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19화 (1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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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선추코 감사합니다.

리얼돌 작곡하다

강전기가 평소에 취미로 하던 작곡 실력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후천적 서번트 증후군에 의해 개발된 음악적 재능과 생체 안드로이드의 두뇌 회전이 더해져 무시무시한 시뮬레이션 기능이 발휘되었다.

그는 겨우 한번 듣고서 이 곡의 문제점에 대해 파악했다.

‘EDM 계열이면서 너무 우울하게 코드를 잡은 게 문제야. 마이너 코드를 좀 줄여 메이저 코드를 섞고 하우스 풍으로 바꾸면서 후렴구에 높은음으로 변조(modulation)를 넣는 거로 바꾸면 그럴싸해지겠군.’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이 완성되었다. 그는 마스터 키보드를 앞에 가져다 놓고 비트와 멜로디를 새로 찍기 시작했다. 기존의 미디 파일을 거의 싹 털어내다시피 수정하면서 곡을 만들어나갔다. 강전기가 하도 무섭게 집중하고 있어서 섣불리 말도 걸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평소에 취미로 자주 하던 작곡이고 쓰던 로직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몰라도 20분도 안 돼서 새로운 곡이 뚝딱하고 튀어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겐 꽤 긴 시간이었지만 강전기의 빠른 손놀림을 보며 감탄하는 유하리였다.

‘이 오빠 뭐야? 완전히 몰입했네. 뭔가 멋진데?’

“자, 들어볼래? 아까 그 곡을 지금 느낌대로 다 수정했거든?”

강전기의 목소리에 유하리가 정신을 차렸다. 그가 미디 프로그램에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스피커로 음악이 들려왔다.

경쾌하지만 약간 우울한 감성이 묻어있는 에지 있는 미드 템포의 트로피컬 하우스 뮤직이 흘러나왔다. 후반부에 들어서자 변조에 의해 음이 높아지고 휘몰아치는 빠른 템포의 강렬한 퓨처 하우스 리듬이 폭풍우처럼 밀려들어 왔다.

“우와! 대박!”

유하리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엄청나게 강렬한 곡이었다. 아까 그 우중충한 곡이 이렇게 변하다니?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때? 들을 만해?”

강전기가 쑥스러운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들을 만하냐고요? 오빠, 지금 이거 실화예요? 이거 기존에 있던 곡 가져다가 저 놀리는 거 아니에요?”

“엥?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 만드는 거 봤잖아?”

“그… 그렇긴 하죠. 이런 곡을 제가 들어본 적이 없으니.”

“괜찮나 보네? 오케이, 그럼 이건 저장!”

“그거 저장해서 어쩌시려고요?”

“응? 어쩌긴, 더 이상 뭐가 있는데?”

“어휴, 답답해. 아니, 그런 곡 만들었으면 어디 기획사 같은 데 넣어보고 그러셔야죠. 그냥 취미라고 컴퓨터에 저장만 하시면 어떡해요?”

“사운드 클라우드에 저장했는데……?”

“어쨌거나요!”

“예전에 아이돌용 곡 만들어서 투고 몇 번 해봤는데 응답이 없더라고…….”

예전 찌질이 시절에 걸그룹용 노래를 보낸 적이 있는데 읽었는지 답장조차도 없었다. 그렇다고 손수 찾아가서 들려주는 것도 이상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움직일만한 의지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이런 퀼리티의 곡을 그냥 씹는다구요?”

유하리가 마치 자기 일처럼 펄펄 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거기도 이익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더라. 잘나가는 기획사들은 나름 곡들을 자체로 제작하는 곳도 많고… 거기 소속 작곡가들도 많고 외국 작곡가들과 커넥션도 있지. 그래서 나처럼 듣보잡이 투고하는 게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거기 빼고 다른 데 보내시지 그랬어요?”

“몇 군데 보내긴 했는데 다 연락이 안 오더라고…….”

“그래요? 어라? 진짜 이상하다.”

하리가 강전기의 이야기를 듣더니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진짜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기획사 돌면서 홍보해도 한 군데도 연락 안 오는 게 부지기수였다고 하더라고. 언젠가 신문에서 봤어. 그런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엄청 많나 봐.”

