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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마성의 남자 일렉케이의 비공식 데뷔 무대는 이게 마지막?
오늘은 좀 늦었네요.
일렉케이 비공식 데뷔
관객들은 다들 멍하니 일렉케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신인 걸그룹 중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제정신을 차리고 같이 박수를 치면서 엄청난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대박!!”
“미쳤다!!”
“휘이익…….”
일단 여성들은 아주 열성적으로 일렉케이를 연호하며 난리 난 상황.
남자 아이돌 심사위원들도 일렉케이의 가창력에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김강호 노래는 레전드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누군가 김강호의 노래를 이렇게 완벽하게 불렀다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무조건 인정받았을 상황이었다.
다른 프로듀서들도 뒤집어진 건 마찬가지였다. 순전히 가창력에 압도되어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로지 간지 프로듀서만 붉어진 얼굴로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앙코르를 요청하자 한 곡을 더 해야 하는지 난감해진 강전기였다.
사실 노래를 불러보니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한다고 OK를 외치려는 순간! 관객석 앞에서 점프하면서 두 팔로 X를 표시하는 성기호를 보게 되었다. 왠지 모르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며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성기호 뭐야? 하지 말라고?’
강전기가 그런 표정을 짓자, 성기호는 뛰는 걸 멈추며 고개를 심하게 마구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계획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모든 이들이 앙코르를 외치고 있을 때, 일렉케이가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을 본 이 사건의 주범이었던 MC 심해철과 정상균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자! 여러분,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지금 흥분하신 거 알고 있어요. 저도 그러니까요.”
정상균은 좌중을 둘러보며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조용히 좀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약 30초가량 그러고 있자 함성이 수그러들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요. 사실 여러분들이 이러는 게 이해가 갑니다. 잠시만요. 지금 어안이 벙벙해서 얼이 빠져있는 심해철 씨에게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
“이제 일렉케이에 대한 의문이 풀리셨나요?”
“하아……. ”
심해철은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건 뭐… 우리 프로듀서님을 한 번쯤 곤경에 빠트리고 싶었는데 진짜 깔 게 없네요. 아니! 뭐 사람이 이래? 정말 사람 맞아요?”
“사람 맞습니다.”
노래를 마친 강전기는 스스로 여운에 취해 약간 감상적이 된 상태였다.
“노래까지 잘하니… 아니, 잘하는 정도가 아니에요. 솔직히 남자 가수 중에 아까 그 곡을 저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 있습니까?”
“글쎄요,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절대로요. 비슷하게는 부르겠죠. 하지만 일렉케이 프로듀서가 부른 것처럼 완벽하게는 못 불러요.”
“설, 설마요…….”
“맞아요. 지금 부른 레벨이 어떠냐면요. 최전성기 김강호 씨가 가장 좋은 컨디션일 때 녹음실에서 여러 번 노래를 불러 좋은 부분만을 짜깁기한 그런 모습이에요.”
“잠시만요. 해철 씨, 여기 「아이돌 메이커 48」 아닙니다. 멘토가 아니라고요.”
“제가 감히 어떻게 작곡 천재이자 최고의 프로듀서 그리고 최강의 보컬리스트를 감히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멘토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지금 그 정도면 거의 레전드급 뮤지션이라고 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가만 보면 세계 정상급 싱어송라이터잖아요. 말씀하시는 게.”
“세계 수준이죠, 당연히…….”
“원래 저희가 세계 수준의 작곡가라는 건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프로듀싱 능력도 경연을 거치면서 증명하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노래까지 부르시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저, 일렉케이 프로듀서님?”
“네, 말씀하세요.”
“왜! 이런 경악할 노래 실력을 숨기신 거죠? 정말로 궁금합니다.”
“숨긴 적 없습니다. 그냥 노래에 취미가 없어서요.”
강전기는 정말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인터뷰를 했다.
쿵!
MC 심해철이 강전기가 하는 대답을 듣고 어이없었는지 마이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지, 지금 너무 믿기 힘든 답변을 들어서요.”
“방금 노래에 취미가 없다고 하셨나요?”
“네…….”
“허… 이거 참, 나… 우리나라 가수들 다 한강 가서 잠수나 해야 하겠는데요?”
