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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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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납니다!
우리마을 예체능
강전기는 스마트폰 알람을 듣고 일찍 일어났다. 가볍게 씻고 용품을 챙겨 차 트렁크에 넣고 강남으로 향했다.
“으… 졸려라. 어제 하리랑 세 번을 하고 늦게 잤더니 은근히 피곤하네.”
어제 그는 하리의 뒤를 뚫어주었다. 둘 다 처음이다 보니 약간 어설프긴 했는데 나름 새로운 경험이긴 했다.
‘거기서 13점을 챙길 줄이야. 최근에 얻은 점수 중 최고였어.’
아무래도 이놈의 시스템은 새로운 경험을 할수록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쌓인 포인트로 인해 마음이 풍족해졌다.
‘흐흐흐… 뭘 올릴까? 30점 정도 모으면 새로운 2성 스킬을 살 수 있다던데… 그때까지 빡시게 모아야 하나?’
넉넉해진 포인트로 여러 가지 옵션이 생겼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차가 덜 막히는 기분이었다.
회사로 들어서니 이정수 대표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이미 축구를 뛰어도 되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오… 전기 왔냐? 옷이 스포티한데? 항상 패셔너블한 옷만 입고 다니더니 이런 것도 의외로 잘 어울리네?”
“운동해야 하는데 그런 옷을 입고 어떻게 뛰어요. 발목 보호대하고 축구화만 갈아 신으면 되게 입고 왔죠.”
“잘했다. 촬영장 가면 정신 없을 거야. 사람 겁나게 많거든.”
“예, 형님… 전 수비수로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
“그래, 너 정도 되면 덩치로 다 커버 가능할 거야.”
“켁… 커버라뇨. 그냥 구멍만 안 내려고요.”
“그래, 이제 차 타고 가자. 이 실장아, 이제 출발하자.”
강전기는 이정수 대표의 밴에 올라타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약 40분을 달려 어느 기업 연수원 내에 있는 잔디 구장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였고 적당히 구름도 껴있어서 야외 활동을 하기엔 딱 맞은 날씨였다.
밴에서 내리니 많은 스태프가 방송 촬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와… 사람들 진짜 많네요. 이 정도 인원이 있는지 몰랐어요.”
“야외에서 하면 돈 많이 깨져. 그래서 시청률이 안 나오면 더 힘들지.”
“그럴 것 같아요. 와… 사람들 많은 거 봐.”
“자… 저기 천막 보이지? 저기 멤버들 모여있다. 오늘 멤버들이 다들 지인들을 데리고 와서 벌써 천막에 사람에 꽉 찬 거 같다.”
이정수 대표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이미 많은 연예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천막으로 이동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여러 명이 일어나서 이정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정수야, 왔노?”
“형님, 오셨어요?”
이정수 대표에게 반말하는 사람은 이 프로그램의 메인 MC라고 할 수 있는 황호동이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존댓말을 한 사람은 개그맨 김수곤이었다.
유명한 연예인을 실물로 본 강전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일찍들 왔네? 오늘 다들 눈빛이 비장하구먼.”
“벌칙이 굉장하다고 들었는데? PD가 지면 큰일 난다고 미리 공지했잖아. 지면 진짜 큰일 난데이…….”
“으… 걱정되네. 김 PD가 좀 미친놈이야?”
“누가 또 내 이야기를 몰래 하고 있어?”
PD가 다가오더니 이정수를 보며 말했다.
“내가 뭐 없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제일 잘 알 것 아냐?”
“뭐, 아니라고 할 순 없지. 흐흐… 그나저나 정수 네가 데려온 분이시냐? 지인은 바로 옆 텐트로 이동해야 한다. 다들 거기에서 대기 중이야…….”
“전기야, 들었지? 잠시 저기에 들어가 있어라. 10분이면 촬영 시작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우, 전기 씨라고 했나. 키가 엄청 크네… 키가 몇이에요?”
“예, 피디님. 187 정도 됩니다.”
“크… 부럽다. 아무튼, 미안한데요. 지금 좀 정신이 없으니까 저기 천막에 좀 들어가 계세요…….”
