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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04화 (104/342)

Chapter 104 - 탈출.(5)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다리 끝에 매달려 있는 사슬이 눈에 보였다.

그러니까, 아까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윽, 흐아......"

저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감각을 되새기며 마른 기침을 내뱉는다.

폐를 들어낼 정도로 쏟아지는 기침에 목구멍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 아파.

"여기가, 대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다 힘이 풀려 몸을 처박는다.

어디가 망가진 건지는 몰라도 일단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설마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건 아니겠지.'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가래 끓는 소리가 섞여 나왔다.

목에 걸리는 그 불쾌한 감각을 참을 수가 없어서 침을 뱉어내니, 검게 죽은 핏덩이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으, 으하... 흣..."

이런 걸 과연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나를 살려둔 녀석들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회복하는 꼴을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죽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고.

"깨어났구냐."

한참이고 헐떡이고 있으니, 귓가에 특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특이한 말투라고 해야 하나.

"뿔 없는 마족을 보는 건 또 처음이구냐..."

"...수인?"

머리 위에 솟아오른 고양이 귀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등 뒤에서 흔들리는 꼬리에 시선을 던지니, 귀엽게 보이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마족을 엄청나게 싫어하는구나.

...그럴 만도 하지만.

"수인인데, 뭐 불만이라도 있는 거냥?"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지.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을 터였다.

입으로 꺼내놓지는 않았지만, 그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죽을 맛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알고 싶지도 않고냐."

용사야 뭐, 알아서 무사하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걱정이었다.

혹시 크게 다치지는 않았겠지.

마법사의 손에서 떨어지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면 할수록 더 걱정하게 될 뿐이니까.

"하아... 콜록, 콜록!!"

"이 정도로 약한 마족은 처음 본다냐... 뿔이 없는 것도 아쉽고 말이다냐..."

텅 빈 머리 위를 집요하게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꼬리 끝에 매달린 자그마한 조각들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같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눈치챘구냐? 이거, 마족들의 뿔이거든~"

마치 자랑하듯 꼬리를 내밀어 보인다.

탁한 보석 같은 장신구들은 그 종류가 상당했다.

이 숫자가 전부 마족들이 살해 당한 숫자겠지.

복수를 해야겠다거나, 화가 치밀어 오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왕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마족들에게 그 어떠한 유대감도 가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무섭지? 무섭지? 무겁지이~?"

눈앞의 수인이 무섭다기 보다는, 칼에 찔린 듯 아려오는 허벅지의 통증이 더 아팠다.

완전히 푸른색으로 물든게, 아무래도 완전히 부러진 것만 같았다.

어째 다리가 자주 부러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서러움에 눈물이 찔끔 세어나왔다.

"서, 설마 우는 거냥? 마족이?!"

경악성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알 바냐.

죽일거면 죽이고 살릴거면 살리지, 이건 그냥 고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

잡아온 마족은 꽤나 특이한 마족이었다.

머리에 뿔이 없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인간 냄새가 너무 강했다.

인간의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뭐랄까...

인간의 수컷 냄새가 진하다고나 할까.

집중해서 냄새를 맡아보면 뱃속에서부터 이어지는 아기 분내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진짜 약골이네, 약골이네냐..."

"고양이 수인이라고 말 끝마다 냐를 붙이는건 그만 하지 그래?"

"힉?! 기, 기척은 좀 내고 다녀라냐!"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마족을 구경하다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매사에 불만 가득한 말투.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귀 하나가 없는 고양이 수인이 자리에 있었다.

"촌장님은 왜 이 녀석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시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다냐."

마족이라고 한다면 동족들을 수도 없이 죽여온 존재들이 아닌가.

본인도 그렇고, 옆에 있는 삐딱선이도 그렇고 모두 마족들에게 소중한 이들을 빼앗겼으니까.

심지어 저 정도로 약한 마족 따위, 한 손가락으로 콕 찍어 죽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너도 안 죽이고 있잖아. 충분히 죽일 수 있는데도."

"냐, 냐는 촌장님께 혼나기 싫다냥! 혼날거면 너 혼자 혼나라냐!"

감시역을 맡았는데 감시하던 대상이 죽어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절대 질책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심하면 마을에서 쫒겨날 수도 있겠지.

"그러면 비켜. 내가 죽이게."

"그, 그러다가 진짜 쫒겨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냥?!"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

쫒겨나려면 너만 쫒겨나지 왜 나까지 말려들게 하려고 그래?!

