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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06화 (106/342)

Chapter 106 - 탈출.(7)

"네 녀석,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게냐?"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떻게 살아있기는,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지.

벌겋게 달아오른 팔뚝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여기저기 멍자국이 올라와서 전신이 아렸다.

"이래서야 아기를 낳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크흥."

"..."

잠시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제 품에 손을 넣는다.

그 안에서 꺼내지는 건 여러 장의 종이조각들.

빼곡하게 글자니 도형이니 그려져 있는게 아무래도 부적 비스무리한 무언가인 모양이었다.

"신의 힘을 마족에게 사용하다니, 이것 또한 불경이로구나."

내 팔과 다리, 그리고 목에 부적들을 붙여댄다.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니, 종이 위에 써진 글자들이 작게 발광하기 시적했다.

그리고 그것에서 퍼져나오는 미지의 힘.

아니, 미지라고는 말했지만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ㅡ

'...신성력?'

쿵, 하고 심장이 요동쳤다.

엘리가 사용하던 신성력.

정확히는 여신이 사용하던 신성력.

그것과 아주 유사한, 혹은 완전히 같은 느낌의 힘에 팔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그만, 그만..."

"설마 신의 힘에게 거부 당하는 건가? 아니, 상처난 확실하게 치료되고 있는데..."

"그만, 둬..."

크고 작은 상처들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몸 안에 들어찬 기괴함 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악이야.

여신의 변덕만으로 나를 찌를 수 있는 칼날을 마구 집어삼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토해낼 수 있다면 차라리 좋을 텐데.

욱욱, 하며 헛구역질을 하자 아홉 꼬리가 부산스럽게 흔들렸다.

"괜찮으냐?"

"...전혀."

괜찮을 리가 없잖아.

물론 눈앞의 여우가 모시는 신이 내가 아는 그 여신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햇갈릴 리가 없잖아.

그 기분 나쁜 신성력을, 내가 어떻게 착각하겠어.

"자, 그러면 걸어라. 상처는 충분히 치료되지 않았느냐?"

매정한 녀석.

바닥에 손을 짚고는 절뚝거리며 일어선다.

아주 귀하신 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더러운 마족에게 손을 대고 싶지 않았는지 완전 구경꾼 같은 모습이었다.

"조, 조금만, 도와다오."

몇 걸음.

겨우 그 몇 걸음에도 불구하고 몸뚱이가 거칠게 삐걱거렸다.

치료된 건 오직 상처 뿐, 소모된 체력이나 놀란 근육들이 아직 회복되지가 않았다.

후들후들 떨며 손을 뻗자 흥, 하고 코웃음을 쳐댄다.

'...나쁜 년.'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숨을 몰아쉬어도 변하는 것 따위는 없었다.

왜 안 오냐고 묻는 듯한 얼굴이 얄미워, 한 대 때려주고만 싶었다.

"그거 하나 도와주는게, 그렇게 싫은 건가?"

"멀쩡하면서 엄살 부리지 마라."

...그러니까, 멀쩡하지가 않다니까?

방금 전까지는 어떻게 살아있냐며 물은 주제에, 역시 짐승 대가리라 기억력이 빵점인 모양이었다.

"흐윽..."

바닥에 쓰러지고 정신을 잃는 것이 이 정도로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었던 건가.

순식간에 흐려진 시야 사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여우 수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게, 말 했잖아.

***

왜 슬퍼하는 거야, 아서.

마왕이 죽었을 뿐이잖아.

네 원수인, 마왕이 죽었을 뿐이잖아!

"안 죽었어."

죽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나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는데, 겨우 그 정도로 죽을 리가 없잖아.

절벽 아래에 자란 거대한 나무들.

그 사이를 뚫어져라 바라봤지만, 아리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편이 더 나았다.

저 정도로 울창하게 자라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살아있을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

"아, 아리엘 씨. 어, 어떻게 해...."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전부 포기하게 될 것만 같았다.

엘리도, 할리벨도, 하물며 아이까지도.

다들 하나 같이 넋이 나가서는 하릴 없이 절벽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라도 어떻게든 해야 해.

"당신, 지금 어디 가는ㅡ"

"쉿."

너는 다른 사람들을 달래줘, 아리엘은 내가 찾아올 테니까.

근처에 피어올린 모닥불을 지나쳐,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숲을 지나, 개울을 통과해, 저 언덕 아래로 달려나간다.

비죽비죽 튀어나온 잔가지들이 얼굴을 때려댔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제발, 제발 무사해줘."

나에게 있어서 마왕이란 대체 무슨 존재인가.

처음에는 증오였다.

소중한 이들과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죽여낸 마족, 그것들의 수장이라고만 생각했었지.

범하고, 폭력을 가하던 나날들.

그리고 그녀가 아이를 낳던 순간까지.

"헉, 허억..."

