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8화
수희가 옷차림을 단정히 했다. 내가 조금 떨어진 바위에 손을 대고 집중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궁 지하 9층에서 돌아오면서 종종 보여줬던 모습이기에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새로운 반격의 핵심이지.’
이전 방식은 이제 어려워졌다.
어버스나이트와의 관계는 수동적이다 못해 수희의 배신을 야기시킬 정도였다.
카이바린 교단은 페로를 이용해 잘라먹는 게 가능해질 뻔했지만, 페로의 능력이 축소되어 이전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같은 층에서는 카이바린 사제가 들고 있는 성물을 추적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길 수 있는 수준의 카이바린 사제와 같은 층으로 돌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두 번의 미궁 이해 스킬업과 새롭게 생긴 두 개 컨트롤러 스킬.’
[종속량 증가]와 [층간 감각 연동].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패시브 스킬이지만, 이때까지의 스킬과 맥이 달랐다.
미궁 이해 스킬업 조건부터 ‘사제의 신성을 잃게 만들기’와 ‘봉인된 마물에 공명하기’, 평범하지 않았다.
[종속량 증가]는 흔한 이름이었지만 성능은 탁월했다.
주력 관리가 십여 개, 단순 탐지 보조용은 사십여 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이는 한 맵에서 쓴다면 그 맵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수치였다.
[강림당한 마물] 층에서 봉인 당한 존재와 공명한 덕분에 얻게 된 [층간 감각 연동]은 어떤 면에서 한계를 깨고 격을 올렸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다른 미궁층에 종속시켜놓은 바위와 벽돌, 함정 등으로 접근하는 존재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페로의 약화로 불가능하게 된 전략을 다시 시도할 수 있음을 뜻했다.
아니, 내가 선택하고 주도할 수 있다는 면에서 상위로 봐야 했다.
이전에 페로는 카이바린 교단에 대한 상세 정보를 머릿속에 숨기고 그가 선택한 목표물만 내놨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정보 대부분을 순순히 내놓았다. 몇 가지 정보를 숨기는 것을 눈치챘지만 상관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전투와 연관된 것은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으니 상세히 늘어놓았다.
페로가 파악하고 있던 사제들의 미궁 발자취가 내게 그대로 넘어왔다.
그 미궁층을 찾아 들어가 요지에 있는 바위나 벽돌을 [종속]해 인지하고 빠져나오면, 적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싸워볼 만하다 싶으면 일행을 데리고 그 층으로 가, 층 내에서는 작동하는 페로의 신물 탐색으로 위치를 특정하고 덮치면 되었다.
*
거점이 된 미궁 지하 5층의 밤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페로가 일행에 합류했지만, 삶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도 자신을 숨기려고 했기에, 일행이 머무는 곳과 꽤 떨어진 곳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많은 시간을 명상으로 보냈다.
변화는 수희 때문에 생겼다.
미궁 9층의 배신이 있기 전에는 자고 가더라도 근처 건물에서 혼자 머물렀는데, 배신 후, 도착 첫날 나는 수희를 이끌어 나의 잠자리에서 함께 잤다.
별다르게 건드리지 않았다. 첫날은 그냥 몸을 가까이 한 채 팔과 팔을 붙인 채로 잤고, 조금씩 껴안거나 팔을 가슴에 올리는 수준을 유지했다.
첫날밤에는 내가 그녀를 괴롭힐까 봐 경계한다고 밤새 잠 못 이루더니, 며칠 지나자 옷 위로 올린 나의 팔 정도는 눈만 살짝 떴다가 감는 정도까지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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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내 손 아니야~. 준영씨 손이야.”
오른쪽 귓가에서 헤스티가 장난치듯 조그맣게 속삭였다. 가벼운 속옷만 걸친 채로 자리에 누워,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몸으로 덮듯 기대왔다.
오른쪽 팔에서 헤스티의 가슴의 부드럽고 촉촉한 압박감이 따뜻하게 밀려들었다.