“제가 취미가 없다는 거지 우리나라 가수들의 실력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 모를 악성 댓글에 대비하는 강전기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도를 넘었습니다. 그럼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왜, 왜. 하필이면. 김강호 씨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부르셨나요? 꼭 누구를 슬프게 할 사람처럼 생겼으면서 말이죠? 기만자인가요?”
“기만자라뇨, 절대 아닙니다. 제가 강호 형님의 노래를 오래전부터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혼자 쓸쓸히 불렀던 곡이 바로 이 곡입니다.”
“혼자 쓸쓸히요? 에에? 말도 안 돼. 그리고 프로듀서님은 진짜 그 가사랑 안 어울리는데…….”
사실 이 곡의 가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를 보며 괴로워하는 남자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내 전생에는 항상 이런 식이었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다들 짝이 있거나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그랬지. 결코, 나를 사랑해 주진 않았다.’
그제야 비밀이 풀렸다. 그가 왜 이렇게 절절한 느낌을 잘 표현해 냈을까? 그의 전생은 항상 그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런 감성을 폭발시킬 수 있었으리라.
“혹시 솔로 앨범을 낼 생각이 있으신지…….”
“아직 없습니다. 당분간은 프로듀서 활동에 전념할 작정입니다.”
‘지금은 걸그룹 제국의 초석을 다질 시기야. 암!’
“아… 아깝네요. 전 프로듀서님의 다른 노래도 엄청나게 듣고 싶거든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앙코르로 한 곡 더 하실?”
“공약은 한 곡 완창 아니었나요?”
강전기는 정신을 차린 후 냉정하게 앙코르 요청을 뿌리쳤다.
“아니… 많은 분이 더 보고 싶어 하시니까…….”
“여러분들, 죄송합니다. 전 가수가 아닙니다.”
강전기가 앞을 보며 살짝 양해를 구했다. 앞에서 성기호가 엄지 척을 하며 아주 잘했다는 사인을 보냈다.
“네, 아쉽네요. 당분간 여러분들은 일렉케이의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직 이 무대, 「걸그룹 4차 대전」에서만 보실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앞으로 이런 레전드 무대들이 계속 나올 예정이니 반드시 채널 고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맞습니다. 엄청난 신인 걸그룹의 등장도 모자라 레전드급 가창력을 보여주는 프로듀서까지… 정말로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는데요. 다음 3차 경연은 예고해 드린 대로 팝송 경연이 있을 예정이오니 생방송을 사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전기는 MC들의 클로징 멘트를 뒤로하고 무대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무대 밑에서 그를 바라보는 표정들은 다양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눈에 하트가 반쯤 그려진 상태였고 남자 아이돌들에게는 왠지 친해지고 싶은 형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프로듀서들에게는 거의 질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후배님, 노래 뭐야? 내가 곡 하나 줄 테니 싱글 내자. 나 오랜만에 1위 한번 가보자고.”
김찬기 작곡가가 자리에 앉으려는 강전기를 보고 놀리는 것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건네고 있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야! 강전기… 너 뭐냐? 성대 수술이라도 한 거야? 갑자기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해? 내가 네 노래 실력을 아는데? 너 진짜 내가 아는 강전기 맞는 거야?”
퇴근하려는 간지 피디가 나가다 말고 강전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강전기는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뜨끔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띠링… 분석 나노 로봇이 내분비계 호르몬을 분석 중… 도파민 9…….]
‘악… 씨발! 그만!’
[분석을 강제 종료합니다.]
강전기의 명령으로 간지 피디의 호르몬 분석이 긴급 종료됐다.
‘허억… 허억… 씨… 못 볼 걸 볼 뻔했다. 휴, 간신히 멈춰서 다행이야. 굳이 필요 없는 정보를 알 필요가 있을까? 난 그렇게 고프지 않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와 정확히 반대되는 그의 명언이었다.
이윽고 방송 녹화가 끝나자 먼저 핑크엔진 멤버들이 그에게 다가와 한마디씩을 건넸다.
“꺄야… 피디님, 진짜 노래 뭐예요.”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잘 부르세요? 저 진짜 듣다가 죽는 줄 알았어요.”
“오…ㅃ… 아니, 피디님. 어떻게 감쪽같이… 저번에 저한테 노래 못한다면서요. 거짓말쟁이…….”
