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곡천재 리얼돌 프로듀서-39화 (3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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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알고보니 모태솔로에 숙맥 건어물녀!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꾸벅

한여름을 프로듀스

강전기의 질문에 한여름의 얼굴이 뜨겁게 타올랐다. 원래 여자는 만난 남자를 최대한 줄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지만 모태 솔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녀가 아니라면 본인도 어느 정도 창피한 일이었다.

“…….”

“설마… 없으시군요.”

“아니요, 있는데요!”

“언제요?”

“학교 다닐 때…요…….”

‘아주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구만. 쯧…….’

“초등학교?”

끄덕끄덕.

‘와… 5년 차 가수가, 그것도 그룹에서 미모를 담당하는 멤버가 모태 솔로라니? 진짜 황당하네.’

“그래서 항상 그런 스타일로 노래를 불러오셨습니까?”

“지금까지 큰 문제도 없었고, 대표 오빠나 언니들도 저한테 크게 바라는 게 없다 보니…….”

“흠… 연애는 못 해보셨어도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 같은 건 보실 거 아닙니까?”

“그게요. 책은 취미에 안 맞아서 잘 안 보고, 영화는 마블 꺼 좋아해요. 액션 같은 거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게임을 좋아하죠. 총으로 막 두두두 죽이는 거…….”

한여름은 자기 취미 이야기가 나오니 이제야 표정이 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죽이는 거라.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막 죽이는……. 그렇군요. 난감하네요. 이 일을 어찌한다?”

강전기가 생각에 잠긴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지금 계속 녹음해 봐야 큰 변화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냥 대충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 곡에 애착이 많이 갔다. 오히려 타이틀곡보다 더 신경이 쓰였다.

‘내가 작사, 작곡을 다 해서 그런 건가? 이 노래는 이대로 끝낼 순 없어.’

결심을 굳힌 전기가 한여름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대충 녹음하는 것은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합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일단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죠.”

강전기와 풀이 죽은 한여름이 회의실에서 다시 녹음실로 들어왔다. 사정을 알려주고 다음 기회에 녹음을 다시 하기로 협의했다.

모두들 싸해진 분위기에 회식할 마음이 사라졌다. 소울퀸즈 멤버들은 각자 짐을 챙겨 매니저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자 엔지니어인 최민호가 이정수 대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 대표야, 나 이거 한 타임으로 해서 계산해 줘라. 녹음 절반은 했잖아.”

“야… 돈 좀 그만 밝혀. 알아서 챙겨줄 건데 진짜 분위기 파악 못 하네.”

“분위기고 나발이고 나 돈 빡세게 모아야 하는 거 몰라?”

“왜? 또 딸내미가 사고 쳤냐?”

“아니, 그건 아니고……. 걔 뒷바라지하려면 많이 모아야지.”

“하긴… 아직도 방구석에서 그러고 있냐?”

“하아…….”

최민호 엔지니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에 엎어졌다.

“전기야, 커플링 곡인데 이럴 필요가 있냐? 내가 보기엔 그냥 괜찮은 것 같던데…….”

“안 돼요. 이런 잔잔한 분위기의 힐링 곡에서는 감정선이 확실해야 돼요.”

“쩝… 우리 천재 작곡가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모르겠다. 뭐, 연습 좀 더 해보면 되겠지 뭐. 만약 안 되면 네가 묘안을 한번 내봐.”

“예! 형…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최민호와 이정수도 녹음실을 나가고 강전기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그 모습을 계속 찍고 있던 성기호가 전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기야, 너 진짜 프로듀서 같더라. 마! 카리스마 아이가!”

“조용히 해, 인마. 안 그래도 녹음 잘 안 돼서 짜증 나 죽겠구만.”

“내가 보기엔 괜찮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

“내가 조금 있다가 밥 먹으면서 말해줄게. 가자.”

전기와 기호는 리부트 엔터를 나와 한적한 갈비탕집으로 들어갔다.

“여름 씨가 메인인데 노래의 감정선을 못 살리네.”

“그래서 아까 옆방으로 불러서 혼꾸멍낸 거야?”

“혼내긴……. 그냥 왜 그렇게 헤매는지 물어봤는데 나 참… 황당해서 원…….”

“뭔데 그러냐. 궁금해 죽겠다.”

“모태 솔로라더라. 그래서 감정을 잘 모르겠다나?”

“푸핫…….”

성기호가 우물거리고 있던 밥알을 뿜고 말았다.

“야! 더럽잖아. 뭐 하는 거야…….”

“캑캑… 아이 씨,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그렇잖아. 근데 진짜냐? 빅뉴스네 이거, 흐흐흐…….”

“어, 진짜야. 너 어디 가서 이상한 소문 내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걱정 마. 나 입 무거워. 믿어도 돼.”

“진짜 난감하다. 타이틀곡은 잘 뽑아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던 커플링 곡에서 발목을 잡히네.”

