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죽인 만큼 낳는 마왕이 되었다-134화 (134/342)

Chapter 134 - 떠나보내고, 받아들이다.(6)

사람과의 사람 간의 결속이 가장 약해진 지금이 바로 내분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시점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등 뒤로는 칼날을 숨긴다.

용사를 옹호하는 자와, 용사를 배신자라고 욕하는 자.

용사를 잡아들이려는 왕실과 그것을 막으려는 시민들까지.

여러 관계가 얽힌 끝에 결국 그 끄트머리가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불타올랐다.

"미친 놈들, 너희가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전부 국왕 폐하의 뜻이다!"

왕성 앞에 모여 시위를 하는 이들을 기사들이 탄압하기 시작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이들, 말의 발굽에 짓눌려 압사한 자들이 늘어났다.

귀족과 왕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간만에 되찾았던 평화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인간이란 생물은 언제나 그러했다.

분쟁이 없다면 못 산다는 듯이 굴었지.

"진실을 밝혀라! 그런 소문이 그냥 돌 리가 없지 않나!"

"마족들에게 희생당한 가족들을 되살려 내라고, 빌어먹을 새끼들아!"

진실과 거짓 사이에 치명적인 극독을 섞어넣는다.

어째서 왕국만이 제일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나.

그건 바로 마족들을 소환한 것이 귀족들과 왕실의 소행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길 원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그런 짓을 벌였다고, 그런 소문들이 인간들의 입을 타고 퍼져나갔다.

"자, 보이나! 이게 바로 왕실이 타락했다는 증거다!"

가장 높은 곳에 선 남자가 무언가를 들어올렸다.

그게 무엇인가 유심히 보니, 사람의 머리였다.

한때 남작의 칭호를 가지고 있던 그 머리통은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엉망으로 부어오르고, 시퍼런 멍이 피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피부 색을 봐! 그리고 이 흉측한 몰골까지! 이게 마족이 아니면 뭐겠어!"

조금의 이성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저 남자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아챘겠지.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이성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의 머리통을 본 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마족에 대한 공포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뇌를 마비시켰다.

"멍청한 놈들... 귀족을 죽이고도 무사할 것 같았나!"

이 세계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겠지.

인간과 인간이 증오를 토해내고, 서로에게 죽음을 기원하은 저주를 쏟아낸다.

지금껏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하나로 뭉쳐 일종의 비수가 되었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구나."

"그렇죠? 제가 수상하다고 했잖아요, 마왕님!"

할리벨이 외쳤다.

그녀는 아무래도 니얄리가 나를 배신할까 걱정하고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이 망할 게임을 해왔기에 알 수 있었다.

니얄리는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 정도로 왕도가 어수선하면, 용사도 움직이겠지."

이미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난리를 치고도 소식이 없다면 아직까지는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니얄리가 부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알아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용사 만큼은 내 손으로 찾고 싶었다.

"용사를 만난다고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아요, 마왕님."

"...내 마음의 안식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용사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한다면 그 정도로 내가 몰려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정말 우스운 건, 용사를 향한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님을 깨달았는데도 그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로는 부족하신 모양이네요."

"...미안하구나."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할리벨이라는 존재가 내 곁에 남아있는 건 좋았지만,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그녀가 환상인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인지.

내가 정상인지, 혹은 미쳤는지.

"마왕님,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이번에는 할리벨이 아니라 니얄리였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미소와 함께,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좋은 소식이라니.

설마...

"용사를 찾았습니다."

***

마족화 된 기사들을 쳐내고, 마침내 바로니스 국왕의 목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그래, 분명 복수를 끝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니스 국왕이 제 품에서 마석을 꺼내 깨뜨리는 순간,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강대한 기운이 홀 안을 가득 채웠더랬다.

"설마 바로니스 국왕까지 마족화를 했을 줄이야..."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로브를 눌러쓴다.