“요… 요즘엔 기획사 말고도 미튜브로도 유명해질 수 있어요. 홍보만 잘한다면 말이죠.”

“그래, 알았어. 생각해 볼게.”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강전기였다.

“아니면 제 미튜브에 배경 음악이라든지 그런 거로 쓰든지.”

“방금 만든 건 방송용 곡이 아니지. 내가 네 것은 따로 제작해 줄게. 안 그래도 어제 네 방송 보면서 그 생각 좀 하고 있었어.”

“꺄악! 오빠 너무 멋있다. 꼭 만들어주셔야 해요. 꼭 요!”

“누구 부탁인데 암, 만들어주고말고.”

강전기는 말하면서 뒤에서 하의 실종 상태로 그의 박스티를 입고 서있는 하리의 엉덩이를 살살 토닥였다.

‘오! 탱탱하네.’

“아잉…….”

그들은 그렇게 물고 빨더니 이내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강전기와 유하리는 아홉 시쯤 일어나 근처 커피숍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맛있는 토스트와 샐러드 그리고 커피였다.

유하리는 배부르게 먹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 방송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어젯밤에 만든 곡을 조용히 재생시켰다.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들어봤다.

“흐음… 레전드네.”

어제 탄생한 이 곡은 그가 만든 수백 곡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한 퀄리티의 곡이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쉽게 곡이 나오지? 몸이 바뀐 뒤부터 머리 회전이 엄청 빨라진 것 같다니까?”

사실 실제로 엄청나게 빨라진 게 맞았다. 그게 바로 생체형 안드로이드의 기본 기능이었으니까. 인간의 의식을 로딩할 수 있게 만든 또 다른 완벽한 인간형 육체였다. 번식까지 가능한…….

“미튜브라…….”

어젯밤 유하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은 콘텐츠만 있으면 미튜브로 얼마든지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라는 것 말이다. 그도 자주 이용하는지라 모르는 사실은 아니었다.

강전기는 미튜브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 채널을 검색했다. 그때 눈에 딱 들어오는 미튜버가 있었다.

[케이 라임]

팔로워 수가 무려 천만 명이 넘는 세계적인 음악 커버 미튜버였다. 그녀는 독특한 음색으로 외국곡들을 커버해 엄청난 조회 수를 달성하고 있었다. 댓글 대부분은 영어로 한국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유명한 아티스트였다.

그도 당연히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지만, 그녀의 노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는 검색엔진에 케이 라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케이 라임]

본명 : 길라임 (농담 아니고 실화임)

국적 : 대한민국

나이 : 현재 30세

신체 : 162cm

직업 : 미튜브 뮤직 크리에이터, 前 가수

소속 : Kstream 미디어

뛰어난 가창력으로 20세에 솔로로 데뷔하였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삭 망했다. 줄곧 가이드 보컬과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녀는 취미로 미튜브에 커버 곡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후 커버 곡 원곡자가 SNS에 관련 링크를 올려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브론즈, 실버, 골드 아이콘(현재 1천만 명 돌파)을 수상했다. (…중략…)

“흠… 케이 라임이라…….”

강전기가 헤드폰을 끼고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당당히 자신의 가창력을 전 세계에 드러낸 실력자. 그녀의 노래에는 일반 가수들과는 다른 내공이 느껴졌다. 정확한 음정, 호흡, 팝송인데도 불구하고 귀에 팍팍 꽂히는 딕션,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고음 발성 등 한 길만 보고 오로지 실력만 갈고닦은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도 케이 라임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항상 걸그룹 노래 위주로 들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몸이 바뀌고 예민해진 감각으로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니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친 가창력이네. 이러니 구독자가 천만 명이 넘는구나.”

문득 그녀의 모든 곡이 커버 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유명인이 되었을 텐데 자신의 곡을 왜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밍 앱을 찾아보니 데뷔 초에 불렀던 형편없는 퀄리티의 곡들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커버 앨범 말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곡을 불러도 되지 않나?’

자세한 내부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추측해 보자면 첫 번째로 좋은 곡을 구하기 어렵고 두 번째로 본인만의 곡을 구한다고 했을 때 기성 가수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성공할 수 있을지 사실상 미지수인 것이다.