오른손등에 느껴지는 헤스티 아랫배의 온기를 즐기면서, 왼쪽에 붙은 바리스의 손을 왼손으로 깍지 줘 안심하라는 신호와 거부하지 말라는 신호를 동시에 보냈다.
수희를 데리고 온 다음 날부터 바리스와 헤스티와 함께 잤다. 그렇다고 해도 둘의 비중을 줄이지 않았다.
수희와 하룻밤, 바리스와 헤스티와 하룻밤, 에리와 에드샤와 하룻밤, 다시 바리스와 헤스티와 하룻밤.
헤스티는 바리스와 나, 세 명이 함께 자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3일에 한 번 나와 자다가, 비록 바리스와 함께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나와 함께 자니 나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듯했다.
이런 헤스티의 감정은 행동에서도 드러났다.
나를 사이에 두고 나 너머의 바리스에게 장난을 걸었다. 바리스도 나를 향해 모로 누운 채였다.
헤스티는 나를 넘어 바리스의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손을 올리고 캐미솔 형태의 여성 내의 상의와 팬티 사이, 드러난 살에 손을 올리고 간지럽히듯 쓰다듬었다.
“헤스티, 간지러워.”
바리스의 왼손은 나의 왼손과 깍지를 끼고 있었다.
내가 엄한 척하는 것처럼 손을 꾹 붙잡으니, 바리스는 옆구리 여성 내의가 올라가 드러난 맨살에 헤스티가 닿아도 그저 꿈틀만거렸다.
감미롭게 속으로 파고드는 헤스티의 손을 밀어내지 못했다.
“아닌데, 내 손은 준영씨를 애무하는 중이야.”
헤스티는 장난을 이어갔다. 조금씩 장난으로 풀어내며 성감을 쌓아갔다.
나는 둘에게 성감을 재촉하지 않았다. 성감보다 둘의 체온을 공유하는 것을 우선했다.
수희의 완전 합류는 위기였다.
또 한 명의 여성 추가는 위기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가 단결되듯이,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대항점을 만들어 동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헤스티는 영리했다. 항상 나를 관찰하고 파악하려고 했다.
내가 바리스와 헤스티, 둘과 함께 자기 시작한 날부터, 헤스티는 내가 품은 생각을 알아내고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장난치듯 분위기를 이끌었다.
둘은 함께 나와 자고, 함께 나와 성감을 나눴다.
그리고 예감했다. 둘은 나의 남성을 몸 안에 품게 될 것을, 그날을 바리스와 헤스티 둘이 함께할 것임을 예감했다.
장난스러운 손길은 그날을 기다리는 기대와 준비였다.
* * *
* * *
미궁 지하 5층에서 지하 8층 사이를 돌아다녔다.
이전에 카이바린 신도들에게 빼앗은 장비가 도움이 되었다. 장비를 들고 길잡이 스킬을 쓰고 계단을 오가면 높은 확률로 카이바린 사제가 왔다 간 층이 걸렸다.
교단 사제의 정보가 없을 때는 습격 난이도를 추정할 수 없지만, 페로에게 카이바린 교단 사제의 정보를 얻은 만큼, 승산이 높은 습격이 가능해졌다.
“페로 탐지를.”
나의 지시에 페로가 느릿하게 끄덕였다.
모험 중에는 눈을 파티 안쪽보다 바깥쪽에 두는 만큼, 말로 내린 지시는 말로 응답해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늙어버린 목소리에 말을 하지 않으려는 페로를 굳이 압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와 바리스가기척에 반응할 수준을 넘었기에 낮은 페널티였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페로가 고개를 저었다.
“하아.”
헤스티를 선두로 일행은 편안한 숨을 내쉬었다.
페로가 신물을 탐지 못 했다고 해도, 여전히 카이바린 교단과 마주칠 가능성이 큰 층이었다.
