교단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교단은 치고빠지는 에드샤를 잡을 수단을 가지고 올 것이다.
에드샤는 싸우지 말라는 부탁은 듣지 않겠지만, 숨어서 일행을 기다렸다가 같이 싸우자는 말은 에드샤의 거점 방어 본능을 우회할  있다.

*

나는 묵묵히 따라온 두 명을 보았다.
페로는 원래부터 입고 있던 로브를 머리끝까지 올려 전신을 가렸다. 얼굴 피부가 안 보일 정도로 가렸기에 시야가 걱정될 정도였으나, 원래부터 기감이 뛰어난 자라 그런지 잘 따라왔다.

“혹시 다른 무기 필요한가? 물론 들고 있는 무기를 내놓으라는 뜻이 아니야.”
“나···. 나는 갑옷이 필요해.”
“나는 이거 계속 쓸 수 있다.”

수희는 허탈한 목소리로, 페로는 비쩍 마른 늙은이의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변했다. 원래의 젊은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변해버린 성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키도 줄어들고, 둥글게 보이던 어깨 근육도 줄어들어 로브 밖으로 어깨의 각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전투는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래도, 이동이나 전투 중에 다른 이에게 짐이 되지 않는 위치 선정은 깔끔했다.

신의 ‘짜증’에 당한 현상을 분석하고 싶지만,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별한 로브도아닌 평범한 로브로는 전투 중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때는 알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우선 바리스에게 눈짓으로 수희를 가리켰다.
수희가 비키니 갑옷으로 중갑에 맞먹는 방어력을 내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다. 온전히 어버스나이트 신성의 힘이었다.
이제 순수를 잃은 수희는 갑옷이 필요했다. 예비품은 충분했다. 이전에 지하 5층으로 쳐들어왔던 전사들의 갑옷과 탐험해 얻은 보상 등으로 몸에 맞는 갑옷은 충분했다.

옷을 갈아입는 수희에게 눈을 돌리고 페로를 보았다.

“능력이 얼마나 남았지?”
“냉정하군.”
“약속이 깨어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품은 미안함보다 너의 남은 능력이 너를 구할 거야.”
“크크.”

페로가 웃음을 흘리며 로브를 벗었다.
20대가 아닐까 의심하게 하던 젊은 모습은 사라지고 피골이 상접한 늙은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바리스가 한순간에 늙어버린 페로에 동정을, 헤스티가 안타까움을 보냈지만, 나는 냉정히 눈빛을 마주했다.

“카이바리 신성은 내게 탈출 권능을 주었었지. 이번 실패에 짜증 내면서 권능 일부를 비트셨어.
탈출할 수 있지만, 탈출 못 하게 되었어.”

페로가 자조하며 설명했다.

이때까지 가본 미궁층 내에서는, 완전하게 탈출할 수 있던 특성이 약화되었다.
원래 능력은 카이바리의 권능으로 맵 내의 올라가는 계단을 찾고, 그 계단으로 순간이동했다.

하지만, 이제 자동으로 계단을 찾는 능력은 사라지고 임의의 생존 가능한 장소로 순간 이동하는 능력만 남았다.
성물을 검색하는 능력도 약해져 같은 미궁층만 검색이 가능해졌다.
중력 마법과 다른 마법은 온전히 그의 능력이라 손상이 없다고 밝혔다.

“카이바리 신성을 발휘하는 순간 나는 앉은뱅이가 될 거야.”

탈출할  있지만, 탈출할  없는 이유였다. 권능을 쓰는 순간 걸을  없는 몸이 될 것이다.
홀로 배신을 꿈꾸었던 페로는 홀로 생존할 수 없는 자가 되었다.
그를 지탱하고 그가 미래를 꿈꿀 수 있던 것은 자신을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의 버팀목이 사라졌다.

“흠.”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아. 애초에 페로는 기본기를 자신의 힘으로 이룬 자야.’

위력은 떨어지고, 체력도 급감해서 전투 가능 시간도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전력으로 쓸 수 있다.
다른 파티라면 짐이 될지 몰랐다. 하지만,나는 파티원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이골이 났다.
반골을 가진 강자보다 약해빠진 약자가 내게  유용했다.

*

너머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바리스와 수희가 넓게 공간을 잡고 서로 마주 보았다.