“참나, 별것도 아닌 거로 고민하고 있네.”

“뭐 좋은 수라도 있냐? 막막해 죽겠구만.”

“내가 방법을 알려주면 내 부탁 하나 들어주냐?”

“수아는 안 된다니까!”

“그거 말고 소울퀸즈 컴백할 때까지 옆에서 내가 찍고 싶은 거 찍게 좀 해줘.”

“부탁이 그거야? 그건 가능. 도대체 네 방법이 뭔데? 헛소리할 거면 집어치우고.”

“조용! 답은 우결이다.”

“우결? 「우리 결혼했어요」 말이야?”

성기호가 자기의 계획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감정을 모르겠으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면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연기라도 시켜야 하냐고 묻자, 성기호가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고 그것은 전기의 마음에 쏙 들었다.

최근 소울퀸즈는 안무가에게 시안을 받아서 안무 연습에 들어갔다. 이제 댄스를 마스터하고 뮤직비디오만 찍으면 바로 컴백할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는 7천만 원을 들여 제작하기로 하고 음원을 보내 놓은 상황이라 곧 시안이 나올 예정이었다. 일주일이면 준비가 끝나서 뮤직비디오까지 찍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까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찍고 커플링 곡 뮤직비디오까지 찍자고?”

“네, 커플링 곡 뮤직비디오 여주인공 연기를 한여름 씨가 하는 겁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곡을 바로 녹음하는 거죠.”

리부트 엔터 이정수 대표 사무실에 전기와 기호가 같이 나란히 서서 계획을 보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정수 대표가 박수를 한 번 치더니 입맛을 다셨다.

“좋아. 다 좋은데 돈이 어디 있냐? 타이틀곡 뮤비 찍는 것도 깎고 깎아서 3년 전 단가로 해주는 건데…….”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제 친구가 자체 제작을 할 예정이라서요. 공짜로 할 겁니다. 얘가 영상 편집하는 건 거의 프로급이거든요. 맞지?”

강전기가 팔꿈치로 옆에 서있던 성기호를 툭툭 건드렸다.

“네, 제 전문입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그런데 괜히 허접한 거 찍어서 공개해 봐야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

이정수 대표가 떨떠름한 얼굴로 충고했다.

“대표님, 이번 일은 뮤직비디오를 찍어서 공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여름 씨에게 연애 감정을 심어주기 위한 일이죠. 찍어보고 퀄리티가 안 좋으면 절대 공개 안 할 겁니다. 맞지?”

“컥… 네네…….”

“정말이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어차피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찍고 나면 스케줄도 없는데…….”

“그런데 대표님, 한 가지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남녀 배우 한 명씩만 구해주십시오.”

“허참… 그냥 대충하지. 우리는 이십 대 초중반 배우가 없잖아. 일단 친구네 기획사에 좀 알아볼게. 뮤직비디오라고 하면 최저 시급을 줘도 출연하겠다는 사람도 있긴 할 거야. 물론 너희들이 대충 찍는 거 보고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하루 일당은 주려고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 참 열심히 한다.”

‘이런 게 다 경험이 되는 거죠.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드디어 커플링 곡 「이벤트는 필요 없어」의 뮤직비디오 촬영 날이었다. 촬영 감독(?) 성기호가 장소를 미리 공지했다. 그곳은 벤처 갑부와 연예인들이 많이 산다는 부자 동네 청담동의 한 카페였다.

“와… 여기 분위기 진짜 좋다. 어떻게 섭외했냐?”

강전기가 고급스러운 카페 내부 인테리어를 쭉 둘러보며 장비를 점검 중인 기호에게 물었다. 진짜 어디 영화에나 나올 듯한 멋진 곳이었다.

“우리 고모네 가게야. 겨우겨우 사정해서 영업 준비하기 전 아침 두 시간만 빌렸으니 빨리 찍어야 해. 찍은 컷은 최대한 슬로로 늘려서 편집할 거야.”

“어차피 영상 찍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우리 주연 배우 세 명은 언제 온대? 사무실 이 대리님이 말씀 안 해주셨냐?”

“아침 여덟 시부터 찍는다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장소까지 알려드렸는데?”

딸랑딸랑―

웬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청년은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는 기호와 전기를 보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김성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신인 아이돌 아니에요?”

“넵! 맞습니다. 굿피플엔터테인먼트의 J-TEAM이라는 그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성기호와 강전기가 입을 꾹 다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아… 반갑습니다. 뮤직비디오 감독 성기호라고 합니다. 연기는 어떻게 좀 해보셨나요?”

“실전은 처음인데 연기 레슨은 받아봤습니다. 실장님이 한 시간이면 된다고 그냥 가면 될 거라고 해서 매니저님하고 같이 왔습니다.”

