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3 -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다.(5)
이런 특정층을 노린 듯한 게임에도 마스코트 캐릭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더랬지.
플레이어의 옆에 떠다니는 요정 같은 존재나, 나레이션으로 존재하는 귀여운 목소리라던지 그런 것들.
이 망할 게임에도 그런 캐릭터가 있었다.
마왕에게 조언을 해준다ㅡ 라기 보다는 그저 '대단해요!' 같은 말만 해주는 캐릭터였지만서도.
"...그러니까, 네가."
"니얄리랍니다, 마왕님."
순간 인식에 장애가 생겼다.
이름은 똑같은데 말이지.
그래, 분명 이름은 똑같은데 말이지?
생긴게 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 하나도 일치한 부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설마...'
같은 이름의 인간과 마족이 서로 마주하게 된다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괴악한 가정이었지만, 이미 엘리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마냥 의심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마왕인 걸 한 번에 알아봤으니 의심할 필요도 없을 터였다.
"그나저나,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던 게냐?"
용사가 어쩌구, 진정한 어쩌구 일장 연설을 하고 있던데.
눈이 가려져 있어서인지 상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분명 게임 속에서는 귀엽기만 한 마스코트 캐릭터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혹시 마신전에는 가본셨는지요?"
"가봤지. 그곳에서 오는 참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마왕님도 알고 계시겠군요."
모든 것의 진실을.
마족이 어째서 이곳에 소환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소환되었는지까지 전부.
"그들에게 있어서 용사는 제거해야 할 또 다른 적이 불과하답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용사를 배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용하는 편이 낫겠죠."
왕도에 흉흉한 소문을 퍼뜨려 인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 혼란스러운 인간들 앞에서 용사를 옹호한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내분을 일으키고, 혼란을 야기한다.
인간을 가장 간단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의심이었으니까.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달라졌구나."
음흉해졌다고 해야할지, 꾀가 많아졌다고 해야 할지
결국 그 끝에 남은게 인간의 파멸이라는 점에서 더욱 악질적이었다.
"달라질 수 밖에 없죠. 지금의 저는 마계의 요정인 니얄리임과 동시에 인간인 니얄리기도 하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을 벌인 건 인간 니얄리로서 벌인 일인 걸까.
완전히 섞여서 하나가 된 건지, 아니면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 들어가게 된 건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엘리는 어떨까.
그녀는 과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수상하네요, 이 인간. 아니,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무언가."
"수상하기는 하지만, 딱히 해가 될 것 같지는 않구나."
"그 점이 더 수상하다는 거라구요, 마왕님!"
할리벨이 꼬리의 끝부분으로 내 팔을 꾹꾹 찔러왔다.
그녀의 외침에도 니얄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저 모습을 보니 수상한 것 같기도 하구나.
"그래서, 대체 목표가 뭐길래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마계로의 귀환. 지금 저의 소원은 그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마왕님."
니얄리가 말했다.
인간을 향한 복수도, 죽은 마족들의 부활도 아닌 마계로의 귀환.
그녀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 세계는 지긋지긋해요."
울적한 목소리였다.
그것이 마계 요정 니얄리에서 기인하는 건지, 인간 니얄리에서 기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나눌 필요는 없어 보였다.
목소리 안에 담긴 감정은 겨우 한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으니까.
"그런데 니얄리, 같은 이름의 마족과 인간이 만나게 되면 왜 그렇게 되는 건지 알고 있나?"
그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나는 내가 이 게계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게임을 하며 얻어온 지식은 생각보다 훨씬 쓸모가 없었다.
결국 아는 것이라고는 마왕이 어떻게 능욕 당하는지 같은 것 뿐이었으니까.
"마왕님께서 이 사실을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마계와 이 세계는 일종의 평행세계랍니다."
이름은 곧 존재의 증명.
다른 차원의 같은 존재가 한 장소에 모이면, 세계의 법칙 덕분에 하나만 남겨지게 된다는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동일 존재는 한 세계에 하나 뿐.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였으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나로 합쳐지면 어느쪽이 되는 거지?"
