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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74화 (74/342)

Chapter 74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9)

이별이란 원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보겠네."

"...뭐?"

툭, 내뱉어지는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갑자기?

떨리는 눈으로 드워프를 바라보니,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것 마냥 매정하게 시선을 돌려버린다.

'나랑 왜 상관이 없는데.'

내가 낳은 아기잖아.

지금은 네 딸이라고 하더라도, 내 배 아파서 낳은 아기잖아!

그러면, 최소한의 언질이라도 줘야 하는거 아니야?

왜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건데?

"나, 나랑 아이를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서는 이대로 그냥 간다고?!"

"..."

참으려고 했지만, 참지 못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와서 그런지, 속에서 썩어가던 마음이 그 고름을 터트려댔다.

나쁜 새끼. 쓰레기 새끼.

...짐승만도 못한 녀석들.

'...다른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말 한 마디 뻥끗 하지 않았다는 건, 나라는 존재 자체를 무시한거나 다름 없었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취급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무책임 할 줄이야.

"...그래, 갈 수도 있지. 그래도ㅡ"

하지만 차마 가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아이의 행복이 저 망할 드워프에게 있다면, 나는 그 아이를 보내주어야만 했다.

나와 함께 있다가는 분명 불행해지게 될 테니까.

"ㅡ 마지막으로, 아이를 만나보게 해줘."

그럼에도 마지막 미련 때문에 그냥 보내지는 못하겠다.

저번 마을에서 떠나보낸 아기처럼, 꼭 만난 다음 보내고 싶었다.

드워프는 별로 내키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는지 차마 거절의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마키나는 옆 방에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감시를 붙일 법도 했지만,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옆 방에 있는데도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단 몇 걸음도 되지 않은 거리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끝이라고?'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고?

문에 달린 손잡이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린다.

손잡이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이와 헤어져야 해.

...하.

"..."

마른침을 집어삼킨다.

낡은 경첩이 맞물려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가."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어깨와 굳게 닫힌 눈이 아이가 이미 꿈나라에 가있다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차라리 다행이야.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가, 흑, 마키나..."

내가 처음으로 낳은 아이.

제대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굳이 잠들어 있는 아이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어떻게 깨워.

이렇게 곤히 자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안녕."

두 번째 이별은 생각보다 저 빨리 찾아왔다.

아이를 품에 안고 걸음을 옮기는 드워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깊은 숨을 토해냈다.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행복해지려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만 한다고.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유일한 조각.

그것을, 버려야만 한다고.

"마왕 씨, 괜찮으세요?"

"......그래."

아이가 떠난 뒤로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는 결국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온몸에서 열이 끓어오름과 동시에, 시야가 뿌옇게 물드는게 아주 죽을 맛이었다.

...내 몸이 왜 이러는 거지.

지금까지 참아왔던 것이 폭발한 것처럼 내 몸뚱이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손가락 하나 까딱힐 힘조차 없었다.

밥은 커녕 물을 마시기만 해도 토를 하고, 기침을 하면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정말이지, 딱 시체 꼴이구나."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자조한다.

비쩍 마른 몸뚱이와 더불어, 눈밑을 검게 물들이는 자국들이 내 얼굴을 초췌해 보이게 만들었다.

마치 곧 있으면 죽을 불치병 환자와도 같은 몰골에,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가, 나한테 그 정도로 소중한 존재였다고?'

아프기도 너무 아파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혹시 부정의 답이라도 나올까 싶어서 떠올린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래.

'소중해. 소중하고, 너무 소중해서 결국 떠나보낼 정도로 소중해...'

솔직히 말하자면 역겹다고 생각했다.

본디 남자였던 존재가, 강간 당해 낳은 아기를 향해 이 정도의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모성애? 하, 웃기지도 않아서.

이건 그냥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내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존재에게 향하는 집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했는데.

"......이미 남은 남성성조차 다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이 멍청한 것아."

두려움으로 빚어진 불완전한 여성성.

살갗을 내비치는 걸 싫어해 강박적으로 온몸을 덮는 옷을 입고, 강간 당했던 기억 때문에 앉을 때도 필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린다.

식모살이를 하면서 남자일 때는 그럭저럭이던 요리도 잘 하게 되었지.

화장실에 갈 적에는 이제 서는 것보다 앉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리기도 했더랬다.