눈꼬리가 살짝 치솟아올라 사나운 인상이었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부드럽게 휘어지던 것이 떠올랐다.

아름답다는 말조차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몹쓸 짓을 한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감히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미소였다.

절대로 나를 향하지 않는, 그런 미소.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나, 가끔 보여주는 어린아이 같이 천진한 모습까지.

무엇 하나 그녀를 정의내릴 수 없었다.

어쩔 때는 시골 처녀 같이, 어쩔 때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이, 어쩔 때는 수줍게 다가오는 소심한 친구와도 같이.

마치 사계절의 단풍나무처럼 모습을 바꾸는 그녀가, 자신에게 있어 무슨 의미인지 대체 어떻게 정의를 내린다는 말일까.

'아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소꿉친구가 아닌, 다른 목소리.

정말 싫다는 듯이 일그러져 있는 얼굴 사이에서 친절을 읽어버렸다면, 그건 내 착각일까.

"아리에에에엘!!!!!"

속이 답답해져서 소리를 질렀다.

고함 같기도, 비명 같기도, 그것도 아니라면 소중하고도 그리운 이를 부르짖는 것 같기도 한 외침이었다.

내가 부르는 건 과연 누구일까.

얼마 전이라면 그것에 대해 한참이고 고뇌했겠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단언할 수 있었다.

'여보.'

심장이 멎는다.

잠시 멎었던 심장이, 멎었던 것 그 이상ㅡ 혹은 배의 속도로 뛰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하고 천천히 걷다가도, 쿵쿵쿵쿵쿵 하고 전력으로 달린다.

어렸을 적에는 확실히 말할 수 없던 감정을, 이제서야 깨닫다니.

그것도 같은 이름을 가진 타인인 그녀를 상대로.

"..."

전력으로 달리던 몸뚱이를 급정거 시킨다.

거친 반동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지만, 단련된 신체는 작은 흔들림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핏자국을 바라보며, 용사가 깊은 숨을 내뱉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지금까지 아팠는데, 분명 또 아팠겠지.

"어떤 녀석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찢어진 옷조각이 걸려있는 나뭇가지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자그마한 파편에 서린 체향을 맡으며 이를 갈았다.

마치 숫돌에 칼날을 가는 듯 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먹을 쥐어댔다.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주변의 풍경을 훑어낸 용사가 이윽고 고개를 멈췄다.

날카롭게 벼려진 눈동자가 풀밭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는 자그마한 털조각 하나를 시야에 담았다.

"수인, 인가."

짐승의 털 치고는 과하게 관리가 잘 되어 있고, 그렇다고 사람의 털이라기에는 애매하다.

전장에서 여러 종족들을 만나왔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흔적.

언젠가 만났던 전우들의 얼굴을 떠올린 용사가 눈앞의 털조각을 거칠게 잡아챘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려준 것이 바로 마왕, 아리엘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더 이상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전우들의 얼굴을 잊고 그들의 동족을 해칠 수 있을까."

부정.

시야에 붉은 빛으로 점멸하는 경고등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도와주기로, 장렬하게 산화한 그들에게 맹세했잖아.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녀를 돌려달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또 다시 부정.

절대 불가능했다.

뜨거워진 건 심장 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뇌 내의 세포 하나, 신경 하나까지 전부 불타오르고 있었기에.

그렇기 때문에, 대화 따위는 성립하지 않을 터였다.

"그들 몰래 아리엘을 구해낸다는 선택지는?"

자세를 삐닥하게 기울인다.

바람을 타고 저 너머를 향하는 옷조각을 바라보며, 용사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상태에서 은밀기동 따위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상대가 정말 수인이라면, 몰래 움직이는 것 또한 쉽지 않겠지.

애초에 그들을 보고 스스로를 통제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분명,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검을 뽑아들겠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싸웠던 동료들의 동족이다.

달빛과 비로 물든 전장에서는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서로 그 가족들과 동족들을 돌봐주기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지.

그런데도 이런 과격한 생각과 선택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리엘을 되살리기 위해서."

아리엘이 없다면, 아리엘을 되살릴 수 없다.

평생 기다려 온 순간을 겨우 그런 이들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자신의 전부였기에ㅡ

'.....아니, 아니잖아. 정신 차려, 아서.'

이것마저도 핑계.

제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억지로 꺼내든다.

완성되지 못한 풋풋한 감정이었지만, 지금의 자신을 변호하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완벽할 정도였다.

그래, 그러니까.

숨을 고른다.

깊에 들이마쉰 공기 사이로 숲의 청량한 내음이 잔뜩 느껴졌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가 뭐지?

"아리엘을 구하기 위해서."

왜 구하려고 하는데?

"...그녀를."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까."

그 한 마디에, 거짓말 같이 마음이 갈라앉았다.

이제, 그녀를 구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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