인하, 시유, 다미 순으로 차례대로 한마디씩 말했다. 레이카만 별다른 말 없이 강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1등 축하한다. 트리플 크라운 축하해. 노래 공동 1위 축하하고… 랩도 정말 잘했다. 거기서 그 곡이 나올 줄… 진짜 깜짝 놀랐다, 인하야.”
“헤헤헤…….”
인하는 강전기의 칭찬이 기분 좋은지 활짝 웃고 있었다.
“아… 그리고 레이카? 춤 잘 췄어.”
“감사합니다, 피디님.”
그렇게 인사하고 있으니 레몬캔디 멤버들도 그에게 다가왔다.
“피디님! 노래 잘 들었어요. 너무 잘하시더라.”
“피디님! 진짜 김강호 선배님이 현신하신 줄 알았어요.”
“피디님… 저… 밀지 마… 어… 어마……!!”
공소연이 말하다 말고 휘청하더니 강전기 쪽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강전기는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그녀를 팔로 안아 들었다.
“소연이 괜찮니?”
공소연은 강전기의 품 안에 안기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고… 고래…….”
“응? 고래라니?”
“아… 아니에요. 그냥 한 말이에요. 저 좀 내려주세요.”
강전기는 공소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공소연이 뒤를 보니 자신을 민 사람이 몰래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은성이 언니 진짜! 어휴…….’
“얘들아, 소연이 얼굴이 무슨 불타는 고구마 같지 않냐? 앗, 뜨거워!”
“저리 안 가! 언니가 나 밀었지!”
“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밀긴 왜 밀어…….”
“하여간 너희는 오늘도 시끄럽구나. 쩝… 오늘 개인전 나간 우리랑 소연이랑, 민지 수고했다. 오늘은 들어가서 쉬고 내일부터 곧 있을 경연 연습 열심히 해야지. 남민지! 너 코드 치는 거 연습 다 했어?”
“아… 아니요.”
강전기는 그런 식으로 무대 아래에서 핑크엔진과 레몬캔디 멤버들과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른 걸그룹 멤버들이 질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프로듀서를 프로듀서라고 부르지 못하는 클로버즈만 멀리서 안타깝게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렇게 6화 방송에서는 일렉케이의 비공식 데뷔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EXE의 생명의 은인으로 아직도 야단법석인데 만약 이 방송까지 나간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가늠조차 안 되고 있었다.
그렇게 멤버들을 숙소로 보내고 밤늦게 리부트에서 성기호와 따로 만났다.
“전기야, 너 노래 정말 미쳤더라. 왜 그런 실력을 갖추고 연예인을 안 하려고 했어? 진짜 이해가 안 간다.”
“됐고… 아까 너 왜 그렇게 앙코르를 하지 말라고 엑스 표시를 하고 깡충깡충 뛰었냐?”
“내가 안 그랬으면 너 분명히 앙코르 하려고 했지?”
“크흠… 뭐… 아마도?”
“거봐. 너 지금 분위기에 한 곡 더 했다가는 그거 뮤직넷 좋은 일만 시켜줬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저번에 독점 영상이라고… 그 아스모데우스 영상 뮤직넷 홈페이지에 올린 거 그거 재생 횟수가 얼마인지 알아?”
“응? 얼마인데? 난 그거 소름 돋아서 절대 못 보겠던데…….”
“놀라지 마라. 벌써 1억 조회 수가 넘었어. 뮤직넷은 너 때문에 가입 회원 수가 엄청나게 폭증한 거 같더라.”
“진짜? 그게 뭐라고 그렇게 본단 말이야?”
“몰라. 나도 솔직히 모르겠는데 여자들은 그거 한번 보면 자꾸 보게 된다더라. 그래서 조회 수가 벌써 그렇게 됐나 봐.”
“근데 그게 앙코르하고 무슨 상관인데? 혹시 설마 너…….”
“맞아. 네 이름으로 미튜브 채널 하나 파자. 오로지 네 콘텐츠로만 운영하는 거야. 커버 노래만 따로 올려도 조회 수 엄청날걸?”
“흐음… 왠지 안 내키는데…….”
“헐… 너 이제 배가 불렀구나? 내가 봤을 때 가끔 영상 올려주면 1년 안에 수억에서 수십억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진짜 그 정도나 되냐?”
강전기는 수십억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잠시 자리를 고쳐 앉고 성기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