사람들이 미튜브에서 진짜 잘한다고 평가해도 레드오션을 뛰어넘어 블랙오션, 복마전에 가까운 대중음악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추진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평가를 갉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곡만 좋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데?’

강전기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금 미디 프로그램을 열어 어제 작곡했던 곡을 그녀의 보컬에 맞게 좀 더 다듬었다. 그가 만든 곡이 우연히도 그녀의 목소리와 찰떡궁합이었다. 보통은 청아하지만 높은 음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스키함과 그녀 특유의 우울한 감성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는 그녀의 가창력을 믿고 좀 더 어려운 기교를 첨가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약 한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작곡에 미친 듯이 빠져들고 말았다.

“이 정도면 완성이네. 케이 라임 채널에 한 번 보내볼까? 기획사들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미튜버는 채널 관리를 하면서 들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말고.”

[안녕하세요. 저는 아마추어 작곡가 일렉케이라고 합니다. 케이 라임 님을 위해 곡을 만들어봤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고 관심 있으시면 아래 번호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전기가 간략하게 메일을 보내고 미튜브 창을 닫았다. 오늘은 딱히 스케줄이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창작 욕구가 팍팍 생기는데 예전 곡들이나 수정해 볼까나? 어제 좋은 곡도 뽑았고 말이지.”

그가 사운드 클라우드를 열어 기존에 작곡했던 곡들을 내려받았다. 여러 가지 곡들을 다운받았고 본인도 기억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에 하나씩 들어보기 시작했다.

‘기획사에서 듣지도 않고 무시한 게 아니라 들어보고 별로라고 생각해서 연락이 안 온 건가?’

기존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고쳐야 할 점들이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10여 곡 정도 노래를 들어보고 각각의 노래에 어울리는 걸그룹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의 작곡 스타일은 걸그룹 사진을 듀얼 모니터에 띄워놓고 각 그룹에 맞는 노래를 뽑는 오타쿠 같은 형태였는데 이번에는 그냥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선명하게 곡을 만들거나 수정할 수 있었다.

그가 떠올리는 것을 점점 현실화시키니 기존의 곡들의 완성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첫 번째로 떠올린 것은 현재 최애 그룹 키스마이걸의 여성스럽고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이미지였다.

‘절제된 애절함, 동양적이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곡에 녹여야 해.’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존보다는 이런 멜로디가 훨씬 효과적이로군.’

마스터 키보드로 새로운 멜로디를 마치 기계처럼 찍어내는 강전기였다.

두 번째는 현재 최고의 걸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는 JB Ent.의 마이하트였다. 그는 마이하트의 통통 튀는 발랄함과 생동감을 떠올렸다. 경쾌한 트로피컬 사운드에 일렉기타 사운드를 첨가해 각 멤버의 특징을 살린 곡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로는 동북아에서는 마이하트에게 밀리지만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KPOP 걸그룹 더블케이 엔터테인먼트의 네임드로즈의 곡이었다. 힙합을 베이스로 강렬한 랩 파트와 그루브 있는 댄스가 반복되는 에지 있는 곡이었다. 이른바 걸크러시의 표본과 같은 노래로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특징인 곡으로 탈바꿈되었다.

네 번째로는 소꿉친구가 있는 블루비(Bul-Ruby)의 곡이었다. 섹시 원톱 그룹답게 매혹적인 블루지한 느낌의 EDM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비트, 후렴구로 블루비 만의 어른스럽고 끈적한 느낌을 잘 표현한 곡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곡들이 차례대로 수정이 가해져 더 나은 퀄리티의 곡으로 재탄생되었다. 모든 곡이 당장 음반으로 제작해도 될 정도로 수준 높은 곡들이었다.

“어? 뭐야, 벌써 여섯 시야? 오랜만에 곡 좀 만졌더니 시간이 순삭이네. 어휴, 배고파. 밥 먹고 하리 방송이나 좀 봐야겠네.”

강전기는 일고여덟 시간을 스트레이트로 몰입하며 작업한 곡들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그에게 작곡이란 아직 순수하게 취미의 영역이었다.

‘케이 라임이 메시지를 봤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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