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4 - 사랑하는 나의 스승님.(4)
처음 보인 머리카락이 분홍색이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더랬다.
드디어 벗어날 수 있어.
이 미친 마법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아기를 낳은 기쁨과 함께, 지금까지 시달려 왔던 것에 대한 설움이 터져나왔더랬다.
"...아."
하지만 아기의 등 뒤에 달린 날개와, 작은 꼬리를 봤을 때는 탄식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미친 마법사가 기대하던 제 스승의 모습은 분명 인간의 것이었기에, 나는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마족인거야...'
내가, 그리고 아기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강렬한 분노의 불꽃에 타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겠지.
영원히.
"하."
짧은 헛웃음이 방 안을 내달린다.
온갖 감정을 내포한 그 기다란 한숨과 웃음이, 이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서 내 몸뚱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 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튕겨져 나간 몸뚱이가 멈춘 건, 벽에 부딪혔을 때 즈음이었다.
하지만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진탕이 된 와중에도 내 눈은 뒤이어 날아오는 아기를 눈에 담았다.
탯줄조차 끊어지지 않아 내가 날아가는 동시에 같이 딸려온 듯 싶었다.
...가엽게도.
"흑, 흐극... 으......."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를 놀려보기라도 할 셈이었던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스승님을 모욕하려고?
광기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검고 칙칙한 악의.
그 질척한 감정을 전신으로 받아내면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아.'
더 이상, 살아있는 것 따위는 축복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영원히 고통 받게 될 것이라고.
"아아아아아아아아!!!!!!!!!!!"
공격도 뭣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하나의 고문.
오로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발현되는 극악의 마법이었다.
"쓰레기 같은 년, 쓰레기 같은 년, 쓰레기 같은 년!!!"
전기가 달린다.
몸 안에 움직이는 생체 전류와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심장이 멈추고, 내장이 베베 꼬이고, 뇌가 날뛰고, 숨이 막혀왔다.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절망하면서도, 전신에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다.
'아, 아, 으......'
세포 하나하나에 철침이 박혀, 그 안으로 뜨거운 열기가 스며든다.
바닥을 긁어내림과 동시에 손톱이 부러져 나갔지만 내 몸의 고통이 사라지는 일 따위는 생겨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기껏 그렇게나 도와줬는데 감히 나를, 그리고 스승님까지 모욕해?!"
피부가 붉고, 푸르고, 검게 물든다.
실시간으로 세포를 괴사시키는 마력의 격류에 정신을 잃을 법도 했지만, 내 뇌를 때려대는 통증은 결코 나를 잠재우지 않았다.
'싫어, 그만 해. 아파, 아파아아아악?!!?!!?!'
신경이 죽지 않는다.
분명 엉망진창으로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에 타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불사르고 있었다.
"살려, 살려, 으헥... 악......"
"죽이지는 않아. 그저, 정신이 망가질 때까지 괴롭힐 뿐이지."
부드러운 속삭임이 귓가로 스며들었지만, 그것이 악마의 음성이라는 것 쯤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정신이 망가지고 굴복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겠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죽여버렸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졔뱔.... 사려, 케엑......."
죽어가는 신체 위에 붉은색의 포션이 쏟아진다.
검게 죽은 피부가 되살아나고, 느리게 뛰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와, 어둠에 물들었던 머릿속이 다시 다채롭게 채색됨과 동시에ㅡ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통이 느껴진다.
전신을 찢어발길 듯이 내달리는 전류에 목구멍에서 거품이 솟아올랐다.
그만, 제발 그만 둬.
그만 둬주세요.
제발... 제발...
"뭐, 든... 할, 테니까......"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를 어거지로 움직여, 머리를 처박는다.
이마를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혀 피가 날 때까지 머리를 조아린다.
뭐든지 할게요.
뭐든지 할테니까, 제발...
제발 멈춰 주세요.
"그러면ㅡ
ㅡ그래, 이 아기를 네 손으로 죽이면 멈춰줄게."
"에?"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아기를 죽이라고?
그것도 내 손으로?
"...그, 그것만은......"
"어머, 뭐든지 하겠다고 한 건 다름 아닌 너라고?"
"아학?!!?"
빨리 하라는 듯한 고통에 어기적 어기적 기어, 아기의 앞에 엎드린다.
울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이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희미한 빛을 담은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살아있구나.
'...망가지지 않으려면 아기를 죽여야 해.'
이 손으로, 아기를...
아기를.
'마족이 태어나면, 내 손으로 아기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그래.
차라리 아기를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는 거야.
고통에 몸을 떨며 아기에게 손을 뻗어내자, 이유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걸로 편해질 수 있어.