수희가 수희로 보이지 않았다. 큰 특징이었던 반나체의 무릎까지 오던 긴 머리를 숨겼다.
머리를 묶어목 뒤로 넘겨 아예 상의 안으로 넣고, 피부를 드러내지 않는 가죽옷은 수희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7층 보상으로 얻었던 가죽 투구에달린 안면 가리개까지 아예 내려 얼굴을 가리니, 이전의수희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부탁해.”

수희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울렸다.
바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희가 움직였다.
빠르게 검을 당겼다가 검 끝으로 작은 원을 만들고 그 힘을 이끌어 바리스를 향한 선을 만들어냈다.

쨍- 하는 소리가 울렸다.
너무도 쉽게 바리스는 수희의 일격을 막았다. 반사적으로 막으면서 탄력을 넣었고, 수희는 반발력에 팅겨나가는 검의 힘에 자세가 흐트러져 연속 공격이 끊어졌다.

바리스의 얼굴에안쓰러움이 묻었다가 사라졌다. 원래의 수희였다면 바리스가 첫 공격을 막아내더라도 공격을 이어내 공세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다시 부탁해.”

수희가 굴곡이 없는 음성으로 무표정하게 말했다.
바리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움직임을 크게 해 바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수희의 무력을 생각하면 비참한 모습이지만, 제대로 훈련하고 있다.
원래 수준에서 부리던 기교를 빠르게 포기했다. 작은 원으로  힘을 부리는 운용은 지금 수희의 상태에 맞지 않았다. 단계를 내려  원으로 흐름을 유지하는 감각부터 익히는 것이 맞았다.

한참 동안 바리스와 수희는 격돌했다.

*

나는 수희가 거칠어졌던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을 때 다가갔다.

“암호를 남기려는데 같이 가지.”
“….”

일행을 두고 단둘이 나섰다. 중앙지역을 벗어나 외곽지역까지 나왔다.

“뭐라고 남겨요?”

 이상 수희는 무례하게 말하지 않았다.

“의심. 비밀. 은밀히 추적 중.”

 교단에는 그들만의 암호가 있다. 미궁층 너머는 물론 같은 층을 통신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미궁에서 암호는 널리 쓰였다.
나 역시 예전 회귀 때 수희에게 배워 알고 있지만, 사제급이 남길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수희가 평범해 보이는 바위에 흔적처럼 보이는 암호를 남겼다. 암호는 미약하게나마 어버스나이트에게 혼선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수희와 함께 더 걸어 네 곳에 작업했다.

마지막작업이 끝났을 때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다른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수희에게 다가갔다.

손을 천천히 뻗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수희가 움찔거렸다. 그녀에게 고통뿐이었던 섹스를 거부할지 말지 고민하는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가죽 투구를 벗겼다.
눌렸던 머리카락이 어색했다. 조용히 수희의 몸을 당겨 가만히 끌어안았다.
수희 머리를 내 가슴으로 당기고 천천히  위로 수희의 등을 쓰다듬었다.

옷 속으로 손을 밀어 넣지 않았다. 한참을, 서로의 체온이 같아질 때까지 안았다가 느릿하게 입을 맞추고 혀로 이빨을 건드려 열고 은근하게 엉겼다.

굳이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을 성관계를 강요할 필요 없었다.
부드럽게 안아서, 나와의 포옹과 얕은 접촉, 키스가 폭력이 아니라, 수긍이라는 소극적인 동의로 이루어졌다고 착각하게 만들어내면 충분했다.

*

 걸음 떨어진 후, 레리아나의 검을 다시 들었다. 수희는 나의 성적 접촉이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수희의 표정에서 어둠이 살짝 얇아졌다.
그녀는 가죽옷 상의를 살짝 풀어, 내가 흐트러트린 머리카락을 정리해  뒤쪽으로 밀어 넣었다.
수희의 머리카락은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이전에는 신성의 힘으로 전투에 방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몬스터가 머리카락을 잡고당기는 걱정을 해야 했다.
여자 모험가들은 기르더라도 부담 없이 모자나 투구 안에 말아 넣을  있을 정도나 묶었을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로만길렀다.

일행은 수희에게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엄연히 약점이었지만, 수희에게 머리카락은 이전으로 돌아갈  있다는 미련으로 비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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