'바보 같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마른 기침을 내뱉는다.

성녀는 내 몸을 좋아지게 하는 음식들을 구하러 다닌다며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레이나는 가끔씩 물수건을 갈아주거나 식은땀으로 끈적해진 몸을 닦아주었지.

"상사병이네."

툭 내뱉어진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의 마법사와 시선이 맞으니, 당장에라도 찢어죽일 듯한 기세로 나를 노려본다.

나도 마법사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녀의 말이 가장 정답에 근접한 대답인 것 같았다.

"아기를 빼앗겨서 가슴이 아프기라도 해? 무의식적으로 건강을 포기할 정도로?"

"..."

마법사의 붉은색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햠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제 그만 드러누워 있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네."

가볍게 내뱉어진 치료법에 억지로 고게를 돌렸다.

듣기 싫어.

무슨 말을 할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절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어째, 나는 하찮은 벌레보다 못한 마왕이고 저쪽은 아주 위대하신 용사 파티의 마법사신데.

"아이를 낳아."

빼앗기면 또 낳고, 잃으면 또 낳고, 보내주면 또 낳고, 계속해서 낳아.

그렇게 계속해서 낳으면 너도 좋고, 언젠가는 스승님도 태어날테니 나도 좋은거 아닌가?

미치광이나 할 법한 발상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 나도 정상은 아니겠지만.

"하나 이야기 해주자면, 이렇게 온건하게 권유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권유가 아니라 협박이겠지.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아주 엉망이 되어버린 손톱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눈을 꾹 감는다.

저 마지막이라는게 무슨 뜻인지 차고 넘칠 정도로 이해했기에 더더욱 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잘 생각해서 행동하도록 해."

그 말을 끝으로 인기척이 사라졌다.

사람이라고는 오직 나 밖에 없는 방 안에 누워서 마법사의 말을 떠올리고 있자니, 텅 빈 품 안이 너무도 크게만 느껴졌다.

마키나.

내가 지어준 이름은 아니었지만, 내 심장에 새겨진 이름.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가진 아이를 그려내며, 멍하니 생각을 이어나갔다.

고향에는 잘 도착했을까.

아니면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까?

지금이라도 출발한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만약 가다가 사고라도 당했으면 어쩌지?

도움이 필요해서 울고 있다면?

어쩌면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그 망할 드워프가 애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탓이겠지.

"그만, 그만! 큭, 흐으......"

머리를 쥐어뜯자, 손아귀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져 나왔다.

나 지금 미쳐가고 있구나.

아니, 이미 미친 건가?

너무 미쳐서 오히려 정상으로 보일 정도로 미친 걸지도 몰라.

솔직히 말하자면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겠지.

아, 그래.

미친 김에 그냥 더 미쳐버릴까.

하하...

"누구ㅡ 마왕?"

"흑, 허헉, 학... 용사..."

나는 지금 미쳤어.

미쳤으니까, 책임을 지도록 해.

날, 미치게 만든 책임을.

벽에 손을 짚고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당황한 듯한 용사의 품에 매달리듯 안기고는, 고개를 들어 그 역겨운 면상을 눈에 담았다.

"너도, 내가 죽는 건 싫지 않느냐."

그러니까, 협조해.

내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협조하라고!

가볍게 건드리듯이 가슴을 밀쳐내자, 용사가 중심을 잃더니 힘 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하, 꼴에 약한 척이라도 하려는 거야?

아니면 뭐, 그만큼 당황했다고 어필하고 싶었던 건가?

"그런 주제에, 제 물건은 아주 잘도 세워뒀구나."

흉악할 정도로 부풀어 오른 육봉을 바지 밖으로 끄집어 낸다.

손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열기에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그 좆을 움켜쥘 수 있었다.

'아핫, 내가 자기 것도 아닌 다른 새끼의 좆을 손에 쥐고 있다고!'

비참해.

비참해서 죽어버리고 싶어.

아아, 짜증나!

"마왕, 진정ㅡ"

"닥쳐."

"..."

"닥치라고, 이 쓰레기 새끼야..."

투둑, 하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지금 무슨 기분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나를 진정시키려고 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용사의 몸을 내려쳤다.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최소한, 아픈 척이라도 하란 말이야아아......"

왜, 나만 아파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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