이걸로, 이걸로 ㅡ
"큭, 하......."
하지만 떠올린다. 떠올리고 만다.
저를 올려다 보던, 아이의 푸른색 눈동자가 바로 눈앞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아기의 선홍빛 시선과 마주하면,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모, 못하겠다... 절대, 못ㅡ 아아아아아악?!!?!?!?!"
아기의 목을 조르려던 손이 그대로 아기의 자그마한 몸을 끌어안는다.
못 죽여. 절대로 못 죽여.
내가 낳은 아기인데, 감히 어떻게 죽이겠냐고.
입에서 핏덩이가 줄줄 흘러나왔다.
온몸의 구멍에서 검붉은 핏줄기가 흘러나오니 심장이 덜컹거리며 미쳐가기 시작했다.
"미안해, 엄마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해서 미안해. 미안, 해..."
피가 닿지 않게 꼭 끌어안는다.
마법사의 발길질에도, 주먹질에도, 하물며 지팡이로 이루어지는 온갖 폭력에도 견뎌낸다.
품 안에 있는 아기 따위는 상대의 손가락질 한 번에 사라질 터였지만, 그럼에도 품 안에 품어냈다.
'...어차피 나를 죽이지는 못해.'
나를 죽이게 된다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스승의 부활은 절대로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렇다고 내 몸뚱이를 해체해서 아기만 낳는 모판으로 삼는다면 용사가 가만 두지 않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꼴을 보기만 해도 절대 가만두지 않겠지.
'버티면 돼. 버티기만 하면, 둘 다 살 수 있어...'
찢어지고, 재생하고, 부서지고, 재생하고, 타오르고, 재생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내 정신이 점점 마모되어 간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이 잦아들 때 쯤에는 드디어 상대도 포기했나 싶어서 자그마한 희망을 가져봤지만, 전부 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 거야?! 어차피 한참이나 낳아야 하잖아. 이딴 아기 따위, 죽어버려도 상관 없잖아!"
"아, 안 돼..."
아기를 빼앗긴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내 품의 온기를 강탈한 마법사가, 무엇이 그리 원망스러운지 아기를 마구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기는 죄가 없잖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대체 왜...
"흑, 아윽?! 자, 잡아 당기지 마아아악?!?!!"
아기와 함께 탯줄이 주욱, 뻗어졌다.
붉은 자국이 덕지덕지 붙은 기다란 선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내 자궁과 연결되어 있는 생명선.
아기를 낳았다고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
"으아, 으..."
탯줄이 잡아당겨짐과 동시에 뱃속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잘라내는 것이 아닌, 뽑아내기 위한 힘에, 망가진 몸뚱이는 더 이상 제 안의 것을 붙잡아 놓지 못했다.
'안 돼...'
딸려나간다.
태반을 꼭 껴안은 모양새 그대로, 아기가 잠들어 있던 방이 세상 밖으로 꺼내져 나왔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처참했다.
"괜찮아. 그렇게 되어도 아기는 제대로 낳게 해줄 테니까."
"윽, 으흑, 흐......."
아기의 배와 연결된 탯줄과 그 탯줄 끝에 매달린 태반.
피로 잔뜩 묻은 그것들을 바라보니, 목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이런 추한 꼴이 되었음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아기를, 돌려줘..."
겨우 마족이라고 죽이는 건 안 되는 일이잖아.
네가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 내가 마족이니까, 내가 전부 받을게.
대체, 대체 태어난 아기가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제발, 돌려주세요... 죽이지 말아주세요, 제발..."
마법사의 로브자락을 붙잡는다.
죽이지 마.
내 아기를, 죽이지 마.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왜? 그럴 이유라도 있어?"
마법사의 손에 들린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지 않았다.
그래, 그대로 조용히 있어주렴.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 조금만 참으면 돼.
신경을 거스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대로 조용히ㅡ
ㅡ아.
"아아아아아!!!!!!"
돌연, 아기가 떨어져 내렸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어떠한 힘도 주지 않고 그저 툭 놓아버린다.
중력에 이끌려 곤두박친 아기가 바닥에 널브러질 쯤에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왜? 왜, 왜? 대체 왜? 왜?!
"심지어 남자아이조차 아니잖아. 성별이라도 같으면 몰랐는데."
아쉬움 하나 담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저 나를 더 큰 절망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소소한 거짓말.
아마 남자아이였어도, 마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똑같은 짓을 했겠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아기에게 엉금엉금 기어갔지만, 내 품 안에 아기가 안기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만, 둬."
다시 한 번 마법사의 품 안에 안긴 아기가, 몇 초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거짓말.
"그만, 둬......"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