인간인가, 혹은 마족인가.
머리에 마족의 뿔을 단 엘리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지금은 깨어났을까.
깨어난 뒤의 엘리는 과연 어느쪽인가.
어쩌면 그 사실을 알기가 두려워서 이렇게 도망쳐 왔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둘 다랍니다. 니얄리는, 언제나 니얄리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조금은 활발해진 목소리였다.
언젠가 들었던 것과 비슷한 말투에, 조금이지만 향수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분명 그때는 재미있게 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저희의 힘으로는 마계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요. 가능하다면 마신님의 힘 정도가 가능하겠지요."
마신, 마신이라...
마족들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니 분명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지.
하지만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마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니.
"그리고 마신님의 힘이라면, 분명 마왕님의 몸도 회복시키실 수 있을 거에요."
"...어떻게 알았지?"
"알고 계시잖아요. 마왕님의 곁에 가장 오래 있었던 존재가 바로 저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그랬지.
그렇다면 과거의 마왕과 지금의 내 차이점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 몸뚱이가 얼마나 쇠약해져 있는지 따위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셈이냐."
"일단은 마신님을 이 세계에 강림시켜야겠죠."
태연하게 내뱉어지는 말을 들으며 살풋 표정을 찌푸렸다.
과연 그게 유일한 방법일까.
마신전에서 봤던 그 광경을 떠올리니 속이 매스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짓을 똑같이 해야 한다고?
피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을까."
"이미 이 세계에서 마족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답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인간들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전부이겠지요."
마족을 불러오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전부 소멸시키고, 마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마족들이 이 세계에 불려오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 틀림 없었다.
"일단, 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꾸나."
"긍정적인 답변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마왕님."
니얄리가 빙긋 미소지었다.
***
"...아."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정신을 잃고 있던 상태였으니 어쩌면 맞는 표현일지도 몰랐다.
몸을 일으킨 엘리가 그대로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도 결국, 마족과 같았군요."
마족이 인간과 같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 또한 마족과 같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교의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진실.
그 사실을 마족도, 인간도 아닌 몸뚱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아리엘 씨..."
그녀는 그저 희생자일 뿐이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재앙이 휩쓸려 버렸을 뿐인 가련한 피해자.
지금까지 이어졌던 그들의 여정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들이었을까.
결국 마족과 인간이 만들어낸 전쟁은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만 안겨주었을 뿐이었다.
정작 벌을 받아야 할 존재들은 따로 있었는데.
"마왕님께 가야해."
아니, 아리엘 씨에게.
엉망으로 터져나오는 호칭에 제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마족인 엘리 씨는 조금 들어가 있으시죠?
속으로 킥킥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활력이 몸 안에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건 마족의 신체가 지닌 힘일까, 아니면 하나가 되면서 얻어진 무언가일까.
"떠날 생각이세요?"
"...네."
언제 들어온지 모를 정도의 조용함이었다.
꿈을 꾸는 것 같은 눈동자와 마주하자 왜인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마족인 아이여서 그런지, 친밀감도 두 배가 되었다.
"확실히 그 모습에 대해서는 연구를 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반사적으로 손이 뻗어졌다.
언젠가 아리엘 씨가 하던 것처럼 아이의 정수리를 톡톡 두드리니 특유의 푹신푹신한 감촉이 잔뜩 느껴졌다.
그러면, 슬슬 출발할까요.
떠날 채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지금의 몸이라면, 아리엘 씨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이걸 가져가세요, 엘리 씨."
"...이건."
"이거라면 여신의 저주를 해제할 수 있을거에요. 어머니를 만나게 되신다면, 부디 전해주세요."
아이가 건넨 작은 약병을 받아들고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 손목에 달려 있던 장신구ㅡ 아이의 날개와 꼬리, 그리고 뿔로 만든 팔찌가 사라져 있었다.
그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이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러면, 다녀오세요."
"...몸 조심하세요, 린."
당신이 잘못된다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다름 아닌 아리엘 씨니까, 부디.
아이는 언제나와 같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