마족이 증오스럽다는 마음이야 백 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제멋대로 날뛰어도 좋다는 뜻이 되지는 않았다.

"진정 좀 해, 벨!"

"말리지마."

"..."

"부탁이야, 랴뇨리..."

그런 울 것 같은 얼굴로 부탁하면, 막을 수가 없잖아.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푸니, 벨의 손에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졌다.

언젠가 죽인 마족에게서 빼앗은 물건.

마족의 무기로 마족을 죽인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겠지.

퍽!

"..."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벨의 뒷목을 내려친 랴뇨리가 제 품 안에 힘 없이 늘어진 몸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기절한 녀석을 안아들고 있는 취미는 없으니까냐.

매정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사고를 칠 뻔한 녀석에게 상냥할 필요는 없겠지.

"...귀엽구나."

"언제 깨어난거냥."

일어날 기미도 없이 눈을 뜬 마족이 쿡쿡 웃어댔다.

기분 나쁜 웃음이 아닌, 정말 귀여워서 웃는 듯한 모습에 괜히 더 기분이 나빠졌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흔들며 상대를 노려보다가, 겨우 답을 찾아냈다.

마족 같이 않은 마족이라서.

보통의 것과 다른 것을 보면, 괜히 경계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족이면 마족답게 굴어라냐. 더러운 짐승 냄새가 난다고 경멸하라냐!"

"...왜 그래야 하지?"

언젠가 들었던 모욕을 떠올리며 왁왁 소리를 지르자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운 것을 두고 왜 혐오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거 더 짜증났다.

'아, 안 되겠다냐. 이 녀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ㅡ'

"흐냥?!"

기절이라도 시켜려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꼬리를 붙잡혀 버렸다.

상상 이상의 약골이라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사악한 마족에게 속아서 꼬리를 뽑히다니...

곧 다가올 암울한 미래에 울상을 지었지만, 생각하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냐?"

"흐으, 하......"

붙잡힌 꼬리를 통해서 애처로운 떨림이 느껴졌다.

이 느낌, 분명 겪어본 적 있다냐.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족에게 죽어가던 동료의 마지막 숨결을 떠올린다.

제 품 안에 안겨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그 목소리가, 그리고 그 떨림이...

"경비, 경비!! 빨리 와라냐!!"

"..."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 그토록 증오하던 마족이었는데, 차마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왜. 대체 왜지?

살고 싶다고 외치는 듯한 떨림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면 적의 하나 비치지 않는 그 눈망울 때문일까.

"무슨 일이냐!"

"그, 마족이... 마족이 죽어가고 있다냐..."

옆에 벨이 쓰러져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저 마족이 우선이었다.

동족보다 원수를 더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습기는 했지만, 옛말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으니 아무튼 괜찮을 터였다.

그렇다고 진짜 사랑하는 건 아니었지만.

"설마 벨이 저 마족을 습격한 건가? 너는 그걸 막기 위해 벨을 기절시킨거고?"

"...미수기는 하다냐."

벨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며 중얼거린다.

역시 이 녀석이 엮이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냐.

잔뜩 투덜거리면서도 꼬리를 붙잡은 손길에 신경을 집중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맥박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일단, 이 마족부터 어떻게 하라냐."

그제서야 피 냄새를 맡았는지 늑대 수인이 아우, 하고 울어댔다.

저 멀리에서 다가오는 동족들의 향을 맡은 랴뇨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족을 살리려고 이 난리를 치다니, 말도 안 된다냐...'

새하얀 피부 위에 그려진 상처들을 바라보다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대체 언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인 거야.

슬쩍 힘을 줘서 손을 떼어내니, 이번에는 손을 붙잡아왔다.

"부러진 뼈가 아직도 붙지 않았군. 설마 붙었는데 벨이 다시 부러뜨린 건가?"

"아니, 회복이 안 된거다냐."

제 대답에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늑대 수인이 마족의 상처를 꾹꾹 눌렀다.

아무래도 지혈을 하려는 모양이었지만, 저 연약한 몸뚱이에 저 정도의 힘을 줬다가는ㅡ

"흐아..."

"피, 피가?!"

당연히 상처가 터지겠지.

허둥거리는 녀석의 다리를 툭툭 두드리고는 터진 상처를 살살 짓누른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

언젠가의 경험 덕분에 적당한 정도로 힘을 조절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 마족을 살리는게 왜 다행이냥..."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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