강전기가 안내받아서 들어온 텐트에는 이미 여러 명의 멤버들 지인이 대기 중이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면서 들어갔다. 상당히 뻘쭘한 분위기랄까? 이미 몸을 풀고 있는 사람도 일부 있었다. TV에 나오는 사람도 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강전기도 간이 의자에 앉아서 발목 보호대를 차고 축구화로 갈아 신기 시작했다. 그가 준비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경계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 덩치 하는 젊은 놈이 들어오니 경쟁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텐트 안으로 조연출이 들어왔다. 그는 정신없는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초보 조연출인 모양이었다.
“출연자님들, 잠시만 주목해 주세요. 황호동 씨가 이름을 부르면 순서에 맞게 텐트 밖으로 나가서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녹화 방송이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해주시면 됩니다.”
“네…….”
밖에서는 촬영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멤버들이 중앙에 모여서 근황 토크를 시작했다. 텐트 안 모니터로 그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오… 신기하다.”
“훗… 방송 처음 나와요?”
누군가가 호들갑 떠는 강전기를 보고 피식 웃었다.
전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운동선수 느낌이 나는 남자가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그 남자는 180 정도의 키에 몸이 상당히 좋았고 나이는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흐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 남자의 표정을 보니 기분이 살짝 언짢아지는 강전기였다.
‘저 아저씨 아까부터 계속 저러고 있어요. 신경 끊으세요.’
다른 남자가 강전기 옆으로 와서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어?”
강전기는 그 남자를 알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보이그룹의 멤버였다. 솔직히 고추돌에는 전혀 관심 없는지라 이름은 알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J-TEAM의 메인 댄서 박민호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리부트 엔터 작곡가 강전기라고 합니다.”
“하하… 알고 있어요. 저희 팀 성준이가 뮤직비디오 보여줘서 얼굴이 기억나더라고요.”
“아, 성준 씨… 그때 뮤비 찍었는데 잘 안됐었죠.”
“그거 뮤비 찍고 윤정 선배님은 대박 냈다고 엄청 배 아파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처음에 헤맬 때 찍고 급히 가시느라 장면을 쓸 수 없었어요.”
“아니에요. 솔직히 그 녀석 데뷔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개인 활동하려고 해서 좀 그랬는데 차라리 더 잘됐습니다. 아무튼, 오늘 잘 부탁합니다. 하하…….”
벌써 지인 아홉 명이 텐트를 나갔다. 박민호가 아홉 번째로 나가서 자기소개하고 있었다.
박민호와 황호동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박민호 군은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부에서 선수를 했다고 합니다. 숨어있는 다크호스예요. 다들 긴장해야 할 겁니다. 기훈이가 벌칙을 피하려고 후배 중에 고르고 골랐다는 소문이 파다해요…….”
“이번 벌칙은 꼭 피해야죠. 제 생각에 벌칙이 저기 호수 옆에 있는 번지 점프와 연관된 것 같거든요? 제가 고소 공포증이라 이번엔 절대로 질 수가 없어요.”
배우 우기훈이 앞장서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에 고소 공포증을 한번 치료해 보는 게 어때? 안전 장비 없이 그냥 해도 좋고…….”
“야이, 뭔 장비 없이 점프해… 미쳤어? 있어도 못 뛰는구만. 자신 있으면 너나 하세요.”
“나는 할 일이 없지. 우리 팀에 누구를 데려왔는지 보면 깜짝 놀랄걸. 후후후…….”
김수곤이 실실 웃으며 우기훈에게 계속 깐족거리고 있었다.
“자, 도대체 누구를 데려왔는지 진짜 궁금합니다. 점점 더 흥미를 더해가는 가운데… 이제 열 번째 손님입니다. 홍팀의 스트라이커 이정수가 친히 데려오신 분입니다. 강전기!”
강전기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텐트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앞에는 수많은 사람과 스태프들 그리고 카메라가 대기 중이었다.
그는 이정수 쪽으로 뛰어가 꾸벅 인사를 했다.
“자, 소개를…….”
“안녕하십니까? 이정수 형님의 지인인 리부트 엔터 전속 작곡가 강전기입니다.”
“와… 작곡가라고? 난 무슨 배우 지망생인 줄?”
많은 사람이 소개를 듣고 나서 웅성거렸다.
“이렇게 젊어 보이지만 프로듀싱은 끝내줍니다. 제가 뽑은 우리 회사의 유일한 전속 작곡가예요.”
“솔직히 제가 듣기론 어제까지 같이 나올 사람이 한 축구 하신다는 가수 영훈 씨였던 걸로 아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메인 MC인 황호동이 노련하게 방송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어제 영훈이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리를 좀 다쳤습니다. 그래서 급히 멤버를 변경했습니다.”
