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8 - 진실에 대하여.(10)
갑자기 나타나서는 엉엉 울어대는 마족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어색해졌다.
그러니까, 누구지?
상대는 날 알아도 나는 상대를 모른다는게 문제였다.
어떻게든 달래주려고 했지만, 내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욱 서럽게 울어대는 것이 상당히 골치였다.
"마왕님, 마왕님, 어쩌다가, 흑..."
"나는 괜찮으니 너무 울지 말거라, 응?"
옷소매로 눈물을 슥슥 닦아주니 감격에 젖은 표정을 해댄다.
미안하지만,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눈물을 닦아준 것도 아이들이 넘어져서 다치거나 해서 울 경우에 나오는 버릇 때문이었지, 그다지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저는, 엘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엘리. 엘리라고?
익숙한 이름에 익숙한 얼굴을 떠올렸다.
하나도 안 닮았는데 이름 만큼은 똑같구나.
엘리는 이 정도로 울보지는 않는데 말이야.
"설마 용사에게 패배하신 겁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이니 세상을 전부 잃었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는데, 아무래도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뿔을 찾고 있는 듯 싶었다.
미안하지만, 뿔은 이미 잘려나간지 오래라서.
또 울려고 하길래 쓰게 웃으며 등을 토닥여줬다.
이 아이는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인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냥? 지금 생각하니 엄청나게 수상한데냥..."
확실히, 그냥 찾아왔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숲속에 숨겨져 있는 낡디 낡은 신전을 찾아온다?
누가 봐도 수상한 인간ㅡ 아니, 마족이었다.
물론 나는 별로 의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어느 한 인간이 보내서 왔습니다."
마족 엘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간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한 인간이 자신을 구한 뒤에 인간 둘의 목숨을 살리고 이곳으로 향하라 했다고.
"...혹시 그 인간, 금발에 녹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자였더냐?"
"네, 맞습니다."
역시 용사가 맞았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니 아는 사람이냐고 물어온다.
아는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지.
자신을 구해준 이가 나를 이 꼴로 만든 용사라는 사실을 딱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지인이라는 사실만 일러주었지.
"아리엘 씨, 혹시 식사 준비는 다 하셨ㅡ"
"..."
"마족!!"
마족 엘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날붙이를 꺼내드는 벨에 한숨을 내뱉었다.
저 아이가 용납할 수 있는 마족은 나와 할리벨, 그리고 린 정도 밖에 없는 듯 싶었다.
어쩌면 뿔이 달려있어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고.
"내 지인이니 너무 경계하지 말거라."
"...아리엘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미심쩍다는 표정은 여전했지만, 경계는 사그라들었다.
옆에 매달고 있는 아이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꼬리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애들이 겁 먹잖아.
살랑살랑 손을 흔드니 이쪽으로 후다닥 달려오는게 너무 귀여웠다.
"아리엘~"
"아리에에에엘~"
"그래, 그래."
다리에 바짝 붙어서는 제 턱을 마구 비벼댄다.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한 뒤에는 랴뇨리가 언제나 '애기 분내로 범벅이다냥.'라는 말을 했더랬지.
팔을 슬쩍 들어올리니, 다리에 붙어있던 아이들이 영차영차 내 몸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덩치가 꽤 커졌는데도 크게 무겁지 않다는 점에서 놀랐다.
"마왕님, 그 아이들은..."
"...내가 낳은 아이들이다."
마족 엘리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서 희미하지만 내 흔적을 찾아낸 것일지도 몰랐다.
딱히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따스함에 조용히 몸을 맡겼다.
마족 엘리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마왕님은, 그걸로 괜찮으신 겁니까? 다른 종족의 아이를 낳고, 그렇게ㅡ"
"이제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단다."
툭, 하고 정수리를 두드렸다.
끄트머리가 잘려있는 뿔에 슬쩍 시선을 줬다가 빙긋 웃어보였다.
엄청나게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나는 괜찮아.
상대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것에서 나오는 억지 웃음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괜찮았다.
아마도.
"그러고 보니 미코는?"
"미코 님은 린이랑 같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벨은 미코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이유를 물으니 몸은 작아졌어도 자신보다 웃어른이기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었지.
