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3 - 스스로를 속이는 방법.(13)
"흡, 흑, 흡..."
전혀 젖지 않은 질이, 제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내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더러워.
내 안에서 이 쓰레기를 치워.
어서, 어서, 어서!
'...이걸로 확인을 끝낼 수 있겠지.'
단 한 조각의 신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는다.
이번 섹스로 인해서 내가 암캐처럼 느껴야 임신을 하는지, 상관 없는지 밝혀질 터였다.
...정말 역겹기 그지 없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니, 정말 창녀가 다 됐구나.'
스스로 자조하며 속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흔들리는 젖가슴과 하반신에서 느껴지난 알싸한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편이 나았다.
"헉, 흡, 흐윽..."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을 처올리는 감각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내려치기만 해도 반응하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인데, 남자의 좆이 제 자궁 근처를 두들기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더 살살..."
분명 평소보다 훨씬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몸뚱이는 용사의 좆에 담긴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잘도 견뎌왔구나.
마왕을 죽여내기 위해 벼려진 용사의 신체는 말 그대로 하나의 무기나 다름 없었다.
"큭, 싼다......"
"흡."
그렇게 얼마나 허리를 흔들었을까.
용사의 신음소리와 함께 내 뱃속에 무언가가 들어차는 듯한 이물감이 들었다.
바로 앞에서 남자 새끼의 신음 소리를 듣는 건 꽤나 고역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한참이나 들어야 할 소리야.'
신경을 써도 의미가 없다면, 차라리 무시하는 편이 좋겠지.
거칠게 숨을 토해내며 하복부를 쓸어내리자, 차갑게 식어간 피부에 온기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차라리 이대로 아기를 가지게 된다면 좋으련만.
"왜, 아직 만족하지 못했나? 흐."
여전히 우뚝 선 채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용사의 좆에 반사적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바로 내가 너를 믿지 못하는 이유다.
미안하다는 듯한 행동을 하면서도 정작 제 하반신에 달린 물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녀석을 대체 어떻게 믿는데?
"자,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용사의 좆이 뽑혀지자마자 다시 굳게 닫혀버린 보지를 억지로 벌려낸다.
더 이상 저딴 것을 몸에 들이기 싫다며 내 손가락에도 저항하던 균열이, 강제로 열려짐과 동시에 새하얀 액체를 울컥울컥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때, 더 하겠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용사의 몸뚱이만큼은 정직했는지, 천천히 내 안에 다시 한 번 제 좆을 박아넣고 있었다.
차라리 잔뜩 느낄 수 있었다면 더 나았을까.
멍청히 그런 생각을 하며, 손톱으로 땅을 긁어내렸다.
"조금만 더 살살, 해다오. 큭, 아파..."
"...지금까지는 잘도 버텼네."
"왜, 새삼스럽게 동정심이라도 드는 건가?"
반쯤 중얼거리듯 내뱉는 용사의 말에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끌어올린다.
네가 한 짓인데 후회하지마.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 몰라?
"...나는, 언제나 아프다고 말했었어."
"..."
"그런데 그 말을 무시한 건 너야, 아서."
심장에 후회를 새긴다.
속을 파고드는 고통을 나만 느끼는 것이 억울해, 사라지지 않을 기억을 용사의 마음속에 그려넣는다.
잘 봐.
이게 네가 범한 마왕의 얼굴이야.
이게 네가 범한 여자의, 고통에 찬 얼굴이라고.
"절대 잊지 마."
설령 내가 죽어도, 의식을 잃어도, 아기를 임신해도, 웃던 울던, 혹여 네 좆에 쾌락을 느끼게 된다고 해도.
절대로.
지금 이 얼굴을 잊지 마.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너는 이유를 알고 있어?
아, 물론 알고 있겠지. 누고보다 잘 알고 있겠지.
그야 나를 그렇게나 강간해댄 분이신데, 설마 그 이유조차 모르고 있겠어?
"아서, 내가 누구를 죽였어?"
새겨넣는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저주를, 그리고 사랑을.
뱃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정액의 덩어리를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반사적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암컷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임신할 수 없다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정말?"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대체 왜 그랬던 건데?
움직임이 멈춘다.