“제가 알기엔 가수 영훈 씨는 정수 씨와 같은 연예인 축구단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인다고 하는 미드필더라고 알고 있거등예…….”
황호동은 흥분하자 말투에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거 홍팀에는 상당히 불리한 소식입니다. 제가 알기엔 수곤 씨가 엄청난 지인을 데려왔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그래도 저는 제가 데려온 전기를 믿습니다. 딱 덩치만 봐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나요?”
“그러게요. 전 무슨 서양 모델이나 배우가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키가 엄청 크시네요.”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배우 우기훈이 부러운 눈으로 강전기를 쳐다보았다.
김 PD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눈을 번뜩였다.
“어허… 무슨 축구가 농구도 아니고 키나 덩치로 합니까? 왜 메시가 발롱드로를 밥 먹듯 수상하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김수곤의 논리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혹시 포지션이?”
“수비수입니다.”
“거봐, 수비수라잖아. 수비수는 키랑 등발이 중요하지.”
“자자, 전기 씨는 저기로 들어가시고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마지막 지인을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수곤 씨가 아주 고르고 골라 불러온 충격의 지인! 나와주세요…….”
황호동이 크게 소리치자 텐트에서 거만한 표정을 한 아까 그 남자가 천천히 등장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배우 이광현입니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광현이 속한 청팀은 환호했고 홍팀의 표정은 썩어들어 갔다.
“이거, 이거 수곤이가 완전히 칼을 갈았구만… 이광현을 데려오다니…….”
“에이, 이거 사기잖아……. 조기 축구회에 무슨 프로를 데려와…….”
“아니, 그러니까? 어이, 김 PD. 미쳤어요? 이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홍팀이 열폭하는 이유는 방금 등장한 사내가 서울 레드윙스의 꽃미남 주전 공격수인 이광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6개월 전 배우를 하겠다며 불과 29세의 나이로 충격의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에 현재는 프로 선수가 아니었다.
스트라이커 이광현.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온 공격수로 가끔 국가대표에 벤치 멤버 공격수로 뽑히는 꽤 실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해외 진출이 불발되자 평소에 관심 있었던 배우를 하기 위해 과감히 은퇴를 선언했다. 축구장의 차세대 테리우스로 유명했고, 여성 팬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아니, 이제 신인 배우예요. 선수가 아니고…….”
손사래를 치는 이광현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에이,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지인으로 박주형 데려올걸… 은퇴 선언 잠시 했다가 다시 번복하라고 하지, 뭐.”
여기저기서 엄청난 항의가 쏟아졌다.
‘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이광현 선수였구나. 솔직히 국내 축구는 별로 안 봐서 기억이 안 났다. 아까 그래서 텐트에서 자신감이 엄청났구나. 괜히 얄밉네, 저 녀석…….’
강전기가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광현을 주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말이 많아지자 김 PD가 특별한 해결책을 내놨다. 이광현은 전반전에 수비수로만 뛸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팀은 떨떠름했지만, 방송 스케줄상 더 이상 지체하다가 언제 끝날지 몰라 수긍하고 말았다.
생태계 교란자 이광현을 수비수로 일단 묶어놓긴 했는데 문제는 후반전이었다. 분명히 공격수로 출격할 게 뻔했다.
“참, 나… 내가 이광현하고 축구를 해보다니… 황당하네요, 정말…….”
아이돌 박민호가 전기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러게요. 이거 지면 벌칙이 상당하다던데 걱정되네요.”
“쩝… 뭐, 그래도 벌칙 받고 웃음이라도 주면 다행이죠. 사람이 많아서 이거 제 컷이 많이 나갈지 궁금하네요. 흐흐…….”
“오… 긍정적이십니다?”
“저야… 뻔질나게 얼굴을 알려야 해서 그렇죠. 신인 아이돌이잖아요. 저보다 형님이시죠? 아무튼, 열심히 해보게요… 공 잡으시면 저한테 좀 주시고요, 흐흐…….”
“알겠습니다. 최대한 연결해 볼게요.”
둘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곧이어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거 좀 떨리는데?’
그렇게 빡시게 신체 레벨 업을 하고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질 못하는 강전기였다. 실전 축구는 공무원 시절 야유회 가서 죽도록 삽질한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