바로니스 국왕이 살아있는 한, 그는 반드시 아리엘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뿔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일단은 돌아가야겠어..."

"어디로?

"...!!"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았다.

제 감각을 뚫고 들어온 실력자가 있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검자루에 손이 갔다.

하지만 상대와 눈을 마주한 순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의 감각을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감각이 허락한 존재라는 것을.

"아리엘, 정말 너야?"

"그러면, 환상이라도 되는 것 같으냐?"

본인이 한 걸음 내딛으면, 아리엘 또한 한 걸음 내딛었다.

그렇게 서로 세 걸음씩 앞으로 가서 마침내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팔을 벌리고 상대를 껴안는 것이었다.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이 싸늘한 온기.

그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는 어쩐 일로 찾아온 거야."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찾아 왔다."

황금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맞았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눈동자였지만, 그 속에 담긴 어둠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한 가지 짐작가는 것은 있었다.

언제나 아리엘의 옆을 지키던 마족.

할리벨이 정신을 잃었다는 것 정도는 용사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리엘이 자신을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건, 분명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할리벨이 죽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아리엘은 웃고 있었다.

울지 못해 웃는다는 듯한 미소에, 용사가 표정을 찌푸렸다.

심장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하면, 믿을 건가?"

아리엘이 까치발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입을 맞췄다.

입술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용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서."

"..."

"집착도 사랑의 한 종류일까?"

가느다란 손길이 용사를 향했다.

마치 유혹하듯이 그의 뺨을 쓸어내리고 목줄기를 훑는다.

단순히 손가락이 스쳤을 뿐인데도, 그 부분이 불에 데인 듯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겨우 한 달 남짓을 헤어졌을 뿐인데도 이토록 애뜻할 수가 있을까.

"그래도, 일단은 이곳에서 빠져나가는게 우선이구나."

지금의 왕도는 말 그대로 지옥도나 다름 없었다.

사람들을 학살한 왕실이 용사를 찾기 시작하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다.

혹시 몰라, 왕도에 있는 골목길이란 골목길을 싸그리 불태울지.

"...일단은, 알겠어."

용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아리엘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혼자서 안일하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본인만 있었다면 마족화 된 기사들을 떨쳐낼 수 있었겠지만, 아리엘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으니까.

물론 그녀를 탓하려는 건 아니었다.

아리엘의 선택에 대해 무어라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녀 자신 뿐이었으니.

"자, 그러면 가자꾸나. 나도 이곳에 있으면서 구경만 하던 건 아니라서 말이다."

아리엘이 용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을 통과할 때마다, 바깥쪽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그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용사를 찾으셨군요, 마왕님."

"그래. 출구는 어디지?"

"이쪽으로 계속 가시면 나온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가시길."

분명 눈가에 안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비명과 고함이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면 두 분 모두, 또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광기의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음에도, 상대의 몸에는 어떠한 떨림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라는 것처럼 쉬지 않고 걸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용사가 아리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자꾸나."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린 아리엘이 그대로 통로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는데.

"...아."

기다랗게 뻗어진 칼날이 그대로 아리엘의 몸을 관통했다.

힘 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잠시, 잔뜩 충혈된 눈으로 성검을 뽑아든 용사가 그대로 상대의 목을 베어냈다.

잘려진 머리통이 허공을 날았다.

그 두 눈동자에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용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리엘!!!"

"...괜찮, 괜찮아."

다행히 급소는 아니었다.

어깨를 관통한 칼날에 아리엘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래, 분명 급소가 아니었지만 쇠약해진 그녀에게 있어서는 치명상이나 다름 없겠지.

"조금만, 조금만 참아..."

지금 바로 검을 뽑아내면 과다출혈로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추격을 생각한다면 일단은 이곳에서 서둘러 빠져나간 뒤에 조치를 취하는게 맞을 터였다.

...그게 맞아.

가까스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용사가 그대로 아리엘을 안아들었다.

3