내 질내에 있는 좆의 감촉이 선명라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용사 녀석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해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으로 우위에 선 것 같은 황홀감.
겨우 그 자그마한 한 조각에도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름을 불러."
어서.
"..."
반쯤 협박이나 다름 없는 말이었다.
상대의 상처를 비집고 들어가, 그 안에서 농성하는 듯한 모양새의 테러 행위.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아리엘."
"한 번 더."
"아리엘."
좋아.
눈꼬리를 휘며 희미하게 웃어보이니, 용사의 좆이 그 끄트머리에서 정액을 왈칵 쏟아냈다.
마왕군에게 죽어버린 제 소꿉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왕의 안에 사정하는 용사라니.
하, 하하... 하하하하하......
'더러워.'
몸 전체에 묻은 흙먼지들보다 용사의 좆이, 정액이 훨씬 더 불결했다.
이런 정액으로 임신을 하다니, 정말 비참하구나.
내 안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는 좆에 질내가 거꾸로 뒤집어지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지만, 신음을 흘려내지는 않았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흐, 흐으."
끝났다고 생각하니 온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나 힘든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숲속에서 알몸으로 섹스를 하다니, 짐승이랑 다를게 없잖아.'
...다른 녀석들에게 받는 취급도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흙먼지로 더럽혀진 몸을 털어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추위에 덜덜 떨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차게 식은 정액이 줄줄 새어나와 허벅지를 끈적히게 물들였지만, 지금은 그저 아무런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을로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거라. 나는 조금만 쉬었다 갈 테니."
근처의 나무 밑에 놓아뒀던 옷을 집어들며 용사에게 말했다.
밤이 흩뿌리는 어둠으로 인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찡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뭐?'
근처에 자라있는 풀을 뜯어내 가랑이 사이를 북북 닦아냈다.
얼마나 싸질렀는지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액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기다릴게."
"마음대로 해라."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답에 머리를 푹 처박았다.
머리랑 심장이 쿵쿵 울려서, 더 이상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맨바닥에 머리를 두고 누운 여인을 보며 과연 누가 마왕이라는 생각을 할까.
주변의 어둠에 녹아든 흑색의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잔끅 들러붙었음에도, 그녀는 딱히 털어낼 생각이 없는 듯 싶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기다린다고 한거지.'
얼굴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돌린다.
딱딱한 흙바닥에 몸을 뉘였음에도 눈을 감은 상대가 순간 죽은 사람처럼 보여, 심장이 거칠게 뛰어댔다.
"마왕."
"..."
"살아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불안감을 느낀 용사가 마왕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작은 숨결이 그의 피부를 간지럽혔다.
살아있구나.
단지 그 사실 하나에 왜 이렇게 안도감을 느끼는 건지.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네가 아리엘을 낳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나는 너를 죽일 수 있을까.
가장 처음 만났던 순간처럼 네 목에 칼을 겨누고, 너를 증오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겠지.
이미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는 주제에, 그 때가 되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마왕."
"..."
다시 한 번 상대를 부른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시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잠이 든 것인지는 몰라도, 눈을 꾹 감은 상대는 그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 아기가 나오려고 하잖아! 아, 아기가 나온다고! 아기가, 아기가!!!!'
연기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절박함.
마왕이 진정으로 대륙의 적이었다면, 동시에 대륙의 모든 생명체들을 진정으로 미워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이미 고르돌 씨의 딸을 낳으며 제 뱃속에서 나오는 생명체가 동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찰나였을 터였다.
...심지어 제 아이가 아니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네가 무엇을 했는지 알려줘."
그들 사이에 믿음이라는 단어는 정말 어색하기 그지 없는 단어였지만, 어쩌면 그 어색함이 상황을 여기까지 끌어내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믿겠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먼저 믿지 않은 건 자신이었고, 멋대로 분노하고 증오한 것 또한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온전히 마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지금까지 마왕군에 의해 스러져간 생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마왕이 아무런 죄도 없었다면 어째서 그들이 죽어야 했는가.
한둘이 아닌, 학살이라고 불릴 정도의 숫자를 두고도 상대의 말에 믿음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증명해 줘."
네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걸.
마왕군이 네 만류에도 제멋대로 대륙의 생명들을 학살하고 다녔다는 걸.
그 모든 사실을, 증명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