확실히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언제 한번 미코에게 '나도 존댓말을 해야 하는 건가?' 하고 물어봤었는데, 엄청 질색해댔다.
나한테 존댓말을 듣기에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안된다나 뭐라나.
"그러면 라일라는?"
"라일라는 엘리 씨랑 같이 할리벨 씨를 돌보고 있어요."
"...엘리, 라고?"
자신과 같은 이름에 마족 엘리가 흠칫했다.
역시 동명이인은 마족들 사이에서도 신기한 일이려나.
그런 의미를 담아서 바라보니, 마족 엘리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마치 겁을 먹은 것처럼.
"너무 겁먹지 말려무나. 엘리는 좋은 인간이니까."
"그,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엘리라는 인간이 이곳에 있다면ㅡ"
"아리엘 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마족 엘리와 인간 엘리.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시선이 딱, 하고 맞아떨어져 멍청히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본다.
그 기괴한 광경에 반사적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엘리, 엘리? 엘리!!"
서둘러 엘리의 어깨를 흔들어 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둘은 마치 이 세상 전체에 서로 밖에 없다는 듯 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무언가 잘못될까 심장이 쿵쿵 뛰어댔다.
***
어렸을 적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은 바로 엄마를 사는 것이었다.
신전에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헌금을 내고 아이를 사갔다.
산 당일에는 아기가 없었지만, 조금 지나면 품에 안기를 안고 오는 것이었다.
여신님께 돈을 드리면 아기를 살 수 있구나.
여렸을 적에는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면 돈을 내고 부모님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 했던 생각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지.
신관님이 주시는 용돈을 꼬박꼬박 모으던 순간이.
그렇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수중에는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모님을 가지기에 한참이나 모자랐다.
이대로 가다가는 절대로 부모님을 살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니 전부 의미가 없어져서, 신전 앞에서 구걸을 하는 거지에게 지금까지 모든 돈을 전부 줘버렸더랬다.
고맙다며 외치는 거지에게 미소짓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났다.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를 부모님보다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며 울부짖는 거지의 모습이 더 값져보였다.
그래서 인간을 죽였다.
마족의 아이의 사지를 분해해, 소환을 위한 재료로 사용한 빌어먹을 새끼들.
나는 아이의 목숨을 빌어 이 세계에 소환되었다.
그렇기에 인간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눈앞의 인간을 찢어발기고, 그곳을 벗어난 뒤 근처를 지나가던 녀석 둘의 머리통을 으깨버렸지.
그 뒤에는 인간 녀석들이 나타나, 나를 제압하고는ㅡ
""아, 아아아아악?!?!?!!!""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머릿속에 들어차는 무수한 기억들이 엘리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러니까,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엘리, 네 기억이잖아.
목소리가 속삭였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엘리가 아니야.
엘리지만, 그 엘리가 아니라고.
"엘리, 괜찮느냐?! 엘리!!!"
"마왕님, 아니... 으, 아리엘, 씨?"
머릿속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에 손을 뻗으니 손바닥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내가 마족인지, 인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리엘 씨, 왜 그렇게 바라보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아파서, 머리통을 열어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마왕님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어.
...아니, 마왕님이라니.
마왕님이 아니라 아리엘 씨잖아.
"조금, 조금만 쉬면 괜찮을 거에요."
힘 없이 주저앉으니 아리엘 씨가 다가와 부축해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따뜻한 품 안에 안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냥."
"...나도 잘 모르겠구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엘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갑자기 찾아온 마족 엘리.
그리고 그녀와 마주친 엘리까지.
둘이 서로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비명을 질렀던 것까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용사라면 알고 있을까...'
그가 마족 엘리를 이쪽으로 보냈으니 이 현상에 대한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평범하게 앓아누운 것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마족 엘리는 그렇다고 해도 정신을 잃은 엘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체 부위가 바뀌었다ㅡ 랄지, 자라났다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기묘한 냄새가 난다냥..."
손을 뻗자 딱딱한 감촉이 손바닥 가득 느껴졌다.
그 이질감에 몸을 덜덜 떨자 랴뇨리의 꼬리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듯한 행동에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잘도 이 상황에서 침착할 수가 있구나.
"엘리..."
그녀의 머리 위에 솟아난 자그마한 뿔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