하지만, 사제와 마주친다고 해도 신물을 가지지 못한 사제는 가진 사제보다 약했다.
“탐색을 시작한다. 맵 구조 파악에 우선해.”
나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행과 함께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내고, 나는 갈림길과 계단 등의 요지에 탐지 역할을 할 바위를 [종속]시켰다.
카이바린 사제 사냥을 위한 탐색과 거점에서 휴식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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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
헤스티는 운이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새로 구한 지팡이를 꽉 잡았다.
“가까워집니다.”
페로가 일행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항상 사제가 없는 층만 걸리진 않았다. 애초에 사제가 통행할 만한 미궁층을 노린 만큼 조우는 필연적이었다.
일행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날카로워지는 분위기에 페로 목소리의 걸걸거림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궁 지하 6층, 층에 맞는 적이라면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더 깊은 층으로 향하던 사제라면 일행이 질 수도 있다.
“긴장하지마. 전투가 버거우면 버거울수록 페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세 호흡 내에 그의 로브 등을 잡을 수 있도록 대비해. 그와 접촉하면 함께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내 말에 바리스, 헤스티, 에리는 다시 한번 페로와의 거리를 확인했다.
적과 조우했다.
“여긴 카이바린 교단의 영역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라.”
“훗.”
적의 외침에 헤스티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건방진 적의 태도는 헤스티 바리스와 함께했던 미궁 3층 코볼트 던전을 떠올리게 했다.
“뭐지 저 미친년은?”
“아, 미안미안.”
어느새 일행의 분위기가 여유로워졌다.
눈앞의 적이 일행 모두, 특히 나의 관찰을 속일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면,너무 뛰어나기에 일행이 못 알아본 것이 아니라면 딱 미궁 지하 6층 수준, 그 이상이 아니었다.
수희가 스윽하며 파고들었다.
방어구의 무게와 재질 때문에 생기는 힘의 저항은 전사가 반드시 파악해야 할 요소였다. 전사들이 장비를 완전히 갖춘 상태에서의 훈련을 중요시하는 이유였다.
수희는 새로 구한 가죽옷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실전을 거듭해야만 했다. 비록 약한 적이라도 실전은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바리스가 보조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감각이 뛰어난 바리스는 수희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도움이 되도록 전선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헤스티.”
“네.”
적 사제의 자세에 헤스티를 불렀다. 마법을 시전하려는 사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내린, 나의 지시에 헤스티가 움직였다.
[ 파이어···.]
[사이킥 쇼크]
파이어 계열 마법을 쓰려던 마법사 클래스의 사제 움직임이 헤스티에게 와해되었다.
헤스티가 느린 것이 아니었다. 이전의 페로가 너무 빨랐다.
이전의 페로는 아군의 도움 없이 자체 생존이 가능했기에 아군의 호흡을 고려 안 한 마법을 빠르게 광역으로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해진 페로는 돌출행동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바리스가 페로의 위험을 막아주겠지만, 페로는 아직 바리스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전투을 시작하자마자 마법을 쓸 수 없었다.
전투 후반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페로는 윈드 스피어를 날려 하나씩 숨을 끊었다. 반격의 위험이 없는, 반드시 죽일수 있는 상대에게 마법을 썼다.
전투가 끝나자 나는 바리스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바리스는 그저 수희와 전투를 복기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바리스보다 약한 자를 상대했지만, 6층 이상 수준의 카이바린 신도는 다 죄인이지.’
뒤치기할 대상으로 지하 5층을 제외했다.
지하 5층 수준까지는 그래도 카이바린의 ‘연속 사망’을 모르고 따르는 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하 6층 이상부터는 희생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미 카이바린을 죽이지 않으면, 일행이 죽는다는 명분이 있는 상황이었다. 명분이 있는 상황에서, 카이바린의 죄를 알면서도 벗어나지 않고 이득을 얻어먹는 자를 처단하는데 바리스가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