“아, 네. 별로 어려울 건 없습니다. 그냥 몇 컷만 찍으면 되거든요. 여주인공 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넵, 알겠습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성준 씨, 그런데 소속사에서 여배우는 안 오는 건가요? 한 명 더 오기로 했는데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조금 늦는다고 하는 걸 얼핏 들었습니다.”

“그래요? 뭐, 먼저 찍다 보면 오시겠죠.”

성기호는 마치 사기꾼이라도 된 것처럼 자기를 뮤직비디오 감독이라고 소개했고, 신인 아이돌은 의욕에 가득 차서 군대 이등병처럼 우렁차게 대답했다. 키는 약 180cm 정도였고 팀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는지 외모가 꽤나 훌륭한 편이었다.

성기호가 강전기의 옆으로 가서 귓속말을 건넸다.

“야, 대표님이 제대로 말한 거 맞아? 웬 아이돌이야? 그냥 초보 배우나 구해달라고 한 건데…….”

“난들 아냐? 친구한테 부탁한다고 했는데 친구가 굿피플에 있나 보지. 왜, 부담되냐?”

“저기 봐봐. 로드 매니저 보이냐? 꼭 조폭같이 생겼다.”

“왜 사람 외모 가지고 그래.”

딸랑딸랑―

다시 문이 열리며 드디어 소울퀸즈의 한여름이 도착했다. 그녀는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어제 밤늦게까지 촬영하는 바람에 상당히 피곤한 상태인 것 같았다.

“여름 씨, 안녕하세요? 어제 뮤직비디오는 잘 찍었나요?”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피곤하긴 한데 엄청 재미있게 찍었어요. 진짜 기대하셔도 될 거예요.”

어차피 「쿨한 여자」는 신나는 곡이니 시크하고 도도한 표정만 주야장천 지었을 게 자명했다.

“잘됐네요. 오늘도 잘해서 얼른 디지털 싱글 녹음해야죠. 제가 말씀드렸죠? 본인이 꼭 가사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빙의해야 한다고요.”

“그게 잘될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한여름이 왠지 자신이 없는지 그저 땅바닥만 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 아이돌 J-TEAM의 김성준이라고 합니다. 오늘 뮤직비디오를 찍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여름을 본 아이돌 녀석이 긴장했는지, 또 이등병처럼 관등성명을 읊었다.

“네, 안녕하세요. 소울퀸즈 한여름입니다.”

“팬입니다, 선배님.”

“고마워요. 잘 부탁합니다.”

성기호가 다시 강전기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큰일 났다. 둘을 같이 앵글에 잡아보니 그림이 너무 안 나온다. 남자 배우가 너무 애처럼 나와.”

“어?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네? 그런데 뭐 우리가 대단한 거 찍냐? 그냥 가.”

강전기가 성기호의 말을 가볍게 씹었다. 기호는 하는 수 없이 배우들에게 촬영 장면에 대한 시놉시스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랬다.

카페 알바인 한여름이 짝사랑하는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청혼하다가 실연당하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멀리서 지켜보는 걸 그만두고, 용기를 내서 그에게 다가가 실연의 상처를 감싸 안아준다는 스토리였다.

카페를 빌린 시간 때문에 김성준과 한여름의 신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신은 카페 알바를 하고 있던 여주인공이 실연에 빠진 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장면입니다. 아이 콘택트를 나누고 가벼운 위로의 미소를 짓는 게 포인트입니다.”

“자! 레디, 액션!”

초저예산 뮤직비디오 촬영이 시작되었다. 출연하기 위해 온 김성준은 촬영 스태프가 감독 딱 한 명이고 너무 젊어 보여서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소울퀸즈의 한여름이 같이 출연하는지라 곧바로 의심을 지웠다.

“컷!”

“여름 씨, 걸음걸이가 너무 굳었어요.”

“컷!”

“여름 씨, 표정이 너무 없어요. 남자 배우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세요.”

“이렇게요?”

“아뇨, 이렇게…….”

한여름의 발연기에 점점 배가 산으로 가고 있었다. 김성준은 어느 정도 시늉이라도 내는 것 같은데 한여름은 도저히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이럴 때 상대 남자 배우가 리드를 잘해줘야 긴장이 풀리는데 남자 배우도 햇병아리인 게 문제였다. 서로의 감정선을 드러내야 하는데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전기의 말대로 진성 건어물녀가 아닌가 싶었다.

“컷컷컷!”

생짜 초보 배우 두 명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굳어갔다. 50분이 넘게 찍었으나 무슨 초등학교 방학 숙제 수준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건 도저히 못 쓰겠는데……?’

성기호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밖에 있던 조폭같이 생긴 매니저가 가게로 쓰윽 들어와서 말했다.

“죄송한데요. 올림픽대로가 살짝 막힌다고 하네요. 이제 슬슬 행사장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원래 한 시간만 찍으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이제 가도 되죠?”

로드 매니저도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어서 현장이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철판을 깔고 감독 흉내를 내던 성기호의 얼굴이 드디어 새파래졌다.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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